107화. S급 던전 브레이크 (1)
저녁 무렵 칭다오시의 S급 던전 주변에서는 식사 준비가 한창이었다.
나무로 만든 탁자가 죽 늘어서 있었고 동그랗고 등받이가 없는 작은 의자가 다닥다닥 놓여 있었다.
그리고 식판을 들고 음식을 받아 가는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언제 터질지 몰라 아슬아슬한 던전 주변에는 이미 군인과 헌터밖에 없지만, 이들도 먹어야 던전을 지킬 수 있었다.
그리고 던전을 보며 불안한 마음도 하루 이틀이지, 열흘 이상 비슷한 모습을 보면 둔감한 마음이 생기기 마련이었다.
식사는 이곳에서 요리하지는 않고 매끼 식사팀이 운반해오는데,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요리된 음식을 매끼 배달을 해왔다.
멀리서 배달을 해와야 해서 그동안 메뉴는 한두 시간쯤 두어도 먹을만한 종류의 음식 위주로 짜였다.
그런데 오늘은 고기 육수에 면을 삶은 국수와 각종 튀김이 메인 요리였다.
물기를 뺀 소면 덩어리를 국물에 말아 먹는 건가 싶었지만, 오늘은 웬일인지 이곳에서 면을 삶고 있었다.
아무래도 밥이 맛없다는 항의가 꽤 들어간 모양이었다.
후루룩.
여기저기서 면치기를 하는 소리가 들렸다.
역시 면은 방금 삶았을 때 먹어야 했다.
헌터 한 명이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튀김을 베어 물었다.
콰자작.
유난히 바삭하게 부서지는 소리가 일품이었다.
그 모습이 너무 맛있어 보였는지, 앞에 앉은 헌터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헌터는 앞에 앉은 헌터에게 맛있다며 먹어보라 권했다.
그러자 맞은편 헌터는 먹던 국수를 반은 삼키고 반은 흘리며 말했다.
“XX.”
갑자기 욕을 하길래 인상이 찌푸려졌지만, 다시금 뒤에서 뭔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콰자작.
뒤돌아보니 던전을 감싸고 있던 콘크리트 구조물이 과자처럼 부서지고 있었다.
S급 던전의 브레이크가 발생했다.
던전 내부의 몬스터를 처치하던 노력은 던전 브레이크를 늦출 수는 있었지만, 결국 브레이크가 터지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포탈을 둘러쌌던 대형 구조물은 콘크리트로 만든 것이 무색하게 얇은 과자처럼 부서졌다.
던전 내의 넓은 영역에 흩어져 있던 몬스터가 강물처럼 밀려오면 그 앞을 막는 것은 휩쓸릴 수밖에 없었다.
리자드형 몬스터, 외골격형 몬스터, 바위 골렘형 몬스터, 4족 보행 야수형 몬스터 등 다양한 형태의 몬스터가 마치 빅뱅처럼 한 점에서 쏟아져 나왔다.
포탈 주변의 수백 명의 군인과 헌터가 몰살당하는 데는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던전이 발견되는지는 상당한 시일이 지났고, 지금까지 여러 번 토벌이 시행되었으나 보스를 잡지 못했다.
그래서 던전 브레이크가 예상되는 포탈을 중심으로 반경 수십 킬로미터 이내에는 군인과 헌터만이 존재할 뿐 민간인은 이미 다른 지역으로 이동한 상태였다.
이제는 아무런 방해꾼도 없이 나오던 몬스터의 쏟아짐이 멎었다.
이제 몬스터들이 더 나오지 않는가 싶었을 때 한 마리의 몬스터가 나왔다.
자박자박.
마치 팅커벨처럼 날개를 단 아름다운 요정의 형태를 띤 몬스터가 포탈을 걸어 나왔다.
등 뒤의 날개가 팔랑일 때마다 반짝이는 가루들이 흩날렸다.
