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쪽같은 소환수들-92화 (91/230)

92화. 복수

헬른성의 좀비 사태는 이틀도 걸리지 않고 진정되었다.

좀비로 인한 피해도 한두 번이지 밤나무 마을에서부터 시작하면 이번이 세 번째라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헬른성의 지휘 통제실에서는 캐이믹 백작이 기사들의 보고를 듣고 있었다.

“성 내에서 추가적인 좀비들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치료 주문서를 이용해 회복된 사람들은 한군데 모아서 따로 관리하고 있습니다. 그들 중 다시 좀비로 변한 사람은 아직 없습니다.”

“좀비에서 치료된 사람 중에서 수상한 사람을 보았다는 진술이 나왔습니다.”

“갈색 머리의 젊고, 키 크고, 잘생긴 남자의 손에서 검은 구름이 나온 후, 좀비가 된 것 같다는 진술이 나왔습니다.”

기사들을 통솔하던 캐이믹 백작은 이번 좀비 사태의 해결 일등 공신인 제리를 보며 영업사원이 지을법한 미소를 지었다.

“좀비 치료 주문서라니, 정말 대단하네. 제리 경? 이것 좀 더 얻어 둘 수 있을까?”

“일단 ‘경’ 말고 그냥 제리라고 불러줬으면 합니당. 그리고 주문서는 물어봐야 합니당. 잠시만 기다리십숑.”

제리는 허공에 대고 말을 걸기 시작했다.

“그랭? 알았당.”

제리가 어느 정도 대화가 끝난 것 같자 캐이믹 백작이 기대감 어린 눈빛을 빛냈다.

“줄 수 있다고 하는가?”

“일단 좀비 치료 주문서는 있다고 합니당.”

“그래? 가격은 후하게 치러줌세. 얼마면 되나?”

“마스터가 원하는 게 있습니당.”

“뭔가? 내 가능한 최선을 다해 봄세.”

“당신의 아버지, 헬른 공작과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합니당.”

* * *

프란시아 왕국의 동쪽 끝에 있는 삼각성은 베이론과 가장 가까운 성이다.

프란시아 왕국과 베이론 왕국은 사이가 안 좋아서 삼각성에서 병사로 근무한다는 것은 적대국을 향한 최전방에서 근무한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삼각성의 병사들은 두려워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삼각성은 작지만 강한 성이기 때문이었다.

높은 성벽, 그 위에 서면 까마득한 높이에 현기증이 날 정도였다.

오죽하면 지난 전쟁에서 베이론 군이 훨씬 많은 수의 병사를 가지고도 삼각성은 그냥 포위만 할 뿐 점령할 생각을 안 했을까?

삼각성은 뒤쪽 절벽에 의지해 두 면을 반듯하게 쌓았다.

그 두 면이 만나는 삼각형의 꼭짓점에 있는 초소는 삼각성의 가장 돌출된 부분이자, 양쪽 성벽 면을 향해서도 바로 튀어갈 수 있는 곳이었다.

그 초소에는 무려 7서클의 마법사 스피오크와 소드마스터이자 왕국 제1검인 헬른 공작이 함께 보초를 서고 있었다.

“스피오크, 그가 올까?”

“예, 공작님. 제 생각에도 지나가긴 지나갈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자는 이미 세 번의 좀비 사태를 일으켰지만, 결과적으로는 실패했습니다. 이곳에 와서 다시 좀비를 퍼트릴지는 미지수입니다. 촉이 좋으면 그냥 조용히 지나가겠죠.”

“음… 이곳을 지나면 베이론으로 넘어갈 테니 실질적으론 그를 잡을 마지막 기회가 되겠군. 그 소환술사라는 자도 좀비 사태를 그와 연결시키고 여기서 함정을 파자는 생각까지 하다니 꽤 머리가 좋은 것 같아.”

“그런 것 같습니다.”

삼각성 꼭대기에서는 저 멀리 국경이 보였다.

그자가 국경을 넘으면 공식적인 추격을 하기 힘들었다.

