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화. 용병
인천의 어느 D급 던전 앞 휴게실.
각종 냉병기를 차고 있어서 누가 봐도 헌터라고 생각되는 사람들과 이들을 도와주는 매니저들이 모여 있었다.
“헌터님, 그러니까 이곳 던전에서는 언데드들이 많이 출몰한다고 하잖아요. 구울을 만났을 때는…….”
“헌터님, 장비 챙기시고. 이 가방에는 비상약, 식량, 각종 포션 세트가 들어 있어요.”
드르륵.
문을 열고 헌터 한 명이 휴게실로 들어왔다.
찰랑거리는 웨이브진 머리카락과 붉은 가죽 갑옷이 잘 어울리는 마법사 한나리였다.
한나리는 휴게실 안을 살펴보았다.
“여어, 나리. 오랜만이야!”
저쪽에서 손을 흔드는 사람이 있었다.
나리가 그쪽을 바라보았다.
“어머, 관장 오빠. 그동안 잘 계셨어요?”
헌터 자격증을 딸 때 인연이 되어 함께 던전을 돌던 김관장이었다.
“나리야,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아, 저 길드 갈아탔어요.”
“그래? 어딘데?”
“샤론 길드라고요. 민준 오빠가 만들었어요.”
관장은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민준? 소환? 와, 그 형이 아예 길드를 차렸다고? 내가 그 형은 크게 될 줄 알았어. 소환수가 민준 형보다 더 셌잖아. 그런 소환수를 소환한다는 게 보통 스킬이 아닐 거라고 생각했지.”
“그러게요. 보통 소환수들이 아니더라고요.”
“소환수들? 와, 그 형님 이제 소환수가 그 이름 뭐더라? 샤샤? 맞지? 걔 하나가 아닌가 봐.”
“네, 벌써 소환수만 셋이에요.”
“나 그 형 진짜 부러웠어. 나처럼 근접 딜러의 경우는 특히나 몬스터와 가까이서 싸우는데, 그 형은 산책하듯이 다니면 소환수가 알아서 잡아 줬잖아. 너무 부럽더라고. 아무튼 잘됐네.”
“네. 그럼 오늘 던전도 잘 부탁해요.”
“나야말로 잘 부탁하지. 이리와. 다른 분들 소개해줄게.”
김관장이 안내한 곳에는 열 명의 헌터들이 모여 있었다.
몇 명은 김관장이 가입한 길드인 천마 길드 소속이었고, 다른 길드의 헌터들도 있었다.
간단한 소개 그리고 헌팅에 대한 개괄을 들은 후 포탈로 향했다.
“자, 입던합니다.”
“고고!”
매니저들의 배웅을 받으며 헌터들이 입장했다.
꿀렁!
포탈을 뚫고 헌터들이 던전 안으로 들어왔다.
“나리와는 오랜만에 함께 던전 도는데?”
“그러게요. 관장 오빠도 너무 길드 사람들하고만 던전 돌지 말고 가끔은 저도 불러줘요.”
“안 그래도 나와줘서 고마워. 이번 던전에서는 마법사가 있어야 한다는데, 우리 길드에서는 마법사들이 별로 없어.”
던전을 돌고 강한 몬스터를 레이드 하기 위해서는 헌터들의 포지션이 균형 잡혀 있어야 했다.
다양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조합이 골고루 있어야 했다.
아무리 등급이 높은 헌터라 해도 모두 물리 계열만 모여 있다면, 마법 계열이나 정신계 공격에 한 번에 위험해질 가능성이 있었다.
그런데 길드의 구성원들을 보면 꼭 그렇게 균형 잡힌 멤버로 구성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았다.
끼리끼리, 유유상종.
칼질하는 헌터는 칼질하는 헌터끼리, 마법사들은 마법사끼리 말이 잘 통한다.
말 그대로 종합 선물 세트처럼 사람들을 모아놓으면, 인간관계가 복잡해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길드들의 구성원은 한쪽 계열로 치우치는 경우가 더 흔했다.
그러다 보면 이렇게 객원 헌터를 부르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전방에 구울 열 마리입니다!”
그 소리에 맞춰 천마 길드원들이 전방에 횡대로 진형을 갖추었다.
듬직한 모습이었다.
