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쪽같은 소환수들-75화 (74/230)

75화. 아싸

“아함~”

나는 두 팔을 쭉 쭉 벌려 기지개를 켰다.

푹 자고 일어난 것 같은데도 잠이 부족했다.

두 주먹을 쥐고 발가락까지 힘을 주었다.

아으, 더 자고 싶었다.

꼭 지금 일어나서 해야 할 일은 없잖아?

눈을 계속 감고 있었다.

더 자야지, 더 잘 거야.

그런데 참 신기한 것이 왜 더 자려고 하면 잠이 안 온다.

그렇게 나는 누운 채로 눈을 떴다.

익숙한 사무실 천장이 보였다.

길쭉한 직사각형 모양의 텍스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텍스 하나하나에는 움푹움푹한 무늬가 끊임없이 이어져 있었다.

“알파야.”

―네.

“천장에다가 화면 좀 띄워봐.”

화면을 꼭 벽에다 띄울 필요는 없었다.

천장에 띄울 수도 있고 바닥에 띄울 수도 있다.

천장에 커다란 화면이 열렸다.

나는 며칠 전부터 하나의 습관이 생겼다.

“알파야, 루틴대로.”

여기서 말하는 루틴이란 샤론 영지를 한 바퀴 돌라는 뜻이었다.

종이비행기가 유유히 하늘을 날아가는 속도로 화면이 샤론 영지를 둘러보았다.

화면이 영지의 외곽부터 돌았다.

이제 허접한 말뚝 대신 콘크리트로 세운 담이 영지 외곽을 두르고 있었다.

아직 다 완성된 것은 아니었지만 얼추 마무리 작업 단계였다.

작은 마을 전체를 두르고 있던 나무 목책.

그 목책을 대신해서 4m 높이의 콘크리트 담이 생겼다.

담 안쪽에는 계단식으로 흙을 쌓아 안쪽에서 바깥쪽을 공격하기 쉽게 만들었다.

철근은 박고 자갈과 시멘트, 모래를 섞어 벽을 세웠다.

단순한 벽 공사에 수십 명이 달라붙어서 일하니 작업 진도가 쭉쭉 나갔다.

하지만 마감 상태는 지구에서 흔히 보던 벽보다는 조금 어설퍼 보였다.

여기저기 울퉁불퉁한 곳이 보였다.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의 솜씨.

깔끔하게 미장이 되었거나 타일로 마감이 잘 된 건물들만 보다가 이런 미숙한 마감을 보니 왠지 오래된 시골길 같아 보였다.

그냥 그 집 아저씨가 시멘트를 바른 듯한 느낌.

전문가 한 명, 비전문가 수십 명을 붙여 놓으니 이런 벽이 만들어졌다.

그래도 철근, 시멘트는 아낌없이 주었으니 튼튼하긴 할 거다.

콘크리트와 흙을 쌓은 두께는 가장 아랫부분이 3m가 넘었다.

어지간한 몬스터에게는 밀리지 않을 듯했다.

오크 몇 마리 정도가 산맥에서 내려온다면 벽만 쳐다보다 돌아갈 것이고, 오크가 두 자릿수가 넘어가 벽을 넘을 수 있다 해도 안쪽에서 공격하면 방어할 만했다.

목책에 비하면 철옹성이다.

화면이 유유히 날아간다.

영지의 외곽과 트란 산맥을 잇는 길목의 모습이 나타났다.

하늘에서 보면 항아리 모양의 구조.

저 길을 따라 내려오면 자연스레 항아리 모양에 갇히게 되었다.

항아리 끝부분에는 몇 가지 마법 장치들을 갖추어 두었다.

기름이나 가시 함정 같은 걸 만들까 하다가 언제 몬스터 웨이브가 터질지도 모르니 오랫동안 깔끔하게 보관해야 하는 관계로 조금 괜찮은 걸로 마련해 두었다.

5서클 마법 파이어 플레임.

원래 항아리는 구워서 만드는 것이라 항아리 구조 안에 갇힌 몬스터들을 굽도록 설계했다.

화면이 다시 하늘을 날았다.

