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쪽같은 소환수들-77화 (76/230)

77화. 준비

질끈 동여맨 가죽 부츠.

발목 부근은 좁아서 밑단에 걸릴 일이 없고 허벅지 쪽은 넓어서 움직이기 편안했으며 무릎, 허벅지 바깥쪽, 정강이 부근을 질긴 가죽으로 덧대어 몸을 보호하는 바지.

혹시 모를 부상을 방어하기 위해 상체 전반과 팔의 곳곳에 질긴 가죽을 덧댄 상의.

상의에는 목을 보호하기 위해 턱 위로 살짝 올라오는 가죽 깃이 있었다.

손에는 이미 반지가 아홉 개나 끼워져 있었지만, 남은 손가락 하나에 마저 반지를 꼈다.

“앗, 따가워!”

아주 오랜만에 귀걸이를 끼느라 귀에 구멍을 새로 뚫어야 했다.

하지만 알타르는 살짝 맺히는 눈물을 머금으며 반대쪽 귀도 과감하게 뚫었다.

그리고 주렁주렁 뭔가가 달린 목걸이를 목에 걸며 피식 웃음을 지었다.

“훗, 오랜만이군.”

반지, 목걸이, 귀걸이는 모두 마법 물품이었다.

하나하나가 썩 훌륭한 것은 아니지만, 마나의 양을 보조하거나 마나의 흐름을 빠르게 해줬다.

심지어 마법이 메모리 되어 있는 것도 있었다.

괜히 거추장스럽게 주렁주렁 끼고 걸친 것이 아니었다.

며칠 전, 디아론 백작에게 다시 한번 허락을 받아 거리낄 것도 없었다.

일주일에 며칠씩만 왔다 갔다하는 것만 허락해도 충분히 감사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충분히 배우고 죽기 전에는 돌아와 디아론 영지를 위해 쓰라는 백작.

디아론 백작의 배포에 새삼 놀라웠다.

“텔레키네시스.”

돌멩이 하나가 허공으로 떠 올랐다.

“홀드.”

돌멩이가 허공에서 멈춰 섰다.

그는 1서클 마법 정도는 긴 영창 없이 시동어만으로 정확하게 구현했다.

“인탱글.”

꾸구구국.

허공에 떠 있는 돌멩이 아래 땅바닥에서부터 식물 뿌리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식물 뿌리는 점점 자라더니 허공의 돌멩이를 칭칭 휘감아 버렸다.

“눈을 멀게 하라. 블라인드.”

식물 뿌리 주변이 검게 어두워졌다.

“바람의 칼날. 윈드 커터.”

그 검은 부분을 무언가 보이지 않는 칼날이 난도질하였다.

“무브, 실드, 파이어 핸드, 블링크, 선더볼트, 파이어 블래스트.”

허공에 뛰어올라 여러 개의 불화살을 준비했다.

“멀티 파이어 애로우.”

하나, 둘, 셋, 넷… 불화살이 점점 늘어났다.

그의 턱에 땀이 한방울 흐를 무렵 불화살의 수는 스무 개를 넘었다.

그의 손짓과 함께 스무 개의 불화살이 한 점으로 떨어졌다.

콰콰과과과광!

자욱한 연기를 헤치며 미소를 짓는 이.

오랜만에 몸을 제대로 풀고 있었다.

미소를 짓고 있는 마법사 알타르.

한때 프란시아 왕국… 아니, 타국까지 넘나들던 용병 알타르의 재림이었다.

* * *

샤론 영지의 흔한 빈집에 잠시 머물 거처를 정한 꾸얀.

집 마당에 나와 훈련할 준비를 했다.

스스로 훈련하기 전에 벽에 붙여둔 소환수 모집 공고 종이를 바라보았다.

종이를 한 번 바라보고 두 손바닥으로 짝짝 볼을 때렸다.

각오를 단단히 하는 모습.

꾸얀은 우선 가볍게 몸을 풀었다.

배꼽 아래에서부터 묵직하게 올라오는 마나의 흐름.

서서히 오러 심법을 운용하며 검술을 펼쳤다.

배꼽 아래에서부터 시작된 마나의 흐름은 위로는 위, 심장을 거쳐 머리, 양팔로 흘러갔고 아래로는 두 발로 내려가 발가락에까지 힘을 주었다.

그렇게 흘러간 마나는 근육은 더욱 큰 힘을 낼 수 있게 하고 힘줄은 더 질기게, 뼈는 더욱 단단하고 신경의 전달 속도를 더욱 빠르게 했다.

