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화. 소환훈련
헌터 협회에서 할 일은 모두 마쳤다.
“자, 그럼 오늘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사무실로 돌아갈까요? 아니면 바로 샤론 영지로 귀환?”
제리가 손을 들었다.
“일등한 사람이 쏘기로 했당.”
“아! 맞다. 일등하면 쏘기로 했었지? 그런데 샤샤와 카나가 공동 일등인데 어떻게 하지?”
샤샤가 얼른 말했다.
“제가 샤론에 가서 얼른 음식을 장만해올게요.”
카나 역시 한발 나서며 말했다.
“기사의 약속은 천금과 같은 법. 나 역시 샤론에 가서 음식을 구해오도록 하겠다.”
샤샤와 카나가 샤론에 가서 음식을 가져오겠다고 했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달랐다.
“그런데 샤론의 음식은 다들 많이 먹어봤잖아. 소환수들은 지구에 자주 오고 제리는 지구에서 거의 살지만, 용병들은 지구에 올 기회도 많지 않은데 기왕이면 지구의 음식을 주는 게 좋지 않을까? 이렇게 다 같이 모였으니 어디 가까운 곳에 가서 피크닉이라도 갈까?”
놀러 가자는 말에 모두가 찬성했다.
“그럼 가보고 싶은 곳은?”
내가 모두를 보았지만 다들 잘 아는 곳이 없었다.
“한강?”
그래, 서울에 소환된 이들에게 한강을 보여주는 건 기본 코스지.
그렇게 차를 몰고 한강 유원지에 갔다.
이미 돗자리를 펴고 편안한 자세로 한강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연인끼리, 가족끼리, 친구끼리 모여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한강을 바라보며 뭔가를 먹고 있었다.
우리도 한 자리 차지하고 앉았다.
“음식은 뭐 먹을까요? 치킨? 피자? 중국 음식? 다 배달됩니다.”
덩치 커다란 근육 빵빵 르녹이 물었다.
“다 시키면 안 됩니까?”
“오케이, 다 시킵니다. 남기기 없기. 믿을게요.”
음식 배달을 시키고 얼마 후, 배달이 도착했다.
피자, 치킨, 탕수육 골라 먹는 재미가 있었다.
내가 진행을 했다.
“자, 이 정도 인원이 이런 곳에 왔으면 게임을 해야죠. 숟가락을 돌려서 멈출 때 숟가락 방향에 있는 사람이 질문에 답하기에요.”
“오호, 나도 봤어요. TV에서 대학생들은 이런 게임을 많이 하더라고요.”
“숟가락을 돌리면 되는 건가?”
핑그르르.
숟가락이 회전했다.
어라?
숟가락이 나를 가리켰다.
이런, 원래 이런 건 하자고 하는 사람이 걸리던데 내가 하자고 하고 내가 걸렸다.
그런데 르녹이 규칙을 잘 모르는지 질문을 했다.
“샤샤 님, 그런데 뭘 물어보는 겁니까?”
“TV에서는 현재 누군가를 좋아하거나 과거에 좋아했던 사람에 관해 걸 물어보곤 하던데요?”
“그렇군요.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뭐 이런 식의 질문이란 건가요?”
“응, 맞아요.”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물어도 될까요? 영주님께서는 소환수 중에서 누가 제일 좋습니까?”
아…….
질문이 세다!
조금 전까지 평온했던 피크닉 모임에 순간 긴장감이 맴돌았다.
서로가 눈치를 보는 어색한 분위기에 나는 등에서 땀이 흐르는 듯했다.
그때 카나가 손을 들었다.
“내가 본 TV에서는 마음에 들지 않는 질문을 했을 때, 질문한 사람의 등을 때리던데 여기서도 그렇게 하면 될까?”
“나도 좋당.”
“좋아요. 등을 때리면서 인디언 밥이라고 외치면 돼요.”
샤샤, 카나, 제리가 르녹을 잡아끌어서 엎어트렸다.
지이이잉.
제리가 발톱을 꺼냈고, 카나가 손가락 마디를 꺾으며 우드득 소리를 내었다.
