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쪽같은 소환수들-67화 (66/230)

67화. 용병

전장을 향해 걸음을 옮기는 라우 공작.

라우 공작은 낮은 목소리로, 그러나 묵직하게 마나를 실어 모든 부대에서 들을 수 있도록 또렷하게 말했다.

“전군 돌격.”

총사령관의 입에서 전군 돌격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뿌우우우우우우―

라우 공작의 명령에 신호수들은 두 볼이 개구리처럼 빵빵해지도록 열심히 파이프를 불었다.

천인장, 백인장들은 칼을 뽑아 병사들을 찌를 듯이 다그쳐 앞으로 돌진하도록 했다.

10만 병력이 파도가 되어 헬른성을 덮쳤다.

라우 공작은 아무 생각 없이 돌격 명령을 내린 건 아니었다.

오히려 섬세하게, 치밀하게, 라우 공작은 전장을 세밀하게 분석했다.

이번 전쟁은 처음 예상과 다른 분위기로 흘러갔다.

뭐가 문제지?

일단 삼각성의 포위 병력이 전멸당한 것이 뼈아팠다.

보급의 우위를 바탕으로, 자원전을 할 생각을 했는데 삼각성의 포위 병력이 잡힐 줄이야.

그리고 생각보다 프란시아의 무기체계가 훌륭했다.

병사들이 지닌 저 방패, 일반적인 방패가 아니었다.

마법이 인챈트 된 방패였다.

베이론에서도 병사들에게 수준 높은 장비를 제공하고자 얼마나 오래전부터 준비했던가.

또한 헬른성의 발리스타에서 발사되는 대형 화살을 보면 그냥 욕이 나왔다.

이미 저들도 철저하게 전쟁을 준비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삼각성에 직접 가보지는 않았지만 왜 졌는지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선발대가 잘하면 헬른성을 점령할 수도 있을 거라는 초기 낙관론은 현실과 너무나 동떨어져 있었다.

전쟁을 하기 전 수많은 간자들을 동원해서 프란시아의 전력을 체크 해왔다.

하지만 그 정보들이 모두 틀렸다.

간자들의 정보와 현장이 왜 이렇게 큰 차이가 날까?

그들의 눈을 모두 가린 것일까? 아닐 것이다.

이건 짧은 시간 안에 전쟁 물자의 수준이 높아진 것이다.

그래야 말이 된다.

라우 공작은 프란시아 측이 외부의 지원을 받은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라우 백작은 어렴풋이 가상의 존재를 떠올렸다.

제국일까? 다른 왕국일까? 전쟁이 일어날 것 같으니 민첩하게 어딘가와 동맹을 맺었나 보다.

그 존재에 대해 몰랐던 것이 이번 전쟁의 가장 큰 실책이다.

처음 계획했던 장기전, 보급전으로 간다고 하면 승산이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래서 라우 공작은 과감히 결정했다.

“전군 돌격!”

지금 이 장소에는 상대 7서클 마도사와 소드마스터가 있었다.

그건 이쪽도 마찬가지.

저 둘을 잡거나, 헬른성을 점령하거나 둘 중 한 가지라도 성공하면 된다.

그래, 그거면 된다.

딱 헬른성까지만 점령하고 경계를 그곳에 그으면 된다.

라우 공작은 모험을 걸었다.

10만 병력이 파도가 되어 밀려왔다.

나는 갑자기 베이론이 돌격을 하는 모습을 화면으로 바라보았다.

“저거…….”

아무리 봐도 그거였다.

“저거 발끈 러쉬 같은데?”

발끈 러쉬가 맞는다면 저거만 막으면 된다.

무려 10만 병력의 돌격이다.

수많은 병력이 마치 뒤가 없다는 듯 닥치고 돌격을 했다.

기사들은 오러를 일으켜 빛나는 검을 휘둘렀고, 병사들은 악과 깡으로 돌진했다.

이렇게 다 까놓고 힘으로 밀고 들어오는 전술에는 맵핵이고 뭐고 없다.

군사들은 벌떼같이 달려들었다.

병력이 달라붙어 충차를 밀고 투석기 들이 불을 뿜었다.

하늘에서는 불과 돌이 날아다니고 공간 전체에 기합과 비명, 괴성과 단말마의 소음이 난무했다.

그 와중에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자.

