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화. TV
헬리콥터가 민아와 그 친구를 태우기 위해 학생회관 옥상에 착륙했다.
사소한 헤프닝이 있었지만, 민아의 친구라는 아이도 멘탈이 정상인 게 이상한 상황이니 나도 민아도 이해해주었다.
이제 나로서는 조급한 마음이 놓였다.
“민아야, 먼저 올라가. 오빠는 아직 해야 할 일이 있어.”
민아는 내가 헬리콥터에 타지 않아서 불안한 눈빛이었다.
“오빠도 헬리콥터 타고 가면 안 돼? 꼭 오빠가 남을 필요는 없잖아.”
꼭 나여야 하는가 하는 질문.
민아가 위기에 처하기 전 내가 했던 고민과 똑같았다.
누가 남매 아니라고 어쩜 이렇게 고민도 같을까.
“오빠는 힐러잖아. 힐러가 왜 귀족이라고 불리는 줄 알아? 귀해서 그래. 게다가 리자드맨 계열이면 독을 쓰는 애들도 있을 거야. 큐어가 가능한 힐러가 꼭 필요할 거야. 그리고 이거 B급 던전 브레이크야. 일반인들에게는 재난이겠지만, 헌터에게는 일상이야.”
나는 민아에게 다가가 민아만 들리게 살짝 말했다.
“그리고 A급 이상이었으면 나도 벌써 튀었지. 크크.”
농담이 조금은 위로가 되었는지 민아의 긴장한 표정도 살짝 풀렸다.
나와 민아는 나이 차이가 제법 나서 우리는 다른 남매들처럼 돌멩이 보듯 하거나 싸우기보다는 내가 민아를 귀여워하곤 했다.
타다다다다.
헬리콥터가 떠났다.
이제 조급한 마음은 떨치고 냉철한 정신으로 던전 브레이크를 마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헬리콥터 안에도 천마 길드의 헌터 두 명이 함께 함께 탔으니 믿어도 될 것 같았다.
“강 트레이너님.”
“네, 민준 헌터님?”
“아무래도 몬스터들에게 분풀이를 조금 해야 할 것 같네요.”
강 트레이너님은 이곳 현장을 지휘하고 있는 지휘부와 연결을 시도했다.
“네, 현재 대운 대학교 학생회관 근처입니다. 네, 저는 A급이고 B급 이상으로 열두 명이 있습니다. 네, 샤론입니다. 네, 알겠습니다.”
와, 역시 트레이너님은 A급이셨다.
통신을 마친 강 트레이너님이 작전을 알려주었다.
“총지휘는 헌터 협회에서 하고 있습니다. 저희 열세 명은 한 팀으로 움직입니다. 그리고 우리 팀의 이름은 샤론입니다. 협회에서는 샤론팀이라고 지시가 내려올 겁니다. 우리 팀은 지금 있는 곳에서부터 대운 대학교 정문 방향으로 가면서 그 사이에 있는 몬스터를 처치하고, 대운 대학교 정문 오른쪽 앞에 있는 건물을 중심으로 반경 100m의 일차 저지선에 합류합니다. 건물에서 몬스터가 나오고 있어서 정확히 어떤 건물인지는 가 보면 알 거라고 합니다.”
좋아, 가 보자. 브레이크라고는 하지만, 결국은 B급 던전에 들어가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닌가?
A급 대장인솔하에 B급 열 명 이상이라면 B급 던전 돌기 딱 좋은 파티였다.
이곳이 던전이 아니라, 대학교라는 상황만 아니면 좋았을 것 같았다.
게다가 던전 브레이크에 우리 팀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 팀은 쏟아져나오는 몬스터의 일부분만 담당하는 것인데 쫄 필요는 없었다.
“갑시다.”
힘차게 걸음을 옮겼다.
* * *
대운 대학교의 한 건물 안에서 기자 한 명과 카메라맨 한 명이 방송을 시작할 준비를 했다.
“아아, 리자드맨. 아아, 리, 리, 리자드, 아, 아.”
“조 기자님, 저는 준비 됐습니다.”
