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화. 체험해 볼래요?
나는 용병이라는 스킬이 적힌 카드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세부 항목을 읽어보았다.
스킬명 : 용병 (소환술사 전용스킬)
―용병을 고용할 수 있다.
―용병을 소환술사가 연결된 세상으로 보낼 수 있다.
“알파야, 이게 뭔 스킬이야?”
―용병을 고용하는 스킬입니다.
용병을 고용한다?
“그게 무슨 말이야?”
―민준 님께서 계약을 통해 용병을 고용할 수 있습니다.
“지구에서? 아니면 글리제에서?”
―상관없습니다. 지구인도, 글리제인도 계약을 통해 용병으로 등록할 수 있습니다.
“그래? 그러면 몇 명이나? 며칠 동안 계약이 가능해?”
―그건 스킬 레벨과 민준 님의 마나량에 따라 다릅니다. 지금은 하루 정도의 기간이라면, 세 명 정도까지는 고용이 가능해 보입니다.
“하루에 세 명?”
―네.
용병 3명을 글리제에서 지구로, 또는 지구에서 글리제로 보낼 수 있는 스킬이 생겼다.
살짝 생각해봐도 써먹기에 따라서는 굉장한 스킬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차피 소환술사 전용 스킬.
누구에게 줄까 고민할 것 없이 내가 익히면 된다.
“용병 스킬 익힐게.”
파앗!
용병 스킬이 추가되는 느낌이 들었다.
이 스킬을 어떻게 활용할까나?
나는 턱을 긁으며 우선 헬른성 일대를 둘러보았다.
전쟁의 상흔이 컸다.
곳곳에 파괴된 성벽과 건물들은 큰 전쟁이 있었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성벽과 건물이 파괴된 것도 문제이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아직 적들이 있는지의 여부였다.
“알파야, 한 바퀴 둘러보자.”
―네. 민준 님.
슈우욱.
나는 헬른성 일대를 둘러보았다.
줌인, 줌아웃.
거짓말처럼 적들이 없었다.
밀물처럼 밀려왔다 썰물처럼 사라졌다.
“조금 멀리까지 살펴봐야 할 것 같아.”
화면을 빠르게 움직이며 수색 범위를 넓혀 보았다.
더 넓게 범위를 넓혀서 수색하자 군데군데 이동하는 병력이 보였다.
“오호, 저기도 한 덩이 있네.”
그렇게 뭉쳐 있는 병력은 많아야 백여 명
헬른성을 위협할만한 수가 아니었다.
그리고 옹기종기 모여 동쪽으로 향하는 모습은 고향으로 달아나는 패잔병의 모습이었다.
나는 샤샤에게 쪽지를 보내 보았다.
[샤샤야, 헬른성의 분위기는 좀 어때?]
[네, 민준 님. 적을 크게 이겨서 분위기가 아주 좋아요. 민준 님을 칭송하는 소리도 종종 들려요.]
날 칭송한다고? 헬른성에서? 디아론성에서야 내 이름이 알려졌다지만, 헬른성에는 누가 내 이름을 알고 있지?
여기도 디아론 백작 성에서의 분위기가 형성되는 건가?
나는 긁던 턱을 더욱 긁었다.
그런데 헬른성의 사람들이 나를 어찌 알았을까?
디아론 백작 성에서야 샤샤도 있고 제리도 있고 이런저런 사건들이 있었으니 내 이름이 퍼져나갔을 수 있지만, 여긴 왜?
나는 정말 궁금해서 물었다.
[샤샤야.]
[네, 민준 님.]
[그 있잖아. 방금 말하는 나를 칭송하는 분위기라는 거.]
[넵.]
[그 분위기 네가 만드는 거지?]
[네!?]
소환수라고는 달랑 둘 뿐인데, 까도녀 스타일의 제리가 동네방네 내 이야기를 하고 다닐 리는 없고, 아무래도 그 분위기라는 것 자체를 샤샤가 만들고 다닐 듯싶었다.
[샤샤야, 괜찮아. 중요한 건 아니고, 그냥 궁금했던 거야. 날 아는 사람이 별로 없는데 날 칭송한다는 게 신기해서 물어본 거야.]