스피오크와 헬른 공작이 국경을 넘는다는 것은 베이론과 전쟁을 하자는 말이기 때문이었다.

지난 전쟁에서 프란시아의 승리였지만, 기본적인 생산능력이 부족한 국가가 먼저 전쟁을 걸기는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지금 삼각성에서 그를 잡기 위해 모인 것은 스피오크와 헬른이 스스로 판단한 일이지만, 국가의 전쟁은 아무리 그들이라고 해도 함부로 결정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헬른성에 좀비를 퍼트리다니, 내 이름값도 많이 떨어졌나 봐.”

“후후, 공작님이 헬른성에 안 계시고 수도에 계신다는 것을 모르는 이가 누가 있답니까? 좀비 사태가 수도를 건너뛴 것만 보아도 공작님의 이름값이 아직 먹힌다는 뜻이지요.”

“그런가? 아무튼 잡을 수는 있는 것이지?”

“일단, 삼각성 일대에서 암흑 마법을 쓰면 탐지 마법에 무조건 걸립니다. 그리고 인상착의를 설명해 두었으니, 보초를 서는 병사들도 눈에 불을 켜고 있을 겁니다. 걸리기만 하면야 저희 둘이 있는데 못 잡겠습니까? 그리고 발견하는 게 제 일이라면 잡는 건 공작님 몫 아닙니까?”

“그래, 내 지난번 전쟁에서 라우를 놓친 것을 생각하면 아까워서 잠이 안 와. 그때 조금 무리를 하더라도 쫓았어야 했는데. 자네는 라우를 봤다고 했지?”

“예, 트란 산맥에서 잠시 보았습니다. 얼굴은 라우인데 암흑 마법으로 달아나서 몹시 당황스러웠습니다.”

“암흑 마법을 쓰는 라우라. 어떻게 생각하는가?”

“둘 중 하나이겠지요. 하나는 라우 공작이 마족의 개가 되었든지.”

“아니면?”

“아니면 라우이자, 곧 타지프인 것이지요.”

“그렇군.”

“그거야 잡아놓고 보면 알게 될 일입니다.”

그렇게 성벽 위에서 스피오크와 헬른 공작이 대화하는 시각, 성벽 밑에서는 병사들이 오가는 사람들을 한명 한명을 자세하게 검문을 하고 있었다.

병사들이 들고 있는 종이에는 한 인물의 생김새와 특징이 적혀 있었다.

갈색 머리카락에 큰 키, 잘생긴 얼굴. 라우 공작의 몽타주였다.

“이봐, 너?”

“저 말입쇼?”

“그래, 너. 갈색 머리에 얼굴이 반반한 게 생긴 게 딱이네. 이쪽으로 좀 빠져.”

“아이고, 병사님들. 왜 그러십니까?”

“내가 지금 장난하는 줄 알아? 일단 너 이쪽으로 빠져.”

병사는 창을 들이밀며 위협했고, 지적받은 이는 한쪽으로 빠질 수밖에 없었다.

무려 헬른 공작님과 스피오크 님이 지시하신 사건이었다.

둘 중 한 분만 오셔도 난리가 날 상황인데, 두 분이 함께 오셔서 잡으라고 한 몽타주였다.

이걸 자신이 맡은 곳에서 뚫린다?

병사들은 그다음을 상상하기도 싫었다.

병사들은 기합이 바짝 들어서 일단 머리카락 색깔이 갈색이기만 하면 다 한쪽으로 몰아 두었다.

그때, 상인 한 무리가 헬른성으로 다가왔다.

평상시보다 성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상인 하나가 물었다.

“무슨 일이지?”

“글쎄, 무슨 검문을 심하게 하나 봐. 평소랑 다른데?”

상인 우두머리는 뒤를 돌아보며 따라오는 상인들에게 말했다.

“이보게, 오늘은 검문이 있으니까 괜히 트집 잡히지 말고 잘들 하시오.”

그 소리에 상단의 맨 뒤에서 마차를 타고 상단을 따라가던 이가 마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자연스레 뒤로 돌아서 걷기 시작했다.

