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화. 포상
일주일 후.
우린 다시 맨정신으로 만났다.
나름 중요한 이야기를 하는 건데 술자리에서만 이야기할 수는 없었다.
말하자면 술자리는 계약을 위한 포섭 단계고, 맨정신에서는 실제 계약이라고나 할까?
쩝.
이렇게 말하고 보니 헌터가 아니고 영업사원 같네
나는 팀원들을 내 창고로 불렀다.
지난 술자리 이후로 바로 다음 날, 글리제로 보내 볼까 하다가 일주일을 기다렸다.
샤샤와 제리도 헬른성에 있다가 디아론 백작의 군대와 함께 디아론 영지로 돌아갈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또, 괜히 전쟁 직후인 헬른성으로 팀원들을 보내봤자 좋을 것이 없을 것 같았다.
부르르릉.
창고 밖에서 자동차가 도착한 소리가 들렸다.
왔나 보다.
창고 밖으로 나가보니 동서 형님이 나름 덩치에 맞는 커다란 밴에서 내리고 계셨다.
“찾는데 어렵지 않으셨어요?”
“여어~ 뭐 요즘 내가 찾아오나 네비가 시키는 대로 오면 되지.”
그리고 이어서 차가 한 대 더 들어왔다.
끼익!
와, 강렬하다.
화려한 표범무늬 차량이 들어섰다.
한나리가 내렸다.
그 뒤를 이어 택시를 타고 종구가 내렸다.
종구는 차가 없나 보다.
“여어, 왔어?”
“어.”
“종구는 차 안 사? 이제 헌터 생활도 제법 했잖아. 살 거면 나도 한 대 뽑게 같이 갈까?”
“나 술 먹어야 해서 안 사.”
아, 그렇구나. 음주운전은 안 되지.
그렇게 동서 형님, 종구, 나리가 모였다.
나는 이들에게 시원한 피토니 과일 주스를 한잔 내주었다.
요게 술에 먹어도 좋은데 그냥 얼음 넣어서 주스로 만들어 먹어도 좋다.
달달하니 맛있다.
내가 물었다.
“관장은 바쁜가? 어디 길드 가입했어요?”
소파에 앉아 음료를 마시던 나리가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관장 오빠는 천마 길드에 갔어요.”
오호라, 천마 길드.
천마 길드는 상당히 유명한 길드였다.
길드장이 S급이라고 했던 것 같았다.
무를 숭상하는 길드?
길드장이 길드원들의 신체 개조를 돕는다고 자랑하던 것이 기억난다.
그래서 나도 흥미가 조금은 동했던 길드였다.
김관장은 검사니까 잘 어울리는 길드로 간 듯했다.
내가 팀원들을 둘러보며 물었다.
“다들 길드들은 가입 안 했어요?”
뭔가 주저주저하는 분위기.
가입을 안 했을 거라고 생각해서 물은 질문은 아니었다.
자격증을 따고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 나 같은 경우가 아니라면 굳이 가입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초보에게 길드 가입은 성장에 도움이 되니까.
하지만 나는 어쩐지 내가 뭔가 핵심적인 질문을 던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휴.”
동서 형님이 한숨을 쉬었다.
저 커다란 덩치가 한숨 한 번에 삼 분의 일은 줄어드는 듯했다.
“다 내 잘못이야.”
동서 형님은 머리를 긁적이며 설명을 했다.
우수에 젖은 눈빛.
“사실 길드에 가입하긴 했었어.”
과거형이었다.
눈치를 보니 나 빼고는 다들 잘 알고 있는 듯해 보였다.
내가 물었다.
“왜요?”
동서 형님이 말했다.
“근데 그게 문제가 있었어. 쉽게 말하자면 내가 사기를 좀 당했어.”
“사기요?”
동서 형님은 피토니 쥬스를 원샷하고 잔을 내려놓으며 말을 이었다.
“처음에는 신생 길드라서 조건을 아주 좋게 해준다고 해서 가입했지.”
나는 눈으로 물었다.