[네…….]
[뭐 아무튼 내가 한 바퀴 크게 다 돌아봤는데, 적병들은 거의 안 보이는 것 같아. 일부 보이는 병력도 소규모인데다가 패잔병이 되어서 동쪽으로 돌아가는 것 같아.]
[네, 그렇군요. 좋은 소식이네요. 디아론 백작님께 알려드릴게요.]
[어, 그렇게 해.]
자. 그러면 베이론의 공격이 이제 일단락이 되었다는 것이지?
뭔가 중요한 걸 잊고 있는 듯 마음 한쪽이 찜찜했다.
긁적긁적 뭐지?
뭔가 아주 중요하고 강력한 것을 잊고 있는 느낌적인 느낌.
하지만 뭐 전쟁 나 혼자 하나.
일 있으면 또 연락하겠지.
나는 스마트폰을 열었다.
동서 형님, 종구, 나리, 관장이 있던 톡방에 날려 보았다.
[다들 잘 살고 계십니까?]
나리가 바로 답글을 올렸다.
[하이, 민준 오빠 잘 지냈어요?]
[어, 그래. 내가 샤샤네 동네일 때문에 한참 정신이 없었는데, 이제 조금 정신을 차릴 것 같아.]
[그래요? 바빴구낭, 팀원들은 종종 같이 던전 돌곤 했어요. 샤샤도 한번 봐요~]
[그래, 그래야지. 안 그래도 한 번 모였으면 해서~]
동서 형님도 답글을 다셨다.
[여어~ 잘 지냄?]
[네, 형님.]
종구도 답글이 올라왔다.
[아이.]
[아이 아니고 하이.]
내가 글을 올렸다.
[다들 한번 모이시죠. 샤샤 말고 제 소환수 못 보셨죠? 한 명… 아니, 한 마리인가? 암튼 더 있어요. 그리고 또 다른 제안해 드릴 것도 있어서요.]
[한 마리? 마리라고 했나? 오호, 동물형 소환수인가 봐? 내가 곰으로 변해서 그런 게 아니라 아주 동물형들이 전투를 잘해.]
[제안? 오빠 뭔데요. 궁금궁금.]
[어, 내가 스킬이 하나 재미난 게 나와서 말이야. 궁금하면 한 번 모일까? 피토니주 다 떨어지지 않았어?]
[쿠어어어엉, 피토니주 주세염.]
다들 바빠서 얼굴 보기 어려울 줄 알았는데, 피토니주라는 말 한마디에 당일 모인단다.
역시 피토니주는 사랑이다.
* * *
헬른성벽 위.
헬른 공작은 성벽 위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헬른성 일대를 둘러보았다.
검게 그을린 성벽, 움푹움푹 패인 지면
시체들은 대략 처리했지만, 벌판에 널브러진 부러진 화살과 깨진 병장기들은 이곳이 전장이었음을 알게 했다.
병사들이 반파된 성문을 통해 성 밖에 나가서 일대를 정리하고 있었다.
매캐한 냄새.
한쪽에서는 사체들을 모아서 태우고 있었다.
아군의 시체는 보관을 위한 처리를 하고, 가족들에게도 인계하고 해야겠지만 적병들은 그대로 소각이었다.
헬른 공작은 무심히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때 부관이 다가왔다.
부관은 헬른성을 치는 데 실패한 적의 잔당들이 어디로 갔는지 파악하는 명을 받았었다.
“공작님, 적의 패잔병들은 흩어져서 동쪽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한데 뭉치지는 않았는가?”
“다시 뭉치거나 저희 쪽으로 방향을 튼 무리는 없었습니다. 적들도 이번 전쟁의 패배를 알고 다시 베이론으로 돌아가기 바빠 보였습니다.”
“타지프는?”
“죄송합니다. 타지프의 행방을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렇군.”
검은 구름을 뿌려 시야를 차단한 후, 치명상을 입은 라우 공작을 데리고 사라진 타지프.
헬른 공작은 라우 공작의 배를 갈랐지만 타지프가 공작을 데려간 이상, 다시 회복해서 돌아올 가능성이 컸다.