아직 뇌로 흐르는 마나의 흐름을 제어하지 못하지만, 더 노력한다면 뇌를 가속해 온 세상이 느리게 흐르는 세상 속에서 홀로 검술을 펼칠 단계도 있다고 하였다.

꾸얀은 흔히들 말하는 빽도 없고 줄도 없는 견습 기사였다.

그래서 지금 꾸얀이 운영하는 심법과 사용하는 검술은 헬른성의 견습 기사들에게 허락되는 오러 심법과 프란시아 군대에 보급되는 일반 검술이었다.

휙, 휙!

하지만 단순한 검술도 누구의 몸에서 나오느냐에 따라 그 파괴력은 천차만별인 법이다.

어린아이의 손에서 나오는 찌르기와 소드마스터 헬른 공작의 손에서 나오는 찌르기를 비교할 수 있을까?

만 가지 동작을 한 번씩 해본 사람보다는 한 가지 동작을 일만 번 반복한 사람이 더 무섭다는 말이 있었다.

꾸얀은 그 말을 좌우명 삼아 검술을 연습했다.

온몸이 땀으로 젖을 때까지 휘두르는 흔한 검술.

하지만 이 땀방울은 흔한 검술이 절대 흔하지 않게 할 거라 믿었다.

검술이란 것은 결국 찌르거나, 베거나, 휘두르거나, 막기다.

그것을 어떤 방향으로, 어떤 각도로, 어떤 조합으로 연결 짓느냐가 다양한 검술의 요체였다.

꾸얀은 견습 기사이며 동시에 자유 기사였다.

아직 정식 기사 수준이 아니라는 뜻에서 견습이며, 헬른성에 묶여 있지 않아 주인 없이 떠돌아다닌다는 뜻으로 자유 기사였다.

하지만 꾸얀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그가 자유 기사임은 맞지만, 이미 견습 기사를 뛰어넘는 실력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했다.

“헉! 헉!”

한나절을 휘두른 검술.

마나는 벌써 한참 전에 동이 나버렸다.

꾸얀은 그렇게 바닥에 대자로 누운 채로 천천히 마나를 모으기 시작했다.

* * *

디아론 백작의 휴게실.

화사하고 밝은 분위기의 벽지와 편안한 소파 그리고 직사각형 모양의 긴 테이블이 있었다.

그때 문이 열리고 검은 턱시도 비슷한 옷을 입은 시종이 들어왔다.

시종은 마치 새장처럼 생긴 상자를 가져왔다.

상자는 겉 부분에 하얀 김이 서리는 것이 매우 차가워 보였다.

시종은 테이블에 상자를 올려두고 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그랬더니 삼단으로 층이 나누어진 디저트 접시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렇게 조용히 디저트 접시를 올려두고 나가는 시종.

디저트 접시를 마주하고 디아론 백작과 셋째딸인 카타리나가 마주 보고 있었다.

호르륵.

백작이 차를 한 모금 음미했다.

“디저트 맛있다. 먹어라.”

카타리나는 그깟 디저트보다 자신이 여기에 불려온 이유가 더 중요했다.

“아빠? 이건 뭐예요?”

카타리나가 손에 들고서 흔들고 있는 서류.

샤론 영지에서 소환수를 뽑는다는 서류였다.

“아빠, 나 지금 중요한 시기예요. 상급 기사 과정은 수료했지만, 그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는 건 누구보다 잘 아시잖아요. 상급 기사 후 과정을 잘 밟아야 마스터 끝자락이라도 잡을 수 있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이렇게 이상한 대회에 참가하라고 부르시는 게 어디 있어요?”

디아론 백작이 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슬쩍 디저트 접시로 손을 뻗었다.

그러더니 디저트 접시 위에 올려진 검은색 파이 하나를 들었다.

백작은 천천히 디저트를 입으로 가져가 반쯤 베어 물었다.

“음…….”

살짝 눈을 감고 디저트의 맛을 음미하는 백작.

그 모습을 본 카타리나는 아빠가 지금 자신을 놀리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

디아론 백작이 카타리나가 뭐라고 하든 상관없이 디저트에 정신을 집중하는 듯했다.

“일단 먹어봐. 먹고 얘기해. 안 먹으면 내가 다 먹는다.”

“하!”

카타리나는 어이가 없었지만, 백작이 이렇게까지 이야기를 하니 일단 디저트 하나를 집어 입에 넣었다.

“아니, 그러니까 이 서류…….”

어? 뭐지? 이 식감은?