“이봐, 어딜 그렇게 가는 거지?”

어느새 다가온 다른 경비병이 의심의 눈을 빛냈다.

그자는 머리까지 뒤집어쓰는 모자가 달린 로브를 입고 있었다.

“너! 모자 벗어봐.”

경비병들은 손에 든 몽타주와 앞의 인물을 비교했다.

모자를 쓰고 있었지만, 모자 바깥으로 삐져나온 갈색 머리가 눈을 살짝 가리고 있었으며 훤칠한 키에 잘생긴 얼굴이 몽타주의 인물과 유사했다.

경비병은 옆의 경비병과 눈빛을 교환했다.

눈빛을 받은 경비병의 수신호에 다른 경비병들이 더 모였다.

경비병은 창을 더욱 세게 잡았다.

“너! 이쪽으로 와!”

경비병은 수상한 자를 향해 창으로 위협을 하며 이동을 명령했다.

“하아.”

그자는 한숨을 쉬었다.

“이거 조용히 넘어가려고 했는데, 도와주질 않는구먼.”

그자는 모자를 벗어 얼굴을 완전히 드러냈다.

입꼬리를 슬쩍 올려 비웃는 타지프였다.

타지프의 손끝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비컴 좀비즈.”

창을 들고 위협하던 경비병이 창을 놓치고 괴로워했다.

사지를 벌벌 떨며 고통스러워하더니 곧 흐리멍텅한 눈빛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 경비병뿐만 아니라 여러 경비병과 성을 통과하려고 줄을 서 있던 인원들도 좀비로 변했다.

쇄애애액!

그 순간, 거대한 불덩이가 하늘을 날아왔다.

퍼어어엉!

타지프가 있던 곳을 가격한 불덩이.

그리고 타지프가 있는 곳으로 스피오크와 헬른 공작이 하늘을 날아오고 있었다.

불덩이로 인한 검은 연기 사이로 살짝 타지프의 모습이 보였다.

희끄무레한 악령들의 보호를 받으며 버티고 있는 타지프는 스피오크와 헬른 공작이 날아오는 모습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데몬 서몬.”

타지프의 머리 위로 거대한 마법진이 그려졌다.

검은색 테두리 안에는 육망성이 그려져 있었고 곳곳에 알 수 없는 글자와 무늬가 그려져 있었다.

마법진에서는 스멀스멀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 검은 연기는 2층 높이 정도 되는 듯한 두 마리의 거대한 괴수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근육질 몸체에 황소의 머리를 지닌 듯한 괴수였다.

두 괴수는 각각 스피오크와 헬른 공작을 향해 다가갔다.

헬른 공작을 향해 간 괴수는 주먹을 휘둘러 날아오는 헬른 공작을 맞추려 했다.

덩치에 비해 빠른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상대는 소드마스터인 헬른 공작이었다.

헬른 공작은 날아오던 방향을 바꾸지 않고 그대로 검을 그어 주먹에 맞섰다.

츄악!

괴수의 주먹이 삼 분의 일 정도가 잘려 나갔다.

잘린 괴수의 주먹에서는 검은 연기가 모락 모락 피어올랐다.

스피오크를 향해 달려간 괴수도 상황이 여의치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플래임 봄버.”

쾅, 쾅, 쾅!

지속해서 떨어지는 불덩어리에 괴수가 쉽게 움직이지 못했다.

헬른 공작과 싸우고 있는 괴수는 헬른 공작의 검에 난자당하고, 스피오크와 붙은 괴수는 불에 익어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타지프가 주문을 외웠다.

“다크니스, 이스케이프.”

화아악!

검은 어둠이 공간을 감싸고 타지프가 어둠 너머로 사라졌다.

휙, 휙, 휙.

산길을 날 듯이 달아나고 있는 타지프.

다크니스와 이스케이프 조합으로 탈출에 성공했지만 빨리 달아나야 했다.

스피오크와 헬른 공작의 조합.

타지프 정도 되니 이런 무식한 조합을 잠시라도 따돌릴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을 오래 끌면 타지프도 결국 잡힐 수밖에 없었다.

