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화. 홀리큐어
링크를 타고 들어가 보니 나온 곳은 병원 홍보 사이트였다.
“뭐야, 광고야?”
잠시 허무한 기분이 들었으나, 자세히 읽어 보니 완전히 잘못된 링크는 아니었다.
헌터 전문 병원.
각종 이세계의 독, 저주, 흑마법 치료 전문?
오호라, 이거 제대로 들어온 것 같은데?
병원 교수들의 전공을 들어가 보니 언데드 회복실도 있다고 했다.
“홍민 씨, 저 병원 좀 다녀올게요.”
“어디 아프세요?”
내가 병원에 간다고 하니 조금 걱정이 되나 보다.
직원들에게 있어서 내 건강이 곧 직장의 건강이겠지.
“제가 아픈 건 아니고요. 샤샤네 고향의 주민들이 좀 아파서요.”
“아…….”
병원에 가서 진료를 접수했다.
아파서 진료를 본 건 아니지만, 의사와 상담하려면 진료를 보아야 한다고 해서 그냥 접수했다.
[흑마법 치료 담당 김덕팔 교수]
전공: 좀비 물림, 각종 저주회복
잠시 기다리다 진료실에 들어가니 흰색 가운을 입고 컴퓨터 앞에 앉은 의사가 나를 반겼다.
의사의 주변에는 각종 뼈, 주문 등이 있었다.
한쪽에는 책장이 있었는데 저주, 좀비, 구울, 언데드, 신성 마법에 관한 책들이 빼곡하게 쌓여 있었다.
한쪽에는 유리장 속에 프로필이 적혀 있었다.
[헌터협회 인증 B급 힐러]
[힐, 큐어, 홀리큐어, 디톡스 스킬 보유]
[힐러연합 소속]
[마법학회 회원]
[국제 힐러 연합회 회원]
아! 이분 힐러시구나.
의사 가운을 입고 앉아있는 힐러를 보니 문득 엄마가 하던 말이 생각났다.
너도 힐러인데 병원에서 일하면 안 되냐는 말.
엄마는 내가 이렇게 병원에서 의사 가운을 입고 안전하게 일하시길 바랐던 것 같았다.
“어디가 아프셔서 오셨나요?”
“아, 좀비 때문에 왔는데요.”
“물리셨나요?”
“아니요, 물린 건 아니고요. 음. 제가 개인 던전이 있어요.”
“오오.”
개인 던전이라는 말이 좀 거창했나?
“아무튼 거기에 마을 주민들이 있는데, 이번에 좀비가 퍼졌어요. 좀비가 다른 이를 물면 또 좀비가 되고, 신체 일부가 절단되어도 꾸역꾸역 걸어 다니더라고요. 전투력은 강하지 않지만, 제가 아끼는 아이들도 그 세계에서 계속 살아야 해서 좀비를 치료하는 방법을 알고 싶어요.”
“아, 치료법이요?”
“네.”
“일단 좀비가 생성되는 방법은 한 가지가 아닙니다. 약물일 수도 있고, 바이러스, 흑마법 등 여러 가지가 있어요. 그래서 막연히 좀비를 치료하고 싶다가 아니라 어떤 특정 종류의 좀비를 치료하고 싶다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군.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했다.
“그래서 좀비를 치료할 때는 좀비화된 환자 또는 좀비화된 신체 일부라도 있어야 원인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그에 맞는 치료법을 적용할 수 있습니다.”
“그럼 일단 좀비화된 환자를 데려와야 하나요?”
“네, 환자면 좋고. 좀비를 데려오기는 어려울 수도 있으니 신체 일부라도 좋습니다.”
나는 허공에 대고 말했다.
“알파야, 제리 보고 곧 소환할 테니 좀비 팔 한 짝만 들고 있으라고 해봐.”
―준비되었답니다.
말이 끝나자마자 준비되었다고 한다.
“제리 소환.”
화아악!
제리가 팔 한 짝을 들고 나타나자 의사가 조금 놀라는 것 같았다.
“제리야, 팔 이리 줘. 고마워. 지금 상담 중이라 이만 보내줄게. 소환 취소.”
화아악.
다시 제리가 사라졌다.
멍하니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의사에게 팔 한 짝을 건넸다.
