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화. 언데드
밤나무 마을에 사는 지게꾼 토이.
토이는 무엇이든 지게에 실어서 나르는 일을 했다.
나무꾼들이 모여서 단체로 나무를 하면 필요한 물건을 지게에 실어 가져다주고 돌아갈 때는 나무를 실어 날랐다.
또, 옆 마을인 샤론 마을이나 디아론성에 물건을 운반해야 하면 지게를 지고 물건을 날랐다.
지게에 얼마나 많은 짐을 싣겠냐마는 무겁지 않은 나무를 지고 내려올 때는 마치 커다란 풀숲이 움직이는 것 같았고, 길이 좋지 않은 산악지형에서 무엇이든 날라주는 지게는 아주 유용한 운반 도구였다.
그래서 토이가 짐을 운반하는 모습을 보면 겨우 지게라는 말이 나올 수 없었다.
토이가 함께 사는 엄마에게 말했다.
“샤론 영지로 일 다녀올게요.”
“에구구, 그래라.”
요즘 핫한 샤론 영지.
분명 밤나무 마을보다 작은 마을이었는데, 토이는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는 샤론 영지가 볼 때마다 놀라웠다.
게다가 샤샤가 영주 대리라니.
토이의 엄마 갈리나는 샤샤의 동생인 올가를 돌봐주시던 할머니였다.
그러니까, 샤론 영지에 가서 굳이 인맥을 따지면 토이는 영주 대리의 동생을 돌봐주던 할머니의 아들이었다.
이 정도 인맥이 별거냐고 할 수 있겠지만, 지난번 공사판에서 샤샤가 ‘어? 토이 아저씨? 안녕하세요?’ 이 한마디를 건네준 이후로 일감도 늘고 주변의 시선도 확실히 달라졌다.
토이는 머리에 희끗희끗 새치가 나는 나이였고, 갈리나는 탐스러운 백발이 가득한 할머니였다.
불편해 보이는 엄마의 모습.
“왜? 다리가 아파요?”
“아니, 다리는 아니고.”
“아니면 어디?”
“이상하게 몸이 좀 간지럽네.”
갈리나는 꽤 오래전부터 거동이 불편했다.
비가 오는 날이면 다리가 더 쑤셨고, 나이가 많으면 으레 그렇듯 안 아픈 구석이 없었다.
“어디 좀 봐.”
“뭘 봐. 늦겠다. 어서 가.”
“알았어. 갔다 오면서 내가 피부에 좋다는 것 좀 구해올게.”
“그래, 늦겠다. 어서 가라.”
“어.”
토이는 지게에 샤론 영지로 배달하기로 한 짐을 잔뜩 싣고도 가볍게 일어났다.
“다녀올게요.”
갈리나는 어서 가 보라며 손을 휘휘 저었다.
토이가 나간 후, 갈리나는 옷을 걷어 간지러운 부분을 살펴보았다.
울긋불긋 붉은 점이 꽤 크게 보였다.
“피부병인가? 뭘 잘못 먹었나 모르겠네.”
갈리나는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마당으로 나갔다.
쩔뚝거리긴 하지만, 그래도 걸을 수는 있었다.
마당 한쪽에는 텃밭이 있고 가축도 기르고 있었다.
아들이 지게로 일하는 동안 텃밭을 일구고 가축을 키우며 가사를 하는 것은 자신의 담당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마당에서 기르고 있는 가축.
돼지 비슷하게 생긴 동물이었다.
오늘따라 유난히 먹음직스러웠다.
잡아먹을 때가 되었나?
그때, 누군가 갈리나를 불렀다.
“토이 어멈? 일하나?”
갈리나와 이웃으로 지내는 할머니였다.
둘은 함께 밭일도 하고 가축도 기르고 수다도 떨며 친구처럼 지냈다.
“잉? 왜 그래? 어디 아파?”
하악. 하악.
거칠게 숨을 쉬고 있는 갈리나.
세상이 붉게 보이며 귓속에 웽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모습이 걱정되어 이웃집 할머니가 가까이 다가왔다.