그런데요?
“그런데 신생 길드여서 새롭게 들어가는 돈이 좀 많았나 봐.”
어째 말하는 폼이 좀 이상하다.
“거기서 나한테 이사를 시켜준다고 하더라고.”
“이사요? 간부?”
“그래, 그런데 이사를 하면 지분을 준다고 해서 돈을 좀 보태라고 하더라.”
나는 나도 모르게 물었다.
“그래서 줬어요?”
동서 형님은 멈칫하더니 말했다.
“어, 조금?”
내가 물었다.
“그래서요?”
“그리고 내 밑으로 길드원을 더 뽑아야 하니까 몇 명 더 데리고 오라고 해서…….”
동서 형님은 종구와 나리를 보며 말했다.
“여기 종구랑, 나리가 가입을 했지.”
“거기 길드 이름이 뭔데요?”
“폰지 길드야.”
아, 그랬구나.
갑자기 불러서 술 먹자고 했는데 망설임 없이 달려와 준 고마운 사람들.
알고 보니 눈 뜨고 코 베인 다음에 그 아픔을 술로 잊고 있었구나.
나리가 힐끔 종구를 보더니 말했다.
“종구 오빠는 돈을 조금 많이 넣었어요. 우린 적당히 떼였는데 오빠는 차까지 넘어갔…….”
“아니야.”
종구가 부정했다.
“그거 술 먹으려고 판 거라니까.”
괜찮아.
그래도 다들 헌터잖아.
몸은 튼튼하잖아?
내가 말했다.
“아픔은 잊으시고요. 몸은 튼튼하시잖아요. 저랑 용병 계약하실래요? 샤샤랑 제리 알죠? 그 아이들이 사는 세상으로 넘어가시는 거예요. 일단 하루짜리로 맛보기 하시면 될 것 같아요.”
나리가 물었다.
“그럼 오빠가 던주예요?”
던전의 주인?
그게 그렇게 되나?
잠시 생각해 보았다.
던전은 누구의 것일까?
누가 던전의 소유자일까?
던전 안에서 살고 있는 몬스터들? 보스?
던전 내부에서라면 던전의 보스가 던전의 주인이라고 하면 대체로 동의할 것 같았다.
하지만 던전 밖에서는 이야기가 조금 달랐다.
헌터 연합 또는 대형 길드.
대형 길드들은 유명 던전의 출입권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흔했다.
던전에 들어갈 수 있는 포탈을 점유하여 던전에 입장하거나 몬스터를 잡는 권리 자체를 소유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디 던전은 어디 길드의 소유라는 말이 나온다.
글리제로 넘어갈 수 있는 권한? 능력? 이건 일단 나밖에 없는 것 같았다.
그럼 글리제가 나의 소유인가?
이렇게 생각하니 대박인데?
글리제에서 사는 글리제인들이 듣기에는 기가 막히고 황당한 이야기겠지만, 지구의 던전을 넘나드는 헌터들에게는 별로 이상한 것 없는 계산법이다.
용병 파견, 다른 말로 하면 글리제 행성 출입권이다.
“자, 아무튼 계약합니다. 저와의 용병 계약에 응한다고 말씀하시면 됩니다. 오늘은 맛보기니까 아무것도 필요 없습니다. 당연히 무료로 넘어가시면 됩니다. 아, 그리고 오늘은 몬스터를 잡는 것이 목적이 아니에요. 뭐 원하신다면 몬스터가 많은 곳으로 가실 수도 있지만, 일단은 넘어가서 둘러보는 것 자체가 목적입니다.”
동서 형님이 먼저 말했다.
“민준과의 용병 계약에 응한다.”
띠링!
[김민준 님과 차동서 님의 용병 계약이 이루어졌습니다.]
종구와 나리도 계약에 응했다.
“와, 오빠. 뭔가 머릿속에서 띠링 울리는데요?”
“어, 나리도 이제 그 소리 들리나 보네. 알파라고 시스템이야.”
내가 물었다.