“루루루루루~~”

저벅저벅.

라우 공작이 콧노래를 부르며 다가왔다.

그리고 헬른 공작에게 인사를 했다.

“여어, 헬하~”

뽀얀 피부에 짙은 갈색 머리.

실크 재질과 하얀 털이 복스럽게 달린 망토를 걸치고 껄렁하게 걸어오는 라우 공작은 누가 보면 돈 많은 귀족가의 양아치 자제처럼 보였다.

피핏!

휙!

어디선가 방향을 잃고 우연히 떨어지는 돌덩이 하나와 화살 두 대, 그리고 사람 머리통 하나를 테이블의 먼지 닦듯이 치워버린 헬른 공작이 대답했다.

“헬하? 무슨 소린가?”

“촌스럽긴. 인사말이야.”

헬른 공작은 콧방귀를 끼며 답했다.

“그래, 한 이십 년 만인가?”

라우 공작이 말을 이었다.

“그러게, 오랜만이네. 느그 아들은 잘 있고? 지난번에 보니까 참 잘~생긴 게 역시 날 닮았던데?”

헬른 공작이 씨익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공작 나리께서 저급한 도발을 다 하는군. 군사를 10만이나 데리고 와놓고는 왜 이러실까?”

“아니, 잘생겨서 칭찬한 걸 가지고 왜 그래? 잘생겼다고, 나처럼. 내가 틀린 말을 했나?”

헬른 공작은 웃으며 말했다.

“후후후, 하긴. 삼각성을 포위하는 부대가 전멸했으니 쫄릴 만도 하지.”

끼이이! 쿠쾅쾅쾅쾅!

바로 옆에서 대형 투석기 하나가 부서져 내리며 파편이 튀었다.

하지만 두 공작은 주변 환경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두 공작 옆으로 각각 7서클의 대마도사가 양옆에 붙었다.

라우 공작이 원하는 건 대장전.

패드립까지 날리며 헬른 공작이 대장전에 나서도록 유인했다.

라우 공작이 개구쟁이처럼 미소를 지으며 검을 뽑아 들었다.

스릉.

“자, 이긴 사람이 아빠 하기로 하지.”

헬른 공작도 검을 뽑아 들며 말했다.

“후후후, 너 같은 아들을 둔 적은 없다.”

웅웅웅웅웅!

두 소드마스터의 검이 울음소리를 내었다.

타지프와 스피오크는 중얼거리며 이미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휘이이이이잉!

멀리서 불덩어리가 날아왔다.

콰콰쾅!

불덩어리는 두 공작 사이에 작렬했다.

커다란 폭격에 시야가 안보일 지경이었다.

떠어어엉!

거대한 종이 울렸다.

라우 공작과 헬른 공작의 첫수.

두 공작이 부딪힌 검에서 발생한 중저음 파동.

반경 수십 미터 이내의 일반 병사들은 그 중저음 파동에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떠어엉, 떠어어엉, 떠어엉!

초인급 대결.

어지간한 이들은 구경조차 못 하는 대결이었다.

자연스레 2 대 2의 대결 구도가 만들어졌다.

타지프가 먼저 주문을 완성했다.

“신들린 것 같은 힘과 파괴 그대는 전투 그 자체가 되리라. 광전사.”

타지프의 손끝에서 나간 어두운 마나는 라우 공작의 신체를 휘감았다.

쿠우우우우우!

안 그래도 강력한 소드마스터가 광전사화 되었다.

더 빠르고, 더 강하게.

이에 질세라 스피오크 역시 주문을 완성했다.

“단단하고 또 단단하여 그 어떤 공격이라도 다 막아내리라. 그레이트 하드 배리어.”

스피오크의 손끝에서 나간 마나는 헬른 공작에게 넘어가 헬른 공작 주위에 강력한 보호막을 형성했다.

한쪽은 공격력 업그레이드.

반대편은 방어력 업그레이드.

자연스레 라우 공작은 공격을 펼치고 헬른 공작은 수비에 임했다.

쉼 없이 내려치는 라우 공작의 공격.

하지만 그 공격들을 차분하게 막아내고 있는 헬른 공작.

“다크 애로우.”

타지프는 가벼운 공격으로 스피오크가 헬른 공작을 돕지 못하게 견제했다.

그리고 라우 공작에게 버퍼를 더 얹으려고 했다.