“요번에 제 던전에서 발생한 좀비가 이거예요.”
날카로운 손톱을 지닌 파란 팔이었다.
팔에는 유난히 핏줄이 도드라져 보였다.
“호오, 이게 그 좀비의 팔인가 보죠?”
“네, 좀비 팔 가져오라고 해서 가져왔으니 그렇겠죠.”
의사는 몇 가지 시약을 떨어뜨리고 주문을 외워보며 이것저것 검사하더니 말했다.
“일단 흑마법 계열입니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좀비화된 지 얼마 안 된 것 같습니다. 보시면 핏줄이 도드라져 보이죠? 지방질을 에너지로 써서 그렇습니다. 지방을 먼저 쓰고, 그다음에 단백질을 쓰죠. 단백질도 다 쓰면 나중엔 거의 뼈와 가죽만 남습니다. 그때가 되면 치료도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저 안식만이 답이죠.”
“그러면 이 정도 환자면 치료가 가능한가요?”
“네, 이 정도면 가능합니다. 이럴 때 치료법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환자를 저에게 데려오면 제가 치료 마법을 사용해 치료하는 것이고요. 다른 하나는 이 좀비의 흑마법에 맞는 치료 주문서를 역으로 생산하는 것이죠.”
“치료 주문서는 빨리 만들 수 있나요?”
“치료 주문서는 맞춤 생산해야 해서 지금처럼 해당 마법을 당한 환자가 있어야 하고, 시간도 조금 걸립니다.”
“치료 주문은 어떤 것을 사용하시나요?”
“네, 홀리큐어라고요. 제 자랑하는 건 아니지만, 이거 익히고 있는 힐러가 아주 드뭅니다. 좀비화되었다면 데려오시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흑마법이나 언데드 계열에는 홀리큐어가 직방이죠. 치료 주문서는 마나를 담는 것이고, 홀리큐어는 신성력까지 담깁니다. 그래서 데려오시는 것이 치료 효과가 가장 좋습니다.”
“그렇군요. 그럼 일단, 이 좀비 팔에 맞는 치료 주문서를 의뢰할 수 있을까요?”
“네, 그런데 치료 주문서는 일단 기본이 백 장입니다. 맞춤 주문서를 처음 만드는 과정이 제일 어려워요. 한 번 만들면 그다음부터는 쭉 마나만 부으면 되고요. 이해하시죠?”
“네, 알겠습니다. 기간은 어느 정도 걸릴까요?”
“다음 주에 오세요.”
“네, 안녕히 계세요.”
나는 병원에서 나와 다시 사무실로 돌아왔다.
[샤샤야, 나 어디 좀 갔다가 오느라 밤나무 마을 잘 못 봤는데 별일 없었어?]
[네, 실종자 2명을 빼고는 모두 파악이 됐어요.]
[두 명? 누군데?]
[네, 지게꾼 토이라는 분과 그분의 어머님이세요. 토이라는 분은 머리카락 색이 빨간색이고 중년 남성이에요. 그분의 어머님은 연세가 있으시고 백발이시고 다리가 불편해서 절뚝거리세요.]
[그래, 알았어. 나도 한 번 찾아볼게.]
“알파야, 밤나무 마을로 화면 좀.”
―네.
트란 산맥에 맞닿는 곳에 있는 밤나무 마을.
이렇게 멀리서 볼 때는 한가롭고 목가적이고 아름다운데 좀비라니.
―민준 님?
“어, 왜?”
―뽑기는 안 하십니까?
“뽑기?”
―네.
아! 그러고 보니 어느새 내 레벨이 45가 되어 있었다.
소환수들과 지구에서 놀 때만 해도 44였는데 좀비를 잡아서 그런지 45가 채워져 있었다.
45레벨이면 뽑기를 해야지.
늘 그렇지만 쫄깃한 스킬 뽑기.
좋은 것 좀 뜨면 좋으련만 오늘은 또 뭐가 나올지 모르겠다.
두근두근.
아, 떨려라.
“뽑기 오픈!”
파앗!
내 눈앞으로 여러 카드가 펼쳐졌다.
그것도 뒷면만.
아까 의사가 언급한 스킬은 홀리큐어.