보스인 데빌 페어리였다.
데빌 페어리는 포탈에서 나와서 목을 길게 빼서 팔자 모양을 그리며 몸을 풀었다.
데빌 페어리의 날개가 펄럭였다.
높은 상공으로 올라가 주위를 살피며 갈 곳을 찾는 듯했다.
반경 수십 킬로미터 범위에 사람은 없었지만 높은 곳에 올라가니 저 멀리 밝은 불빛이 보였다.
데빌 페어리의 날개가 펄럭였다.
넓은 대륙답게 칭다오시를 가로지르는 데만 해도 거리가 100km는 되었다.
칭다오시의 외곽 한 아파트에서는 저녁 준비가 한창이었다.
주방에서 엄마가 식사 준비를 할 동안 아이는 거실 TV를 보고 있었다.
아이가 엄마를 불렀다.
“마마, 예쁜 언니.”
“예쁜 언니가 나왔니?”
“어, 예쁜 언니.”
“그래, TV에 예쁜 언니가 나왔어?”
“창밖에.”
어린아이들의 말은 참 재미있었다.
“미미야. 호호, 여긴 20층인데 어떻게 창밖에 이쁜 언니가 있어? 혹시 엄마가 베란다 유리에 비친 것 보고 예쁜 언니라고 하는 말 아냐? 호호호.”
아이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있었어.”
아이의 엄마는 베란다 창밖을 열어보며 아이에게 아무것도 없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자, 아무것도 없잖아.”
그런데 저 멀리 엄마의 눈에 뭔가가 보였다.
멀리 지표면에 검고 노란 연기가 피어올랐다.
“사고가 났나?”
그 순간, 기우뚱하고 아파트가 기울어졌다.
미미가 미끄럼틀을 타듯 한쪽 벽으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엄마는 필사적으로 아이를 안으려 했다.
아파트가 더 기울어지며 집안의 모든 물건이 한쪽 벽으로 쏟아져 내렸다.
“꺅!”
팟!
어둠이 이들을 집어삼켰다.
던전 브레이크에 대항하기 위해 중국에서는 자체 레이드를 펼쳤다.
중국에는 많은 인구가 있었고, 그래서 많은 헌터가 있었다.
고대로부터 내려온 중국 특유의 전술은 인해전술이었다.
중국의 인해전술은 어느 정도 구체적인 성과가 있었다.
포탈을 통해 나온 수많은 몬스터는 마찬가지로 수많은 헌터와 맞붙었고, 그들의 목숨과 교환해 몬스터의 수도 줄었다.
하지만 문제는 보스였다.
필드 몬스터들은 어떻게든 물량으로 승부해서 줄여나갔지만, 보스는 결국 정점의 헌터들이 상대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는 실패였다.
무려 다섯 명의 S급 헌터가 사망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 * *
[지금까지 KMS의 조금만이었습니다.]
민아와 함께 스터디 카페에 온 가영이는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보고 있었다.
던전 브레이크와 함께 대학이 강제 휴강을 하긴 했지만, 학교에서는 학생들을 무조건 쉬게 할 수만은 없었다.
그래서 대학은 일부 강의는 온전한 건물에서 진행하도록 했고, 강의실이 부족해 못하게 된 수업은 리포트 및 온라인 강의 등으로 학점을 이수하도록 했다.
옆에서 온라인 수업을 듣던 민아가 물었다.
“뭐 봐?”
“어, 뉴스 좀.”
“무슨 뉴스?”
“어, 그냥 뉴스.”
그 말을 들은 민아가 듣던 수업을 멈추고 가영이를 바라보았다.
민아의 눈이 얇아지며 가영이를 향해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그거 신기하네. 내가 아는 가영이는 시사와 경제에 밝고 핵심 주제를 정확하게 말하는 아이라서 정확히 어떤 뉴스라고 말하지, 그냥 뉴스라는 표현은 잘 안 쓰는데 말야. 흠~ 뭘까?”