그런 함정이 하나, 둘, 셋, 넷, 다섯 개가 있었다.

다시 유유히 날아가는 화면은 이제 마을 가운데로 향했다.

화면상에서 저 멀리 산맥이 보이고 숲속 한적한 마을이 보였다.

화면으로 보이는 소박하고 서정적이며 평화로운 분위기의 마을.

한편의 뮤비를 감상하는 것 같았다.

내 영지라서 그런지 더 예뻤다.

화면이 마을 중앙에 도달했다.

마을 중앙에는 넓은 공터가 있었는데 그곳에서 알타르가 약 50여 명을 모아두고 교육을 하고 있었다.

마나가 풍부한 세상.

평범했던 산골 소녀인 샤샤는 각성하자마자 마나가 지구에서 막 각성한 헌터의 평균보다 세 배나 많은 마나를 가졌었다.

이곳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이라면 몇 년 교육받고 노력하면 누구나 1서클 마법 정도는 발현할 수 있다고 했다.

나는 하늘에서 화면을 잠시 멈추어 알타르가 수업을 하는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자, 주민 여러분. 바닥에 등을 대고 눕습니다.”

각자의 자리에는 사람 키만 한 조각 천이 깔려 있었다.

주민들은 천 위에 올라가 등을 대고 누웠다.

“하늘이 보이시죠?”

주민들의 눈에는 맑고 파란 하늘과 몽실몽실한 뭉게구름이 보였다.

누워서 하늘을 보니 뭉게구름이 바람에 날려 그 모양이 천천히 변하는 것이 보였다.

“오른손을 주먹을 쥡니다. 네, 가볍게. 너무 꽉 쥐지 않아도 됩니다. 그리고 그 주먹을 왼쪽 가슴에 얹으세요.”

주민들이 따라 했다.

“아주 잘하고 계십니다. 네, 거기 세 번째 줄에 네 번째 노란색 옷 입으신 분. 주먹을 좀 더 위쪽으로 얹으세요. 네, 네, 좋습니다. 그리고 하늘을 향해 외치세요. ‘충’이라고요.”

주민들이 따라 했다.

“충.”

50명의 우렁찬 목소리가 마을 공터에 울려 퍼졌다.

“네, 아주 잘하셨습니다. 지금 자세와 경례 방법이 저희 영주 님을 향한 경례법입니다.”

나는 하늘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저게 뭔 짓일까?

주민들에게 마법을 가르치라고 했는데 이상한 걸 가르치고 있었다.

음…….

그런데 타이밍 좋게 그 모습을 하늘에서 내려다보고 있으니 묘하게 설득이 된다.

나는 마침 하늘에서 주민들을 내려다보고 있었고, 주민들은 누워서 하늘을 향해 경례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나, 그리고 누워서 경례하는 주민.

내가 보기엔 똑바로 선 채로 경례를 하는 듯한 모습.

이상한 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설득이 되려고 마음이 생겼다.

알타르에게 뭐라고 하지는 않았고 하지 않을 예정이었다.

어쩌면 저 사람들에게 영주에게 경례를 하는 것은 지구인인 내가 보기에 엄청 오버해야 하는 그런 문제일 수도 있을 테니까.

보는 사람이 민망해서 그렇지 가르치는 사람이나 배우는 사람은 문제의식이 없어 보였다.

“자, 이제 영주님께 예를 표했으니 이제 수업을 시작합니다. 모두 앉으세요.”

주민들이 자리에 앉았다.

“여러분?”

“네~”

알타르는 미소를 지으며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여러분들은 아주 복 받으신 겁니다. 이곳 샤론 마을에서 본인 또는 자녀를 몇 년 동안 마탑에 보내서 교육받을 수 있는 분이 몇 분이나 계신가요?”

영지 간의 이동도 쉽지 않은 이 시대의 시골 마을에서 마탑에 자녀를 유학시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가끔 마나에 대한 자질이 뛰어난 학생들이 있습니다. 그런 학생들은 장학생이 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의식주는 물론이고 교육비를 마련해야 합니다. 그렇게 몇 년을 교육받으면.”

알타르는 주민들을 둘러보았다.

“라이트.”

