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쪽같은 소환수들-90화 (89/230)

90화. 소용없다

두려움에 벌벌 떠는 토이 아저씨.

좀비로 변한 엄마를 자루에 싸서 산으로 도망쳤는데, 하늘에서 뚝 하고 누군가 내려왔으니 놀랄 만도 했다.

게다가 제리의 클로는 팔 정도 길이로 길게 나와 있었다.

날카롭고 번뜩이는 클로를 지닌 수인족 제리를 향해 좀비 엄마를 데리고 온 토이 아저씨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선처를 바라는 것뿐이었다.

좀비화된 사람은 죽이는 것이 이쪽 세상의 상식.

지금 당장 제리가 토이 아저씨의 엄마를 죽인다고 해도, 토이 아저씨조차 슬퍼할지언정 논리적으로는 납득할 만한 상황이었다.

“기사님, 제발 살려주십시오.”

차마 제리의 바짓가랑이도 잡지도 못하고 그저 살려달라 빌고 있는 토이 아저씨.

[제리야, 토이 아저씨보고 용병 계약에 응하라고 해.]

[알았당.]

토이 아저씨는 아직도 바닥에 엎드려 선처를 빌고 있었다.

“이 봐랑.”

“네, 기사님.”

“용병하겠다고 해랑.”

“네, 뭐든지 다 하겠습니다.”

뭔가 제리가 악역을 맡은 듯한 분위기였지만, 토이 아저씨와 그의 어머니에게도 좋은 일이었다.

“알파야, 저 토이 아저씨라는 분에게 용병 계약을 제안해.”

―알겠습니다.

토이는 머릿속을 울리는 소리를 들었다.

―용병 계약을 원하시면 나 OOO는 소환술사와 용병 계약을 맺는다고 말씀해 주세요.

“네, 저 토이는 소환술사님과 용병 계약을 맺겠습니다요. 용병이 되겠습니다.”

―계약이 완료되었습니다.

계약이 완료되면 이제 내가 직접 토이 아저씨에게 말을 걸 수 있었다.

[아저씨?]

토이 아저씨가 누가 부르나 해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당황하는 표정.

저 표정 알 것 같았다.

처음 머릿속을 울리는 소리가 들리면 다들 저런다.

[아저씨, 아저씨는 저 안 보여요. 그냥 소리만 들려요. 아저씨, 혹시 샤샤 아세요?]

영주 대리인 샤샤의 인사 한 번에 오늘도 일당은 높고, 힘들지 않은 일을 하고 온 토이였다.

[압니다. 당연히 알고 있습니다.]

[샤샤가 소환수인 것도 아세요?]

[아이고 물론입죠. 유명합니다.]

[그럼 이야기가 쉽겠네요. 저는 샤샤의 소환술사입니다.]

토이 아저씨는 깜짝 놀랐다.

[아! 샤론의 영주님!]

[네, 그래요. 아저씨, 스플래시 데미지라고 알아요?]

[모르겠습니다. 영주님.]

[잔잔한 물에 커다란 돌을 던지면 주변에 물이 튀잖아요. 그런 것처럼 원래 공격하려던 사람과 바로 붙어 있으면 함께 타격을 받는 것을 스플래시 데미지라고 해요.]

[네.]

아직도 토이 아저씨의 멍한 표정.

네라고 답은 하지만 잘 못 알아듣는 것 같았다.

지금 내가 이걸 왜 설명하는지 의아할 거다.

[제가 용병 계약한 분에게는 치료를 할 수 있어요. 방금 아저씨와 용병 계약을 했잖아요. 그래서 저는 지금 아저씨를 치료할 수는 있어요. 하지만 지금 아저씨의 어머니는 용병 계약을 할 수가 없는 상황이고요. 그래서 아저씨에게 용기가 있으면 어머니에게도 치료가 조금씩은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아요.]

토이 아저씨는 아직도 멍한 표정이었다.

[아무튼 아저씨의 어머니에게 물리세요. 그러면 제가 아저씨를 고치고, 그 치료 효과가 아저씨의 어머니 입을 통해 조금씩 들어갈 거예요.]

[제가 물리면 어머니가 낫는다는 말씀이신가요?]