민아의 추궁에 가영이가 소심하게 답했다.
“음, 너희 오빠가 인터뷰를 하셨어.”
“뭐?”
가영이의 스마트폰에서 흘러나온 영상에는 오빠가 있었다.
민아는 천천히 영상을 시청했다.
영상 속에서는 오빠가 르녹이라는 기사와 함께 인터뷰하고 있었다.
저 덩치 큰 기사는 지난번 샤론 영지에 놀러 갔을 때 본 적이 있었다.
하도 팔 근육이 커서 기억에 남아 있었다.
오빠는 샤론 길드를 소개하고 천마 길드와 협업하게 된 이야기를 풀었다.
르녹이라는 기사는 덩치에 걸맞게 아주 커다란 검을 휘두르는 시범을 보였다.
인터뷰 후반에는 르녹이 이렇게 말했다.
[샤론 핫바, 맛도 영양도 만점, 능력치가 올라가는 건 덤입니다.]
민아는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야, 근데 마지막에 샤론 핫바 얘기는 뭐야? 완전 에반데?”
가영이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맛있어.”
“뭐?”
가영이가 가방에서 부스럭거리더니 진공 포장된 핫바 하나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이거 배고플 때 간식으로 먹으면 짱 맛있어.”
민아는 가영이를 요상하게 바라보았다.
민아가 알기론 가영이는 동아리 선배인 곽영진 선배와 썸을 타고 있었다.
던전 브레이크에서도 곽 선배는 무사했었다.
“영진 오빠랑은 완전 끝이야?”
“너라면 위기의 순간에 자길 버린 사람과 사귈 수 있어? 나 아직도 그때, 그 벽 위에서 선배가 그냥 뒤돌아가던 모습이 너무 생생해.”
가영이는 그때 막다른 골목에서의 일이 아직도 트라우마로 남아 있던 것 같았다.
목숨을 위협받고, 또 버림받았던 경험이 강한 대상에 대한 동경으로 바뀌었을지도 몰랐다.
“가영아, 안 되겠다. 이 가방 너 써라.”
“뭐?”
“이거 그때 그 실드 나오는 가방이야. 내가 우릴 지켜준 가방이라 고마워서 계속 쓰고 있었는데, 이제 너 써.”
“안 돼. 너는?”
“나? 알잖아. 나 가방 많은 거. 그리고 오빠가 따로 챙겨준 것도 있어. 가방보다 더 센 거야.”
가영이가 감동한 것 같았다.
“가영아.”
“응, 민아야.”
“강한 사람 하나 소개시켜 줄까? 기사급으로다가.”
“……?”
“거기 영상에 르녹 어때? 팔뚝이 아주 실하던데. 그때 우릴 ‘구해준’ 사람 중 하나야.”
띠링!
가영이의 스마트폰에 알림이 울렸다.
“어? 조 기자 채널에 뭐가 올라왔네. 너희 오빠 소식을 제일 빨리 알 수 있는 데는 조 기자 채널이랑, 블루실버 카페 등 몇 개가 있어. 샤론 공식 페이지도 가봤는데, 거기는 관리 안 하는 것 같더라. 몇 개만 알림 설정해두면 늦지 않게 알 수 있지. 그리고 너무 뭐라고 하지 마. 내가 조금 알아봤는데, 그분 주변에 너무 예쁜 분들이 많아서 안 되겠더라고. 그냥 팬심이야 팬심. 목숨을 구해주셨는데 팬 정도는 해도 되는 거잖아.”
방금 올라온 영상을 틀었다.
[안녕하십니까? 조 기자입니다. 저는 지금 중국 칭다오시에 와있습니다. 한국 시각으로 어제 오후 7시 중국의 칭다오시에 있는 S급 던전 브레이크가 터지면서 많은 시민이 피해를 보았는데요. 밤사이 이곳 칭다오시에서는 대규모 전쟁이 일어난 듯 참혹한 모습입니다.]
