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화. 관광
한나리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옹기종기 모인 석재주택들 사이에 간격이 거의 없는 다닥다닥 붙은 마을.
거리의 곳곳에는 사다리꼴 모양의 지붕을 가진 집들이 많았다.
건물의 벽은 석재였지만, 지붕은 대체로 나무를 쓰는 듯했다.
그리고 다양한 색으로 채색을 하여 울긋불긋 집마다 화려한 색을 자랑하는 지붕.
그 사다리꼴 모양의 지붕에는 약속이라도 한 듯 조그만 창문이 나 있었다.
아마도 집 안에서는 다락이 될 것 같은 공간이었다.
그 조그만 지붕의 창문으로 빼꼼히 바깥을 바라보는 아이들.
그 아이들의 상당수가 나리를 비롯한 팀원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뭔가 신기한데 낯설어서 가까이 가기는 어려운 그런 눈빛이었다.
나리는 창문의 아이들에게 웃어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화들짝 놀라면서도 좋아하는 아이들.
샤샤가 말했다.
“이곳은 디아론 백작성의 안이에요. 정확히 말하면 저쪽에 보이는 성이 외성이고요.”
샤샤가 가리키는 손가락 방향으로는 높고 넓은 성벽이 있었다.
거대한 암석으로 켜켜이 쌓아 올린 성벽.
“그리고 반대쪽, 저기 보이는 높은 성들은 내성이에요. 굳이 말하면 저희는 외성과 내성 사이에 있죠.”
동서, 종구, 나리는 꽃목걸이를 한 채 관광객 모드로 샤샤의 설명을 경청했다.
가이드가 된 샤샤가 말했다.
“성안에는 많은 사람이 살고 있어요. 성안은 몬스터로부터 안전하니까요. 이곳 사람들은 성벽 바깥으로 나가서 농사를 짓는 사람들도 많고 물건을 만들고 장사를 하는 사람도 많아요. 트란 산맥에서부터 나오는 나무, 광물, 몬스터 관련 물자들이 많이 있죠.”
조금 더 가니 성문 안쪽으로 넓은 광장이 펼쳐져 있었다.
광장에서부터 몇 갈래의 길이 있었는데 큰길은 나름 넓어 마차가 동시에 다섯 대는 지나갈 정도로 넓었다.
“저쪽에 보이시는 문이 북문이고요, 이쪽은 북쪽 광장이라고 불러요. 광장에서 이쪽으로는 목공소나 대장간 들이 있고요, 저쪽으로 가면 내성 방향이고, 또 이쪽으로 가면 먹을 것들이 많아요.”
먹을 것?
그 말을 들은 차동서가 말했다.
“그럼 일단 뭘 좀 먹어볼까?”
주변 사람들도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면 먹거리가 있는 길 쪽으로 갈게요. 둘러보시면서 조금만 드세요. 한 바퀴 돌고 내성으로 가면 여러분들 오신다고 환영식이 준비되어 있어요.”
환영식?
그런 걸 언제 다 준비했지?
일행은 일단 먹거리가 많이 있다는 길로 방향을 잡았다.
얼마 정도 걸어가니 먹거리 골목이 그렇듯 음식 냄새가 풍겼다.
엄마 손을 잡고 다니며 뭔가를 손에 들고 먹고 있는 아이.
가족들끼리 외식을 나온 듯 함께 식사하는 가족.
좌판을 열고 뭔가를 굽고 있는 노점상이 보였다.
닭꼬치 같기도 했다.
종구가 오른손을 번쩍 들며 말했다.
“도전.”
샤샤가 셈을 치르고 꼬치를 개인당 하나씩 받아왔다.
다들 맛을 보았다.
닭꼬치 비슷한 음식을 우적우적 씹던 종구가 감탄했다.
“음~ 맛있네. 뭐랄까? 닭가슴살로 만든 닭꼬치라고 할까? 약간 뻑뻑한 감은 있지만, 소스도 달달하니 괜찮네. 소스만 빼면 딱 몸에 좋은 음식일 것 같아.”