알타르의 손에서 밝은 빛이 만들어졌다.

“밤에도 환하게 책을 볼 수는 있습니다.”

알타르가 싱긋 미소를 지었다.

“또한, 파이어!”

알타르의 손에서 주먹만 한 불이 피어올랐다.

“산에서 불을 피울 때 유용하기도 합니다. 뭐 이런 것도 가능하죠. 클린!”

특별히 달라진 것은 없었다.

“빨래를 조금 덜 해도 됩니다. 솔직히 투자 대비 효과가 대단하지는 않습니다. 큰돈을 들여 몇 년 배우면 여러분들 누구나 이런 빛과 불을 피울 수 있습니다. 하시겠습니까?”

대부분의 주민들은 고개를 저었다.

알타르가 주먹을 쥐었다.

“하지만, 하지만! 하지마안?!”

목소리를 점점 높였다.

“우리의 너그러우신 영주 님께서는 여러분들을 마법사로 만들려고 하십니다.”

웅성웅성.

“마법사의 마을! 그것이 우리의 위대한 영주 님의 계획이십니다. 여러분 박수!”

“와~”

짝짝짝짝!

알타르가 있는 곳에는 열 개의 금속판이 있었다.

알타르는 열 명씩 줄을 세운 후 한 조씩 금속판 앞에 서도록 했다.

그리고 금속판 앞에 선 주민들에게 작은 병 하나씩을 나누어주었다.

“자, 한 방울도 흘리지 말고 마십니다. 그것을 마시면 여러분은 잠시 동안 1서클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모두 약을 마셨다.

알타르는 한 명씩 다가가 금속판에 마나를 주입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라이트!”

주민 한 명이 금속판에 마나를 주입하며 마법을 실현했다.

주먹만 한 빛의 덩어리가 생겼다.

“와! 내가 성공했어!”

“와, 나도!”

“저도 성공했습니다.”

마나가 애초에 풍부한 세상에서 살아온 주민들.

기본 마나량은 충분했다.

약빨, 마법진빨, 5서클 마법사의 지도까지.

누구나 될 수 있는 수준까지 빨리 도달하도록 하는 데는 주입식 교육만 한 것이 없었다.

나는 누워서 화면을 보다가 화면을 벽으로 옮기고 앉아서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파앗, 파앗!

주민들이 라이트 마법을 발현한다.

라이트 마법이라서 그랬을까?

뭐가 환하게 팍팍 켜지니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모습이 나름 볼만 했다.

1서클 마법진이야 금액이 얼마 되지도 않았다.

마나 각성제가 조금 금액이 나갔지만, 저렇게 수십 명의 인원이 순식간에 마법을 사용하는 모습을 보니 충분히 투자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타르의 말로는 재능이 있어야 3서클에 오를 수 있다고 했다.

그 말은 재능이 없어도 2서클 까지는 간다는 말이 아닌가?

주민들은 성인들만 세어도 200여 명.

2서클 마법사 200명으로 어떤 작업을 시킬지 진지하게 고민했다.

띠링!

[민준 오빠?]

나리의 쪽지가 왔다.

“알파야, 화면을 나리에게로.”

―네.

휘이익!

화면이 트란 산맥 초입으로 날아갔다.

그곳에는 샤샤, 제리, 동서 형님, 종구, 나리가 있었다.

내가 자는 사이에 열심히 몬스터를 잡고 돌아오는 것 같았다.

고생들 하네.

나는 화면을 보며 쪽지를 보냈다.

[이제 화면으로 여러분들 잡았어요. 사냥하고 오시는 길이세요? 고생들 많아요.]

나는 말로만 고생한다고 하지 않고 힐을 한 번씩 넣어주었다.

“힐, 힐, 힐, 힐, 힐.”

화면으로도 소환수와 용병에게는 힐을 넣을 수 있었다.

[이제 입구에 거의 다 왔어욧. 도착하면 소환해주세욧.]

[그래, 알았어.]

잠시 후, 팀원들은 마을에 도착했고, 나는 이들을 모두 창고로 소환해주었다.

화아악!

소환수와 용병인 팀원들이 모두 소환되었다.