[간단히 말하면 그래요.]

[알겠습니다.]

토이 아저씨는 비장한 표정이었다.

“캬아아아아!”

꿈틀거리는 자루에서는 좀비의 괴성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무리 자신의 엄마라고는 해도, 물리면 치료해 준다는 말을 들었다고 해도, 과감히 손을 집어넣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내가 치료에 실패하면 토이 아저씨는 좀비가 될 것이었다.

토이 아저씨는 질끈 눈을 감고 자루에 손을 쑥 집어넣었다.

콱!

“끄윽!”

손을 물렸는지 토이 아저씨는 매우 고통스러워했다.

나는 화면을 보며 주문을 외웠다.

“홀리큐어.”

화아악!

고통스러워하는 토이 아저씨에게 나의 마법이 펼쳐졌다.

마법이 발현되자 아저씨의 얼굴이 조금은 편안해졌다.

내가 맡아보았을 때 홀리큐어는 과일 향이었다.

몸이 치유되는 감각은 물론이거니와 코까지 향긋해지는 느낌.

아마 상쾌할 거다.

좀비 할머니는 스플래시 데미지 한 번으로 정신을 차리기는 어려운 것 같았다.

한 번 더.

“홀리큐어.”

화아아!

좀비할머니는 어떤 상태인지, 스플래시 데미지가 잘 들어가는지 궁금했다.

[제리야, 자루 좀 열어봐.]

제리가 자루를 여니, 토이 아저씨의 팔을 꽉 물고 있는 좀비 할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홀리큐어.”

“홀리큐어.”

“홀리큐어.”

마법 자체는 토이 아저씨에게 쓰고 있지만, 할머니가 토이 아저씨의 팔에 이빨을 박아 깨물고 있으니 좀비 할머니에게도 스플래시 데미지가 들어가야 했다.

적어도 의사 선생님의 말로는 그랬다.

그리고 좀비 할머니도 홀리큐어를 쓸 때마다 움찔움찔하는 모습이 데미지가 들어가는 것 같았다.

* * *

토이의 엄마 갈리나는 심각한 허기를 느끼고 있었다.

온 세상은 붉게 보였고 몸을 움직일 수도 없었으며 배가 너무 고팠다.

배고프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한 극한의 허기.

그때 먹음직스러운 고기가 눈앞에 나타났다.

고민할 것 없이 고기를 물었다.

그때.

쿵!

무언가 몸속 깊은 곳을 타격하는 충격을 받았다.

쿨럭.

하마터면 고기를 놓칠 뻔했다.

하지만 허기는 극심했고, 입을 뗄 수는 없었다.

쿵! 쿵!

충격은 몇 번이고 계속되었다.

그리고 붉게 보이던 세상이 조금씩 회색빛이 되었다.

갈리나는 입에 물고 있던 것을 내려놓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엄마, 나 알아보겠어?”

“토이?”

“어, 그래, 엄마!”

“왜 그러니?”

갈리나는 눈동자의 초점이 돌아오긴 했지만, 피부색은 아직도 창백한 푸른색이었다.

[자, 해후는 나중에 하시고, 아직 다 고친 것 아니니까 할머니도 용병 계약 받아들이시라고 하세요.]

“엄마, 용병 계약하겠냐고 물으면 무조건 해, 무조건! 알았지?”

“어…….”

갈리나의 머릿속에 누군가 말을 걸었다.

―용병 계약을 하시겠습니까?

“아… 네.”

―나 OOO은 소환술사와의 용병 계약을 한다고 말씀해 주세요.

아들 토이가 갈리나의 손을 잡고 어서 계약하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나 갈리나는 소환술사와의 용병 계약을 하겠습니다.”

옳지, 이제 할머니도 용병이 되었다.

“홀리큐어.”

화아악!

갈리나는 온몸을 휘감는 청량함을 느꼈다.

늙으면 다리뿐 아니라 팔목, 어깨, 허리, 목… 안 아픈 데가 없었다.

그런데 이런 상쾌함, 마치 젊어진 듯 세포 하나하나가 깨어있는 느낌.

잠시 후 갈리나가 토이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

“기억 안 나?”

“글쎄, 잘 모르겠구나.”