나리도 동조하긴 했지만, 약간은 다른 소감을 말했다.
“음, 그런데 향은 조금 낯선데요? 특이해요. 이런 향.”
동서 형님은 벌써 다 먹은 꼬치의 막대를 반납하며 말했다.
“이 세계에 넘어왔는데 음식의 향까지 익숙하긴 어렵겠지. 뭐 나는 먹을 만한데?”
샤샤가 옆 좌판에서 음료도 사 오면서 말했다.
“자, 음료도 한 잔씩 하세요.”
형형색색의 과일들이 있었다.
과일을 잘라서 그 안을 파서 과일을 통째로 들고 마시는 과일 주스.
어떤 과일로 만들었는지는 직관적으로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과일의 종류 자체를 모르니 어떤 맛인지 알 수가 없었다.
다들 고민하자 동서 형님이 말했다.
“뭘 고민해. 어차피 모르는데. 적당히들 골라 마셔봐.”
하나씩 골라 들고 맛을 보았다.
종구와 나리는 잘 골랐다는 듯 상큼한 표정을 지었지만, 종구는 눈코입이 가운데로 모이는 것이 애매한 표정이었다.
뭐 그럴 수 있지.
관광객 일행은 성벽 위에도 올라가 보았다.
휘이잉!
바람이 불었다.
성벽 위에는 띄엄띄엄 경비를 서는 병력이 있었다.
그중 한 병사가 샤샤를 알아보았는지 경례를 한다.
“충!”
샤샤가 인사를 받아주었다.
종구가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열~ 샤샤, 이 동네에서는 잘 나가는데~”
나리도 거들었다.
“그러게요. 지나가는 병사들에게 경례도 받고, 알고 보면 완전 대단한 것 아녜요?”
샤샤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어우, 아니에요. 지난번 몬스터 웨이브 때, 얼굴이 익은 병사라서 그럴 거예요.”
팀원들이야 성벽 위의 발키리를 모르지만, 이곳 병사들에게 성벽 위의 발키리는 하나의 희망인 적이 있었다.
성벽 위에서 멀리까지 바라보았다.
평지가 제법 넓게 있었다.
반듯반듯하게 그어진 모습이 농사를 계획적으로 잘 짓는 것 같았다.
그리고 저 너머에는 산이 죽 늘어서 있었다.
가도 가도 끝없는 산.
“저 멀리 산이 보이시죠?”
“어, 보여.”
“저기가 트란 산맥이에요. 몬스터들의 요람이죠. 디아론 영지의 사람들은 저 산에서부터 많은 것을 얻지만, 몬스터와 자주 싸워서 힘들기도 하지요. 하지만 또 그만큼 단결도 잘한답니다.”
세 사람은 내성도 들어가 보았다.
내성에서는 차이세 행정관이 이들을 맞이하였다.
단정한 머리에 깔끔한 복장.
누가 봐도 공무원인 듯 반듯한 모습이었다.
“어서 오세요. 반갑습니다.”
어라?
말이 통하네?
나리가 신기해서 물었다.
“어? 어떻게 우리가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거죠?”
“그러게, 신기하네. 샤샤는 한국말을 하니까 알아듣는다고 생각했지, 우리까지 말이 통할 줄은 몰랐네.”
용병 스킬 패시브인가?
말도 통하고, 맛있는 음식과 함께 환영해주니 팀원들은 즐겁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나는 팀원들이 관광을 다니는 모습을 화면을 통해 바라보았다.
재밌나?
“알파야, 팀원 동서 형님, 종구, 나리에게 쪽지를 보낼게.”
―네.
소환수가 둘이고, 용병도 셋이나 되니 쪽지를 보내는 것도 누구에게 보내는지 미리 설정해야 했다.
[동서 형님, 종구, 나리 잘 보입니까?]
화면상에서 잠시 부산스러운 모습이 보인다.
샤샤가 이것저것 또 알려주는 모습.
그러고 보면 샤샤가 선배인가?
내가 쪽지를 보냈다.