“알파야, 그런데 용병을 글리제로 보내면 어디로 도착해?”
―민준 님의 소환수가 있는 장소로 보낼 수 있습니다.
“소환수는 둘인데?”
―양쪽 모두 가능합니다.
오호라, 좋은데? 이렇게 기능을 하나씩 알아가는 것이지.
내가 팀원들을 둘러보고 미소를 지어주었다.
힘들 내라구요.
“다들 준비됐나요?”
“어, 그래.”
동서 형님은 살짝 긴장한 것 같았다.
“너무 긴장하지 않으셔도 돼요. 샤샤가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나는 샤샤에게 쪽지를 보냈다.
[샤샤야?]
[네, 민준 님.]
[이제 동서 형님, 종구, 나리를 보낼게.]
[네, 여기서도 세 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갑니다.”
화아악!
팀원들이 사라졌다.
“알파야, 화면 좀.”
―네.
나는 얼른 화면을 켜보았다.
어째 잘 도착했나 불안불안하다.
이 사람들은 난생처음 가보는 세상인데 괜찮으려나?
화면이 펼쳐지며 팀원들의 모습이 보였다.
* * *
한나리는 약간 긴장하며 민준과의 계약을 체결했다.
고작 하루짜리 용병 계약.
전투를 목적으로 한 것도 아니고 샤샤와 제리가 사는 세상을 잠시 둘러보고 오라고 하였다.
전투는 없지만 흔한 던전 출입과 비슷한 개념.
샤샤가 있다니 걱정할 것도 없었다.
그래도 언제나 미지의 던전에 들어갈 때면 생기는 긴장감.
화아악.
조금 전까지 민준 오빠의 사무실이었는데 눈앞의 환경이 달라졌다.
고렙은커녕 중렙도 안되지만 그래도 초보 딱지는 뗄 정도는 됐다.
새로운 던전에 들어가면 몸이 먼저 반응했다.
자세를 낮추고, 사주 경계를 하며, 팀원들과 이상 여부를 체크하는 것
그게 몸에 숙달되어 익숙하게 나와야 어디 가서 던전 좀 돌았다 말할 수 있었다.
경계 모드에 들어간 나리에게 들려온 목소리.
“혼저옵서예.”
이거 제주도 사투리 아닌가?
샤샤가 꽃목걸이를 내밀며 말했다.
“TV에서 환영할 때는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혼저옵서예~”
나리는 얼떨결에 꽃목걸이를 목에 걸었다.
주변에 꽤 여러 사람이 모여 있었다.
웅성거리는 사람들.
“우와 저분들이 소환술사님이시라고?”
“아니, 소환술사님은 아니시고, 그 동료분이시래.”
“그래? 그럼 뭐가 달라?”
“그러게. 아무튼 비슷해.”
“와 저분은 덩치도 크신 게 딱 봐도 기사님처럼 생기셨네.”
“저분은 너무 아름다우신데?”
“저 옷 봐. 어쩜 옷이 저렇지? 신기하네.”
샤샤가 말했다.
“어서 오세요. 디아론 영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그동안 여러 번 입던하면서 이런 적이 있던가?
동서, 종구, 나리는 격한 환대에 당황했다.
* * *
프란시아의 왕성.
전쟁은 승리로 마무리되었다.
이제는 전쟁에서 공을 세운 이들에게 보상을 주어야 할 시간이었다.
국왕인 프란시아 13세는 대전에 모인 여러 대신 앞에서 헬른 공작을 치하하였다.
“그래, 공작. 베이론을 격파하느라 수고가 많았소. 내 공작만 철석같이 믿고 있었소.”
공작을 예를 표하며 말했다.
“모두 폐하의 은덕과 수많은 병력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왕은 크게 웃으며 기뻐하였다.
“허허허, 아무렴 좋소. 내 베이론에게 한 방 더 먹이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은데, 그건 차차 공작에게 부탁하도록 하겠소.”