“불타오르고, 또 불타오를지어다. 파이어 스피어!”
“파이어 스피어.”
“파이어 스피어.”
전방에서 구울들이 빠르게 달려오고 있었다.
허리를 굽히고 중간중간 손을 짚어 가며 뛰는 모습이 짐승 같아 보였다.
하지만 이들은 짐승조차 되지 못한 언데드였다.
화르르르륵!
“키에에엑!”
불타는 창이 구울에게 명중되자 화염에 휩싸인 구울이 단말마를 질렀다.
열 마리 중에서 나리의 화염창에 세 마리가 당해서 가까이 다가오지도 못했다.
나머지 구울도 곧 헌터들에 의해 정리가 되었다.
헌터들은 한동안 던전을 돌며 언데드들을 잡았다.
두 시간 후, 헌터들은 잠시 휴식 시간을 가졌다.
“나리야, 오랜만에 봐서 그런지 마력 운용이 아주 매끄러운 것 같아. 실력 많이 좋아졌네.”
“헤헤, 그래요? 고마워요.”
“나 처음에 구울 열 마리 덤빌 때 네가 세 마리 잡고 시작하는 거 보고서 깜짝 놀랐다니까.”
“헤헤, 뭐 제 실력도 있지만 아이템빨도 한몫하죠.”
관장이 뭔가 이상하다는 듯 표정이 갸우뚱했다.
그러더니 관장은 조용히 나리에게만 들리게 말했다.
“너, 지난번에 사기당했었다면서 뭔 아이템이야?”
당황스런 물음에 나리가 말했다.
“헐, 오빠. 이거 장물 아니거든요? 민준 오빠가 싸게 준 거예요. 길드원 특가로.”
“아니, 내가 언제 장물이라고 했어? 그냥 지난번에 종구 만났었는데 하소연을 하더라고. 그래서 그랬지. 자, 이거 먹고 화 풀어.”
관장은 가지고 온 에너지바를 나리에게 주려고 했다.
“됐거든요. 안 먹어요.”
“나리야, 미안해. 아직 던전 돌려면 한참 남아서 이렇게 쉴 때 먹어둬야지.”
“흥, 내가 오빠 생각해서 주려고 가져온 건데, 나 혼자 먹어야겠다. 선물함.”
그렇게 말한 나리는 허공에서 핫바 하나를 꺼냈다.
미세하게 연기가 나는 것이 따뜻해 보였다.
나리는 그 핫바를 호호 불어 맛있게 한입 베어 물었다.
오물오물.
그 모습을 본 관장이 조금 의아한 듯 물었다.
“어떻게 한 거야?”
“뭐가요?”
“갑자기 핫바를 꺼냈잖아. 소매에 있던 거야?”
“풋, 소매요?”
그 모습에 김관장은 더욱 궁금했지만,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하긴, 나리는 마법사니까.”
“크크크.”
그렇게 종일 던전을 돌고 보스몹을 레이드 할 차례였다.
보스는 마법사였는데 보스를 지키는 듀라한들이 몇 마리 있었다.
듀라한들을 무사히 잡고 보스를 레이드하던 중 보스의 마법에 나리가 부상을 입고 말았다.
“꺅!”
김관장이 나리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리고 다시 나리에게로 날아오는 마법을 검으로 베어냈다.
“나리야!”
“으윽! 민준 오빠 힐, 전해줘.”
김관장은 여기서 민준을 찾는 나리가 이상해 보였다.
민준이 힐러인 건 알고 있었지만, 민준이 없는 던전에서 민준의 힐을 찾다니 아무래도 나리가 많이 아픈 것 같았다.
화아악!
어라? 그런데 나리에게로 힐이 들어간 것 같았다.
“민준 오빠, 고마워요 라고 전해줘.”
그렇게 어찌어찌 보스몹까지 레이드가 끝났다.
이번 던전에서는 던전석을 깨지 않고 관리하는 던전이라 헌터들은 던전을 빠져나왔다.
나리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던 관장이 물었다.
“나리야, 그런데 아까 힐은 어떻게 된 거야? 나는 잘 이해가 안 돼서 말이야.”
“후후, 그거 민준 오빠가 힐 쏴준 거 맞아요.”