퍽퍽퍽!
“아니, 어디서 그딴 질문을!”
퍽퍽!
“아악!”
나는 이러다 송장 치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얼른 힐을 넣어주었다.
“자, 한 번 더 돌립니다.”
다시 숟가락을 돌렸다.
핑그르르.
빠르게 회전하던 숟가락이 점점 느려졌다.
휙휙… 척!
숟가락이 가리킨 방향에 앉은 사람은 알타르였다.
그때 피투성이가 된 르녹이 다시 고개를 들며 말했다.
“알타르 님은 누구를 좋아…….”
주변에서 째려보는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또 맞고 싶지는 않았는지 르녹이 말을 바꾸었다.
“알타르 님은 누구를 좋아…했었는지가 궁금하네요. 과거에, 그러니까 첫사랑 얘기해주시죠.”
“내 첫사랑?”
첫사랑이라는 단어를 듣자 알타르의 얼굴이 발갛게 상기되었다.
발갛게 변한 알타르의 얼굴이 재미있었는지 다를 기대하고 알타르를 바라보았다.
알타르는 벌게진 얼굴로 멀리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았다.
아련한 눈빛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때는 내가 마탑을 뛰쳐나와서 용병 일을 할 때였지.”
젊은 알타르는 마탑의 폐쇄적인 분위기가 싫어서 마탑을 뛰쳐나왔다.
그리고 용병 일을 하며 돈을 벌었다.
용병 일이라는 게 대형 용병단처럼 확실한 멤버가 있는 곳도 있지만, 그때그때 일거리를 구하며 이리저리 헤쳐모이는 경우가 더 많았다.
알타르도 용병 일을 하며 수많은 사람을 만났다.
그러던 어느 날 알타르는 한 여자 용병을 만나게 되었다.
“그녀의 이름은 아나꼬라고 했어. 동대륙 출신인데, 통통한 볼에 덧니가 참 예뻤지.”
알타르와 아나꼬는 여러 번 같은 임무를 했다.
그런데 강에서 배를 타고 물건을 나르는 상단의 호위를 맡았을 때, 수적이 나타났고 수적과의 협상이 결렬되어 배 위에서 전투가 벌어졌다.
“그때 전투는 우리 용병들이 이겼고 수적은 물러났지. 하지만 말야.”
모두들 알타르의 말에 집중했다.
“안타깝게도 그날 아나꼬는 수적의 칼에 찔렸고 다시 일어나지 못했지.”
“아…….”
“어떡해…….”
“참 곱던 아가씨였지. 그리고 그때 내가 개발했던 마법이 있어. 아나꼬가 아주 좋아했던 꽃이 있었는데, 그 꽃이 강물 위에 발현되도록 하는 마법이야. 마법의 시동어 또한 그녀의 고향 말인 동대륙 언어로 만든 마법이지. 한 번 볼 텐가?”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알타르는 강물을 향해 말을 걸었다.
“아나꼬 잘 있소이까? 그곳에서는 평안한가요?”
흐르는 강물은 말이 없었다.
알타르는 마나를 일으켰다.
두 손을 입 가까이 붙이고 소리높여 강물을 향해 마법의 시동어를 외쳤다.
“오겡끼데스까―”
화아악.
흐르는 강물 위에 하얀 꽃잎을 가진 나무가 자랐다.
그리고 그 나무에서는 가지가 휘어질 정도로 하얀 꽃잎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그 모습을 본 주변 사람들이 놀랐다.
“와, 저기 봐!”
“마법인가 봐.”
“예쁘다.”
바람결에 눈처럼 날리는 꽃잎이 강물에 부딪혀 사라졌다.
* * *
다음날.
나와 르녹은 옷을 깔끔하게 차려입었다.
나는 남색 정장을 입고 르녹은 갈색 가죽 갑옷을 입었는데, 평소보다 외모에 신경을 썼다.
우리가 향한 곳은 방송국이었다.
시간에 맞추어 방송국에 도착하자 조 기자가 마중 나와 있었다.
