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화. 샘
샤론 영지를 다녀온 부모님과 진지한 대화를 나누었다.
엄마가 먼저 말을 꺼내셨다.
“아들, 엄마와 아빠가 네 이야기를 많이 해봤어. 아들이 헌터 일을 한다는데 위험하지는 않은지. 다른 방법은 없는지 우리도 많이 알아봤어. 하지만 직접 눈으로 보니까 우리가 알고 있던 것과는 많은 것이 다르더구나.”
아빠가 불쑥 말했다.
“난 찬성이다.”
“으이구, 이이는.”
“다 큰 아들이 이만큼 자기 세상을 펼치고 있으면 지지해줘야지. 뭘 어쩌겠어. 나쁜 짓 하는 게 아니면 지지해줘야지. 막말로 위험하다고 다 하지 말라고 하면 직업군인은 누가 하나? 나라는 누가 지켜?”
엄마는 아빠를 한번 째려봐준 후 말을 이었다.
“그래, 엄마도 헌터는 무조건 몬스터와 싸우는 일만 하는 줄로만 알았는데, 아빠 말처럼 아들이 이뤄가고 있는 세상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된 것 같아.”
“네, 몬스터와 안 싸울 수는 없지만, 최대한 안전하게 할게요.”
“그래, 믿을게.”
나는 상자 세 개를 꺼냈다.
“그리고 이건 실드가 걸린 물건이에요. 아빠 것은 반지로, 엄마와 민아 것은 팔찌형으로 맞춰봤어요. 지난번에 말씀드렸다시피 실드 센 것과 인지 장해 그리고 실드가 발동되면 저에게 위치가 전송되도록 했어요. 지난번 가방처럼 교통사고 정도를 가정하고 만든 물건이 아니에요. 이건 적어도 A급 던전 브레이크에도 살아남을 수 실드를 강한 걸로 넣었으니까 꼭 몸에 지니고 계세요.”
“고맙다.”
“이거 비싼 거 아니니?”
“당연히 비싸긴 한데 돈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거죠. 지난번 민아 사건을 겪고 나니, 부모님도 제 걱정이 되듯 저도 가족들 걱정이 되잖아요. 이 정도 안전장치는 해줘야 저도 조금 마음이 놓일 것 같아요.”
“아들, 고맙다.”
그렇게 가족들은 서로를 이해하고 위해주었고 부모님과 민아는 다시 집으로 내려갔다.
다음날, 나는 천마 길드 훈련소를 다시 찾았다.
몸을 쓰는 훈련을 하는 데는 이곳만 한 데가 없다.
강 트레이너님이 나를 반겼다.
“어서 와요.”
나는 강 트레이너님에게 각 잡고 인사를 했다.
“네, 며칠 전 제 동생 구해주신 것 다시 한번 감사드려요.”
“뭘요. 당연히 해야 할 일인데요. 민준 헌터님도 천마 길드 지분 있으시잖아요. 그럼 내 길드라고 생각하세요.”
“하하, 감사합니다.”
“오전 훈련은 기초 체력과 회피 위주로 프로그램을 돌릴게요.”
“넵, 제대로 하겠습니다.”
“오호, 기합 제대로 들어갔는데요? 저도 내 길드원이라 생각하고 굴리겠습니다.”
“하하.”
그렇게 오전 시간이 흘렀다.
“헥헥.”
강 트레이너님이 말한 굴린다는 표현은 말 문자 그대로였다.
회피를 익힌다며 고무총을 쏴댔고 나는 처절하게 굴러야 했다.
“강 샘…….”
나는 바닥 매트에 누운 채 강 샘을 불렀다.
강 트레이너님이라고 길게 부르기도 힘들었다.
“네, 민준 헌터님?”
“강해지는 게 좋긴 한데요.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요? 제가 힐러나 서포터 위준데.”
“후후, 민준 헌터님?”
“네.”
“차지율 길드장님이 어디 계신지 아세요?”
갑자기 차지율 길드장님에대한 말은 왜 꺼낼까?
“저야 모르죠.”
“중국에 계십니다.”
내가 의아함 절반, 말하기도 힘들다는 표정 절반으로 트레이너님을 바라보았다.
“차지율 길드장님이 중국에 가신 건 중국의 미해결 S급 던전을 공략하기 위함입니다.”
“S급 던전이요?”
S급 던전 이야기가 나오자 나는 몸을 일으켜 앉았다.
“차지율 길드장님이 던전에 들어가셨나요?”
