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화. 우연한 만남
아이템 전문점들이 모인 거리.
일명 아이템 공방 거리다.
죽 늘어선 길에는 곳곳에 아이템 숍이 있었다.
패션 거리인 로데오 거리에서는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몰렸는데, 여기서는 한결 줄어든 것 같았다.
지나는 사람의 수도 적고 눈길을 사로잡는 것이 우리만 있는 건 아니기 때문이었다.
어느 가게의 열려있는 문 안에서 시뻘건 용광로가 보였다.
용광로 앞에서 땀을 흘리며 무언가를 운반하는 사람.
‘수고하시네.’
땅, 땅, 땅.
통유리로 안을 볼 수 있게 만든 어느 가게에서는 대장간처럼 망치로 뭔가를 두드리고 있었다.
저렇게 통유리 안에서 문을 열어둔 채 망치를 휘두르고 있으면 안 볼 수 없잖아?
내가 통유리 안의 장인을 구경하니 소환수들도 쪼르륵 유리 앞에 붙었다.
좌 샤샤, 우 카타리나, 상 제리.
“제리야, 머리는 좀 그렇지 않니? 어깨.”
제리가 어깨로 내려왔다.
이게 길을 걸을 때의 기본 진형이 되었다.
“왜 계속 길을 걸을 때, 나를 중심에 둬?”
“원래 제일 약한 일행이 가운데당.”
“민준 님은 소중하니까요?”
“저렙이라서?”
그래, 저렙이라 미안하다. 나도 나름 40대 레벨인데.
60대 레벨의 카타리나, 번쩍 제리는 감당키 어려웠다.
“얘들아, 다음 목적지는 공방이야. 카타리나 방패 맞추러 가려고.”
카타리나가 나를 돌아보았다.
“방패?”
“응, 너 1등이잖아. 소환수 모집 대회에 참가한 다른 이들에게도 상품이 다 나갔어. 그런데 너는 병원에 있어서 주질 못했지. 당연히 너에게도 상품이 나가야지.”
“아!”
“그런데 네가 이미 사용하고 있던 방패가 있잖아. 그것도 꽤 좋아 보이더라고. 그래서 물어보고 맞춤 제작을 하려고. 기성품이 아닌 맞춤식 선물, 좋잖아?”
선물이라는 말에 카타리나가 환하게 웃었다.
“응. 좋아.”
나는 공방 거리에서도 방패 잘하기로 유명한 집을 찾아갔다.
성수 실드.
지역 이름 더하기 무기 종류.
심플한 가게 이름이다.
방패만으로 넓은 2층 건물을 다 채우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뚱땅거리며 방패를 수리하는 분들도 계셨다.
판매, 수리, 제작까지 다 하는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무엇을 보여드릴까요?”
점원이 환한 접대용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일단 방패 최상급으로 몇 개 보여주실까요?”
최상급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들었는지 직원은 더욱 진한 미소를 띠며 바쁘게 움직였다.
【드래고닉 실드】
▷ 등급 : 최상급
▷ 방어력 : 780
▷ 공격력 : 180
▷ 힘 증가 : 50
▷ 내구도 : 1250/1250
▷ 마법 : 용의 가호 (3/3), 모두 사용 시 충전 시간 일주일
오호라 최상급 실드답게 기본 방어력이 높다.
그리고 방어력뿐만 아니라 다른 옵션도 좋았다.
“여기 용의 가호는 뭐예요?”
“용의 가호는 대단위 보호 마법이에요. 혼자만 지키는 것이 아니라… 어디 보자. 사용자를 중심으로 반경 10m의 반구를 만든다고 되어 있네요. 방어력은 1000짜리고요.”
역시 최상급이라 그런지 괜찮은 마법이 옵션으로 첨부되어 있었다.
그리고 공격력?
나는 당연히 방패는 방어력만 붙어 있을 줄 알았는데 방패에 공격력까지 붙어 있었다.
최상급이라 다르네.
하긴 카타리나만 해도 방패로 공수를 다 하니 공격력이 추가로 붙는 것도 의미 있을 것 같았다.
직원은 그 외에도 몇 가지 방패를 더 보여주었다.
“어때?”
“하나같이 훌륭한 물건들이네.”
훌륭한 물건이라고 말하는 것과 달리 카타리나는 뭔가 아쉬운 듯한 모습이었다.
