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화. 확 그냥
전장을 울리는 광기가 퍼져나갔다.
병사들은 저마다 두려움과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 분노에 몸을 맡겼다.
“쏴라!”
“던져!”
“죽여!”
극한의 흥분상태에서는 고통도 잊는다고 했던가?
병사들은 사소한 칼자국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서로에게 덤벼들었다.
열을 맞춘 채 일제히 준비하고 있던 궁수들은 마치 한 몸인 듯 화살을 날렸다.
슈슈슈슈슉.
벌떼처럼 하늘을 가린 화살들.
분명히 환했던 하늘인데 화살이 날아오는 순간 태양마저 어두워질 정도로 화살이 가득했다.
하늘을 검게 물들였던 화살은 모든 물체가 그렇듯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파파파파팟!
화살비에 쓰러지는 병사들.
화살비가 쏟아지자 베이론의 병사들은 방패를 머리에 쓰기 시작했다.
제법 신경을 써서 만들어진 방패.
베이론의 수도에 있는 대형 공장에 몰래 숨어들어 가서 보았던 그 방패였다.
방패를 두 손으로 머리 위로 치켜들고 화살 비가 내리는 공간을 달린다.
방패는 생각보다 단단해서 화살 비를 막아주었다.
하지만 방패 모자는 그마저도 뚫어버리는 대형 화살에는 무용지물이었다.
쾅!
발리스타에서 발사된 대형 화살 하나가 방패를 머리 위에 들고 있던 병사 한 명을 꿰뚫었다.
방패마저 뚫려버려 병사는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다.
바로 앞의 병사가 무참히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다른 병사들을 따라 앞만 보며 달린다.
그렇게 많은 병사가 성벽에 도달했다.
나는 화면을 향해 눈을 똑바로 뜨고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기사가 죽었을 때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인원이 죽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나의 정신은 점점 더 또렷해졌다.
투석기가 불을 뿜었다.
휘이이이잉.
쾅!
투석기에서부터 날아온 불의 폭발.
단순한 돌이 날아오는 것이 아니었다.
투석기에 올린 돌에는 마법이 깃들어 있었다.
돌의 질량과 마법의 폭발.
마치 지구의 폭탄과 같았다.
나는 손을 바삐 움직였다.
이러다가 프로게이머가 될 것 같았다.
휙휙 넘기는 손동작 하나하나에 긴장감이 맴돌았다.
왜 프로게이머들이 앉아서 마우스와 키보드만 두드리며 컴퓨터 게임을 하는데도 땀을 흘리는지 알 것 같았다.
“샤샤에게로!”
내가 외치자 화면은 빠르게 이동해 샤샤에게 초점을 맞춘다.
혹시나 샤샤가 위기에 처해있는지 봐야 했다.
샤샤는 한 번에 다섯 개의 마법 화살을 활에 걸고 화살을 날리고 있었다.
피피피피피핑!
순간 돈 생각이 났다.
저게 돈이 다 얼마…….
띠링!
[레벨이 올랐습니다.]
“쏴! 더 쏴! 팍팍 쏘란 말야!”
지금은 돈을 아낄 타이밍이 아니었다.
저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전쟁특수였다.
폭렙업의 기회.
돈은 아이템으로 아이템은 경험치로, 또 경험치는 결국 레벨로 교환되었다.
그리고 헌터의 레벨은 결국 돈이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선순환이란 말인가!
다들 목숨을 걸고 몬스터를 잡겠지.
그게 싫으면 레벨업과는 거리가 멀어질 것이다.
하지만 나는 손가락은 좀 바쁘지만, 화면상에서 안전하게 레벨업을 한다.
줌인, 줌아웃.
손이 바쁘다.
띠링!
[레벨이 올랐습니다.]
아싸! 귀도 바쁘다.
나는 뒤를 돌아보며 직원을 불렀다.
“홍민 씨~”
뒤쪽에서 창고정리를 하던 직원이 다가왔다.
“네, 사장님.”
“창고에서 샤샤가 쓸 마법 화살 열 박스 꺼내주시고, 추가로 스무 박스 주문해 주세요.”
나홍민이 조금 놀라며 물었다.
“스무 박스나요?”
돈을 쌓아 놓으면 뭐 하나?
이럴 때 지르는 거다.
“아니요. 스무 박스 받고 열 박스 더!”
화면 너머로 수많은 생명이 목숨을 잃어갔다.
나는 주문을 외웠다.
