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쪽같은 소환수들-106화 (105/230)

106화. 데빌 페어리

연습이긴 해도 S급을 잡는 일은 쉽지 않았다.

“르녹, 꾸얀. 소환!”

화아악!

르녹, 꾸얀이 소환되어 내 앞에 나타났다.

이국적인 얼굴에 갑옷을 입고 검을 들었으며, 몸의 곳곳에 알록달록한 물감이 묻어 있는 모습이 꼭 전위예술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들의 얼굴과 눈빛에는 이번에는 꼭 잡고야 만다는 강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나는 이들이 소환되자 진하게 눈빛을 마주쳐 주었다.

“르녹과 꾸얀은 이번에는 샤샤 쪽으로 이동할게요. 가서 샤샤와 함께 선물함. 알죠?”

“네!”

“알파! 부탁해.”

―네, 알겠습니다.

화아악.

르녹과 꾸얀이 가자마자 나는 전황을 보기 위해 드론 팀에게 문의했다.

“드론 팀! 차지율 님 어디 있는지 화면 좀 부탁요.”

“네, 계속 띄우고 있습니다.

귓가를 울리는 쪽지가 왔다.

띠링!

[민준 님, 르녹입니다. 샤샤 님과 합류했습니다.]

[알았어요. 그 장소에서 대기하세요.]

[샤샤야.]

[네, 민준 님.]

[차지율 님 서쪽에 있으니까, 서쪽으로 이동해서 화살 몇 방 날려봐. 그러다 싸우러 오면 조금 버텨보고 산탄총 만지는 순간, 쪽지 줘. 바로 소환할 테니까.]

[네, 알겠어요.]

“드론 팀, 남쪽으로 이동해야 할게요. 제리야, 남쪽으로 이동하자.”

“알았당.”

나는 이것저것 주문하다 보니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었다.

기본적인 지휘 과정은 이랬다.

우선 드론을 통해 대략적인 차지율 길드장의 위치를 파악했다.

내 옆에는 드론을 담당하는 팀이 있었고, 이들은 드론을 잔뜩 가지고 다니며 드론이 파괴되면 계속 새로운 드론을 날렸다.

드론으로 상대의 위치를 파악하면 샤샤와 카나가 상대에게서 제법 멀리 떨어진 지점에서 자리를 잡는다.

최대한 원거리에서 공격하기 위해서였다.

처음에는 여섯 명이 함께 6대1로 붙어보기도 했다.

아무리 S급이라곤 하지만 여기도 A급이 둘이나 있는데, 6 대 1이고 내가 힐까지 써주는데도 안 되려나 싶었다.

하지만 S급은 과연 명불허전이었다.

6 대 1로도 S급에게는 무리였다.

차지율 길드장은 평소 정장을 입은 모습을 볼 때는 깔끔하고 댄디한 도시남이었는데, 갑옷을 입고 칼을 들자 천마로 변했다.

천마는 아무나 쓸 수 있는 이름이 아니었다.

검사로서 궁극의 경지에 이른 자만이 쓸 수 있는 이름이었다.

또한, 게임의 규칙은 페인트탄에 맞으면 탈락이었다.

차지율 길드장은 가까이 붙은 우리팀원에 가볍게 페인트탄을 맞추었다.

힘으로 한판 떠본 다음 생각한 작전은 삼각 작전이었다.

원래 지금 하는 훈련의 목적은 유기적인 소환 훈련이었다.

그 목적을 충실히 달성하기 위해, 그리고 어떻게든 한번 이겨보기 위해 차지율을 중심으로 커다란 삼각형을 그렸다.

각 삼각형의 꼭짓점 두 명씩 위치하면서 그 상태로 치고 빠지기를 하려고 했다.

공격은 소환수와 용병이 알아서 하자고 했고, 공격하다가 빠져야 할 것 같을 때 쪽지로 알려주면 내가 소환해 주기로 했다.

그런데 이것도 막상 해보니 쉽지 않았다.

일단 싸우다가 빠져야 할 것 같다고 판단하고 소환되기까지의 약간의 시간에 페인트가 묻는 경우가 많았다.

실전이었다면 사망 판정이었다.

또한, 적절한 타이밍에 빠져나와 나에게 소환되었다고 해도, 다시 공격하러 가려면 직접 가거나 이미 싸우고 있는 소환수 옆으로 가야 했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삼각 대형이 금세 무너졌다.

직접 가려면 너무 오래 걸리고 소환수 옆으로 재소환되어 보내자니 삼각 대형이 아니라 한 덩어리가 될 뿐이었다.

그래서 소환수와 용병이 직접 이동하는 거리를 짧게 줄여주려고 내가 차지율 헌터 가까이 가면 차지율 헌터에게 발각당했다.