화면이 주변 모습을 비추었다.
폭격을 당한 듯 건물의 철골 구조가 드러나 있었다.
“보시는 것과 같이 몬스터들이 휩쓸고 간 지역은 건물마저 붕괴되어 지진이라도 난듯한 모습입니다. 중국 정부에서는 자체 토벌을 진행해서 필드 몬스터의 수는 상당수 줄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보스의 레이드는 여전히 여의치 않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미 보스를 사냥하는데 세 번이나 실패한 던전으로, 보스의 궁극기가 여타 다른 던전과 차원이 다른 듯합니다. 칭다오시에 등장한 S급 보스는 날개가 있어서 날아다닐 수 있는 종류이며, 시간당 수십 킬로미터를 날아갈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칭다오시는 한국과 육백여 km 정도 떨어진 거리로, 보스가 바다를 건너고자 한다면 몇 시간 만에 한국에 도달할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이에 우리나라에서도 비상 대책 회의를 하며 S급 헌터들의 중국 파견을 검토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지금까지 던전 브레이크 전문기자 KMS 조금만이었습니다.]
민아가 놀라워했다.
“와, 여기도 장난 아닌가 보네.”
“몰랐어? 어제저녁에 터졌는데 우리는 그래도 B급이었는데, 여긴 S급이래.”
“그런데 보스가 아직도 안 잡혔으면 어떡해?”
“글쎄, S급 헌터들이 모여서 잡아야겠지?”
“천마 같은?”
“그렇지, 설마 너희 오빠랑은 상관없겠지?”
“에이, 설마.”
* * *
“음~”
하늘 위에서 마시는 카라멜 마끼아또 달콤했다.
달달.
그런데 그런 달콤함과 다르게 내 다리는 달달 떨고 있었다.
내 옆자리에 앉은 차지율 길드장은 편안한 모습으로 중국 상황이 나오는 TV를 보고 있었다.
이 비행기에는 승무원 수보다 승객 수가 적은 것 같았다.
승객이라고는 나와 천마, 그리고 지난번에 연습했던 드론 팀이 다인데, 승무원은 우리를 극진히 모시는 임무를 받은 듯 신선한 기내식에 전문 바리스타가 탄 듯한 커피까지 내려주었다.
서울에서 칭다오시까지 비행기로 가면 눈 깜짝할 사이라 기내식이 이렇게 나올 필요가 있는가 싶었다.
아무튼 귀한 대접을 받는 모양이 최후의 만찬 같아서 불안함이 없지 않았다.
그런 나를 보며 차지율이 말했다.
“불안하신가요?”
“아, 조금요?”
“훈련 때는 아주 의욕적으로 저를 공격하시던데, 그때의 반의반만 하시면 됩니다.”
“아, 네.”
“일단 가면 중국 헌터 두 명이 더 있을 겁니다. 저까지 셋을 용병 계약하시는 것이죠. 저와 훈련할 때처럼 시간차 공격을 하거나 할 필요까진 없습니다. 민준 님은 멀리 계시고, 용병들이 궁극기를 맞아서 치료가 필요하다고 쪽지가 올 때, 소환해 주기만 하면 됩니다.”
“그걸로 충분할까요?”
“그럼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보스의 궁극기는 방어할 수 없습니다. 무조건 피가 닳지요. 하지만 S급 헌터들은 보스의 궁극기를 한두 번 정도는 버틸 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게 피가 닳았을 때 도망을 쳐야 하는데, 보스가 날아서 쫓아오니 달아나지 못하고 죽는 것이죠. 하지만 저에게는 민준 님이 있잖아요. 잘하실 수 있죠?”
“네.”
달달거리던 다리가 조금은 차분해졌다.
비행기의 창문 아래로 육지가 보였다.
금쪽같은 소환수들
— 거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