“저건 사람이 아냐, 경험치야. 그래, 그래야만 해.”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화면을 줌아웃해서 멀리 잡았다.
개미 크기의 사람들이 벌이는 전쟁.
삶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경험치랬다.
어차피 벌어지고 있는 전쟁이다.
내가 참여하지 않아도, 샤샤가 죽이지 않아도 결국 스러져갈 운명들이다.
내가… 내가 대신 살아줄게.
그러니 나의 일부, 내 경험치가 되어주렴.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전쟁에 대한 각오를 다졌다.
“오케이!”
내가 손을 내뻗으며 다시 외쳤다.
“알파야, 제리에게로!”
내 말을 알아들은 화면이 슈우욱 이동했다.
어느 성벽 끝.
커다란 바위로 지어진 성벽의 윗부분이 비춰졌다.
성벽 끝에는 허리 정도 높이의 담이 있고 그 안쪽에서 적을 상대할 수 있었다.
성벽에는 우리 쪽 병사 몇 명이 있었고 마침 적군이 사다리를 걸어서 위로 올라오려 하고 있었다.
‘어?’
그런데 제리는 없었다.
알파가 화면을 잘못 잡은 것 같았다.
이런 적이 없었는데?
알파도 실수할 때가 있네
“알파야?”
―네?
“어딜 비추니?”
화면에서는 사다리를 타고 적병이 올라왔다.
한 명, 두 명, 세 명째 올라와 우리 쪽 병사 두 명과 엎치락뒤치락 밀고 밀리고 있었다.
그때!
적병의 목에 한줄기 붉은 선이 그어졌다.
파앗!
왜 죽는지도 모르고 죽은 적병.
파앗!
두 번째 적병의 목이 달아났다.
적병도, 아군도 당황하고 있을 때 하나 남은 적병의 가슴이 등 뒤에서부터 찔린 무언가로 인해 피가 흘러내렸다.
털썩.
적병이 쓰러졌다.
그리고 성벽에 기대어 두었던 사다리 휙 하고 괜히 뒤로 넘어갔다.
“아!”
그랬다.
어쌔신의 망토를 입은 제리.
그녀는…….
스타에서 나오는 투명한 검사 캐릭터.
그녀는 한 마리의 다크템플러였다.
나는 뻔히 제리가 있는 곳을 보여주는 화면을 쳐다보면서도 몰랐다.
그러니 적들은 오죽할까?
적병들은 자신이 왜 죽는지도 모르면서 죽어 나가고 있었다.
그래도 한참을 화면을 째려보고 있으니, 희미하게 제리의 움직임을 따라갈 수 있었다.
그래 원래 다크 템플러도 100% 투명은 아니었다.
‘어?’
제리가 성벽 아래로 뛰어내린다.
뭐야?
쟤 왜 저래?
사다리를 타고 성벽을 기어오르는 병사의 등에서 피가 솟아났다.
푸칵!
“와.”
사다리를 타고 기어오를 때 등 뒤를 막을 수 있을까?
당연히 없다.
그렇게 가볍게 한 명을 제거한 뒤 이단 점프와 부스터 신발을 이용해서 다시 성벽 위로 올라오는 제리.
그랬다.
제리의 공격 범위는 성벽 위뿐만 아니라 성벽 면도 가능했다.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 엄지척을 쌍으로 날리고 있었다.
역시 우리 운동 천재의 전투 장면은 뭐랄까 품격이 있었다.
다시 화면을 줄여 보았다.
소환수 한 명 한 명도 소중했지만, 전체적인 전투의 흐름도 파악해야 했다.
어디가 강한지.
어디가 위기인지.
혹시 돌아서 오는 병력은 없는지.
나도 나름대로 바빴다.
그렇게 화면은 보고 있는데 우리의 마법사 팀들도 보였다.
알타르는 나름 열심히 활약하고 있었다.
알타르가 외쳤다.
“파이어 레인!!!”
무려 열두 명의 마법사가 약빨에 마법진빨을 더해서 펼친 마법이었다.
자연은 가끔 재해라고도 불린다.
인간이 막을 수 없기에 그렇게 불린다.
그런 기상 재해 같은 마법.
하늘에서 눈이 내렸다.
붉은 눈꽃송이.
적의 기사들과 마법사들은 눈꽃송이를 제거하려 필사적이었다.
마나를 일으킨 검격 한 번에 눈꽃송이 하나가 사그라졌다.
하지만 이건 기사들을 위한 마법이 아니다.
