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화. 샤론 영지
나는 화면을 통해 샤론 마을을 둘러보았다.
일단 화면은 디아론 백작성에서 한참을 북서쪽으로 날아왔다.
트란 산맥 초입.
아니 트란 산맥의 일부 끝자락 위에 올라탄 위치였다.
이쪽저쪽을 봐도 다 산이지만 그렇게 산으로 둘러싸인 곳에 작고 편평한 지역이 있었다.
산속의 분지라고나 할까?
그 분지에 옹기종기 집들이 모여 있었다.
가구 수가 100여 호 정도 된다고 들었다.
그런데 얼핏 보이는 집들의 수는 그보다 더 많아 보였다.
어디 보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
이런, 부서진 채 수리되지 않은 집들이 있었다.
대체로 나무를 이용해 지은 단층 목조 주택.
벽도 지붕도 대부분 나무를 이용했다.
몇 미터짜리 몬스터들이 들이받으면 부서질 수밖에 없는 집.
지난 몬스터 웨이브의 상처가 아직 가시지 않은 듯했다.
그래서 하늘 위에서 볼 때는 집이 더 많았지만 실제로는 100여 가구라고 했나 보다.
응? 저건 뭐지?
어떤 아저씨가 소달구지와 비슷한 것을 끌고 있었다.
소는 아니고, 말도 아니고 당나귀 비슷한 것이 수레를 끄는 모습.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보니 밭에서 농사짓는 아낙들의 모습과 아이들 뛰어다니는 모습이 보였다.
마을의 외곽에는 목책이 설치되어 있었다.
사람 키보다 조금 더 높은 목책.
두 손으로 감싸는 것보다 조금 더 두꺼운 나무들이 줄지어 땅에 박혀 있었다.
나무의 끝부분은 뾰족하게 깎아서 넘기 어렵게 했고 군데군데 안쪽으로 지지대를 박아 밀어도 넘어지지 않도록 했다.
그런데 음, 뭐랄까?
이 목책으로 어떤 몬스터까지 막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이런 나무 목책으로 오크를 막을 수 있을까?
오크가 몇 마리 안 된다면 시간 벌이용은 될 것 같지만 몇십 마리가 밀려오면 무리일 듯싶었다.
길을 따라 화면을 이동해보니 어린이들이 놀고 있었다.
후후, 귀엽네.
뭘 하며 노는지 조금 살펴보았다.
돌멩이로 무슨 게임 같은 것을 하고 있었다.
마을 외곽으로 나와보니 아낙들이 밭농사를 짓고 있었다.
남자들의 모습이 조금 적어 보였는데, 산에 갔나 싶어 트란 산맥 초입을 조금 살펴보았다.
익숙한 손놀림으로 화면을 조절해가면서 사람들을 찾아보았다.
그럼 그렇지. 여기 한 무리 발견했다.
이 무리는 나무를 베고 있는 것 같았다.
여덟 명이 모여 나무를 베고 가지를 꺾고 있었다.
또 다른 무리를 찾아보았다.
여기 또 있다.
이제 화면에서 무언가를 찾는 일은 이골이 났다.
이 팀은 활을 들고 있는 폼이 사냥꾼 무리 같았다.
사냥하고 나무하고, 밭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것 같았다.
내 영지가 될지도 모르는 곳이라 구석구석 살펴보았다.
길은 이쪽으로 해서 이쪽으로 쭉 나 있고, 이 길로 올라가면 산맥, 저 길로 내려가면 다른 마을로 연결이 된다.
오케이 대략적인 샤론 마을의 형태가 감이 잡혔다.
나는 함께 화면을 보며 샤론 마을을 살피던 샤샤에게 물었다.
샤샤가 밤나무 마을 출신이니 샤론 마을에 대해서도 잘 알 것 같았다.
“샤샤야.”
호로록.
어느새 샤샤는 커피 한잔을 타서 마시고 있었다.
샤샤는 내 방에 오면 늘 커피를 타곤 했었다.
슥.
샤샤는 대답과 함께 내 것도 탔는지 커피 한잔을 내밀었다.
“네, 민준 님.”
“어, 커피 땡큐. 샤샤야, 샤론 마을 말이야. 어떤 마을이야?”
“뭐 저희 마을과 비슷한 마을이었죠. 저도 두세 번 정도밖에 가보지 않아서 잘은 몰라요. 트란 산맥 입구에 있고, 마을 크기는 저희 마을보다는 작았어요. 사람들이 사는 모습이야, 뭐 거의 비슷하죠. 주로 산에서 사냥하거나 나물을 뜯었죠. 텃밭을 키우기도 하고요.”