“힘이 강해진다. 다크 스트… 윽!”

타지프의 주문도 스피오크의 견제에 의해 주문이 끊겼다.

짜증이 난 타지프는 스피오크에게 공격을 집중했다.

그러다 보니 스피오크도 이제 온전히 타지프에게 집중했다.

2 : 2의 구도에서 각각 개인전으로 변해가는 상황.

쾅, 쾅, 쾅!

한쪽에서는 검으로 내려치는 것인지 폭탄이 터지는 것인지 구분되지 않는 굉음이 퍼져나갔다.

또 한쪽에서는 검은 구름과 번개, 용암과 불꽃이 번져 나갔다.

빛이 번쩍이고 굉음이 울렸다.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먹구름과 천둥 번개 속에서 수만의 병사들은 서로의 목숨을 탐했다.

자욱한 연기.

수만 명이 넘는 사체.

어느덧 전장에는 멀쩡한 사람보다 시체의 수가 더 많았다.

그렇게 초인급 대결이 한나절이 흘렀다.

땀에 젖은 갈색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공격을 퍼붓는 사내.

라우 공작이었다.

소드마스터의 경지와 어울리지 않게 땀에 젖어있었다.

단 몇 시간 만에 모든 것을 짜내고 있는 모습이었다.

얼굴이 엉망인 것은 헬른 공작 역시 마찬가지였다.

두 초인은 각자의 모든 역량을 꺼내고 있었다.

그때 타지프와 잠시 소강상태이던 스피오크가 주문을 완성했다.

“일 분간 두 공간을 격리한다. 아이솔레이션.”

스피오크의 마법에 의해 두 공작이 1분간 강제로 휴식 시간을 갖게 되었다.

씨익.

서로를 보며 미소를 짓는 두 공작.

라우 공작은 광전사의 광기를 잊은 지 오래였고 헬른 공작 역시 베리어가 꺼진 지 오래였다.

한참 전부터 각자의 역량으로 겨뤘다.

서로를 인정하는 듯한 미소.

헬른 공작은 더욱 진한 미소를 지으며 품에서 보라색 약병을 꺼냈다.

그리고 진한 미소를 한번 날려주고 약병을 마셨다.

꿀꺽, 꿀꺽, 꿀꺽.

잘도 들어갔다.

라우 공작은 대결 초기였다면 강제 분리 마법을 부숴버리고 공격을 했겠지만, 지금은 그저 헬른 공작이 뭘 처먹나 구경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화아아악!

헬른 공작의 거칠어졌던 피부가 다시 촉촉해졌다.

퀭한 다크 서클도 사라지고 머리카락에도 윤기가 다시 잘잘 흘렀다.

우우우우웅.

검에 마나를 흘려보더니 진한 미소를 라우 공작에게 날려주었다.

라우 공작은 이를 갈았다.

이런 제길, 헬른 공작이 완전히 회복되었다.

두 공작을 가로막았던 마법이 풀렸다.

헬른 공작의 검이 천천히 라우 공작에게 다가갔다.

뻔히 다가오는 검을 보고도 막지 못한 라우 공작.

푹!

헬른 공작의 검이 라우 공작의 복부에 꽂혔다.

치명상.

어느새 서로의 한 뼘 이내로 가까워진 둘.

헬른 공작이 라우 공작에게 말했다.

“내가 네 아비다.”

슈칵!

헬른 공작은 복부에 꽂은 검을 옆으로 그었다.

복부의 절반 이상이 갈라진 라우 공작.

촤아악!

라우 공작의 몸에서 피가 솟았다.

“다크 필드, 텔레키네시스, 이스케이프.”

타지프였다.

쑤우욱.

라우 공작의 신체가 반으로 접히다시피 하며 타지프에게로 날아갔다.

타지프의 마법에 의해 주변이 온통 검은 연기로 뒤덮였다.

헬른 공작은 순간 고민했다.

타지프를 추격할 것인가, 아니면 전쟁을 승리로 마무리할 것인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시체.

성벽 위에선 지금도 양측이 싸우고 있었고 성문은 반파되어 달랑거리고 있었다.

마음먹고 도망가는 7서클 마법사를 추격하는 것도 어려운 일.

헬른 공작은 전장을 수습할 채비를 했다.

타지프는 라우 공작의 사체를 들고 빠르게 날아가고 있었다.