물량전.
넓고, 얕게.
팔랑이는 불꽃은 어딘가 닿으면 화르륵 그 크기를 키웠다.
꽃송이 한 개가 한 뼘 지름의 불로 커졌다.
“크아아아아!”
“크아아악!”
여기저기 불에 지져 고통스러워하는 외침.
참혹한 전쟁의 모습이 화면 가득 비춰졌다.
적의 본진을 기준으로 11시 방향에서 적의 투석기가 더 가까이 접근하려 했다.
내가 샤샤에게 쪽지를 보냈다.
[샤샤야. 적의 본진 기준 11시 방향에 적의 투석기 접근.]
[넵. 라져.]
그렇게 샤샤에게 쪽지를 보내면 우리측 발리스타가 11시 방향으로 모인다.
접근하는 투석기를 향해 발리스타가 날아간다.
퍼퍼펑!
높은 곳에서 날아가는 마법이 걸린 말뚝
콰콰쾅!
괜히 가까이 접근해 보려 했던 투석기는 여지없이 박살이 났다.
공성전 무기에는 공성전 무기로 응답했다.
게다가 무릇 아래에서 위로 던지는 것보다 위에서 아래로 던지는 것이 더 센 법이다.
마법 화살을 쏟아붓고, 파이어 레인으로 지지고, 다크템플러로 썰었다.
그래도 상대는 닥치고 물량을 밀어붙였다.
애초에 몇 배나 되던 물량.
그래서 더욱 처절한 공성전이 벌어졌다.
눈 깜빡할 사이에도 수많은 생명이 그 명을 다했다.
얼마나 전투가 벌어졌을까?
나는 집중해서 참여하느라 땀을 흘리고 있는 줄도 몰랐다.
뿌우우우우우우―
베이론에서 병력을 뒤로 물리라는 뿔나팔 소리가 들렸다.
석양이 지며 적들이 물러났다.
오늘은 여기까지인가?
한 템포 쉬어가는 것 같았다.
“후아, 힘드네. 몇 시간째지?”
똑똑똑!
“배달 왔습니다.”
왔다.
나의 필살기.
문을 열고 나가자 트럭 한 대가 대형 박스를 하나 실어 왔다.
“요기 내려주세요.”
운반 기사들은 조심조심 박스를 내렸다.
깔끔한 양복을 입은 사람이 나에게 다가왔다.
영업사원이었다.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박스를 열자 모습을 드러낸 것은 네 개의 프로펠러를 단 대형 비행 드론이었다.
모습은 꼭 날개가 있는 작은 비행기에 드론의 프로펠러를 붙인 것 같았다.
“이 드론으로 말하면 마정석 엔진을 이용해 최대 시속 80km까지 날 수 있으며 한 번에 최대 30시간 비행이 가능합니다.”
오호라 드론치고는 꽤 오랫동안 날 수 있었다.
“이 날개 보이시죠. 프로펠러뿐만이 아니라 날개가 달려서 오랫동안 날아갈 수 있습니다. 프로펠러만 있는 것들은 정지하거나 정교하게 움직이는 데 그 목적이 있다면 이렇게 날개가 달린 것은 장거리 이동에 특화된 것들입니다.”
유선형 몸매를 지닌 비행체.
그리고 은빛 알루미늄을 반짝이는 프로펠러.
멋졌다.
“짐은 최대 20kg까지 실을 수 있습니다. 즉, 20kg의 짐을 실으면 속도가 조금 줄긴 하지만, 시속 50킬로미터의 속도로 스무 시간 가깝게 이동이 가능한 기체라는 것이죠. 직선거리로만 간다면 거의 천 킬로미터를 날아갈 수 있습니다. 소형 짐을 장거리로 보내는 데는 이것만 한 것이 또 없습니다.”
나는 제리를 불렀다.
“제리 소환.”
화아악.
보라색 고양이 한 마리가 나타났다.
제리는 왜 불렀냐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보았다.
내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제리야, 하늘을 날아보고 싶지 않아?”
제리는 묘한 눈빛으로 드론을 바라보았다.
고양이는 몸무게가 많이 나가지 않는다.
끽해야 5kg 정도?
뭐 집에서 먹고 자는 뚱냥이들은 그보다 많이 나가겠지만
우리 운동 천재가 뚱냥이 일리가 없었다.
내가 영업사원에게 말했다.
“자, 이 고양이에게 드론 운전법을 잘 알려주세요.”