“네, 폐하. 저희가 헬른성에서의 접전에서 이겼다고 볼 수 있지만, 베이론의 입장에서 본다면 치명적인 손실은 아닙니다. 전쟁도 저희 영토에서 일어났고, 라우 공작과 타지프도 붙잡지 못했습니다. 한 호흡 쉬시고 베이론을 벌하시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그래요, 공작이 그렇다면 그런 것이겠지.”
공격 온 베이론을 격퇴하는 것과 베이론을 향해 공격해 들어가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이야기였다.
국왕도 막무가내는 아니라서 여러 대신과 헬른 공작의 말에 귀 기울일 줄 알았다.
국왕이 말했다.
“그래요, 내가 이번 전쟁의 과정을 보고한 서류를 읽다 보니, 참 신기한 대목이 있더구려. 디아론 백작 있는가?”
디아론 백작이 예를 표하며 대답했다.
“예, 폐하. 신 디아론 여기 있습니다.”
“디아론의 병력이 헬른성으로 맨몸으로 뛰어갔다는데, 정말인가? 적병이 도착하기 전에 헬른성에 도착한 아군의 병력은 수도에서 보낸 지원군을 제외하면 오직 디아론의 병사들 뿐이라 들었다. 나는 디아론 백작의 충심이 이리 깊은 줄 몰랐구나.”
디아론 백작은 더욱 예를 표하며 넙죽 대답했다.
“그저 왕국의 안위만 바라보며 달려갔을 뿐입니다.”
국왕은 칭찬하고 신하들은 감사하다고 대답하는 일련의 과정이 한참을 이어졌다.
국왕이 말했다.
“이번 전쟁은 일등 공신이 헬른 공작이다. 그리고 이등 공신으로는 디아론 백작, 캐이믹 백작이며…….”
여러 신하의 이름이 불렸다.
디아론 백작은 이등 공신으로 훈장과 함께 약간의 영지, 돈과 보석 그리고 마법 물품을 보상으로 받게 되었다.
디아론 백작은 자신에게 내려온 포상 중 하나를 바라보았다.
굵은 보석이 달려 있는 사슬 목걸이.
이걸 깨면 잠시 동안 소드마스터에 준하는 능력을 가질 수 있는 아이템이었다.
디아론 영지에 몬스터 웨이브가 발생했을 때 어쩔 수 없이 깨서 사용해야 했던 그 아이템.
디아론 백작은 오랜 세월 동안 차고 다니던 목걸이가 없어져서 허전했는데, 이제 다시 그 허전함을 채울 수 있었다.
또한 이번 포상 중에서 특이한 점은 삼등 공신으로 디아론 영지의 소환술사인 킴이 언급된 점이었다.
소환술사는 국왕이 인정한 전쟁 공신이 되었다.
소환술사는 기사급 인재를 둘 데리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샤샤와 제리의 공적이 소환술사의 공적으로 합쳐져서 포상이 결정되었다.
그래서 내려온 결정.
준남작의 단승 귀족 임명.
얼굴 한 번 보여주지 않았으면서 귀족으로 임명되다니 특이한 경우였다.
단승 귀족은 사실 디아론 백작이 임명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백작이 임명하는 귀족과 왕이 직접 임명하는 귀족은 그 느낌이 많이 다르다.
전자가 백작의 가신이라면 후자는 독립된 귀족이랄까.
헬른 공작과 다른 행정가들은 공적 조서를 작성할 때, 기사급 능력의 샤샤와 제리에게 포상을 주긴 줘야겠는데, 킴이라는 소환술사가 이미 그 둘이나 데리고 있다고 하니 그를 귀족으로 올려줘야 모양새가 맞는다고 생각하였다.
준남작의 이름에 어울리는 포상.
돈일까? 영지일까?
소환술사에 대한 포상은 일정 금액 혹은 그에 준하는 영토를 주기로 결정이 되었다.
디아론 백작은 턱을 괴고 소환술사가 무엇을 더 원할지, 어떻게 대해 주어야 할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금쪽같은 소환수들
— 거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