겉은 살포시 바삭했지만, 속은 부드럽고 촉촉했다.

달콤하면서도 부드럽고 쫀득하며 입안 가득 진한 풍미가 가득했다.

와, 뭐 이런 디저트가 다 있지?

카타리나가 놀라고 있자 백작은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원래도 맛있지만 차갑게 해서 먹으면 더 맛있단다.”

“와, 대박. 아빠, 이거 만든 주방장이 누구예요? 저 주시면 안 돼요?”

백작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돼.”

“와, 아빠 최고! 고마워요.”

백작은 카타리나가 들고 있는 종이를 가리켰다.

“그 네가 들고 있는 종이, 거기 있는 소환술사가 만든 거야.”

“예?”

“돼. 소환수가 돼. 그럼 계속 먹을 수 있어.”

“헐, 뭐라고요?”

“우리 영지에 밤나무 마을이란 곳이 있단다.”

카타리나는 이제야 아빠가 설명해주나 하며 경청했다.

“그곳에 샤샤라는 산골 소녀가 있었단다. 그냥 아주 평범한, 정말 아주 평범한 소녀였단다. 이건 내가 몇 번을 교차 검증을 했기 때문에 정확한 정보란다. 그런데 그 소녀가 짧은 기간에 마나를 쓰더니, 마법 화살을 주머니 속 물건 꺼내듯이 꺼내게 되었단다. 그리고 지금은 거의 전쟁 영웅 대접을 받고 있지.”

카타리나는 팔짱을 끼고 그래서 어쩌란 듯 아빠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제리아나마스라는 수인족이 있단다. 그 수인족은 발톱을 뽑아 검처럼 휘두르는데, 우리 기사와 싸운 적이 있다고 한다. 분명히 처음에는 발톱에 마나를 사용할 수 없었단다. 하지만 그 수인족 역시 발톱에 마나를 두르며 엄청나게 실력이 향상됐단다. 왜 그랬는지 아니?”

카타리나는 아빠를 보며 어서 설명하란 듯 바라보았다.

“둘 다 소환술사의 소환수가 되었기 때문이란다. 소환수가 되면 급속도로 실력이 향상되지. 하나도 아니고, 둘 다 그랬단다. 소환수가 되면 바로 무기에 마나를 두르기 전후의 차이만큼 실력이 달라진다는 것이지.”

그저 검을 들던 기사가 소환수가 되면 검에 마나를 두른다?

그게 말이 되나?

“아공간을 사용하려면 몇 서클이 되어야 하는지 아니?”

상식이었다.

“7서클이죠.”

“그렇지. 그런데 그 샤샤란 아이가 아공간을 사용하더구나. 그것도 거의 무한대의 용량으로. 그 아이 한 명만 있어도 수천 명의 병사가 사용하는 모든 무기, 갑옷, 식량을 다 들고 다닐 수 있었단다. 지난 전쟁에서 아빠가 공을 세워 영지가 늘어난 것 알지? 그게 모두 그 아이의 아공간 덕분이란다. 또한 그 수인족은 투명해지기도 하고 하늘을 날아다니더구나.”

카타리나는 아빠가 하는 말이 아니었으면 믿지 못했을 것 같았다.

“아빠는 카타리나 네가 강해지고 싶어 하는 마음을 잘 알고 있고, 그 마음을 응원한단다. 아빠도 기사란다. 마스터의 그림자라도 붙들고 싶은 마음을 내가 왜 모르겠니? 그런데 말이야. 아빠는 네가 강해지는 가장 빠른 길은 그 대회에 나가서 우승하는 것이라고 확신한단다.”

그렇게 말한 아빠는 호르륵 차를 마셨다.

백작과 카타리나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카타리나는 역시 아빠가 자신을 잘 이해해주고 믿어주는 사람임을 새삼 깨달았다.

“그리고 그 소환술사라는 인물을 내가 본 적이 없구나. 사람이긴 한 건지, 남자인지 여자인지, 너무 늙지는 않았는지, 신체에 큰 결함은 없는지도 살펴보고 오너라.”

“그건 왜요?”

“그건 그때 가서 알려주도록 하마.”

카타리나는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백작에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 * *

나는 사무실 책상에 앉아 결재판에 꽂힌 서류들을 보았다.

결재판을 받아서 서류를 검토하고 결재해주는 일을 하고 있으니 정말 내가 사장이 된 기분이었다.

내가 결재해야 할 서류는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이번 주에 창고로 들어온 물건, 글리제로 보낸 물건, 글리제에서 다시 창고로 들어온 물건, 창고에서 업체로 다시 나간 물건, 그리고 현금의 흐름까지.