“안녕하세요. 조금만 기자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김민준입니다.”
조 기자는 자신을 치료해준 것에 대해 거듭 감사 인사를 했다.
조 기자를 따라간 곳에는 대화를 위한 테이블과 소파가 있었고, 그 옆에 넓은 무대가 있었다.
잠시 후, 카메라를 켜고 진행했다.
“반갑습니다. 오늘은 샤론 길드의 김민준 길드장님과 그 길드원인 르녹 님을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가벼운 인사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샤론 길드를 소개해 주시죠.”
“네, 저희 샤론 길드는 생긴 지는 얼마 안 됐습니다. 6개월 정도 되었죠. 길드의 인원도 그리 많지는 않습니다. 모두 다 해서 열 명이 조금 넘습니다. 하지만 저희 길드는 길드원들이 끈끈한 소속감을 느끼는 작지만 강한 강소길드입니다.”
“길드장님은 소환술사라고 하셨는데 무엇을 소환하실 수 있나요?”
나는 고개를 돌려 르녹을 바라보았다.
“여기 이분은 르녹이라는 분이십니다. 르녹, 인사하세요.”
“안녕하십니까? 르녹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두 분은 어떤 관계시죠?”
르녹이 당당하고 다부진 목소리로 말했다.
“네. 저희 영지의 영주님이시고, 저는 영지의 기사입니다.”
“영주…님이요?”
“네.”
내가 보충 설명을 해야 할 것 같았다.
“르녹은 지구가 아닌 이세계에서 살고 있습니다. 제가 어쩌다 보니 그곳에서 작은 영지를 갖게 되었어요. 르녹은 그곳의 기사이고, 오늘은 제가 소환해서 이쪽으로 넘어온 것이지요. 주로 대검을 쓰는 기사랍니다.”
“오, 신기하네요. 길드장과 길드원이 영주와 기사의 관계라. 끈끈한 소속감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습니다.”
“하하, 그렇죠.”
“혹시 소환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요?”
“그럴까요?”
나는 르녹을 샤론으로 보냈다가 다시 소환했다.
카메라 앞에서 사라졌다 나타나는 모습이 마술쇼 같았다.
“참 신기하군요. 그럼 르녹 기사님?”
“네.”
“등에 차고 있는 대검이 인상적인데 혹시 시연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좋습니다.”
르녹이 무대로 나갔다.
등 뒤에 긴 검을 꽂으면 팔이 짧은 사람은 검을 뽑을 수도 없다.
심지어 르녹의 검은 겨울에 스키장에서 타는 보드보다 더 큰 크기였다.
하지만 르녹의 등 뒤에 있는 겁을 잡자 검집이 열리며 검을 자유롭게 풀어주었다.
르녹은 커다란 대검을 뽑아 휘두르자 무대에 바람이 불었다.
휭, 휭.
커다란 대검을 자유롭게 가지고 노는 모습이 완숙의 경지에 오른 기사로 보였다.
한참을 휘두르더니 공중으로 검을 회전시키며 던졌다.
휭휭휭!
검은 회전하며 떨어지다가 르녹 등 뒤의 검집으로 쏙 들어갔다.
르녹이 쇼맨십이 뭔지 아는 것 같았다.
짝짝짝!
“멋지군요. 감사합니다.”
르녹의 검무에 관해 이야기하다가 천마 길드의 이야기로 주제가 바뀌었다.
“그리고 지난번 천마 길드와의 지분 교환을 묻지 않을 수 없는데요. 어떻게 두 길드가 연합을 할 수 있었나요? 혹시 뒷이야기가 있을까요?”
“어느 날, 천마 님이 저희 길드에 불쑥 방문하시더군요.”
“천마 차지율 씨, 말씀이신가요?”
“네, 차지율 길드장님이 직접 저희 길드를 방문하셨어요. 그리고는 용병 스킬을 자신에게 써보라고 한 후, MOU를 하자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직접 소환을 경험해보더니 아예 지분 교환을 하자고 하더라고요.”
“오호, 그랬군요.”