나는 허심탄회하게 물었다.
“샤샤도 이제 헌터나 마찬가지잖아.”
“그렇죠.”
“꾸준하게 몬스터 헌팅을 할만한 장소로 샤론 마을은 어때? 내가 만약 디아론 백작에게서부터 샤론 마을을 받는다고 하자. 그래서 샤론 마을을 기지 삼아서 트란 산맥을 오르내리면서 몬스터를 잡는 거야. 아니면 디아론 백작에게서는 적당한 돈이나 받고 그 시간에 지구의 던전을 돌아. 샤샤는 둘 다 가봤잖아. 샤론 마을 대 지구의 던전. 어떤 것이 더 도움이 될 것 같아?”
샤샤는 잠시 고민하더니 말을 이었다.
“지금까지 민준 님은 어떤 곳이 더 도움이 되셨나요? 트란 산맥? 아니면 지구의 던전?”
질문을 그렇게 하니, 고민할 것 없었다.
“압도적으로 트란 산맥이지.”
그래, 내 레벨의 9할은 트란 산맥이 키웠다.
“트란 산맥은 몬스터들의 요람이라고 불려요.”
나는 고개를 끄덕여주며 경청하였다.
“그래서 백작님께서 주기적으로 토벌을 해야 했어요. 만약, 토벌하지 않으면 몬스터의 수가 급속히 늘어나거든요. 그렇게 토벌해도 몇 년에 한 번씩 두 개의 붉은 달이 뜰 때면 몬스터 웨이브가 발생했어요. 만약, 샤론 마을을 받기로 하신다면 좋든, 싫든 간에 몬스터를 잡아야 할 거예요. 그것도 많이.”
그렇구나.
나는 샤샤만큼이나 트란 산맥을 잘 알고 있는 소환수에게 쪽지를 보냈다.
[제리, 어디니?]
[창고당.]
[제리야, 너 트란 산맥 출신이잖아. 내가 이번에 샤론 마을이란 곳을 받을지도 몰라. 제리도 이제 몬스터를 잡는 헌터나 마찬가지잖아. 몬스터들을 죽이면 경험치를 얻고 레벨이 오르지. 그래서 내가 궁금한 건 트란 산맥에 있는 몬스터들의 양이 충분히 많고, 또 그 종류가 다양해서 고렙이 되어도 사냥할 만한 사냥터냐는 것이야. 혹시 몬스터들의 수가 적거나 레벨이 너무 낮으면 사냥터로 적당하지 않거든.]
[무슨 뜻인지 이해했당. 몇 명이 몬스터 토벌을 할 거냥?]
[일단 너와 샤샤, 그리고 용병 세 명이지. 나중에 내가 소환 스킬이 늘면 더 가능할 수도 있고.]
[푸흣, 그 정도 수 가지고 트란 산맥의 몬스터가 부족할지 모른다고 걱정하는 거냥? 쓸데없는 걱정이당. 그리고 샤샤와 용병들을 데리고 트란 산맥을 오를 때, 내가 없으면 사냥이 아니라 생존을 걱정해야 할 거당. 내가 싸움을 잘해서 그런 게 아니라 강한 몬스터들의 영역을 피하기 때문에 가능한 거당. 아무 데나 다니면 그냥 끝이다.]
그렇구나.
[그래? 그럼 몬스터의 수와 종류는 충분하다는 거지?]
[그렇당.]
샤샤도 그렇고 제리도 트란 산맥의 몬스터가 부족할 걱정은 하지 말란다.
지금까지도 지구의 던전보다 글리제에서 훨씬 더 많은 성장과 이득을 얻었다.
그러면 더 망설일 이유가 없다.
“샤샤야. 그러면 다시 디아론 백작에게 가서 내가 샤론 마을을 받겠다고 말해줄래?”
샤샤가 돌아갔다.
몇 시간 후, 다시 샤샤가 왔다.
샤샤는 샤론 마을을 킴 준남작의 정식 영지로 인정한다는 서류를 가지고 왔다.
샤샤가 서류를 내밀며 말했다.
“축하드려요. 샤론 마을을 소유하신 킴 준남작님. 이제 어엿한 영지를 가진 귀족이세요.”
오호라. 이제 나는 영지를 가진 귀족이다.