방금 출근한 직원인 상일, 홍민이 팀원들을 반겼다.

“어서 오세요. 지금 소환되신 거예요?”

“네.”

팀원들은 창고의 선반으로 가더니 선물함에 가져온 사냥 결과물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이제는 팀원들은 창고로 소환되면 알아서 몬스터 사체를 꺼내놓는다.

한나리가 말했다.

“오늘은 샤벨 타이거를 잡아 왔어요. 때깔이 죽이던데, 이거 상등품이지 싶어요.”

나리가 선물함에서 샤벨 타이거를 꺼냈다.

“오오오~”

송곳니가 50cm는 되어 보이는 커다란 녀석이다.

대물인 듯.

털도 뽀송뽀송한 것이 이제 뭘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요령을 터득했나 보다.

“상처 없이 잡으려면 힘들지 않아요? 너무 무리할 필요는 없어요.”

동서 형님이 호탕하게 말했다.

“아냐, 얘는 혼자 있던 애라 그렇게 힘들지 않았어. 우린 다섯 명인데 한 마리 정도는 할만해.”

삐삐삐.

나홍민이 마정석 검출기로 마정석의 위치를 찾았다.

각자 선물함에 가져온 몬스터 사체들을 정리한 후 사무실 소파에 둘러앉았다.

“근데 사무실에서 운영하는 물자의 규모가 상당한데, 이거 민준이 개인 이름으로 하는 거야?”

“그렇죠.”

“개인으로 하면 세금도 많이 나올 텐데, 이 정도 규모면 법인화해야 하는 거 아냐?”

법인?

그러고 보니 형님은 무슨 회사를 다녔다고 했는데, 그래서 그런지 법적인 문제도 잘 알고 있었다.

“법인이요?”

“그럼. 개인 세금보다 법인세가 싸니까 규모가 크면 법인화를 해야지.”

그런 건가?

“민준 오빠, 그럴 거면 아예 길드를 차려요.”

길드?

나는 소파에 둘러앉은 멤버들을 보았다.

나까지 헌터 넷, 소환수 둘.

“여기 과일 좀 드시면서 대화하세요.”

그리고 직원 둘.

이 정도면 길드를 차릴 만한 건가?

잠깐, 소환수도 길드원에 등록해야 하나?

지구의 던전을 갈 일도 있으니 등록을 해야 할 수도 있겠다.

설마 영지민들은 안 해도 되겠지?

내가 모두를 둘러보며 말했다.

“그러게요. 저희가 독점적이며 안정적으로 몬스터 헌팅을 할 장소도 있겠고, 서로 믿을만한 멤버도 있고. 이렇게 번듯한 사무실도 있으니 길드를 차리지 않을 이유도 없네요.”

동서 형님이 슬쩍 눈치를 보며 말했다.

“그래, 길드 좋지. 내가 본의 아니게… 크음, 이번에 길드 설립 과정에 관해 공부를 많이 했어.”

사기를 당했으면 본의 아니게 공부를 하게 되겠지.

나리가 물었다.

“길드 이름은 뭐로 지을까요?”

“샤론 영지니까 샤론 길드?”

“민준 오빠 길드니까 민준 길드? 준 길드? 쭈니 길드?”

종구가 말했다.

“어허, 쭈니라니. 쭤~뤼 길드. 간단하게 쩌리 길드 어때, 응? 쩌리.”

어쭈, 내 이름 가지고 놀린다 이거지? 내가 말했다.

“리멤버 폰지는 어때요?”

“야!”

“차 팔고 온 길드 그래서, 차팔 길드.”

그렇게 서로 장난을 치다가 어느 정도 합의가 되었다.

“그래요, 그럼 샤론 길드 정도로 만들어보도록 할게요.”

그렇게 길드를 차릴 생각을 하는 중이었다.

띠링!

어?

소환수도 용병도 모두 여기 모여 있는데 웬 쪽지?

누구냐? 누가 몰래 쪽지를 보냈냐?

[소환 스킬이 상승했습니다.]

[하급 소환 스킬이 중하급이 되었습니다.]

“아싸!”

금쪽같은 소환수들

— 거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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