내가 발각당하면 게임은 또 나의 패배였다.

조금 전에도 차지율 헌터에게 발각당해서 무려 일곱 번째 패배를 당했었다.

드론을 향해 손가락 일곱 개를 펴던 모습이 어찌나 얄밉던지 꼭 이겨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렇게까지 하지는 않으려고 했는데 S급을 상대로 아껴둔 수가 있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소리였던 것 같았다.

내 옆에는 알 타르가 정좌를 한 채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알타르 님, 준비되어 가나요?”

“…불꽃으로 타오르리라.”

알타르는 마침 20분 동안 외우던 주문을 마치고 나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샤샤에게 쪽지를 보내주었다.

[샤샤야, 알타르 님 준비됐어.]

[알았어요.]

드론으로 샤샤, 르녹, 꾸얀의 모습이 잡혔다.

셋은 바위 뒤에 숨어가며 차지율 헌터를 향해 접근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가까이 가면 다 걸렸다.

화살의 사거리보다 더 먼 거리 멈춰서는 무언가를 꺼내기 시작했다.

그들이 꺼낸 것은 디아론 영지의 자랑거리인 발리스타였다.

[자, 순서대로 가자고 하나, 둘, 셋! 샤샤야 쏴!]

펑! 펑! 펑!

무려 세 대의 발리스타에서 대형 화살이 날아갔다.

그냥 크기만 큰 화살이 아니었다.

저거 한 발에 얼마짜린데 내가 일곱 번이나 패배하지 않았다면 훈련에서 이걸 쓰지는 않았을 것 같았다.

하지만 맨입으로 S급을 이기려고 한 내가 오만했다.

일이 해결이 안 되면 돈을 더 쓰고, 그래도 안 되면 내 돈이 충분한지 생각해보라 하지 않는가?

지금 날아가는 건 마법으로 도배된 대형 화살, 즉 비싼 것이었다.

차지율을 향해 세 대의 대형 마법 화살이 날아갔다.

그 화살을 보자 차지율은 검을 곧게 세웠다.

검을 머리 위로 수직으로 올린 후 가볍게 내려그었다.

스윽, 스윽, 스윽.

칼질 세 번에 대형 마법 화살이 조각나버렸다.

원래는 충격을 받으면 그 자리에서 폭발해야 하는데, 마법까지 잘라버렸는지 그저 잘린 말뚝이 되어 굴러떨어질 뿐이었다.

검을 든 모습을 보니 사람이 달라 보였다.

역시 천마였다.

마법 화살이 실패하면 방향을 읽힐 뿐이었다.

차지율은 화살이 날아온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샤샤 등이 있는 장소로 절반쯤 날아왔을 때, 두 번째 대형 화살이 날았다.

이번에도 차지율의 검에 화살이 잘려 나갔다.

세 번째는 발리스타를 장전할 시간이 없어서 대형 화살을 하나씩 든 샤샤, 르녹, 꾸얀이 천마를 향해 투창하듯 화살을 던졌다.

슉, 슉, 슉.

그렇게 던진 대형 화살까지 차지율이 잘라버렸다.

샤샤, 르녹, 꾸얀이 각자의 무기를 들고 차지율을 향해 달려갔다.

르녹과 꾸얀은 끝까지 달려가고, 샤샤는 중간에 화살을 걸어 시위를 놓았다.

고개를 살짝 기울여 화살을 피한 차지율과 르녹, 꾸얀이 검을 휘둘렀다.

휘이익!

차지율의 검은 허공을 갈랐다.

르녹, 꾸얀, 샤샤가 사라졌다.

그 순간, 아무것도 없던 공간에서 차지율을 향해 회전하는 칼날이 날아왔다.

휘이잉!

차지율은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허리를 뒤로 젖혀 칼날을 막았다.

카카캉!

거꾸로 몸을 뒤집어 칼날을 막은 차지율은 은신이 풀린 카나에게 검을 휘둘렀다.

휘이잉!

하지만 이번에도 사라진 카나.

그리고 그때, 차지율의 머리 위로 거대한 불덩이가 보였다.

알타르가 20분 동안 준비한 마법이었다.

“그레이트 익스플로젼.”

콰과과과광!

발리스타와 제리의 투명 망토, 20분간의 마법 준비와 샤샤, 카나, 알타르로 이어지는 이단 시간차 공격의 콜라보였다.

알타르 역시 마법을 쏘자마자 바로 내 옆으로 소환되었다.

위이이잉.

폭발 후, 연기를 비추고 있는 드론의 날갯짓 소리만 들렸다.

잠시 후, 연기가 가시자 검을 늘어뜨리고 있는 차지율이 보였다.