“샤샤야, 다시 사무실로 가자.”
나는 청소한 자취방을 뒤로하고 샤샤와 함께 다시 창고로 갔다.
제리도 창고에 있고 또 이래저래 짐도 여기 많아서 왔다 갔다 하려면 창고가 편하다.
샤샤와 함께 사무실로 가면서 나는 여기저기 인맥을 이용해 전화를 돌렸다.
“네, 네. 그렇죠. 그러니까 제가 집을 좀 지으려고 하는데, 아는 건축업자 좀 소개시켜 주세요. 네, 네, 그럼요. 믿을만한 사람이어야죠.”
내가 가지 못하니 샤샤가 나의 대리가 되어야지.
샤샤는 자신이 영주 대리라는 말에 손사래를 치며 거부했지만, 샤샤가 아니면 누가 할까?
샤샤가 아니라면 남은 소환수라고는 제리뿐이다.
“제리야, 네가 할래?”
나의 질문과 샤샤의 기대 어린 눈빛을 받으며 제리가 답했다.
“야옹.”
이럴 때는 고양이다.
샤샤는 영주 대리라는 임무를 받고 디아론 성으로 돌아간 후 다시 샤론 마을로 이동하기로 했다.
그렇게 샤샤를 보내고 제리와 창고에 남았다.
자, 오늘은 네가 먼저 너의 정체성을 고양이로 정했으니, 고양이로서의 행동을 해야 할 터.
나는 오른손에서 붉은 레이저 포인트를, 왼손에서 파란 레이저 포인트를 꺼냈다.
“후후, 제리야. 레이저 한판 해볼까?”
내가 레이저 포인트를 이리저리 움직이면 그 위치를 제리가 손으로 찍는 놀이였다.
휙휙휙!
나는 정신없이 레이저 포인트를 움직였다.
그에 맞춰 번개처럼 움직이며 그 끝을 찍어가는 제리.
며칠 전에 레이저 포인트 한 개로 했는데 너무 잘해서 오늘은 두 개로 해보았다.
“계십니까?”
기다렸던 건축업자가 왔다.
나는 건축업자에게 내가 짓고 싶은 것들을 모두 설명했다.
일단 창고 옆에 내 숙소.
사무실 생활을 하다 보니 나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집에서 살아야지.
견적을 받아 보니 일단 땅부터 해결해야 했다.
부동산에 물어본 가격으로 일단 가정하기로 했다.
그랬더니 토지 구입비, 각종 인허가, 설계, 건축, 인테리어, 세금 등등 해서 4억을 부른다.
나는 집을 짓는다고 하면 땅값, 건축비, 인건비 뭐 이런 것만 생각했는데 집을 짓는 과정을 들어보니 참 복잡했다.
내 땅에 내 마음대로 집을 짓는 것도 안 된다고 했다.
집을 짓는 데는 허가를 받아야 했다.
복잡하네.
그리고 나는 샤론 마을에 대해 설명했다.
“제가 헌터인데 땅을 소유하고 있는 곳이 있거든요. 그쪽에도 집을 하나 짓고 싶어요. 아, 그쪽은 허가는 안 받아도 돼요.”
건축업자분이 눈을 가느다랗게 뜨며 말한다.
“그런 말씀 하시면 안 됩니다. 허가는 다 받으면서 진행해야 해요. 허가비는 얼마 안 해요.”
“제 땅이라서 괜찮아요.”
“원래 자기 소유의 땅이라도 다 허가를 받고 준공도 받고 해야 해요.”
“제가 거기 영주예요.”
순간, 건축업자분의 표정을 굳었다.
이 새킨 뭐지? 이런 표정인 듯.
음, 뭔가 크게 오해를 하는 표정이었다.
그래도 내가 사무실 옆에 집을 짓는다고 얘기해서일까? 1초 만에 다시 영업용 미소로 바뀌셨다.
하나하나 설명해드려야 할 것 같았다.
“그러니까 던전 아시죠?”
“네, 알죠.”
“그 던전 자체를 제가 소유했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던전 안에 건물을 짓는 거죠.”
“그러면 저희 같은 일반인이 들어갈 수 없는 것 아닌가요? 던전 내에 건물을 지으려면 헌터여야 들어갈 수 있지 않나요? 헌터이면서 동시에 건축업자인 사람들이 있어요. 던전 내부에 건물을 지으려면 그쪽에 연락하셔야 할 것 같은데요.”
