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화. 관심
카타리나의 눈이 커졌다.
직사각형 모양의 네모난 카드에 적힌 글을 보고 흔들리는 눈빛.
카타리나는 카드를 한 번 보고 다시 나를 보았다.
카타리나는 꽃바구니에 있던 카드를 뽑아 들었다.
그리고 잠시 카드를 만지작거렸다.
오묘한 표정의 카타리나.
“이거 정말이야?”
내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럼. 네가 일등이야. 다시 말할게. 카타리나, 나와 계약할래?”
카타리나는 입을 다물고 입술을 작게 모았다.
그리고 잠시 뜸을 들이던 카타리나가 나에게 물었다.
“내가 팔이 잘렸다고 동정하는 건 아니겠지?”
설마, 얘가 지금 뭘 모르는군.
나는 동정하지 않는다는 말 대신 이렇게 물었다.
“팔이 잘리기 전의 너, 르녹, 꾸얀, 알타르 중에서 누가 제일 강했지?”
카타리나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당연히 나지!”
솔직히 말하면 르녹, 꾸얀보다는 점수가 높았지만, 알타르와는 거의 비슷했다.
하지만 원래 평가 점수는 비공개.
굳이 지금 말할 필요는 없었다.
“그러면, 팔이 잘리기 전의 너와 지금의 네가 싸우면 누가 이길 것 같아?”
카타리나는 짙은 미소를 지었다.
그래, 이제야 너도 네 팔이 얼마짜리인지 감이 오는구나?
이렇게 말하면 속물 같지만, 그 팔 때문이라도 너여야 한다고.
카타리나는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좋아.”
내가 알파를 불렀다.
“알파야?”
―네, 민준 님.
“계약을 진행해 줘.”
―알겠습니다. 카타리나 님, ‘나 카타리나는 소환술사 김민준 님과의 소환수 계약에 응한다’라고 말씀해 주세요.
“나 카타리나는 소환술사 김민준 님과의 소환수 계약에 응한다.”
그러자 카타리나의 눈앞에 글자들이 보였다.
[소환수의 계약이 이루어졌습니다.]
[김민준 님과 카타리나 님의 계약을 축하드립니다.]
[소환수로 각성하셨습니다.]
계약을 알리는 알파의 귓말이 울렸다.
카타리나가 움찔움찔하는 모습이 알파의 귓말을 듣는 것 같았다.
“어때? 막 알파의 귓말이 막 들려?”
“아, 이 소리들이 알파의 귓말이야?”
“소환수가 되었으면 상태창을 열어 봐야지, 상태창이라고 말해볼래?”
“상태창?”
[카타리나]
직업: 소환수
레벨 60
힘 150
민첩 100
체력 135
마나 60
소환술사 : 김민준
거주 행성 : 글리제
연결된 행성 : 지구
스킬 : 없음
나도 소환수 상태창을 열어 카타리나의 능력치를 확인해 보았다.
와~
대단하다.
힘, 민, 체가 모두 100 이상이었다.
아이템 좀 갖추면 힘이 나의 세 배까지도 나올 듯했다.
그런데 유심히 보니 수치가 조금 이상했다.
레벨 하나당 5씩 오르는 건데 생각보다 수치가 높았다.
나처럼 마나초라던지 마나목의 열매를 먹지 않으면 이렇게 기본 스텟이 높지 않을 텐데 왜 이렇게 수치가 높지?
아! 질문 속에 답이 있었다.
그럼 그렇지.
얘도 현질했구나.
이래서 명문가 타령을 하는 거다.
애초에 내가 마나초와 마나목을 어디서 얻었는데, 백작가 셋째딸이 그걸 못 먹어봤을 리 없다.
카타리나와 팔씨름하자는 말은 하지 말아야겠다.
이 정도면 이미 어느 정도 완성형이었다.
기본 스텟이 이 정도인데 템빨 챙기면 볼만할 것 같았다.
그리고 카타리나가 스스로 보는 상태창과 달리 내가 보는 소환수 상태창에는 친밀도를 볼 수 있었다.
[친밀도 80]
제리 때는 처음에 아주 찬 바람이 쌩쌩 불었는데, 이 정도면 나쁘지 않았다.
샤샤는 다리, 카타리나는 팔을 고쳐줘서 그런가?
“자, 그리고 이것 받아.”
나는 두 장의 카드를 카타리나에게 주었다.
“이게 뭐야?”
“응, 스킬 카드라고 너한테 딱 맞는 거야. 하나는 ‘실드 배쉬’라고 방패를 강하게 휘두르는 스킬이고 다른 하나는 ‘아머’라고 방어력을 상승시켜주는 스킬이야.”
카타리나는 카드를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내가 설명을 해주었다.
“‘실드 배쉬를 익힌다’ 이런 식으로 말해봐.”
“실드 배쉬를 익힌다?”
카드가 사라졌다.