“음··· 그런데 내가 지금 사용하고 있던 것과 비슷한 건 없을까?”
“그럼 카타리나, 네가 사용하던 걸 보여줄래?”
“응, 여기.”
카타리나는 선물함에서 방패를 꺼냈다.
직원은 테이블에 방패를 올려두고 찬찬히 살폈다.
“오호, 타워 실드군요. 어디 보자. 이것도 꽤 괜찮네요. 재질이 뭐죠? 순수 금속은 아니고 겉면의 금속에 안감은 합금이네요. 오호라. 여기에 칼날이 숨겨져 있고, 이거 마법진도 그려 있네요.”
“여기 업그레이드도 하죠?”
“물론이죠. 기존에 사용하던 장비가 손에 익었으면 그걸 업그레이드하는 것도 좋아요.”
나는 카타리나를 돌아보았다.
“업그레이드가 좋겠어?”
“응, 아무래도 손에 익어서. 지금까지 본 것들은 다 순수 방패잖아. 내 것은 칼날도 달렸고 줄도 있는데 이런 방패 종류가 흔한 것이 아니라서.”
“사장님, 이거 타워 실드를 업그레이드하는 방향으로 할 수 있을까요?”
직원분이 환한 미소로 답했다.
“왜 안 되겠습니까?”
한참을 견적을 맞춰 보았다.
“그러니까 기존 방패에 미스릴 코팅을 하면 추가로 방어력이 200은 올라간다는 거죠? 거기다가 아만단티움을 섞으면 300은 올라가고. 그리고 칼날 끝에는 다이아하르콘으로 절삭력을 높이고, 줄도 미스릴 50% 이상으로 새 걸로 갈고요. 미스릴 줄로 바꾸면 방패 칼날에서도 아마 마나 부여가 가능할 거다. 이거죠? 그리고 추가 소켓 뚫어서 마정석 박고 마법부여 추가하고요.”
새로 사는 것 이상으로 뭔가 만만치 않았다.
나는 가져온 마정석을 보여주며 말했다.
“방패 안쪽으로 소켓을 추가해서 마정석은 이걸 끼웠으면 합니다.”
알이 굵은 마정석,
흔한 몬스터를 잡고 나오는 손톱만 한 마정석이 아니다.
백작이 준 거니까 이렇게 가져오지, 돈을 주고 사라고 했으면 이렇게 굵은 마정석 추가까지는 못했을 것 같았다.
“호오~ 마정석이 씨알이 굵네요. 이 정도면 5서클 세 개? 아니면 6서클도 하나 정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뭐가 있어요?”
“일반적으로 방패에는 방어력 상승이나 가호 종류를 많이 새기죠. 어그로를 잡기 위한 도발 스킬도 많이 달고요. 그런데 아예 일반적인 마법들도 다 가능합니다. 어차피 마법진 새기기 나름이니까요.”
마법은 뭘 새길까 한참 이야기를 했다.
파티의 전위를 맡는 탱커로서의 마법을 채우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정한 마법은 도발, 방어력 상승, 가호였다.
“얼마나 걸려요?”
“일주일은 주셔야죠.”
“그럼 그동안 쓸 거 하나 렌탈해 갈게요.”
적당한 고급 등급의 방패 하나를 골랐다.
“이거면 괜찮겠지?”
“좋아.”
방패 업그레이드 의뢰를 맡기고 다시 거리로 나왔다.
“다들 여기까지 나왔는데, 하고 싶은 거 없어? 옷 사고 방패 맞추고 이제 집에 들어가? 아직 대낮인데? 카타리나는 지구가 처음인데, 어때?”
“난 이곳을 잘 몰라.”
“그럼 뭐 보고 싶은 것 없어?”
카타리나는 잠시 고민하더니 말했다.
“이곳 자체?”
“그게 무슨 소리야?”
“하나씩 보는 건 천천히 시간을 들여야 할 것 같고, 새로운 곳에 왔으면 일단 높은 곳에서 마을의 지형을 파악해야지.”
마을? 지형 파악?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다는 것이 뭔가 군인스러운 관점이었다.
“처음 가보는 곳에서는 높은 곳에서 전체 지형을 파악하라. 뭐 그런 거야?”