“괜찮아?”
갈리나는 온 세상이 붉게 보였고 참을 수 없는 허기가 느껴졌다.
그리고 그녀를 유혹하는 맛있는 음식이 눈앞에 있었다.
콰직!
“악!”
갈리나가 이웃집 할머니의 목을 물었다.
이웃집 할머니는 갈리나를 떼어내려 애를 썼다.
아등바등.
두 할머니가 마당에 쓰러져 엎치락덮치락 했다.
한참을 파닥거린 후.
갈리나가 먼저 일어섰다.
어느새 파래진 피부는 점점 짙은 푸른색으로 변해갔고, 얼굴에는 이웃집 할머니의 피가 잔뜩 묻어있었다.
그리고 이웃집 할머니 역시 서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핏기 없는 피부, 풀려버린 눈동자, 절반은 파인 목 때문에 머리가 반쯤 기울어져 있었다.
이웃집 할머니 역시 무언가를 갈구하는 듯 이리저리 주변을 살폈다.
절뚝거리며 걸어가는 갈리나.
그리고 이웃집 할머니 역시 다른 방향으로 무언가를 찾아 걸음을 옮겼다.
* * *
창고 사무실.
나는 소환수들을 데리고 창고에 왔다.
카타리나도 이제 자주 소환될 장소이기 때문이었다.
“여기가 민준이 지내는 곳인가?”
“집은 요 옆에 있고, 이곳 창고는 주로 일하는 곳이지. 물론 집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는 해. 카타리나도 앞으로 많이 오게 될 장소이지. 뭐 직장이라고나 할까?”
카타리나는 처음 보는 창고가 신기한 듯 이리저리 두리번거렸다.
“신기한 게 많네.”
나는 직원도 소개해 주었다.
“상일 씨, 홍민 씨, 저의 세 번째 소환수에요.”
내 부름을 듣고 온 직원들은 은발의 카타리나를 보자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 놀랍겠지.
나도 카타리나에게 옷을 사주며 골라보라고 할 때, 화려한 핑크색 짧은 잠바를 고를 줄 몰랐다.
한상일은 카타리나를 보며 여자 아이돌을 보는 듯한 표정이었으며, 나홍민은 나를 존경의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어찌 되었든 직원이 사장을 존경하면 좋은 거다.
나는 소환수들과 소파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카타리나? 너는 애칭 없어?”
“애칭? 뭐 어렸을 때, 불리던 이름이 있긴 해.”
“제리도 풀네임은 제리아나마스 드리마스이긴 한데, 너무 길어서 제리라고 부르잖아. 전투하면서 제리아나마스 드리마스 이쪽을 공격해! 이렇게 길게 부를 수는 없잖아. 카타리나도 풀네임은 카타리나 디아론인 것이지? 전투에 들어가면 1초가 급한데 이름은 짧을수록 좋거든. 뭔가 짧은 애칭이 있을 것 같아서. 없으면 하나 만들든지.”
“후후”
카타리나가 재밌다는 듯 말했다.
“있긴 한데 맞혀봐.”
맞혀보라고? 또 내가 찍는 데는 일가견이 있지.
“카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타리? 카타리? 카리나? 카디?”
카타리나가 계속 고개를 흔든다.
얌전히 듣고 있던 샤샤가 말했다.
“카나?”
카타리나가 손가락을 튕겼다.
“맞아. 내가 어렸을 때는 카나라고 불리곤 했지.”
같은 동네 사람이라서 그런지 애칭에도 그들만의 규칙이 있는 듯했다.
“그럼 우리도 카나라고 부를게.”
“그래, 좋을 대로 해.”
“알았어, 카나.”
그렇게 도란도란 한참을 이야기를 나눈 후 내가 말했다.
“그럼 오늘 방패도 맞추고 던전까지 도느라 수고했고, 이제 돌아가서 쉬어. 내일은 협회에 가봐야 할 것 같아. 오늘 던전 도는 것 보니까, 너네도 등록하는 게 좋을 것 같고 나도 능력치 업데이트가 많이 밀린 것 같아. 힘숨찐도 좋지만, 등록을 F급이라고만 해두면 손해 볼 일도 있거든.”