“그래서 지금은 저도 천마 길드에서 열심히 훈련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인터뷰를 마쳤다.
다음날.
샤샤, 제리, 카나, 알타르, 르녹, 꾸얀을 모두 데리고 F급 던전에 왔다.
강 트레이너님이 소환수와 용병을 모두 데리고 이곳으로 오라고 했기 때문이다.
도착한 곳에는 강 트레이너님 말고도 여러 인원이 있었다.
뭔가 복잡한 장비를 가득 들고 있었다.
“오늘은 소환 훈련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동안은 소환 훈련이라고 할 게 따로 없었다.
소환은 그저 부르면 끝인 스킬이었다.
“소환을 지속적으로 반복하며 치고 빠지는 전술훈련을 할 거예요. 일명 차륜전이라고 하죠.”
“던전 안에 강력한 보스 몬스터가 있다고 할게요. 그러면 여기 이쪽 팀은 드론으로 시야를 밝히는 팀입니다. 드론으로 촬영하면 그 모습이 모니터를 통해 전송되죠. 던전 내부에서 외부로는 전송이 어려우므로 모두가 던전 안에서 작업을 해야 합니다. 보스가 드론을 부수면 계속 드론을 띄워야 해요.”
드론이 부서지면 계속 드론을 쏘아 올리는 연습이라니 뭔가 대단한 몬스터를 준비하는 느낌이었다.
“민준 님은 보스의 눈에 띄면 안 됩니다. 민준 님은 무조건 도망쳐야 해요. 보스의 시야에 민준 님이 보이면 민준 님의 패배입니다.”
“제가 보스의 눈에 띄기만 해도 패배라고요?”
“네, 맞습니다. 그리고 소환수와 용병님들?”
“네.”
“보스가 중간중간 물감 산탄총을 쏠 겁니다. 그 산탄총은 막아도 안 됩니다. 산탄총을 쏠 때는 민준 헌터님이 소환을 해주세요. 물감이 묻으면 무조건 사망 처리합니다.”
“복잡하네요. 그러니까 보스가 소환술사인 저를 발견하면 무조건 이쪽의 패배. 그리고 소환수나 용병들은 물감이 묻으면 탈락이라는 거죠?”
“네, 맞습니다.”
마치 내가 술래잡기를 하면서 동시에 소환수와 용병들이 물감이 안 묻게 소환하며 싸우도록 해야 하는 경기인 것 같았다.
“다들 규칙을 이해하셨나요?”
“네, 어느 정도는요. 일단 들어가 보죠.”
규칙이 조금 복잡하긴 했지만 나만 잘 도망치면 될 것 같았다.
우리 팀 전력도 장난이 아닌데 소환수와 용병들이 협동하면 어지간한 상대에게는 물감이 묻지 않을 것 같았다.
꿀렁.
포탈을 타고 들어갔다.
드론팀까지 들어오니 인원이 제법 되었다.
드론팀은 포탈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드론을 띄우고 내가 드론의 화면을 볼 수 있도록 해주었다.
위이이잉!
드론이 사방으로 퍼지며 정보를 얻으러 날아갔다.
20분쯤 기다리자 드론팀이 정보를 얻었다.
“북쪽으로 날아간 드론이 꺼졌습니다.”
드론팀은 드론을 북쪽으로 추가로 날렸다.
나는 소환수와 용병들을 바라보았다.
샤샤가 대표로 말했다.
“다녀올게요.”
“조심히들 다녀오세요. 드론으로도 보고 있을 거고, 쪽지로도 계속 소통해요.”
“네.”
10분 정도 지났을 무렵 샤샤의 쪽지가 도착했다.
띠링!
[히잉. 민준 님 죄송해요. 물감 왕창 묻었어요.]
드론으로 소환수와 용병을 발견했다.
다들 몸의 여기저기에 물감이 묻어 있었다.
드론이 조금 더 가까이 갔다.
우리 팀이 아닌 누군가가 드론을 보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헉.”
차지율 길드장이 손가락 하나를 들고 드론의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었다.
금쪽같은 소환수들
— 거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