“그럼 됐어. 내려가자고, 지게에 타.”

저 고양이 얼굴을 한 분은 누구지? 갑자기 이상한 상황에 놓여 당황했지만, 갈리나는 일단 집에 가서 차분히 이야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게를 향해 걸어가는 갈리나.

“어?”

다리가 멀쩡했다.

늘 다리가 불편해서 절뚝였는데 다리가 아프지 않았다.

“토이야.”

“어?”

“다리가 아프지 않구나. 토이야,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

토이는 울컥했는지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다 뭔가 결심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응, 한 가지는 확실해. 이제 우린 샤론 영지에 가서 살 거야.”

“샤론?”

“응, 샤론!”

토이가 제리를 향해 넙죽 엎드렸다.

“기사님, 제가 배운 건 없어도 영주님에게 이 정도 은혜를 받았으면, 목숨을 걸고 충성을 바쳐야 한다는 것쯤은 압니다. 할 줄 아는 건 지게질뿐이지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나한테 인사하지 마랑.”

제리가 손가락을 들어 콕콕 하늘을 찔렀다.

토이와 갈리나가 하늘을 바라보았다.

며칠이 지났다.

기사 안톤이 팬니르에게 상황을 보고했다.

“오늘도 모든 인원을 확인했습니다. 밤나무 마을에서는 더는 좀비로 변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알았다. 안톤은 3개 조와 함께 이곳에 남고 나머지는 디아론성으로 철수한다. 안톤은 이곳에 10일간 머문 후, 이상이 없으면 기사들을 데리고 복귀하도록.”

“네, 알겠습니다.”

* * *

밤나무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산 중턱.

토끼와 비슷하게 생긴 동물 한 마리가 깡총거렸다.

앞다리가 짧고 뒷다리가 길어 뛰는 폼이 토끼와 비슷했지만, 귀가 길지는 않았고 머리에는 두 개의 뿔이 달려있었다.

깡충깡충.

콩!

그러다 그만 머리를 콩하고 부딪혔다.

깜짝 놀라 뒤로 돌아 빠르게 달려 땅굴로 숨어 들어갔다.

어디에 부딪혔을까?

신기하게도 부딪힌 곳은 아무것도 없는 허공이었다.

잠시 후.

방금 그곳, 아무것도 없던 산 중턱의 공간이 갈라지더니 사람 한 명이 모습을 드러났다.

덥수룩하게 갈색 머리를 기르고 있는 미남.

라우 공작의 모습을 하고 있는 타지프였다.

“희한하군.”

분명히 평범한 산골 마을일 뿐인데 자신의 계획이 어긋났다.

흑마법을 이용해 좀비를 몇 마리 만들면 좀비들은 금세 전염되어 마을 전체가 좀비화된다.

그러면 어둠의 마나가 충만하게 되고 자신은 그 어둠의 마나를 흡수하면 된다.

결계를 펼쳐두고 낚시를 하는 심정으로 천천히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생각대로 어둠의 마나가 생기는가 싶었는데, 그것도 잠시뿐이었으며 이후로는 어둠의 마나가 들어올 생각을 안 했다.

“뭐가 문제지?”

완벽하지 않은 몸을 완성시키려면 어둠의 마나가 충분해야 하는데, 오히려 마을을 좀비화시키느라고 어둠의 마나를 더 쓴 셈이 되었다.

이러면 오히려 손해였다.

“터가 안 좋은가?”

타지프는 조용하고 한적한 곳에서 충전하며 몸을 추스르려고 했던 계획이 어긋나자, 마음을 바꾸었다.

“몇 마리만 조용히 풀려고 했는데, 계획을 수정해야겠군. 아예 큰 도시에서 대량으로 좀비를 풀어야겠어.”

몇 마리를 풀었는데 기사들이 금세 잡아버리면 본전도 못 찾는 셈이 된다.

생각보다 기사들이 빠릿빠릿했다.

이런 산골 마을까지 금세 달려와 좀비들을 도륙할 줄 몰랐다.

이 정도 산골 마을이면 모두가 좀비가 되었어도 해당 영주성에서는 잘 몰라야 했는데 예상외였다.