물건은 한 종류를 한 군데의 업체에 맡기지 않았고, 두세 군데 업체에 나누어 일을 주었다.

직원들이 그러는데 업체 한 군데면 가격을 장난칠 수도 있고, 업계가 돌아가는 분위기도 파악하기 쉽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맞는 말 같았다.

그렇게 한참을 지구 사업에 꼭 필요한 결재를 해주고 나면 동서 형님이 주고 간 서류가 또 잔뜩 쌓여 있었다.

샤론 길드!

길드 설립에 필요한 서류란다.

그래도 길드는 설립 막바지였다.

자, 이것도 얼추 마무리를 지었고 이제는 샤샤 차례였다.

나는 샤샤를 샤론 영지의 영주 대리로 삼았고, 그래서 샤샤는 샤론 영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나에게 매일 보고하기로 했다.

슬쩍 샤샤를 보니 샤샤는 샤론 마을을 구경하고 있었다.

사무실 한쪽 벽에 커다랗게 화면을 통해 샤론 마을이 펼쳐져 있었다.

나도 슬쩍 샤론 마을을 보며 샤샤에게 물었다.

“샤샤야, 뭐 재미있는 것 있어?”

“그럼요. 일단, 여기 이분 좀 보세요.”

샤샤가 말하는 부분을 조금 더 확대해 보았다.

누군가 검술을 훈련하고 있었다.

“누구야?”

“며칠 전 헬른성에서부터 온 기사라고 해요. 이름은 꾸얀, 이번 공개 모집에 서류를 넣은 기사예요.”

공개 모집에 접수한 기사라고?

나는 흥미가 동해 기사가 훈련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화려하진 않지만 단단하고 굳센 검술.

살짝 앳된 얼굴이었지만 일정한 동작을 무한 반복하는 모습에 성실함이 뚝뚝 묻어났다.

“그리고 알타르 님도 멋있으세요.”

“알타르 님?”

“네.”

샤샤가 화면의 우측 상단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쪽으로 가보세요.”

샤샤는 나에게 알타르의 모습을 보여주려는데 왠지 신나 보였다.

나는 화면을 움직여 알타르를 찾았다.

낯선 알타르의 모습.

반지를 열 손가락 가득 끼고, 명치까지 내려오는 목걸이를 걸고, 귀걸이까지 했다.

와, 저걸 뭐라고 하더라?

스웩?

“간지 작살이시네.”

“그렇죠?”

샤샤도 알타르의 모습을 보며 눈이 초승달처럼 휜 미소를 지었다.

“아, 그리고 민준 님이 아셔야 할 게 한 가지 더 있는데요.”

“뭔데?”

“디아론 백작님의 따님이 서류를 접수했어요.”

“백작의 딸?”

“네, 지금 샤론 영지에 있지는 않고 개별 평가일에 방문한다고 연락이 왔어요.”

아니, 내 소환수 뽑는 일에 백작이 딸까지 보내?

“그리고 서류상으로는 상급 기사 과정을 수료했다고 적혀 있었어요.”

와, 상급 기사?

그러면 기사단장인 팬니르의 오른팔 격인 안톤 정도 된다는 건데.

나는 굵직한 인물들이 제 발로 들어온다는 말에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시간은 흘러 1차 서류가 마감되었다.

와, 많이도 신청했다.

무려 이백 명이 넘는 지원자.

서류에서 마나를 다룰 줄 안다고 쓴 지원자만 해도 백이 넘었다.

물론 대부분은 알타르가 키워낸 1서클 마법사였다.

서류는 부득이하게 샤샤가 나에게 읽어 주었다.

까막눈이니까 힘드네.

“그리고… 와, 이분은 삼각성에서부터 오셨다네요. 멀리서부터 오셨네요. 무력은 아직 마나를 다룰 정도는 아니래요. 음, 그런데 장기가 언어래요. 공용어뿐만 아니라 지방 언어와 고대어도 두세 가지 할 줄 안다네요.”

내가 외쳤다.

“합격!”

“네?”

“그 언어 잘한다는 사람 말야. 와서 한글 좀 배우라고 해.”

장기가 언어라면 한글 떼는 건 금방일 것이다.

사장이 외국어를 꼭 잘해야 할 필요는 없지.

외국어를 잘하는 직원을 뽑으면 된다.

다시 시간이 흘렀다.

2차 면접일이 되었다.

금쪽같은 소환수들

— 거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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