던전 브레이크가 터진 대운 대학교 내부에서 방송을 준비하고 있는 조 기자였다.
조 기자는 학창 시절부터 기자의 꿈을 갖고 있었고, 대학에서 대학신문에서 일했으며 열심히 공부해서 언론고시에 합격했다.
기자가 되어 누구보다 빠르게 세상의 멋진 일을 담고 싶었다.
하지만 신입 기자인 그가 가게 된 곳은 디지털뉴스부였다.
그곳은 인터넷에서 실시간 검색어를 쳐다보고 있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었다.
디지털 뉴스부는 마치 군대처럼 의무복무기간이 있었고, 그 복무 기간을 채우고 나자 다시 사회부로 배정되었다.
사회부!
사회부라면 특종과 관련이 많을 것 같은 부서였다.
조 기자는 다시금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특종을 찾고자 하는 기자의 열정이 샘솟았다.
하지만 주어진 일과는 경찰서 두 곳과 소방서 두 곳을 매일 뺑뺑이 도는 것이었다.
담당구역을 순찰하듯 돌다 보면 옛다 이거라도 쓰라며 기삿거리를 던져주곤 했다.
컴퓨터 검색창 앞의 신삥 기자의 삶.
뺑뺑이 도는 초급 기자의 삶.
조 기자가 자신의 삶에 회의를 가질 무렵 선물처럼 각성이 찾아왔다.
그날부터 조 기자는 D급 각성자이자, 던전 전문 기자가 되었다.
조 기자는 헌터 자격증도 땄고, 직접 던전까지 들어가서 기사를 따오곤 했다.
답답했던 시절의 한풀이를 하는 듯 조 기자는 헌터의 최전선을 찾아다녔다.
“안녕하십니까. 여기는 대운 대학교입니다. 저는 지금 대운 대학교 내부에 있는데요. 오늘 오후, 4시 무렵 대운 대학교 정문 앞에서 발생한 던전 브레이크로 인해 일대는 마치 전쟁이라도 난 듯 참혹한 상황입니다. 잠시 창밖을 보실까요?”
조 기자의 짝궁인 D급 각성자 카메라맨이 창밖을 비추었다.
이리저리 화면을 보여주다가 저 멀리 리자드맨 한 마리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줌으로 당겨서 리자드맨을 보여주었다.
“보시는 바와 같이 제가 있는 건물 아래에서는 지금도 몬스터가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저 몬스터는 푸른 피부에 눈과 입이 커 보입니다. 손에는 칼과 같은 물체를 들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헌터 협회에서는 이 던전 브레이크를 리자드맨 던전이 터진 것이라고 말하는데요. 지금 보시는 몬스터는 그 외견상으로 볼 때 리자드맨으로 보입니다.”
그때, 리자드맨을 비추는 카메라로 누군가 날아왔다.
휙휙.
리자드맨이 두 동강이 났다.
“아! 지금 한 여성이 등장해 리자드맨의 상체와 하체를 분리했습니다. 헌터로 보입니다.”
또 다른 여성이 화면에 등장했다.
조 기자는 촉이 발생했다.
“잠시 내려가 보겠습니다.”
조 기자는 카메라맨에게 손짓하며 건물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타다다닥.
조 기자의 귀에는 이어폰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조 기자, 위험하진 않겠습니까?
조 기자는 카메라를 향해 설명했다.
“지금 제가 건물 밖으로 나가는 것이 리자드맨만 있는 상황이라면 위험한 상황이겠지만, 헌터로 보이는 인물들이 도착했기 때문에 내려가고 있습니다. 또한 시청자 여러분께 저와 지금 저를 촬영하고 있는 카메라맨은 헌터 자격증이 있다는 것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일반 시청자분들께서는 절대로 던전 브레이크 지역으로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슈칵.
하늘 높이 솟아오르는 리자드맨의 머리통이 보였다.
슈칵, 슈칵!
마치 뽑아둔 배추를 트럭에 상차하는 손길처럼 리자드맨 머리통을 일정한 방향으로 던져올렸다.