“그래, 오늘 즐거웠어.”
“저도 즐거웠어요. 그렇게 높은 건물에 올라가 본 건 처음이었어요.”
“냥.”
“제리는 창고에 있을 거지?”
끄덕.
“자, 내일 소환해서 등록하고 그러려면 푹 쉬어. 그럼 잘 가.”
“네.”
“안녕.”
화아악.
샤샤와 카타리나가 돌아갔다.
남은 건 제리.
제리는 이제 자기 집에 간다는 듯 사무실에서 이어지는 창고 벽면에 있는 캣타워로 올라갔다.
언제 누가 설치한 것인지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창고 한쪽 면에 캣타워가 그럴듯하게 설치되어 있었다.
직원들이 제리를 잘 챙기니 직원들이 챙겨놨을 것 같았다.
분명히 처음에는 캣타워가 내 키보다 큰 것으로 하나가 세로로 설치되어 있었는데 점점 늘었다.
타닥.
휙.
자기 집이라는 듯 맨 윗 칸으로 올라갔다.
“어?”
저건 어디서 본 듯한 인형인데?
예전에 내가 인형 뽑기를 했던 인형 같았다.
인형 강아지 한 마리와 함께 다소곳하게 눕는 제리.
음…….
절로 흐뭇해지는 모습이었다.
“상일 씨, 홍민 씨. 저 오늘 먼저 들어갈게요. 두 분도 그만 퇴근하세요. 당분간 글리제에 크게 바쁜 일은 없을 거예요.”
“네, 들어가세요.”
집이 바로 옆인데 오랜만에 집에 들어왔다.
전원주택 형식으로 지은 아담하고 예쁜 이층집.
이렇게 예쁜 집을 지어두었으면 집들이도 하고 쉴 때는 집에서 푹 쉬곤 해야 하는데, 왜 난 이렇게 좋은 집을 지어두고도 창고에 딸린 사무실 생활을 해야 했는지.
일단 침대에 누웠다.
포근하게 감싸는 느낌이 사무실에 가져다 놓은 간이침대와는 결이 달랐다.
차원이 다른 푹신함에 금방이라도 잠이 들것 같았다.
그래도 씻고 누워야지.
침대에서 일어나 씻으러 가려는데 알림이 왔다.
띠링!
[민준 님! 밤나무 마을에 언데드가 출현했어요.]
샤샤의 쪽지였다.
언데드?
언데에에드?
그 뭐냐? 시체가 돌아다니는 그런 녀석들을 말하는 건가?
좀비, 구울, 심하면 잘린 머리를 옆구리에 끼고 다니는 듀라한 뭐 그런 거?
나는 씻으러 나가려던 상태에서 뒤를 돌아 침대를 바라보았다.
차원이 달랐던 포근함.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냥 저걸 사무실로 가져가?
* * *
언데드가 출몰한다는 소리에 디아론 백작은 긴급회의를 개최했다.
“현재 상황은?”
“아직 정확히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밤나무 마을에 퍼진 것은 확실합니다. 당장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또한, 발견된 언데드는 다행히 강력한 개체는 아닌 듯합니다. 지금까지 보고된 바로는 좀비들만 있는 것으로 보고되었습니다. 하지만 좀비는 전염성이 높습니다. 빠른 조치가 필요합니다. 늦을수록 더 많은 영지민들이 죽임을 당할 것입니다.”
“팬니르!”
대기하고 있던 팬니르가 예를 갖추었다.
“네, 백작님”
“바로 기사단을 출발시켜라.”
“알겠습니다.”
팬니르는 그 자리에서 달려 나갔다.
다다닥!
보통은 성 내에서 뛰지 않지만, 지금은 예외 상황이었다.
회의실에서 연병장은 계단을 두 층 내려가야 했다.
휙!
창문 밖으로 몸을 던진 팬니르.
두 층 정도는 문제없었다.