“어둠의 마나에게 말하노니, 멀리 있는 공간을 연결해 나를 그곳으로 데려갈…….”

[안녕?]

흠칫!

타지프는 머릿속을 울리는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슈우우욱.

타지프는 저 공간 너머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눈길을 느꼈다.

이런 것이 가능한 이는 공간을 넘어 보는 자뿐이었다.

그런데 하필 이렇게 긴급한 순간에 공간을 넘어 보는 자가 타지프의 눈앞에 나타나다니.

타지프는 눈앞의 기척을 무시하고 주문을 이어갔다.

스피오크와 헬른 공작이 곧 쫓아올 것이었다.

노닥거리고 있을 틈이 없었다.

“머나먼 곳으로 나를 데려갈지어다.”

타지프가 주문을 이어가자 타지프의 주위로 대형 마법진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먼 거리를 이동하게 해주는 텔레포트 마법진이었다.

그때, 공간을 넘어 보는 자가 타지프의 눈앞으로 다가왔다.

타지프는 눈앞으로 누군가 다가오는 느낌에 신경이 거슬렸다.

푸우우욱!

타지프의 가슴을 뚫고 네 개의 뾰족한 칼날이 튀어나왔다.

“이건 뭐…….”

슈칵.

타지프의 목이 잘렸다.

그 모습을 화면으로 보고 있던 내가 소리를 질렀다.

“잡았다!”

나는 제리에게 쪽지를 보내주었다.

[제리, 한 건 했어! 훌륭해! 멋져!!]

나는 왠지 타지프가 먹물 뿌리고 도망칠 것 같았다.

지난 번에도 그랬고 그 저번에도 그랬다.

아주 그냥 문어가 따로 없었다.

스피오크와 헬른 공작의 조합이라면 제대로 붙으면 질 수가 없는 조합이었다.

나는 왠지 이런 조합이라면 먹물 도망이 한 번은 나올 것 같았다.

그래서 제리는 조금 떨어져 있었다.

먹물이라고 해도 모든 곳을 어둠으로 물들일 수는 없었다.

멀찍이 떨어져 있으면 괜찮았다.

그리고 먹물을 뿌리면 곧장 내가 수색해서 발견하고 그곳으로 제리가 달려온다.

그런데 1:1로 제리가 붙으면 솔직히 조금 쫄리니까 내가 시선을 끌었다.

줌인으로 코앞까지 붙으면 다들 깜짝 놀란다.

지난번에 스피오크도 깜짝 놀라서 실드까지 펼친 적도 있었다.

신경 쓰지 않으려 해도 조금은 신경이 쓰이겠지.

그런 미세한 틈만 벌려주면 투명 제리가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간다.

“어?”

그런데 타지프가 만들어둔 마법진이 사라지지 않고 작동하고 있었다.

[제리야, 그 자리에서 피해.]

대답할 여유도 없이 제리가 그 자리를 피했다.

타지프… 아니, 라우 공작의 얼굴은 기념품으로 챙겼다.

마법진의 글자들이 조금 달라지기 시작했다.

검은색 마법진이 점점 붉은 피처럼 변했다.

그리고 마법진에서 여러 개의 손이 솟구쳐 올랐다.

덥석.

타지프의 몸을 붙드는 여러 개의 손.

그리고 그 손들은 타지프의 몸을 끌고 저 아래로 내려갔다.

나는 순간 고민이 들었다.

‘저길 따라가 봐?’

그러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대충 봐도 불길해 보인다.

마치 지옥의 손길이 끌고 들어가는 듯 타지프의 몸을 데려갔다.

내 옆에서는 카나가 함께 화면을 보고 있었다.

“카나야?”

“응.”

나는 카나의 오른팔을 응시했다.

“저 녀석이 카나의 팔을 자른 놈이야.”

화면상에서 제리가 클로로 놈의 머리통을 꿰어들고 있었다.

나는 제리의 모습을 보며 카나에게 말했다.

“복수는 해줬다.”

금쪽같은 소환수들

— 거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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