“그것도 괜찮아요. 제가 용병 등록해드리면 돼요.”
뭐가 설명할수록 꼬이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쪽 세계로 넘어갈 수 있는 인원은 세 분뿐이에요.”
“세 명이서 건물을 지어야 하는 건가요?”
“네, 넘어갈 수 있는 인원이 정해져 있어요.”
“그러면 공사 기간이 길어질 건데요.”
하긴 세 명이 집을 지으려면 엄청 힘들 것 같았다.
어떡하지?
흠…….
아!
“잡부는 100명쯤 있어요.”
* * *
샤론 마을에 샤샤가 도착했다.
샤샤는 마을 촌장을 찾았다.
샤샤는 촌장에게 서류와 인장을 보여주었다.
“이제부터 샤론 마을은 킴 준남작님의 영지랍니다. 디아론 백작님께서 킴 준남작님께 샤론 마을을 수여하셨어요. 여기 그 증거가 있고요. 저는 영주 대리를 맡게 된 샤샤라고 합니다.”
촌장은 영주 대리라는 말에 허리를 깊이 숙이며 말했다.
“저는 샤론 마을의 촌장인 다니엘이라고 합니다.”
다니엘은 영주가 바뀌었다는 말에 크게 긴장했다.
디아론 백작은 폭정을 일삼지 않고 적당한 세금만 받는 준수한 귀족이었다.
가끔씩 몬스터 토벌도 해주고 몬스터 웨이브가 발생할 때면 성안으로 피신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 정도면 모범적인 귀족이었다.
새로 바뀐 영주는 어떤 사람이려나?
그런데 영주 대리라는 소녀가 유명인이었다.
성벽 위의 발키리.
촌장 다니엘도 지난 몬스터 웨이브 때 디아론 성에 피난 가서 샤샤를 본 적이 있었다.
먼발치에서 샤샤의 푸른 머리카락을 보며 두 손 모아 기도하던 무리 중, 일부가 이곳 샤론 마을에도 있었다.
또한, 지난번 웨이브 이후 샤론 마을의 인구가 너무 줄어서 디아론 백작이 샤론 마을로 넘어가고 싶은 사람을 뽑았었다.
생활 수준이나 몬스터에 대한 위협이야, 샤론 마을이나 밤나무 마을이나 어차피 거기서 거기였다.
주인 없는 집과 밭이 있으니 이주민에게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그래서 현재 이곳 주민 중에는 밤나무 마을 출신도 있었다.
그들이 발키리에 대한 말을 하던 것을 들었다.
샤샤가 말했다.
“이제부터는 세금은 디아론 백작님께 내지 않고 저에게 내시면 돼요. 그리고 영주님께서 공사를 하시려고 해요. 그래서 인부가 필요해요.”
아…….
다니엘은 생각했다.
노역 징발이구나.
영주가 바뀌었으니 영주가 지내는 관저를 지으려고 하겠지.
먹고 살기 빠듯한 산골 마을에서 장정들을 징발해서 공사를 하면 나머지 가족들의 생활이 얼마나 힘들어질까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눈앞의 소녀를 우습게 보면 안 된다.
성벽 위의 발키리.
기사들과 함께 몬스터들에게 마법의 불화살을 날리던 소녀였다.
그 불화살의 대상이 자신들이 될 수도 있는 것이었다.
게다가 지금은 영주의 얼굴도 모르는 상태.
어떤 성격의 영주일지 모른다.
“네. 얼마나, 언제까지 불러 모으면 될까요?”
“영주님께서 이틀 후부터 진행하실 거라고 하셨어요. 그때가 되면 건축을 전문적으로 하는 용병들이 오실 거라고 하셨어요.”
용병이란다.
촌장은 신임 영주가 용병을 데려온다는 생각에 더욱 기가 죽었다.
“그리고 영주님께서 이미 마을을 자세히 관찰하셨거든요. 그래서 영주님 말씀에는 마을이 너무 작고 외져서 돈이나 마정석으로 일당을 주는 것보다는 그냥 식량이나 현물로 주는 것이 어떨까 하고 생각하셨어요. 괜찮겠죠?”
자세히 보고 갔다고?
촌장의 허리가 더욱 낮아졌다.
하지만 일당을 준다는 소리에 기대하며 샤샤를 보았다.
샤샤는 허공에 손을 넣어 뭔가를 꺼냈다.
“일당으로는 현물로… 이런 것은 어때요?”
금쪽같은 소환수들
— 거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