그 말을 들은 영업사원이 당황해했다.
크크.
당황스럽겠지.
“놀리지 말아랑.”
고양이가 말을 하자 영업사원은 눈을 크게 떴다.
“헉.”
내가 설명했다.
“제가 헌터고요, 요 아이는 제 소환수예요. 그냥 고양이가 아니고, 수인족이라서 인간형으로 변할 수도 있고 사람 정도의 지능이 있어요.”
“들었냥? 이제 설명해 봐라.”
영업사원은 얼떨떨해 보였지만 이내 본분을 다했다.
“네, 고양이님. 이게 조종 장치이고 이건 머리에 써서 드론이 보는 시야를 공유하는 장치입니다. 조종은 이 버튼을 위아래로 하면 드론이 전진, 후진을 합니다. 또 이 버튼은 드론의 상하, 이건 좌우 이동, 이건 좌우 회전입니다.”
영업사원은 차분하게 하나씩 시범을 보이며 조종법을 알려주었다.
드론 위에 제리가 앉았다.
제리가 드론에 타기 때문에 지상에서 드론이 보는 시야를 공유하는 장치 따윈 필요 없었다.
드론 위에 앉은 제리가 조종기로 조종을 했다.
위이이이이이잉―
프로펠러가 돌자, 드론이 떠올랐다.
“오!”
오른쪽, 왼쪽, 올라갔다가 내려왔다가.
제리가 살짝살짝 조종하는 대로 드론이 이리저리 움직였다.
몇 번 움직이며 감을 잡는 것 같았다.
그러다.
위이이잉―
드론이 높이 올라갔다.
“어?”
그리고 날아간다.
저 멀리.
“야!”
어디까지 가냐?
드론은 저 멀리 하나의 점이 되었다.
한참을 기다렸다.
영업사원은 잠시 같이 기다리더니 이런저런 설명서와 부품들을 넘기곤 떠나버렸다.
휭~
텅 빈 공장 마당에서 쭈그려 앉아 제리를 기다렸다.
기다리다 지쳐 내가 제리에게 쪽지를 보냈다.
[제리야?]
[제리야?]
[제리야?]
[어디야?]
[돌아와~]
[ㅠㅠ]
띠링!
드디어 제리의 쪽지가 도착했다.
[집착?]
엥?
지이입착?
진짜 단언컨대 나는 여자 친구에게도 질척댄 적이 없었다.
전 여친과 이별할 때도 담담하게 쿨하게.
집에 가서 슬퍼할지라도 그 앞에서만큼은 정말 쿨하고 깔끔했다.
그런데 고양이가 나에게 집착이라니?
내상을 입은 마음이 치유되는 데 한참 걸렸다.
그즈음 제리가 돌아왔다.
부우우우웅―
드론은 창고 상공을 한 바퀴 선회시키더니 마당에 차분하게 착륙했다.
그제서야 보라색 고양이 한 마리가 꼬리를 살살 흔들며 나긋나긋하게 걸어왔다.
이제 걷는 모습만 봐도 알 것 같았다.
띠링!
[제리아나마스의 친밀도가 1 올랐습니다.]
재미있었냐고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그래, 그럼 됐다.
나의 내상 따위야.
“어때? 그걸 타고 적의 후방을 교란해볼 수 있을 것 같아?”
끄덕.
제리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내가 어디에 뭐가 있는지 찾아줄게.
나는야 옵저버.
드론이 제리를 운반하는 셔틀의 역할.
그리고 제리가 보이지 않는 강력한 검사인 다크템플러다.
이로써 조합이 완성이다.
게다가 우리의 다크는 그냥 다크도 아니고 선물함에서 무기를 잔뜩 담아서 폭탄 드랍을 떨어뜨릴 수 있는 다크다.
캬~
생각만 해도 짜릿하다.
“좋았어!”
내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침을 튀어가며 제리에게 외쳤다.
“제리야. 베이론에게 다크 드롭이 뭔지 보여주자!”
흥분한 나와 다르게.
다크드롭?
그게 뭔 소리냐는 듯 뽀송뽀송한 보라색 털을 가진 야옹이 한 마리가 나를 빤히 올려다 보았다.
그러면서 머리를 45도 기울이며 갸웃거렸다.
‘헐.’
너 그렇게 뽀송한 털로,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면서 비스듬히 머리를 기울이며 갸웃거리지 마라.
확 그냥 집착해 버릴까 보다.
금쪽같은 소환수들
— 거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