아마도 힐의 한 단계 윗 주문인 큐어에다가 신성력까지 가미했으니, 언데드나 흑마법 계열에는 직방이라는 것 같았다.
이렇게 찍어서 나오는 스킬이 나에게도, 이 상황에도 홀리큐어처럼 도움이 되는 스킬이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렇게 딱 맞게 나오진 않겠지?
나는 눈을 감고 여러 카드 중 하나를 찍었다.
“이거.”
―네, 오픈합니다.
나는 아직도 눈을 감고 있었다.
“알파야, 혹시 홀리큐어라도 나왔니?”
―홀리큐어는 아니네요.
에이, 그럼 그렇지.
“그럼 뭐야?”
―조커(B급)입니다.
나는 눈을 번쩍 떴다.
“조커 B급? 이게 뭐야?”
―B급 이하 스킬 하나를 고를 수 있다는 뜻입니다.
“뭐? 진짜? 그럼 완전 대박 아냐?”
―뭐, 그렇죠.
“홀리큐어도 가능해?”
―네, 가능합니다.
“와, 조커 정말 좋은데?”
―그래서 조커 아닙니까? 그래서 B등급으로 제한이 걸린 것입니다.
“홀리큐어는 몇 등급인데?”
―B등급입니다.
그래도 조커라는데 성급하게 스킬을 고를 수는 없는 법.
나는 잠시 고민했다.
지구에서 쓸 스킬과 글리제에서 쓸 스킬.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스킬은 소환, 용병, 힐, 바인드였다.
소환이야 항상 쓰는 스킬이고, 소환과 궁합이 좋은 건 힐이었다.
바인드는 지구에서만 쓸 수 있는데 내가 글리제를 보며 지내는 시간이 많아서 솔직히 자주 쓰지는 않았다.
기본적으로 지구에서는 아무에게나 스킬을 쓸 수 있지만, 화면을 보면서 스킬을 쓸 수 있는 대상은 소환수와 용병뿐이었다.
아쉽게도 화면에 보인다고 아무에게나 스킬을 쓸 수는 없었다.
화면상에서 직접 스킬을 쓸 수 있었으면 공격 스킬을 골랐겠지.
화면상에서 아무에게나 계속 공격스킬 날릴 수 있으면 그냥 뭐 무쌍 찍는 것이다.
트란 산맥 몬스터 나 혼자 다 잡았겠지.
하지만 아쉽게도 화면을 보며 내가 스킬을 쓸 수 있는 대상은 소환수와 용병뿐.
그들에게 공격할 수는 없으니 치료나 버퍼 계열이 좋다.
그리고 이왕 힐을 익혔으니 힐러 테크트리를 더 올리면 좋을 것 같았다.
버퍼 계열도 좋지만, 힐러 의사의 모습을 보고 와서 그런지 조금 당긴다.
엄마가 말씀하셨던 바로 그 모습.
그래, 엄마 말은 잘 들어야지.
우리 소중한 소환수들 흑마법 걸리면 어쩌나?
내가 치료해 줘야지.
“좋아, 그러면 망설일 이유가 없지. 힐보다 상위스킬이며, 신성력을 가미해 흑마법에 직방이라는데. 홀리큐어를 익히겠어.”
지금도 좀비들 사이를 헤집고 다닐 소환수들을 생각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뽑기에 닿아 조커가 나온 것일지도 몰랐다.
화아악.
머리와 가슴에 뭔가가 채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손바닥을 펴며 말했다.
“홀리큐어.”
파아앗.
싱그러운 과일 향, 시원하면서도 쾌적한 느낌이 손바닥을 가득 채웠다.
이게 홀리큐어구나.
힐도 시원하고 좋지만, 홀리큐어는 홀리가 들어가서 그런지 상쾌함과 향이 더 좋았다.
지금까지 힐 하나만 가지고 힐러라고 불리기 조금은 쑥스러웠는데, 이제 어디 가서 당당히 힐러라고 불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병원이라도 차릴까?
마을에 있으면 기사들이 알아서 찾았을 것 같았고, 드론 제리가 날아다니니 비교적 가까운 곳도 아닐 것 같았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며 빠르게 움직이는 것은 드론보다 내가 한 수 위다.
밤나무 마을을 중심으로 높이 올라가 원을 그리며 화면을 이동시켰다.