“그런가? 원래 그게 몸에 배었네. 히히.”
“그래, 가자.”
“어디로요?”
“산에 가냥?”
“아니 더 좋은 데가 있어.”
고개를 올려보면 까마득했다.
100층은 훌쩍 넘은 건물로 세계에서도 순위권인 높이
나는 초고층 건물 전망대를 올라가자고 했다.
모두 동의했고 즐거운 마음으로 도착했다.
그런데 이럴 수가.
낭패다.
“네? 동물은 안 된다고요?”
내 어깨 위의 제리가 입구에서 제지당했다.
“제리야, 동물은 안 된다네. 인간형으로 변신해야겠다.”
제리만 내버려 두고 올라갈 수야 없지.
“그럴 필요 없당.”
“왜? 같이 올라가자. 애완동물이 안 된다는 것이지, 인간형으로 변신하면 안 될 이유가 없어.”
“그게 아니라 한 번쯤 올라가 보고 싶었다.”
“그러니까 올라가자고.”
“그러니까 너희들끼리 올라 가랑.”
“무슨 소리야. 그러니까 같이 올라가자고.”
“올라 간당. 너희는 안에서, 나는 바깥으로.”
“……?”
* * *
초등학교 1학년 남학생 원이.
한참 떠들고 뛰어다닐 때라서 그런지, 한시도 가만히 있는 법이 없었다.
오늘은 엄마와 함께 초고층 건물의 전망대에 놀러 왔다.
전망대는 중앙에 엘리베이터가 있고, 그 주변을 둘러보며 서울을 구경할 수 있는 구조였다.
처음에 엄마와 함께 서울을 내려다보던 아이는 바쁘게 이곳저곳을 구경하며 다녔다.
엘리베이터 입구는 안전하게 가이드가 지키고 있어서 아이를 잃어버릴 걱정이 없는 엄마는 잠시 아이에게서 눈을 떼고 서울을 내려다보았다.
“엄마, 엄마, 엄마, 엄마?”
그만 불러.
원이는 눈이 휘둥그레진 채 엄마에게 달려와 말했다.
“엄마? 바깥에 고양이가 있어요.”
“후후, 그래.”
또 뭔 소리려나.
초등학교 1학년 아이의 상상력은 언제나 놀랍다.
“아니, 그러니까 건물 유리 바깥에 고양이가 있다고.”
“후후, 그래. 저 아래 서울에는 고양이가 많이 살고 있지.”
“아니, 그게 아니라 바깥에서 고양이가 나한테 손을 흔들었다니까?”
“어어, 알았어.”
아이는 엄마의 손을 잡아끌었고, 엄마는 아이의 손에 이끌려 전망대 반대편을 향했다.
그리고 그곳 전망대 유리 너머에는 정말로 보라색 고양이가 있었다.
샤샤는 하아 하고 입으로 유리를 뿌옇게 만들었다.
뽀드득거리며 유리에 글씨를 썼다.
[제리야, 안 추워?]
제리는 고개를 저으며 세상 편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카타리나가 나에게 물었다.
“이게 킴이 사는 마을인가?”
“마을이라고 하기에는 좀 크지.”
“인구는?”
역시 접근하는 방식이 좀 다르다. 가장 높은 곳에서 지형을 파악하고 인구수를 묻는다. 뭐랄까? 군대의 장교식인가?
“1천만 명 정도 될 거야.”
카타리나가 깜짝 놀랐다.
“와, 많구나.”
“그럼, 지구에서도 이 정도 규모가 되는 도시는 그렇게 많지 않아.”
“지구?”
지구라. 지구와 행성을 설명하려니 아무래도 다음에는 랭귀지니어스에게 청소년을 위한 천문학을 번역하라고 해야 하나 싶었다.
“그렇게 많은 인구를 어떻게 다스리지? 지역 영주에게 분배를 하나?”
“아니 민주주의라고 투표를 통해서 지도자를 선출하지.”
“그게 가능한가? 투표는 계급이 같은 소규모 부대에서 리더를 정할 때나 하는 것이지, 천만 명이 어떻게 정보를 얻고 투표할 수 있지?”
음··. 이걸 어떻게 설명하지?
천문학 다음으로 번역해야 할 책들이 많을 것 같았다.
그냥 카타리나를 한국어학원에 넣어버려?