“아니요. 들어가진 않으셨고 공략을 위한 사전 답사 개념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그곳에 민준 님도 들어갈 거예요.”
“아…….”
지난번에 살짝 들었던 말이긴 한데, 벌써 이렇게 추진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네, 민준 님의 훈련 목표는 S급 던전의 필드 몬스터로부터 회피하는 게 목표입니다.”
“아… 그러면 A급은 되겠네요?”
“S급 던전에서는 필드 몬스터도 A급이 있습니다. 민준 헌터님을 보호하는 팀이 있다고 하더라도, 스스로의 목숨을 지킬 정도는 되어야 함께 들어가지 않을까요?”
“네, 그렇겠죠.”
“너무 걱정하지는 마세요. 민준 헌터님의 실력이 안 되는데 무작정 데려가거나 하지는 않을 겁니다. 들어갈 만한 실력이 된다고 생각이 들면 들어갈 거예요.”
“네.”
“그러니 약한 소리 하지 마세요. 아셨죠?”
“네.”
점심을 함께 먹고 나는 강 트레이너님에게 물었다.
“강 샘, 차 어디 있으세요?”
“주차장이요.”
“같이 가시죠.”
나는 주차장에서 트레이너님에게 명품 선물 세트를 넘겨드렸다.
“강 샘, 제가 가죽 생산 업체를 운영하고 있거든요. 돈 주고 산 건 아니에요. 그래도 어디 가서 사려면 꽤 비싸답니다. 그리고 이건 훈련을 살살 해달라고 드리는 건 절대로 아니에요.”
“그럼 뭐죠?”
“제 여동생 구해주셔서 감사하다는 의미로 드리는 거예요. 절대로 훈련을 살살 해. 달라고 하는 건 아니에요.”
“진짜로요?”
“네, 절대로 훈련을 살살 해. 달라는 건 아니에요.”
“발음이 이상한데요?”
“아니에요. 기분 탓이에요.”
오후 훈련에서 강 트레이너님은 내 스킬을 하나하나 짚어주셨다.
“꼭 선물을 받아서 그러는 거. 는 아닙니다.”
역시 주는 게 있으면 오는 게 있었다.
강 트레이너님은 내 레벨과 스텟을 보시더니 높은 스텟을 칭찬해주셨다.
“레벨 대비 스텟이 아주 좋네요.”
“하하, 제가 몸에 좋은 걸 좀 많이 챙겨 먹었어요.”
“몸에 좋은 건 더 많이 드세요. 저렙 때 먹어야 도움이 되지, 나중에는 먹어도 잘 오르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내 스킬도 점검을 했다.
내 스킬은 소환, 힐, 바인드, 홀리 큐어가 있었다.
이 중에 내가 직접 사용하는 공격용 스킬은 바인드였다.
“스킬을 하나씩 짚어보죠. 우선 바인드부터 점검해볼까요?”
“네.”
“바인드 스킬을 어떻게 사용하고 계셨나요?”
나는 야심 차게 스킬을 사용해 보았다.
“이렇게 썼죠. 바인드!”
내가 스킬명을 외치자 마나로 이루어진 끈이 휙 하고 날아갔다.
그 끈은 벽에 충돌해 바닥에 떨어졌다.
뭔가를 더 요구하는듯한 강 트레이너님의 눈빛에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저쪽에 운동기구 뭉치가 있었다.
그중에 막대기 들이 쌓인 곳을 향해 다시 스킬을 날렸다.
“바인드!”
휘리릭.
마나의 끈은 막대기를 묶어버렸다.
“계속 써보세요.”
“바인드! 바인드!”
나는 바인드 스킬을 계속 써봤고, 강 트레이너님은 스킬이 날아가는 모습을 꼼꼼히 관찰하셨다.
“스킬 쓸 때 마나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몸 좀 만져보겠습니다.”
트레이너님은 내가 스킬을 쓸 때, 등을 꾹꾹 눌러보셨다.
손으로 누를 때 손에도 마나를 담으셨는지 내 몸속을 흐르는 마나가 휘청휘청 흔들리는 것이 느껴졌다.
“자, 이번엔 옆구리 좀 누르겠습니다. 계속 스킬을 써보세요.”
“넵, 알겠습니다. 바인― 꺅―”
“어허, 집중하고 스킬을 써보세요.”
“네, 다시 할게요. 바인― 꺅―”
마나를 담은 손으로 옆구리를 누르니 나도 모르게 꺅 소리가 나왔다.
이건 의지로 막을 수 있는 소리가 아니었다.