“저는 지금 대운 대학교 건물에 있다가 건물 아래로 내려왔습니다. 오늘 오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평범한 대학 캠퍼스였는데요. 지금은 이렇게 몬스터가 있고, 헌터들이 몬스터를 레이드하고 있는 던전이 되어버렸습니다.”
칼날 방패를 들고 있던 여성이 다시 제자리에서 방패를 회전시키더니 한 바퀴 크게 회전해서 다른 리자드맨의 목을 땄다.
“시청자 여러분, 보셨습니까? 리자드맨 몇 마리의 머리가 일정한 방향으로 하늘을 날아가고 있었습니다. 지금 뒷모습이라 잘 보이지는 않지만, 긴 은발의 헌터가 리자드맨을 제압하는 인상적인 모습이었습니다.”
조 기자의 이어폰으로 정보가 들어왔다.
“네, 지금 한국대 무기술학과 교수의 해석이 들어왔는데요. 저렇게 리자드맨 머리가 대각선으로 날아가는 것은 무기의 특성 때문이라고 합니다. 지금 보시는 바와 같이 헌터의 무기는 뭔가 빠르게 회전하며 가운데 부분이 볼록한 원반 모양입니다. 그 원반을 수평으로 크게 돌려 물체를 자르면 렌즈 모양의 가운데 부분에 부딪혀 저렇게 물체가 대각선 위쪽 방향으로 솟아오르게 된다고 합니다.”
그때 카나가 고개를 돌려 조 기자 쪽을 바라보았다.
은발, 은색 눈동자의 이국적인 얼굴이었다.
조 기자는 시청률 떡상을 직감했다.
그런 직감은 조 기자뿐만이 아니었는지 조 기자의 귓속으로 PD님의 지시사항이 떨어졌다.
―따라가!
“잠시 레이드에 방해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헌터의 뒤를 따라가 보겠습니다.”
잠시 후 은발의 헌터 못지않은 외모의 또 다른 헌터가 나타났다.
기자의 직감이 말했다.
시청률 두 배 곱하기 다시 두 배.
시청률 올라가는 소리가 들렸다.
카메라맨도 새로 나타난 여성 헌터를 향해 초점을 맞추었다.
그때, 새로 나타난 헌터가 활에 화살을 건 후, 카메라를 향해 시위를 당겼다.
기자와 카메라맨이 잠시 당황한 사이 화살이 발사되었다.
수천만 원짜리 고화질 카메라는 낭창낭창 흔들리며 날아오는 화살의 모습을 그대로 담았다.
피이이잉!
콱!
카메라를 스쳐 지나가는 화살.
카메라맨이 움찔해서 화면이 흔들렸다.
조 기자가 입을 벌린 채, 손가락으로 카메라맨의 뒤를 가리키자 카메라가 뒤를 돌았다.
카메라맨의 뒤쪽에 이마 한가운데에 화살이 박힌 리자드맨이 서 있었다.
대각선 위로 들고 있던 칼을 보니, 금방이라도 내려칠 것 같은 모습이었다.
리자드맨은 천천히 뒤로 쓰러졌다.
“시청자 여러분, 조금 전에 화면이 흔들린 점을 사과드리겠습니다. 방금 화살이 카메라맨을 스쳐 지나가며 화면이 흔들렸습니다. 하지만 보시는 바와 같이 날아온 화살은 리자드맨의 이마 한가운데에 꽂혀 있습니다. 칼을 휘두르려는 모습으로 보아 조금 전에 저희를 구해준 것으로 보입니다.”
조 기자는 두 헌터에게로 다가갔고, 카메라의 화면도 점점 두 헌터의 모습을 가까이 잡았다.
화아악!
그런데 두 헌터가 눈앞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다.
“시청자 여러분, 보셨습니까? 두 헌터가 공간이동을 한 듯 사라져 버렸습니다. 지금 주위를 돌아보아도 전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제 기자의 주변에는 몬스터도, 헌터도 보이지 않았다.
이어폰에서 지시가 떨어졌다.
―야, 일단 피해!