카타리나는 뭔가 놀란 듯 소리쳤다.
“어? 아!”
카타리나가 너무 놀라는 것 같아서 내가 궁금해서 물었다.
“왜?”
카타리나는 내 말에 답하지 않고 병실 침대에 정좌한 후 눈을 감았다.
엥? 갑자기 뭐지?
뭔가 진지한 분위기에 나는 옆에 있는 샤샤에게 눈짓으로 물었다.
힐끔.
왜 저러냐는 의미를 눈빛으로 물었다.
샤샤도 눈을 감고 있는 카타리나는 의식해서인지 몸으로 표현했다.
손가락으로 네모난 모양을 만들었다.
카드?
그리고 입으로 뭐라 한다.
카드의 스킬을 익힌다?
그리곤 샤샤는 머리 주변을 손가락으로 반짝반짝하는 표현을 하더니 눈을 감았다가 크게 뜨며 손가락으로 머리 주변에서 뭔가 팡 터지는 표현을 해주었다.
아~ 카드의 스킬을 익히면 지식이 확 열리는 느낌을 받는다고?
하긴.
내가 받아들이는 느낌과 이들이 받아들이는 느낌이 다른 모양이었다.
스킬 카드를 익히면 스킬이 생기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나.
지식의 습득을 놀라운 경험으로 받아들이는 소환수들.
잠시 후, 카타리나가 눈을 떴다.
“후우우, 그런 거였군.”
“뭐가?”
“너의 소환수가 되면 갑자기 강해진다고 해서 설마 했어.”
“그런데?”
“이제 알겠어. 방패를 휘두른다는 것이 뭔지. 그래, 그렇게 휘둘러야 했어.”
카타리나는 몸이 근질근질해 보였다.
살풀이 한판 떠야 할 듯했다.
“왜? 방패 한번 시원하게 휘두르고 싶어? 그럼 디아론성에 가서 한판 벌이고 오던가?”
“그래도 될까?”
“물론이지. 아, 방어력 상승 스킬도 익히고 가.”
* * *
디아론성으로 돌아간 카타리나는 먼저 백작과 백작 부인에게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완벽한 촉감의 팔을 만져본 백작 부인은 또다시 눈물을 흘렸다.
부모님께 인사를 한 카타리나는 기사들이 훈련하는 곳으로 갔다.
얼마 전 대결을 펼쳤던 상급 기사 안톤도 그곳에 있었다.
“안톤 대결 한판 해요~”
안톤은 평소처럼 훈련하고 있었다.
그때 멀리서 카타리나가 대결하자는 소리가 들렸다.
“하아.”
안톤은 자꾸 대결하자는 카타리나가 측은했다.
기사가 되어서 오른팔을 잃는다는 것이 어떤 느낌일지 생각만으로도 안타까웠다.
그래서 지난번에도 애써 밝게 웃으며 대결을 해주었다.
오늘도 그렇겠지.
한 100번쯤 대결해 드리면 카타리나 스스로 마음의 정리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얼마든지 대결해 드리리라.
그런 마음을 갖고 다가오는 카타리나를 바라보았다.
“어?”
없던 팔이 달려있다.
뭐지?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았다.
안톤은 다가오는 카타리나의 두 팔이 멀쩡한 것에 깜짝 놀랐다.
그런데 왼손에는 방패 오른손에는 검을 들었다.
“검?”
웅웅웅.
미친! 검에 오러 소드가 어렸다.
나는 샤샤, 제리와 함께 카타리나가 대결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누가 이길까? 난 카타리나가 이기는 것에 걸겠어.”
“질문이 잘못됐당.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가 적당한 질문이당.”
잠시 후.
카타리나가 안톤의 눈탱이를 밤탱이로 만들고 돌아왔다.
좋니?
카타리나가 말했다.
“다음엔 팬니르에게 도전해야겠어!”
의욕이 활활 타오르는 카타리나였다.
그래, 도전 상대가 나만 아니면 된다.
가만히 보니 생긴 것과 다르게 무력 상승에 진심인 뼛속까지 기사인 것 같았다.
하긴, 이제 뼈에도 미스릴이 섞여 있지?
카타리나는 오른손 안으로 검은 집어넣었지만, 왼손에는 그대로 방패를 들고 있었다.
쯧쯧.
얘가 초보 티를 내는구나.
하나하나 다 가르쳐야 했다.
“카타리나, 선물함이라고 말해봐.”
“선물함?”
잠시 머뭇거리는 카타리나.
허공을 바라보며 어리바리한 모습이 귀여웠다.
“자, 선배들 하는 것 좀 봐.”
내가 말하자 샤샤가 선물함에서 활을 꺼냈다가 다시 집어넣었다.
제리는 선물함에서 츄르 하나를 꺼내 끝을 찢어서 입으로 가져갔다.
날름날름.