내가 꺄― 끼― 꾸― 께― 꼬― 여러 가지 비명을 지른 후, 강 트레이너님이 내 몸을 놓아주셨다.
누르는 부위마다 나오는 소리가 다른 게 한참 소리를 지르다 보니 나도 신기했다.
오전 체력 훈련과 다른 의미로 힘들었다.
“끈을 만든 다음에 날리지 말고 손으로 들고 있어 볼까요? 잘하면 될 것 같은데요.”
나는 그런 생각 자체를 안 해봤다.
“스킬을 완성하지 말고 천천히 중간에 멈춰 보세요. 천천히.”
“네, 해볼게요. 바아 이인 드으.”
천천히 말하는 것과 달리 스킬명을 모두 말하자 휙 하고 끈이 날아갔다.
느리게 해도 스킬을 끝까지 외치면 스킬이 발동했다.
스킬을 중간에 멈춰 보아야 할 것 같았다.
“바인.”
움찔 마나가 일어나려고 하다 말았다.
강 트레이너님이 내 옆으로 오셔서 스킬 시전을 도왔다.
“바인ㄷ―”
텁!
갑자기 강 트레이너님의 두꺼운 손이 내 입을 막았다.
그러더니 내 옆구리를 꼭 쥐었다.
속으로는 끼요요요옥이라고 소리를 질렀으나, 입이 막혀 있어서 그렇게 마음껏 소리를 지를 수 없었다.
“읍읍!”
강 트레이너님이 내 입을 막은 손을 놓아주시자 내가 항의를 했다.
“아, 샘!”
강 트레이너님은 씨익 웃으며 눈으로 내 손을 가리켰다.
내 두 손 사이에는 마나의 끈이 걸려 있었다.
와, 이거 뭐 내 몸을 나보다 더 잘 다루니 뭐라 항의할 수도 없었다.
뭐든 처음이 어려운 법이었다.
몇 번 연습해보니 마나의 줄이 날아가지 않고 손으로 쥐고 있을 수 있게 되었다.
“자, 이제는 줄의 길이, 강도를 변형해보죠.”
나는 마나를 줄이거나 더 쏟아부으며 바인드 스킬에 변형을 가했다.
“좋습니다. 더더더더더 옳지, 좋아요. 한 개만 더, 한 개만 더, 마지막, 진짜 마지막, 라스트!”
강 트레이너님은 트레이너들의 전매특허인 한 개만 더를 외치며 나를 훈련시켰다.
“바인ㄷ.”
여기까지 하면 두 손에 마나가 어렸다.
여기까지는 자동이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밀가루 반죽을 늘리듯 양손으로 잡아당기면서 수동으로 줄을 만들어야 했다.
바인드는 스킬명을 외쳐서 쏘아 보내면 일률적으로 지름은 4cm 정도의 굵기이며 길이가 약 1m 정도의 끈이 날아갔다.
하지만 수동으로 줄을 뽑아내면 같은 덩어리의 밀가루 반죽에서 다양한 굵기의 소면을 뽑아낼 수 있듯이 다양한 굵기와 길이의 줄을 뽑을 수 있었다.
“민준 헌터님의 마나는 절대 부족하지 않습니다. 마나만 보면 저보다 많아요. 최대한 마나를 많이 밀어 넣어 보세요. 밀가루 반죽 자체를 크게 만들어야 면을 길게 뽑을 수 있겠죠. 더더더더더.”
“바인ㄷ, 부와인ㄷ, 뿌와인ㄸ.”
나는 아랫배에 힘을 빡 주면서 마나를 최대한 손으로 이동하려 노력했다.
“자, 굵고 강력한 끈도 좋은데 제가 보기에는 지름 1cm만 되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몬스터를 묶는 기능을 하려면 끈의 지름이 굵어야 하는 건 맞는데, 단순히 그런 기능 이외에도 다양한 기능이 가능할 것이에요.”
한참을 씨름하고 나서 지름 1cm에 5m 정도 길이의 줄을 뽑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스킬 자체가 원래 포박을 목적으로 하는 거여서 그런지 줄 자체가 약간 끈끈했다.
이거 잘하면 타잔이나 스파이더맨처럼 줄을 잡고 날아다닐 수 있을 것 같았다.
강 트레이너님은 5m 정도 되는 끈을 가지고 오더니 다양한 동작들을 보여주었다.
“민준 헌터님은 바인드를 이용해 포박술을 배워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강 트레이너님은 내가 잡고 있던 줄의 한쪽을 잡고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줄을 잡은 손을 휘저어 휙 하고 반동을 주니 줄의 고리가 파동을 치며 나에게 다가왔다.