그런 강력한 폭발 속에서도 깨끗한 얼굴이었다.

이번에도 다 막힌 건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바사삭!

차지율이 들고 있던 산탄총이 작은 조각이 되어 부서져 버렸다.

저거 맞으면 탈락이라고 했었는데, 이제는 저 총이 없어졌네?

나와 함께 옹기종기 모인 팀원들은 드론이 보여주는 차지율의 모습을 모니터를 통해 바라보았다.

차지율은 부서진 총을 보며 잠시 생각하더니, 이내 드론을 향해 손가락을 폈다.

손가락으로 읽은 숫자는 7 대 1이었다.

“예!”

“아싸, 한판 땄어요!”

S급 한번 눌러주기도 힘들었다.

오늘 훈련은 일단 여기까지였다.

막판을 이기고 끝내서 그런지, 기분 좋은 마무리였다.

잠시 기다리고 있자 차지율 헌터가 합류했다.

“차지율 길드장님, 저희 어땠어요?”

“합이 점점 잘 맞으시던데요? 마지막은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정말 제가 딱 공격하려는 찰나에 사라지더군요. 무기, 소환수와 술사의 합이 딱 들어맞는 공격이었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 치곤 불구덩이에서 나온 사람 같지 않게 너무 몸이 깨끗하신데요? ”

“하하, 총이 부서졌잖아요. 저나 되니까 이 정도지, 다른 사람이었으면 크게 다쳤을 겁니다.”

* * *

중국 칭다오시의 S급 던전.

던전의 내부는 메마른 산악지대였다.

어디를 가도 울퉁불퉁한 암석들이 많았고, 곳곳에 언덕들이 보였지만 수풀은 거의 보이지 않았고 곳곳에 사막형 몬스터가 있었다.

던전의 중심부에는 커다란 동굴이 있는 언덕이 있었다.

그 동굴에는 입구 근처에서부터 여러 몬스터가 있었다.

인간과 비슷한 체형이었지만, 피부가 흘러내리는 듯한 대형 몬스터였다.

양초로 사람을 만든 후 높은 온도로 가열한다면 저런 몬스터가 나올 수 있을 것 같았다.

동굴 안으로 들어가면 사족 보행 야수형 몬스터들이 배를 깔고 엎드려 있었다.

더 깊이 들어가 보면 동굴답지 않게 바닥에 동물의 털가죽이 곱게 깔려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오직 하나의 존재만이 있었다.

인간 여성을 닮은 듯 아름다운 얼굴이지만, 두 눈동자는 뱀처럼 세로로 갈라져 있고 등에는 검은 날개가 돋아나 있었다.

S급 몬스터이자 이 던전의 주인인 데빌 페어리였다.

데빌 페어리는 무심한 듯 나른한 표정이었다.

얼마 전, 자신이 있던 세상이 단절되고 새로운 세상과 연결되었다.

어찌해서 자신의 세상과 분리되어 이곳과 연결되었는지 모르지만, 데빌 페어리는 원래 세상에 애착이 없던바, 이건 이것대로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데빌 페어리는 처음에는 출구로 나가보려 했지만, 나갈 수 없었다.

데빌 페어리는 공간에 대한 감각이 있기에 머지않아 문이 열리고 자신의 공간과 이곳 세상이 완전히 연결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면 그때 이 세상에 대해 알아가면 될 터였다.

그런데 그 출구를 통해 인간들이 들어왔다.

두 세상이 단절된 상태에서 한쪽 세상의 인간만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의 과도기적인 상태였다.

새로 들어온 인간들은 자신이 있던 세상에 살던 인간들과 조금은 다르지만 대체로 비슷했다.

데빌 페어리가 보기에 가장 비슷한 점은 자신과 자신의 권속을 적대한다는 것이었다.

늘 그랬듯 데빌 페어리는 인간들을 사냥했다.

그러자 인간 중에서도 강력한 개체가 들어왔다.

인간치고는 강력해서 자신의 권속만으로는 그들을 막을 수 없었다.

그래서 데빌 페어리는 몸소 나서서 인간들을 죽여주었다.

그래도 계속 덤비길래 다 죽였다.

그랬더니 이제는 자신과의 대결은 피하며 자신의 권속들만 죽이고 다녔다.

자신의 영역 안으로 또 인간들이 들어왔다는 신호가 왔다.

촤르륵.

등에 접었던 날개를 활짝 폈다.

훅.

날갯짓 한 번에 수십 미터를 날아갔다.

단순히 공기를 밀어내는 것이 아니었다.

데빌 페어리의 나른함을 깨우는 데는 인간 사냥이 최고라고 생각했다.

금쪽같은 소환수들

— 거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