아니, 반드시 돌아올 것이다.
헬른 공작은 부관에게 물었다.
“그래, 이번 전쟁에서 디아론 백작의 공이 컸다고?”
“예, 베이론 군이 도착하기도 전에 헬른성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디아론 군이 없었다면 초기에 헬른성이 위험할 뻔했습니다. 또한 양질의 무기와 포션류를 공급해 캐이믹 백작님께서도 디아론 백작에게 큰 빚을 졌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포션이라.
문뜩 포션이라는 말에 소환수라던 그 수인족이 떠올랐다.
공작이 물었다.
“우리에게 통신탑을 전해준 그 수인족도 디아론 영지의 아이인가?”
“예, 그러합니다. 알아보니 디아론 영지에는 소환술사라는 이가 있으며 양질의 무기와 포션, 통신탑과 같은 물건들은 모두 그 소환술사로부터 전해진 것입니다. 소환술사의 모습은 아무도 본 적은 없지만, 전해지는 장비들로만 보아도 보통 인물은 아닌 듯합니다.”
헬른 공작은 부관의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에 잠겼다.
디아론 백작도 이번 전쟁에 공이 크다.
그 수인족 아이도 그렇고
헬른 공작은 공적 조서를 쓸 내용을 하나씩 머릿속에서 정리해 나갔다.
* * *
오랜만에 팀원들과의 약속.
나는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이르게 자주 가던 먹자골목으로 향했다.
오랜만의 모임이라 나도 모르게 서둘렀다.
골목 입구에 들어서자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음, 골목 가득한 기름 쩐내.
누군가에게는 인상 찌푸릴 냄새지만 오랜만이라서 그런지 골목 가득한 냄새가 정겹다.
익숙한 간판에 입맛을 당기는 음식들.
그래. 이 골목, 이 냄새, 그리웠다.
헌터가 되고부터 면벽 수련을 하는 기분이었다.
전쟁이 장기전으로 되었으면 아마 몸에서 사리가 생겼을 것이다.
헌터가 되고 나서도 팀원들과 함께 던전 돌며 놀 때는 이런 기분은 아니었다.
정확히는 사장이 되고 나서부터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창고에 매몰되어 있던 기분이었다.
사장은 놀아야 하는 게 아닌가?
아니, 왜?
왜? 왜? 왜? 왜? 사장이 되고 직원이 있는데 면벽 수련이어야 했을까?
통장 잔고는 나날이 늘어나고, 칼질도 하지 않으면서 레벨은 올라가는데, 마음 한구석이 뭔가 허전했다.
“여어~”
종구가 약속된 음식점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종구, 오랜만이야. 반가워.”
“그래. 민준, 잘 지냈어?”
“어, 그런데 너무 일만 해서 그런지 마음 한구석이 뭔가 허전해.”
“그거 혈액 속에 알코올이 부족해서 그래.”
“크크, 정말?”
“그럼.”
종구가 물었다.
“그래서 피토니는?”
급하긴.
“샤샤 소환.”
화아악.
샤샤가 소환되었다.
“어머. 종구 님, 오랜만이에요. 반가워요.”
“어, 샤샤, 반가워. 피토니는?”
아무래도 종구는 피토니 중독인 것 같았다.
제리도 불렀다.
“제리야~”
제리는 그냥 목소리로 불렀다.
창고에서부터 알아서 따라온다고 하더니 음식점 지붕 위에서 빼꼼 머리가 나온다.
저긴 또 왜 올라가 있는 건지.
휙!
제리가 뛰어 내려와 내 어깨 위에 올라섰다.
종구가 말했다.
“오오, 냥냥이가 이쁘게 생겼네.”
종구가 제리를 귀여워했다.
후후, 종구는 알까?
지금 보고 있는 냥냥이가 자기보다 레벨이 높은걸?
종구가 말했다.
“일단 들어가자.”
잠시 시간이 지나자 다른 팀원들도 도착했다.
그런데 이렇게 술자리에 모이면 항상 풀리지 않는 토론을 벌이게 마련이었다.
예전에는 샤샤에게 술을 못 먹여서 안달이더니 오늘은 제리가 술을 마셔도 되는가가 쟁점이었다.