라우 공작이 공격 부대의 1인자라면 타지프는 2인자.

라우 공작이 이 모양이니 타지프가 병력을 수습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하지만 타지프는 수만의 병력이 죽든지 말든지 신경 쓰지 않고 라우 공작을 들고 어딘가로 날아갔다.

얼마나 날아갔을까?

넓은 공터에 도착한 타지프는 공을 들여 대형 마법진을 그렸다.

그리고 마법진의 가운데에 정신을 잃고 있는 라우 공작을 내려두고 그 옆에 자신이 앉았다.

타지프는 한참을 중얼거렸다.

꾸물꾸물.

라우 공작의 갈라진 배가 메꾸어졌다.

타지프는 라우 공작을 내려다보았다.

젊고 잘생겼다.

타지프와는 다른 강인한 육체.

헬른 공작의 검에 당해 정신을 못 차리고 있지만 라우 공작의 육신만 해도 어디 가서 꿇리지 않는 육체였다.

타지프는 라우 공작의 얼굴을 만져보았다.

라우 공작의 얼굴로 가져가는 자신의 쭈글쭈글한 손과 다르게 라우 공작의 얼굴은 탱탱하기만 했다.

가지고 싶었다.

이 육신을 가지고 싶었다.

* * *

헬른 공작은 전장을 정리하고 있었다.

베이론의 10만 병력은 2~3만 정도만이 살아서 달아났고 7~8만의 병력은 헬른성 부근에서 주검이 되었다.

대승이었다.

헬른 공작은 캐이믹 백작과 함께 전장을 정리했다.

“아버님, 고생하셨습니다.”

캐이믹 백작은 라우 공작과 대결을 벌여 승리하고, 10만 병력을 물리친 자신의 아버지를 무한한 존경의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캐이믹의 입장에서 헬른 공작은 전쟁 영웅 그 자체였다.

이런 생각은 캐이믹만 갖는 게 아니었다.

많은 이들이 헬른 공작의 이름을 부르며 칭송하였다.

하지만 헬른 공작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보라색 포션.

그게 아니었어도 이길 수 있었을까?

수인족이 주고 간 보라색 포션.

체력과 마나를 즉시 회복시킨다고 했던가?

그것의 가치는 써보고 나면 안다면서 값은 후불로 받는다고 했다.

얼마를 주어야 할까?

헬른 공작은 작위를 줘야 하나, 영지를 줘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했다.

나는 화면을 보며 크게 외쳤다.

“와, 이겼다!”

크게 이겼다.

베이론은 야심 차게 덤빈 것 치고는 알차게 박살이 났다.

이쯤이면 이제 막 덤비지는 못할 것 같은데?

나는 상태창을 열어 보았다.

“상태창.”

[김민준]

직업: 소환술사

레벨 43

힘 50

민첩 50

체력 60

마나 110

미분배 스탯 30

소환수 2/2

거주 행성: 지구

연결된 행성: 글리제

스킬: 하급 소환술, 힐, 바인드

와 벌써 40레벨이 넘었다.

이번 전쟁을 통해 열 개 이상 레벨이 올랐다.

좋아.

그럼 잊었던 스킬 뽑기를 해야 할 차례구나.

“알파야.”

―네.

“스킬 뽑기가 두 번 쌓여있던가?”

―네, 35렙, 40렙에서 한 번씩 주어진 뽑기가 대기 중입니다.

“오케이, 고고.”

휘리리릭.

카드가 눈앞에 펼쳐졌다.

이제 이 모습도 익숙하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쿨하게 하나를 찍었다.

“이거!”

―오픈합니까?

“그래.”

휘리리릭!

카드가 뒤집혔다.

―‘아머’ 스킬입니다. 소환수의 방어력을 높여주는 스킬입니다.

아…….

방어력 상승이 나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대박도 아닌 스킬.

좀 애매했다.

하지만 뽑기는 하나 더 있었다.

“자, 하나 더!”

휘리리릭.

카드가 펼쳐졌다.

“이번엔 이거.”

과감하게 손가락으로 카드 하나를 찍었다.

카드가 뒤집혔다.

―소환술사로 사용 제한이 걸린 스킬이 떴네요. 용병 스킬입니다.

뭐? 용병? 이건 또 뭔 스킬이야?

금쪽같은 소환수들

— 거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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