수색을 하는 원 모양의 경로는 점점 지름을 크게 해서 넓은 지역을 수색했다.
“어?”
저기 산봉우리에 누군가 누워있었다.
산 아래의 시선으로는 찾기 어려웠지만,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시야로 보니 조금 멀리까지 오긴 했지만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
저 아저씨 어디서 본 듯했다.
헤어스타일 하며 옆에 지게가 있는 폼이 딱 봐도 밤나무 마을의 실종자 같았다.
그런데 왜 여기 혼자 있는 것이지?
그렇게 의아해하고 있는데 지게에 올린 자루가 꿈틀거린다.
뭐지? 수상한데?
“알파야, 저기 자루가 뭔가 이상한 것 같아. 확대해 봐.”
슈우욱.
―민준 님, 자루 안에 좀비가 있는 듯합니다.
“좀비?”
그런데 왜 저 아저씨는 좀비를 자루에 넣고 여기에 올라 누워있는 것일까?
나는 샤샤에게 쪽지를 보냈다.
[샤샤야, 실종자가 누구라고 했지?]
[지게꾼 토이 아저씨와 그분의 어머니세요.]
아!
이해됐다.
저 자루 속 좀비가 누구이며, 이 아저씨는 왜 여기 올라와 누워있는지 이해됐다.
그랬구나. 에구 불쌍해라.
그래서 숨어 있었구나.
내 홀리큐어로 저 자루 속 할머니는 치유할 수 있을까?
그런데 어떻게 치유하지?
소환수나 용병이 다치면 내가 힐, 이제 홀리큐어까지 가능하다.
저 할머니를 지구로 데려오거나 용병 계약을 하면 될 것 같은데.
“알파야, 저 할머니에게 용병 계약을 진행해볼래?”
…
―용병 계약이 불가능합니다. 대화가 진행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대화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소환 직후 술사에 대한 공격적인 반응이 의심되므로 용병 계약을 하지 않길 권고합니다.
“그래, 알았어. 왠지 안될 것 같긴 했어. 혹시나 해서 해본 거야. 그럼 제리한테 이쪽으로 날아오라고 해봐.”
위이이잉.
휘리릭.
착.
제리가 도착했다.
하늘에서 제리가 내려오자 깜짝 놀란 토이 아저씨가 엎드려 빌었다.
“어이쿠, 잘못했습니다. 살려주십시오. 기사님, 제가 산속에 데리고 가서 살겠습니다. 보시다시피 저희 어머니는 움직이지도 못합니다. 기사님, 살려 주십시오.”
[어떡하냥?]
[죽이지 말고 좀비를 선물함에 넣을 수 있나 한번 해볼래?]
[알았당.]
제리가 뭔가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안 된당.]
좀비를 선물함에 넣을 수는 없는 건가?
사체는 잘 들어갔으면서 좀비는 사체가 아니라는 건가?
선물함 속의 좀비라니 좀 이상하기도 했지만, 사체는 되면서 좀비는 안된다니 좀 아쉬웠다.
그냥 데려와서 치료하면 끝인데.
나는 손가락으로 무릎을 토독 거리며 고민을 했다.
뻔히 고칠 수 있는 스킬이 있으면서 그 스킬을 쓸 수 없으니 답답했다.
뭔가 방법이 있을 것도 같은데.
이럴 때는 전문가에게 문의해 보는 게 좋다.
나는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네, 김덕팔 교수님과 통화를 할 수 있을까요? 네? 진료를 봐야 한다고요. 아… 그렇구나. 그런데 제가 주문서를 100장 주문했는데 그런데도 안 될까요? 아, 잠시 기다리라고요?”
그래, 주문서 100장이면 전화 정도는 받아 줘야지.
―네, 김덕팔입니다.
“안녕하세요. 아까 좀비 팔 가져갔던 사람인데요. 좀 애매한 상황이 있어서 질문을 드리고 싶어서요.”
나는 자세한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눈앞에 좀비가 뻔히 보이지만 직접 홀리큐어를 쓸 수 없는 상황.
그렇다고 데려올 수도 없었다.
나의 상황을 한참 듣던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
―스플래시를 이용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네요.
이건 또 뭐야?
금쪽같은 소환수들
— 거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