“술자리에 왔으면 술을 마셔야지. 안 그럼 왜 왔음?”
“내 소환수 소개해주려고 데려왔지. 아니, 고양이에게 술을 준다는 게 말이 돼요?”
나는 고양이에게 술을 먹이려는 인간들에게 차마 드리마스의 형태는 안 보여주었다.
덩치가 크니 더 마시라고 할 것 같았다.
팀원들이 제리를 보며 물었다.
“쟤가 어딜 봐서 고양이야?”
제리는 어느덧 인간형으로 변신해 있었다.
언제 갈아입었는지 찢어진 스키니진에 회색 후드티를 입고 있었다.
신발은 하얀 운동화를 신고 다리를 꼰 채 운동화를 달랑거리고 있었다.
제리는 소주잔이 신기한지 이리저리 살펴보며 발톱 하나를 꺼내 소주잔에 유리공예를 하고 있었다.
까가가가각.
그런 제리를 보며 팀원들이 토론을 벌였다.
내가 말했다.
“봐요. 눈도 고양이, 코도 고양이, 입도 고양이. 여기에 제리 말고 귀가 머리 위쪽에 달린 사람 있어요?”
스윽.
동서 형님이 손을 들었다.
“나 변신하면 지금보다 귀가 머리 위쪽으로 붙어.”
“저 모습을 봐, 어른 키에 두 발로 걸어 다니고 옷도 입고, 한국말을 할 줄 알면 사람대접을 해줘야 하는 거 아냐?”
“아까 변신 전에 모습을 봤잖아. 고양이잖아요.”
“수인족이라며? 수+인족, 인족이잖아. 사람이란 뜻이네.”
“귀엽잖아요. 귀여우면 고양이.”
“논리가 왜 그래? 귀엽다고 다 고양이면 나리도 고양이야?”
“어머! 갑자기 훅 들어오기 있기, 없기?”
“술자리에서 왜 논리를 따져요? 민준아. 제리, 힘세니?”
“힘은 너보단 세지.”
“체력은?”
“체력도 너보단 세지.”
“나보다 힘세고 체력 좋으면 마셔야지.”
우리는 으레 그렇듯 각자 하고 싶은 말을 실컷 떠든 다음 결국은 본인 판단에 맡기기로 했다.
제리는 술잔을 코앞으로 가져갔다.
흠.
술의 향기를 맡았다.
그리고 툭 던지는 한 마디.
“이런 걸 왜 먹냐?”
제리의 떡밥에 물고 늘어지는 팀원들.
역시 고양이는 인생의 쓴맛을 모른다며 인생에 묘생에 환생해서 마셔라까지 나왔다.
약 2시간 후.
“음하하하.”
웃음소리가 우렁찬 우리 동서 형님.
“코코코코.”
웃음 소리도 귀여운 나리.
“크캬ㅇ쿟더 ㄷ.”
피토니 주를 내리 원샷하며 새로운 언어를 깨우친 종구.
아쉽게도 김관장은 오늘 오지는 못했다.
그래도 이렇게 모인 멤버만 몇인가?
동서, 종구, 나리, 나, 샤샤에 제리까지.
복작대는 게 기분이 좋았다.
허전한 마음, 그게 뭐더라?
어느덧 무르익은 술자리.
나는 다들 만취하기 전에 준비했던 이야기를 꺼내야 할 것 같았다.
“내가 제안할 게 있다고 했잖아요.”
다들 내 말에 주목해 주었다.
나는 피토니 주를 한잔 들어 살살 흔들며 말했다.
“제가 이번에 용병이란 스킬이 생겼어요.”
나리가 물었다.
“그게 뭔데요?”
“어, 샤샤나 제리가 있는 세상으로 몇 명 정도 보낼 수 있는 스킬이야.”
동서 형님이 물었다.
“던전 같은 건가?”
“그렇죠. 어때요? 피토니 따기 체험해 보고 싶은 생각 없어요?”
내 말이 끝나자마자.
“저요!”
종구가 손을 번쩍 들었다.
금쪽같은 소환수들
— 거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