“시청자 여러분, 헌터가 보이지 않으니 저희도 조금은 안전한 장소로 이동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대운 대학교 캠퍼스에서 KMS 뉴스 조금만이었습니다.”
카메라의 불이 꺼졌다.
“땡철아, 방금 대박인 거 알지?”
“네, 알아요. 미녀와 야수는 시청률 보장이죠. 그런데 이제 우리 어디 가요?”
“일단 아까 숨었던 데서 조금 숨어 있자.”
둘은 구석에 짱박혀서 숨어 있었다.
D급이 B급 던전 브레이크를 촬영하려니 쫄려서 함부로 나돌아다닐 수가 없었다.
그렇게 눈치를 보며 상황을 기다리니 얼마 후 저쪽에서 한 무리의 헌터들이 몰려나왔다.
“땡철! 아까 그 여자 헌터들도 있다. 내려가자.”
기자는 다시 캠퍼스 내부로 내려갔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지금 대운 대학교 캠퍼스에 있는데요…….”
조 기자는 했던 말을 또 하며 끊임없이 분량을 만들었다.
그때, 몬스터가 헌터들과 조 기자 사이에서 나타났다. 그런데 이번 몬스터는 평범한 리자드맨이 아닌 것 같았다.
알록달록한 모습이 꼭 독개구리 같았다.
“캬아아아악!”
독개구리는 소리를 지를 때마다 입에서 줄줄 점액질이 흘렀다.
피이이잉!
하지만 여지없이 화살이 독개구리의 머리를 관통하고, 이내 아까 그 기술인지 몬스터의 머리가 대각선 위 방향으로 날아올랐다.
휙~ 툭.
그런데 운이 없게도 몬스터의 입에서 줄줄 흐르던 점액질의 한 방울이 슝 하고 하늘을 날아 조 기자의 목덜미에 떨어졌다.
치이이익!
“악!”
“형님!”
카메라맨이 카메라와 함께 달려왔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조 기자를 향해 어쩔 줄 모르는 카메라맨의 왼손이 화면 가득 비추었다.
“비키세요.”
무심한 듯 시크한 목소리에 카메라맨은 화들짝 정신이 돌아왔다.
카메라맨은 본능적으로 뒷걸음치며 촬영을 이어갔다.
“홀리 큐어.”
* * *
따르르릉.
민준의 엄마, 서지영은 부엌에서 일하다 거실의 전화를 받았다.
―아 왜 전화가 안 돼?
친한 친구인 경희였다.
그제야 스마트폰을 찾아보니 깜빡 잊고 충전을 안해서 스마트폰이 꺼진 줄도 모르고 있었다.
“어, 충전을 안 했네. 그런데 왜?”
―지금 TV에서 나오는 사람. 민준이 아니야?
“민준이가 TV에? 잠시만.”
―KMS를 틀어봐.
민준의 어머니는 TV 채널을 돌렸다.
TV에서는 알록달록한 독개구리 비슷한 괴물을 헌터들이 때려잡고 있었다.
그때 정장을 입고 마이크를 든 기자처럼 보이는 사람이 뭔가에 맞아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배경은 현대인데 괴물이 나오고, 갑옷을 입고 칼과 활을 든 사람이 반쯤 날아다녔다.
지영은 이게 영화인가 실제인가 잠시 구분이 안 되었다.
하지만 TV에서 뉴스이며 생방송이라는 말에 이게 영화가 아니라 현실임을 깨닫게 되었다.
“크억!”
“형님!”
카메라맨은 다급하게 기자에게 달려가면서도 카메라를 놓지 않았다.
화면 안으로 기자의 모습과 카메라맨의 손이 나왔다.
“비키세요.”
어쩐지 익숙한 목소리였다.
“홀리 큐어.”
쓰러진 기자의 몸에 잠시 은은한 빛이 어리더니 이내 기자가 정신을 되찾았다.
기자가 정신을 되찾자, 카메라의 화면은 얼른 뒤로 물러나 기자와 익숙한 목소리의 주인공을 한 화면으로 담았다.
탕.
TV에서 아들을 본 엄마는 그만 수화기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금쪽같은 소환수들
— 거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