어쨌든 타지프는 작은 마을에서 실패했으니 계획을 바꿀 생각을 했다.

아예 큰 도시로 가서 기사들이 엄두를 못 내도록 대대적으로 좀비가 퍼지도록 할 계획.

타지프가 일어나 걷기 시작했다.

그가 걷는 방향에는 디아론성이 있었다.

며칠 후.

디아론 백작은 집무실에서 사무를 보고 있었다.

쓱쓱.

사인할 것이 많았다.

똑똑.

벌컥!

문이 열렸다.

지난번에는 노크도 안 하더니 이번에는 그래도 노크는 했다.

하지만 노크를 하면 안에서 백작이 들어오라는 허락이 있어야 했는데, 이번에는 그 과정을 생략했다.

다시 짜증이 생긴 디아론 백작.

별일 아니기만 해봐라.

기사가 긴급한 목소리로 보고를 했다.

“백작님! 성 내에서 좀비가 나타났습니다!”

큰일이었다.

백작이 벌떡 일어나며 물었다.

“어디인가?”

“동쪽 외성 안쪽의 거주촌에서 발생했습니다.”

타다다닥.

다른 기사가 날듯이 달려와 말했다.

“서쪽과 북쪽에서도 좀비가 발견되었습니다.”

타다다닥.

또 다른 기사가 달려왔다.

“남쪽 상업지역에서도 좀비가 발견되었답니다.”

이런.

동서남북 할 것 없이 좀비가 퍼지자 백작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똑똑!

또다시 노크 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어디일까?

고개를 돌리니 카타리나가 들어오고 있었다.

“아빠 성 내에 좀비가 퍼졌다는데, 맞아요?”

“그래, 맞다. 지금 동서남북 모든 지역에서 발생하고 있다고 하더구나. 바로 진압에 나서야 할 것 같다.”

“아, 그렇구나.”

그렇게 말한 카타리나는 허공에 대고 뭐라고 중얼거렸다.

백작은 마음이 급했다.

어서 본부로 가서 지휘해야 할 것 같아 걸음을 옮겼다.

문을 나가려는 백작에게 카타리나가 말했다.

“아빠, 좀비 죽이지 마요.”

뭐? 좀비를 죽이지 말라고?

좀비는 물리면 전염되어 빠르게 수가 확산하므로 좀비를 발견할 경우는 무조건 죽이는 것이 최선이다.

그런데 죽이지 말라고?

무슨 다른 생각이 있는 건가?

백작은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그때, 카타리나가 허공에서 뭔가를 꺼냈다.

네모반듯한 종이 꾸러미였다.

“아빠, 이거 좀비 치료 주문서야. 여기 보면 가운데 점선이 있지? 그냥 찢으면 지저분하잖아. 이건 다다다닥 뜯어지게 만들었데요. 좀비가 있으면 좀비를 향한 방향으로 선 후 종이를 찢으면… 아니, 뜯으면 돼요.”

좀비 치료 주문서?

들어본 적 없는 주문서였다.

그런 주문서가 있다고 해도 이렇게 필요할 때 즉각 나올 수 있는 것일까?

순간 드는 생각은, 카타리나가 소환수라는 점이었다.

“이것도 그 소환술사의 물건이니?”

“응, 마스터가 주셨어.”

허어.

이번에는 정말 감탄했다.

“그랬구나. 고맙다. 잘 쓰마.”

“응, 지금 100장 있는데 모자라면 내일까지 더 만들어준다니까 웬만하면 좀비 죽이지 말고 한군데 모아놔. 며칠 정도는 좀비화된 상태여도 치료할 수 있대.”

“그래, 알았다. 어서 다오.”

디아론 백작은 묶음으로 되어 있는 주문서를 받으려 손을 뻗었다.

하지만 카타리나는 주문서를 넘겨주지 않았다.

백작이 손을 더욱 뻗었다.

주문서를 뒤로 감추는 카타리나.

“그런데 아빠?”

“응?”

“공짜는 아닌 것 알지?”

헐.

디아론 백작의 입술이 뒤틀렸다.

이거 딸 키워봤자 아무 소용없다는 말이 무슨 소린지 알 것 같았다.

금쪽같은 소환수들

— 거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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