샤샤가 뭔가 신기한 것을 발견한 모양이다.
“와, 저는 이렇게 높이 올라와 본 적은 없어요. 발아래가 투명해서 더욱 재미있네요.”
높은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서울의 전경, 발아래가 투명해 작은 장난감 세상을 바라보는 것 같았다.
유리 밖의 제리, 그리고 전망대에서 즐거워하는 샤샤, 그리고 뭔가 심각한 표정으로 거리와 축척을 재는 듯한 카타리나.
그러다 문득 나는 혹시 오늘 카타리나만 아이템을 맞춰 주어서 샤샤가 기분이 상하지 않았을까 염려되었다.
“샤샤야.”
신기한 표정으로 서울을 내려다보던 샤샤가 나를 바라보았다.
“오늘 카타리나만 아이템 맞췄다고 혹시 섭섭하거나 하진 않지?”
씨익.
샤샤의 눈이 초승달이 되었다.
“그런 걱정하지 마세요.”
걱정하지 말라면 걱정이 안 되냐?
나는 부연 설명을 했다.
“지금 샤샤가 쓰는 활이 최상급이 아니긴 해. 하지만 샤샤는 최상급 활 하나를 사는 것보다는 마법이 부여된 마법 화살을 꾸준하게 쓰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최상급 활은 사지 않았어. 그리고 저기.”
제리는 전망대 바깥 유리에서 물구나무를 서고 제자리에서 텀블링도 하며 다양한 포즈를 취해주며 어린이들의 관심을 온몸으로 받고 있었다.
“저기 유리 밖의 고양이는 이미 투명 망토 있잖아.”
“정 걱정되시면 우리가 다 같이 할 수 있는 걸 하면 되죠.”
다 같이 쓸 수 있는 무기나 아이템이 뭐가 있을까?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샤샤가 말했다.
“여기가 포토존이래요. 우리도 다 같이 사진 찍어요.”
아, 그런 뜻이었구나.
나는 제리에게 쪽지를 보냈다.
눈앞에 제리가 있어도 말할 수 없구나
띠링!
[제리야, 사진 찍을 거야.]
[알았당.]
제리도 건물 밖에서 유리에 걸터앉았다.
어떻게 앉아있을 수 있는 거지?
모르겠다.
아무튼 다소곳하게 앉은 제리.
찰칵!
찰칵!
전문 사진가분이 사진을 찍고 현상까지 해주셨다.
출력된 사진을 받아보았다.
평범하게 브이 표시를 하고 있는 나
살짝 내 팔을 붙들고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 샤샤.
한 손은 허리에 걸치고, 한 발을 앞으로 내밀고 모델처럼 카메라 렌즈를 뚫어지도록 바라보는 강렬한 눈빛의 카타리나.
그리고 오른쪽 앞발을 들어서 오른쪽 볼에 살짝 가져다 대고 있는 제리.
크크, 저런 포즈는 어떻게 알고 있는 걸까?
자, 쇼핑도 하고 전망대 구경도 했으니 다음 코스로 넘어가야지.
“얘들아, 밥 먹으러 가자.”
“뭐 먹을까요?”
유리 너머의 제리에게는 알파를 통해 쪽지를 보냈다.
[제리야, 너는 뭐 좋아해?]
[인간들도 먹고 나도 좋아하는 건 생선이다.]
“횟집 가자.”
가까운 맛집을 검색해서 찾아갔다.
일식당이었는데 주방장이 있는 네모난 공간이 있고, 그 둘레를 손님이 앉는 구조가 있었다.
또 그 주변에도 테이블 몇 개가 있었다.
“여기요.”
“이것이랑, 이거.”
식사가 나와서 먹어 보니 맛있었다.
그리고 나에게만 맛있는 건 아닌지 손님이 많았다.
딸랑!
또 손님이 들어왔다.
그렇게 즐거운 대화와 맛있는 식사를 하면서 무심코 접시를 옮기다 절반쯤 시선이 갔던 것 같았다.
그냥 그랬었다.
아무 생각 없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육감?
본능적인 감각?
왠지 다시 보아야 할 것 같은 느낌.
무언가에 이끌리듯 내 고개가 돌아갔다.
그리고 그곳에 그녀가 있었다.
서린?
금쪽같은 소환수들
— 거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