휘리릭!
착!
달려가며 마나를 일으켜 소리쳤다.
“실제 상황이다. 무기를 소지한 기사들은 즉시 마구간으로 집합한다. 다시 말한다. 무기가 있는 기사는 즉시 마구간으로 집합한다.”
그 목소리를 들은 기사들이 빠르게 움직였다.
다다다다닥!
기사들이 마구간으로 뛰었다.
달랑 검 한 자루만 들고 마구간으로 뛰는 기사도 있었다.
“안톤!”
안톤이 날 듯이 달려왔다.
“네!”
“밤나무 마을에 좀비가 퍼지고 있다. 내가 먼저 준비된 기사들을 데리고 출발할 테니, 너는 나머지 기사들의 무장을 갖추고 뒤따라오도록!”
“네!”
지금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 몇 분.
팬니르도 말에 올랐다.
“목표는 밤나무 마을, 출발!”
서른 명의 기사들이 밤나무 마을로 출발했다.
좀비는 살아있는 시체이며 손톱으로 긁거나 이빨로 무는 공격을 한다.
일반 영지민들 입장에서 보면 좀비는 멀쩡한 사람이 괴물로 변하는 것이었다.
좀비가 되면 고통과 죽음을 모르고 무작정 공격했다.
일반인들에게는 괴물이었다.
그리고 좀비의 가장 무서운 점은 전염성.
작은 어항에 검은색 잉크를 떨어뜨리면 뭉게뭉게 구름이 피어오르듯 잉크가 퍼져나간다.
그리고 곧 어항 전체 검게 변한다.
일반인들만 있는 곳에 좀비가 발생하면 곧 모두가 좀비가 된다.
그렇게 일반인들에게는 재앙으로 다가오는 것이 좀비였다.
다그닥, 다그닥.
기사단의 말은 전속력으로 달렸다.
조기 진압하지 못하면 영지민들이 다 죽을 수도 있는 것이 언데드의 창궐이었다.
전쟁은 지면 포로라도 되고 싸우다 지치면 휴전이라도 할 수 있다.
상대의 것을 빼앗는 것이 목표이지 문자 그대로 상대 영지의 모든 인간을 죽이는 것을 목표로하는 전쟁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언데드의 창궐은 제때 막지 못하면 쑥대밭이 되기 쉬웠다.
지금 필요한 건 빠른 조치였다.
“회복 포션을 소지한 자, 손을 들라!”
절반 이상이 손을 들었다.
“말에게 포션을 먹인다! 포션이 없는 자들에게 나누어주도록!”
달리는 말 위에서 말에게 포션 먹이기.
몸을 앞으로 엎드리듯 누워서 한쪽 팔로 말의 목을 감싸 버티며 다른 손으로 달리는 말에게 포션을 먹인다.
다그닥, 다그닥!
포션을 마셔서 힘이 나는 말은 더욱 빠르게 달렸다.
쉽지 않은 곡예였지만 단 한 명도 실수하는 기사가 없었다.
좀비와 같이 언데드 몬스터가 괴물처럼 보이겠지만, 진짜 괴물은 지금 가고 있는 기사단이었다.
그렇게 최선을 다해 달리고 있는데 팬니르의 머리 위로 뭔가가 날아왔다.
위이이이잉!
“먼저 간당!”
드론 제리였다.
하늘을 날아서 먼저 가는 제리 때문에 자존심이 상했는지 팬니르가 기사들에게 외쳤다.
“목표는 밤나무 마을, 먼저 갈 테니 따라들 와라!”
말에게 마나를 주입하는 팬니르.
고급기술이었다.
가만히 있는 쇳덩이에 마나를 주입하기 위해 기사들이 얼마나 노력하는가?
하물며 살아있는 생명체에 마나를 주입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팬니르도 자신의 말과 많은 연습을 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포션을 마신 말들을 따돌리며 앞으로 치고 나가는 팬니르.
그렇게 기사들은 최선을 다해 밤나무 마을로 달려갔다.
금쪽같은 소환수들
— 거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