[어이 거기 용병님들~ 샤샤에게 잘 배우고 있나요? 여기서 보면 여러분들이 샤샤를 따라다니며 설명을 듣고, 또 샤샤가 설명을 잘해주는 모습이 꼭 샤샤가 선배같이 보여요. ㅋㅋ]
종구, 동서 형님, 나리가 쪽지를 보냈다.
[우헤헤, 나 이렇게 밥 잘 사주는 예쁜 선배, 넘 좋다.]
[고럼고럼 디론? 여기가 디론이 맞나? 뭐? 디아론? 암튼 여기선 샤샤가 선배 맞지. 우린 아무것도 모르는데.]
[맞아욧, 아까 보니까 병사들이 샤샤에게 막 경례도 하고 그랬어욧. 여기선 한 끗발 먹어주는 듯.]
그리고 내성에 오니 알타르 역시 마중을 나왔다.
격한 환대.
“오오오오, 이분들께서 무려 소환술사님의 동료분이신가요?”
쭈글쭈글한 얼굴과는 달리 초롱초롱한 눈빛.
그 들이댐과 순수함이 어쩐지 부담스러웠지만, 어찌 되었든 팀원들에게는 친절한 알타르였다.
알타르가 말했다.
“저는 5서클 마법사입니다. 얼마 전까지 십 년 넘게 4서클에 머물고 있었지요. 저는 소환술사님을 마음의 스승으로 모시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은 스승님의 동료분이신 거죠. 잘 모시겠습니다. 허허허.”
마법사의 스승?
나리 또한 마법사라서 민준이 마법사의 스승이라는 점이 조금 이상했다.
띠링!
나리의 쪽지가 왔다.
[오빠? 여기 알타르라는 마법사님이 오빠가 스승이라는데 그게 무슨 소리예요?]
하긴 이상하겠지.
[나리, 너도 혹시 마나 각성제 마셔봤어?]
[물론이죠.]
[그분들, 서클은 낮은데 마나는 많으셔. 그래서 마나 각성제 먹여서 한 서클 위 마법 써보게 하면 서클 금세 오르시거든. 내가 그렇게 해줬더니 스승이래.]
[아~]
그러고 보니 나리가 몇 서클인지도 몰랐다.
[근데 나리는 지금 몇 서클이야?]
[저요? 헤헤, 아직 3서클이에요.]
그래, 이게 정상이지.
나리 같은 경우는 기본 마나량이 늘어야 서클이 오른다.
헌터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기본 마나량에 한계가 있을 터였다.
사실 3서클도 대단한 것이다.
헌터가 된 지 얼마나 됐다고.
기본 마나량에 한계가 있으면 약을 빨아봤자 의미가 없다.
마나량을 훅하고 올려주는 그런 것이 없으면 꾸준한 사냥이 답이다.
마나량을 쉽게 올려주는 것.
그런 게 흔하게 있을 리가 없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사무실 한쪽의 냉장고로 향했다.
냉장고 문을 열어 반찬통 하나를 꺼내 열었다.
딸깍.
플라스틱 통 안에 들어있는 무처럼 생긴 채소.
하나를 집어 입으로 넣었다.
오도독, 오도독.
씹는 맛이 좋았다.
띠링!
[마나가 1 올랐습니다.]
오호, 타이밍 좋은데?
마나초를 생각날 때마다 조금씩 먹으면 맛도 좋고 마나도 올라 좋다.
지난번에는 고추장에 찍어 먹었는데 맛이 나름 괜찮았다.
그리고 나는 고개를 돌려 사무실 한쪽에 자라고 있는 화분을 보았다.
겨울철 크리스마스트리처럼 생긴 적당한 크기의 화분.
사무실 한쪽에 있으니 꼭 개업 축하용 화분 같아 보였다.
굵은 리본이라도 묶어둔다면 아마 모두 그렇게 생각하겠지.
자세히 보면 중간중간 열매가 맺혀 있었다.
방울토마토 크기의 열매.
나는 열매 하나를 만져보았다.
【마나목의 푸른 열매】
▷ 섭취 시 마나가 1 상승한다.
똑.
열매 하나를 땄다.