미간을 모으며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을 짓는 관장.
“민준 오빠가 소환술사인 거 아시죠?”
“그럼.”
“그 오빠 스킬에 용병이라고 있거든요. 그럼 제가 임시 소환수가 되는 거예요.”
“뭐? 그럼 아까 그 핫바가 나타난 것도?”
“네, 선물함.”
나리를 허공에서 핫바 하나를 꺼내 관장에게 주었다.
“오늘 수고했어요. 아까 나 다쳤을 때 짠하고 앞을 막아주던데요? 크크, 고마웠어요.”
“근딜이 법사 앞을 지키는 거야 당연한 거지.”
관장은 그렇게 말하며 핫바를 한입 베어 물었다.
그리고 눈이 빠질 것처럼 커졌다.
“던전 도느라 힘드셨죠? 그거 먹으면 체력 1 올라요.”
“대박! 이렇게 귀한 걸 나 줘도 돼?”
“그거 그렇게 귀한 건 아니에요. 영구적으로 오르는 것도 아니고, 헌터 마켓에 샤론 길드라고 검색해보면 팔아요.”
“와, 대단하다. 그런데 다른 사람도 너처럼 용병이 될 수 있어? 이거 큰 비밀인 거 아니야?”
“글쎄요. 집 짓는다고 저보다 공사장 아저씨들이 용병을 더 많이 한 것 같은데요. 그 뭐냐, 각종 공사 장비들도 집어넣고, 지난번에는 포크레인도 들어가던데요? 잠시만요.”
나리는 잠시 허공에 말을 했다.
…
“네네.”
“용병은 이미 헌터 게시판 구인란에 모집 올려봤는데 아무도 지원을 안 했다고요?”
“아… 네네.”
허공과 대화를 나누던 나리가 관장을 돌아보았다.
“그 오빠네 길드장 누구죠?”
“차지율 길드장님?”
“네, 그분 S급이라면서요?”
“그렇지.”
“아, 글쎄. 민준 오빠가 헌터 게시판 구인란에 A급 이상 용병 구한다고 글을 올려봤다는 거예요. 그런데 아무도 지원을 안 했다지 뭐예요. 크크, 오빠네 길드장 같은 S급들이 용병이 되면 좋겠다고 그러는데요?”
“설마 그분이 용병 일을 하겠어?”
“그러니까요.”
* * *
다음 날 길드로 출근한 김관장은 길드장의 호출을 받았다.
김관장은 길드장의 얼굴을 길드 가입할 때 한 번, 추궁과혈해준다고 할 때 한 번, 그리고 이제 세 번 째 보았다.
아무래도 길드장은 바쁘니까 쉽게 볼 수 없는 얼굴이었다.
“안녕하세요. 네, 김관장 씨?”
“네, 길드장님.”
“제가 재미있는 보고를 하나 들었는데요. 확인차 불렀어요.”
“네, 말씀하시죠.”
차지율은 탁자 위에 올려진 핫바 하나를 들어 보였다.
“제가 헌터 마켓에서 핫바 하나를 샀어요.”
“아!”
“뭔지 아시는군요. 그래요, 샤론 길드에서 팔더라고요. 먹어 보니 맛도 좋고 무엇보다 얼마 동안 스텟을 올려주더군요.”
“스텟이요?”
“모르셨나요?”
“아, 체력을 1 올려주길래 체력을 채워주는 줄 알았습니다.”
차지율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에요. 체력 스텟의 총량이 1 상승하는 거였습니다. 물론 영구적이지는 않고 일정 시간 동안이긴 했죠.”
“아… 네.”
“그리고 그 한나리 양이 용병이 되어서 인벤토리를 쓴다던데, 맞습니까?”
“네, 용병이 되면 인벤토리를 쓸 수 있다고 했어요. 허공에서 핫바를 꺼내서 제가 조금 놀랐었습니다. 그 뭐냐, 포크레인도 들어간다고 자랑하던데요.”
“그래요? 포크레인이라. 상당하군요.”
“저 그리고, 용병이 되면 한가지 혜택이 더 있습니다.”
“뭔가요?”
“소환술사에게 직접 힐을 받을 수 있었어요. 나리와 제가 다른 헌터들과 던전에 들어갔었는데 소환술사가 어떻게 했는지 던전 밖에서 용병인 나리에게 힐을 쏴주더군요.”