그 모습을 보며 방패를 선물함에 넣어보는 카타리나.
“와, 아공간이라니!”
“더 신기한 걸 보여줄까?”
“뭔데?”
나는 뭘 넣어줄까 하다가 옆에 있던 꽃바구니를 들어 카타리나의 선물함으로 넣어주었다.
자신의 선물함을 보며 깜짝 놀라는 카타리나.
“이렇게 내가 너에게 물건을 넣어줄 수 있어. 장소와 거리와 상관없이 물건을 넣어줄 수 있으니 어디에 있든지 보급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아. 그리고 이제 소환수의 계약을 맺었으니, 네가 어디에 있든 널 찾을 수 있어. 그리고 네가 글리제에 있다 하더라도 바로 내가 있는 곳으로 소환할 수 있어. 지난번처럼…….”
나는 카타리나의 팔을 슬쩍 바라보았다.
“다시 납치되는 일은 없어야 하겠지만, 만약 그렇다 하더라도 이런 일이 벌어지진 않게 할 거야.”
카타리나가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귓가에 알림이 울렸다.
―띠링, 카타리나의 친밀도가 1 올랐습니다.
조금 진지해진 분위기가 어색해서 내가 모두에게 말했다.
“카타리나의 방패를 맞춰야 하는데 다 같이 가자. 그런데.”
카타리나는 조금 전까지 대련해서 그런지 가죽 갑옷을 입고 있었다.
가죽 갑옷이 아니더라도 글리제에서 입던 옷과 지구의 옷은 스타일 차이가 컸다.
“갑옷 입은 은발 소녀라니. 그 복장으로 나가면 아마도 거리의 모든 사람이 쳐다볼 것 같아. 우리 옷부터 사러 가 볼까? 오랜만에 쇼핑 가자.”
나는 세 소환수를 데리고 옷가게가 많은 로데오거리에 갔다.
그리고 옷가게에 가서 쇼핑했다.
갑옷을 입고 있는 카타리나의 옷을 평상복으로 입히는 것은 물론이요, 기왕 옷가게에 간 김에 샤샤와 제리도 새 옷을 한 벌씩 장만했다.
그런데 내가 틀린 것이 하나 있었다.
카타리나가 갑옷을 입고 나가면 거리의 모든 사람이 쳐다볼 거라는 생각.
그건 틀렸다.
갑옷을 입지 않아도 거리의 모든 사람이 우릴 쳐다보았다.
소환수의 모습은 나에게만 익숙한 것이었다.
로데오 거리를 걷는 우리 넷.
일단 허리까지 내려오는 하늘색 머리카락을 찰랑이며 롱 원피스를 입고 있는 샤샤.
샤샤는 원래 얼굴 천재였다.
하긴 샤샤 혼자만 있어도 늘 주위의 시선을 끌었다.
그런데 머리카락 색깔이라면 만만치 않은 은색 머리카락을 자랑하며 화려한 핑크빛 크롭 점퍼를 입은 카타리나.
카타리나는 옷가게에 들어가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드라마 헌터의 가을에 나오는 여주인공 아시죠? 그 여주인공이 입은 옷 좀 보여주세요.”
나는 카타리나가 옷가게에 들어가자마자 연예인이 입은 옷을 달라고 말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며칠 TV를 봤다고 그렇게 말하다니 놀라웠다.
부잣집 딸이라서 그런지 뭔가를 구매하는 데 거침이 없었다.
그리고 제리.
제리는 예쁘거나 화려한 옷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이번에도 제리가 고른 옷은 츄리닝.
하지만 제리야.
네가 제일 튀어.
요즘 여성용 츄리닝은 몸에 달라붙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우리 운동 천재의 기본 몸매를 드러내었는데, 얼굴이 인간형 수인족이다.
이건 그냥 뮤지컬 배우다.
지나가는 사람이 수군거린다.
“와, 저기 봐.”
“예쁘다.”
“머리카락 색 장난 아닌데?”
“이 근처에서 캣츠 공연하나 봐. 분장도 안 지웠네.”
나는 그다지 관종이 아니다.
그래서 이런 높은 수준의 관심은 부담스러웠다.
내가 조심스럽게 제리에게 말했다.
“제리야?”
“왜 그러냥?”
“너라도 고양이로 변해 주면 안 될까? 우리끼리 있을 때는 몰랐는데, 주변 사람들이 너무 쳐다봐서 내가 좀 부담스럽네.”
“알았당.”
제리는 바로 고양이로 변해 주었다.
그리고 가볍게 점프해서 내 어깨 위에 올라탄 제리.
“고마워, 제리야.”
그래. 이제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줄어들겠지?
“와, 보라색 고양이야.”
“꺅! 너무 귀여워!”
“죄송한데 고양이 사진 한 번만 찍어도 될까요?”
어째 사람이 더 몰리는 건 기분 탓일까?
금쪽같은 소환수들
— 거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