오호, 재밌는데? 어라? 그 고리가 내 목을 감쌌다.
그리고 트레이너님이 줄을 당기자 내 목이 졸렸다.
“케엑!”
“이렇게 끈을 이용해 상대를 제압하는 기술을 포박술이라고 합니다. 저희 길드에도 포박술을 잘하는 분이 계시니, 다음에 그분에게 특별 수업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오후 내내 마나 포션을 세 병이나 마시며 바인드를 익혔다.
훈련이 끝나고 인사를 하며 말했다.
“샘은 헌터하기 싫으면 PT하세요. 대박 나실 거예요.”
“하하, 고려해 보죠.”
* * *
그날 저녁, 사무실로 들어왔다.
“알파야, 샤론 영지 좀 비춰줘.”
―네.
아무리 바빠도 영주로서 영지에 별일이 없나 둘러보는 일은 빼먹을 수 없었다.
두 손으로는 열심히 줄을 잡고 움직였고, 눈으로는 샤론을 둘러보았다.
제리가 다가와 물었다.
“뭐 하냥?”
“어, 샤론 보면서 매듭법 익혀.”
“매듭법이 뭐냥?”
“응, 내 스킬 바인드 알지? 그거 수동으로 줄을 뽑으면 얇고 길게 뽑을 수 있더라. 오늘 최대로 6m까지 뽑아봤어. 좀 더 연습하면 더 길게 뽑을 수 있을 것 같아.”
“그래? 꽤 길당.”
“자, 완성! 이건 구조용 매듭이야. 그냥 평범하게 고리를 만들면 고리에 무거운 물체를 걸었을 경우 고리가 줄어들어. 그러면 사람을 구조하려다가 오히려 그 줄에 그 사람이 조이겠지. 하지만 여기 이렇게 구조용 고리를 만들면 사람이 타도 고리가 줄어들지 않아.”
제리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런 것도 가능해. 이리 와봐.”
나는 창고 쪽으로 가서 천장에 철제 프레임이 있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바인ㄷ, 으랏차!”
나는 줄을 길게 뽑아 만든 후 위로 던져서 철제 프레임을 휘감았다.
그리고 스킬을 미묘하게 풀어 줄이 다시 마나 덩어리로 바뀌도록 만들었다.
길던 줄이 다시 줄어들며 나를 위로 당겨 올리는 힘이 작용했다.
그리고 그 힘을 이용해 위로 솟아오른 후 창고 위 철제 프레임을 잡았다.
나는 철제 프레임에 철봉하듯 매달려 미소를 띠며 말했다.
“어때, 멋지지?”
휙휙.
제리는 이단 점프를 이용해 가뿐히 철제 프레임 위로 올라왔다.
제리가 나를 내라다 보고 나는 아래에서 매달려 제리를 올려다보았다.
“음, 제리야. 나는 이렇게 매달려 있는데, 그렇게 가뿐하게 올라오기 있기 없기?”
말은 그렇게 하지만, 나는 제리와 비슷한 높이로 올라 올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뿌듯했다.
다시 사무실 소파로 돌아갔다.
“흥. 제리, 너 이건 못할걸?”
나는 줄을 다시 길게 뽑았다.
휙.
휙.
줄을 사무실 문 근처로 던졌다.
세 번째 던졌을 때 내가 원하던 위치를 맞출 수 있었다.
탁.
불이 꺼졌다.
내가 자랑스럽게 외쳤다.
“나는 이제 밤에 잘 때 침대에 누워서도 전등 스위치를 끌 수 있게 되었다. 음하하하.”
제리가 손을 휙 휘둘렀다.
딸칵.
전등이 다시 켜졌다.
어라?
“제리, 너 그거 어떻게 했어? 뭐 던진 거야? 뭐야? 설마 마나를 쏘아서 적을 베는 검강 뭐 그런 건 아니겠지?”
“마나를 손에 뭉쳐봐랑.”
마나를 손에 뭉치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었다.
“그 손으로 한 점을 치면 마나가 쏘아져 날아가지는 않아도 공기가 한 점으로 날아간당. 적을 벨 정도는 안 되어도 스위치 끌 정도는 된당. 적을 속일 때도 유용하당.”
나는 휙휙 손을 움직여 따라 해보았지만, 쉽게 되지는 않았다.
제리는 그게 왜 안 되냐는 듯, 맑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잠시 고민했다.
음… 제리도 샘으로 모셔야 하나?
금쪽같은 소환수들
— 거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