“와, 대단하네요. 샤론 길드에 대해 조금 더 설명해 주시겠어요?”
* * *
나는 요즘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일명 과자 사주기 놀이.
루틴대로 샤론 영지를 돌아보기만 하다가 이제 영지에 애착이 생기고, 영지민들의 얼굴도 이제 익숙해졌다.
다 해야 400명인데 다 이름은 못 외워도 내 영지민인지 아닌지 정도는 구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길리언, 내가 어른들 없을 때는 마법 쓰지 말라고 했지.]
[쬐송해여, 영주님. 다음부터는 안 쓸게요.]
[그래, 지난번에도 마법을 쓰다가 화상을 입었잖아. 내가 못 봤으면 아마 아직도 아파하고 있었을걸?]
[네, 아라써요.]
“크크크.”
얘를 혼낸다기보다는 그냥 재미로 말 거는 거다.
이렇게 말 걸다가 과자 하나 보내줬다.
저 조그만 아이가 마법을 쓰는 모습을 보면 그냥 즐겁다.
내가 가르쳐서 배운 것도 아닌데, 재능있는 어린아이를 보는 건 왠지 그것 자체로 즐거웠다.
[길리언, 어서 마을 중앙으로 가, 거기 가면 알타르가 성인반 교육 다 끝냈을 거야.]
[네.]
쭐레쭐레 걷는 모습도 귀엽다.
쟤가 한사람 몫을 하려면 한 10년은 있어야겠지.
저 멀리 알타르가 마중을 나왔다.
길리언에게 이것저것 묻더니 하늘을 보며 나에게 인사를 했다.
알타르가 인사성 하나는 기가 막혔다.
길리언이 마법을 쓰는 모습을 조금 지켜봤다.
캬, 저 꼬맹이가 라이트를 켰다.
그렇게 영재교육을 알타르에게 맡겨두고 다시 마을 촌장을 찾아갔다.
[안녕하세요. 다니엘.]
[영주님도 안녕하십니까?]
다니엘은 마을 촌장으로 샤샤가 오기 전까지 마을의 대소사를 담당하고 있었다.
400명짜리 조그만 마을이라 촌장 하나면 충분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조그만 마을이라기보다는 작은 기업에 가까워졌다.
[영주님, 오늘 들어온 몬스터 사체와 가죽 생산량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루틴을 돌며 겸사겸사 보고를 받았다.
용병 스킬은 꽤 쏠쏠한 것 같았다.
지금 내 능력으로는 동시에 세 명을 쓸 수 있는데, 두 명을 써서 레이드 보내고, 하나는 비워둔 채 이 사람 저 사람 말 거는 재미가 있다.
띠링!
“엇! 영주님이 나에게도 말씀을 하셨어!”
“어머! 이번엔 제게도 말씀을 내려주셨어.”
“몸이 아픈 사람들을 모아두라고요? 알겠습니다.”
화아악.
화아악.
화아악.
겸사겸사 영지민들 중에서 아픈 이가 있으면 힐이나 큐어를 쏴주기도 했다.
그러면 또 오버해서 넙죽 절하는 영지민들.
저렇게 삐쩍 말라서 어수룩해 보이는 영지민들이지만, 마나량 만은 어지간한 D급 헌터는 되었다.
그렇게 오늘 하루도 영주놀이를 하는 중이었다.
부르르릉.
사무실 밖에서 뭔가 이질적인 배기음이 들렸다.
창문으로 슥 하고 쳐다보니 와, 엄청 비싼 차가 주차되어 있었다.
지이이잉.
차를 보고 그렇게 놀란 적은 없었는데, 차 문이 위쪽으로 열리는 것을 보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문을 열고 삐죽 머리만 내밀었다.
차 문이 열리자 깔끔하게 생긴 남자가 내렸다.
어?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이었다.
저벅저벅.
걷는 모습에서 자신감을 느낄 수 있다면 바로 저 걸음이었다.
“혹시 샤론 길드장이십니까?”
내가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안녕하세요. 천마 길드 헌터 차지율입니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게 S급?
“대박.”
금쪽같은 소환수들
— 거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