후후 불어서 옷에다 쓱쓱 문질렀다.
꿀꺽.
맛있다.
띠링!
[마나가 1 올랐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 마나목이 이렇게 사무실에서 대충 키울만한 나무가 아닌데 나한테 와서 개업축하목 취급을 받고 있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물도 준 적이 없었네.
그런데도 이렇게 잘 자랐다.
문득 궁금해서 직원들에게 물어봤다.
“상일 씨~, 홍민 씨~ 누가 이거 나무에 물 주고 계셨나요?”
창고에서 재고 정리를 하던 한상일이 쏙하고 머리를 내밀며 말했다.
“어? 그 나무, 제가 며칠에 한 번씩 물 주곤 했어요. 주면 안 되는 거였나요?”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요. 너~무 잘하셨다고요. 제가 나무를 챙겼어야 하는데, 소환수네 동네에 일 터지면 정신을 못 차리곤 해서요. 고마워요.”
하마터면 말라죽을 뻔했다.
“아뇨, 당연히 해야 할 일인데요. 사무실에 출근하는데 며칠에 한 번 나무에 물을 주는 게 뭐 대수라고요. 고양이 밥도 주는데요, 뭘. 하하.”
“하하하, 그러게요. 하…하…하…….”
잠깐.
스톱.
고양이 밥?
설마 그 고양이가 보라색 고양이는 아니겠지?
내가 물었다.
“보라색 고양이요?”
“그럼요.”
허걱!
“잘 먹나요?”
“그럼요.”
설마 밥을 달라고 목에 발톱을 들이댄 건 아니겠지?
나는 한상일이 조금 걱정돼서 물었다.
“물진 않았죠?”
“그럼요.”
그 고양이가 어지간한 전쟁 용사보다 킬 수가 많은 걸 한상일은 알까?
“혹시 그 고양이가 제 소환수인 것은 알고 계시죠?”
“그럼요, 당연하죠. 많이 소환하셨잖아요. 장화 신은 고양이 딱 그 컨셉이잖아요. 털은 뽀송뽀송, 눈은 초롱초롱, 왔다 갔다 하며 물건을 나르는 고양이. 보라색 고양이가 고개를 살랑거리며 먹을 것을 달라는데, 안 줄 수가 없더라고요.”
다행이다.
설마 제리가 먹을 것을 안 준다고 해치거나 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혹시 또 모르는 일이다.
나는 제리가 창고를 자유롭게 다니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 말고도 다른 지구의 사람들과 인간관계를 맺을 수도 있다는 점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하긴.
저기 화면 속의 샤샤도 동서 형님, 종구, 나리와 인간관계를 맺는데 제리라고 다른 인간과 소통하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말도 통하는데.
“혹시 그 보라색 고양이가 막 한국말을 하고 그랬나요?”
“아니요. 사장님과 대화하는 건 들어봤지만, 아직 저희에게는 딱 고양이 그 자체더라고요.”
음, 그랬구나.
“소환수라고 생각하면 좀 어려운데 그냥 고양이처럼 행동하고, 또 저희도 고양이처럼 대하니까 저희도 좋더라고요.”
내가 물었다.
“제리가 뭘 잘 먹던가요? 제리를 막 쓰다듬고 그래보셨나요? 애교도 피워요? 꾹꾹이도 해요?”
나는 미처 몰랐던 고양이의 사생활을 알게 된 것 같았다.
응?
그런데 느낌이 싸하다.
한상일이 조금 굳은 듯한 몸짓으로 내 오른쪽 뒤를 바라보고 있었다.
거길 왜 봐?
내 뒤에는 아무것도 없는데?
나는 왠지 뒤를 돌아봐야 할 것 같은 싸늘한 기분에 천천히 고개를 돌려 뒤를 보았다.
허거거걱!
보라색 고양이 한 마리가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한상일이 머쓱하게 말하며 나간다.
“하하. 저는 재고 정리를 마저 해야 해서 이만…….”
어색한 분위기.
고양이 한 마리가 날 올려보며 말했다.
“뒷담?”
금쪽같은 소환수들
— 거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