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쪽같은 소환수들-57화 (56/230)

57화. 결론은 하나다.

잔잔하게 흐르는 강물에 햇살이 비춘다.

반짝.

강물 위로 물고기 한 마리가 뛰어올랐다가 다시 떨어진다.

퐁.

조각배를 타고 물고기를 잡는 어부.

강가에서 뛰어노는 아이들.

강에 의지해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무릇 모든 문명은 강에서 시작했다.

디아론 성 역시 티라이어 강의 지류를 끼고 있었으며, 프란시아의 왕성도 티라이어 강을 끼고 있었다.

트란 산맥의 어딘가에서부터 흘러왔을 이 강은 굽이굽이 동쪽으로 흘러갔다.

강폭이 제법 넓었지만, 그 위를 가로지르는 석재 다리가 있었다.

반듯하고 잘 정돈된 다리.

다리의 모습이 왕성의 기술 수준을 말해주는 듯했다.

다그닥, 다그닥.

티라이어 강의 다리 위를 여러 마리의 말과 인원이 지나갔다.

디아론 백작과 그 일행이었다.

팬니르가 말했다.

“백작님, 프란시아 왕성입니다.”

언덕 위의 높고 넓은 성벽.

왕성의 높은 첨탑이 고고하게 내려다보는 듯 웅장하게 서 있었다.

성벽 위에는 군데군데 깃발이 나부끼고 있었으며 보초를 서는 인원들도 보였다.

백작이 말했다.

“들어간다.”

선발대의 전갈을 미리 받은 병사들이 디아론 백작에게 경례했다.

백작 정도 되는 인물이 수도에 방문하면, 성에 백작과 일행이 쉴만한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상급 기사 안톤은 늘 가던 별궁으로 일행을 이끌었다.

팬니르가 말했다.

“나는 백작님을 모시고 왕성으로 간다. 샤샤, 제리아나마스도 함께 이동한다. 가자.”

샤샤와 제리는 왕성으로 간다는 말에 살짝 긴장되었다.

하지만 주요 목격자이니만큼 직접 보고를 해야 할 것이었다.

디아론 백작, 팬니르, 샤샤와 제리 등은 왕성으로 향했다.

부드러운 곡선미와 화려한 무늬로 장식된 왕성.

프란시아 왕국의 주인인 프란시아 13세가 기거하는 곳이다.

왕국이 세워진 지 수백 년이 지났다.

그동안 수많은 몬스터의 습격과 여러 번 외세의 침략이 있었지만, 프란시아 왕국은 꿋꿋하게 모든 역경을 견디어왔다.

디아론 백작은 왕을 알현하고 싶다는 전갈을 올린 지 2시간 만에 왕을 알현할 수 있었다.

보통 이렇게 빨리 왕을 볼 수는 없었지만, 사안이 긴급했기 때문이었다.

넓은 회의실.

왕은 높은 단상 위 자리에 앉아 있었다.

단상 아래에는 여러 문무백관들이 열을 맞추어 있었다.

“디아론 백작이 알현을 요청합니다.”

신하의 말에 프란시아의 왕이 말했다.

“그래, 들어오라 하라.”

디아론 백작은 일행과 함께 왕의 앞으로 갔다.

“강녕하셨습니까? 폐하.”

“오, 디아론 백작 오랜만이오. 몬스터 웨이브가 있었다는데 피해는 없는가?”

“네, 폐하의 은덕으로 큰 피해 없이 지나갔습니다.”

“그래, 역시 디아론이요. 내 디아론 백작이 있어서 북방의 몬스터들을 잊고 지내고 있소. 허허허.”

왕은 호탕하게 웃었다.

디아론 백작이 말했다.

“폐하, 안 그래도 그 몬스터 웨이브 때문에 폐하께 직접 보고드릴 사안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뭔가?”

“네, 신이 몬스터 웨이브에 대해 알아본 결과, 사람이 일으킨 웨이브였습니다.”

왕을 포함해서 여러 대신들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웅성웅성.

디아론 백작이 말을 이었다.

“트란 산맥의 마나가 발원하는 곳이나, 마나가 군데군데 모여서 흘러가는 지점에는 어김없이 흑마법으로 만든 금속 봉이 박혀 있었습니다.”

“흑마법?”

웅성거리는 소리는 더욱 커졌다.

디아론 백작의 말이 파괴력이 있었다.

왕이 몸을 기울이며 물었다.

“그래서?”

“예, 폐하. 그래서 그 금속 봉이 박혀 있던 지점에 몰래 영상을 기록할 수 있는 마법 장치를 숨겨 두었습니다. 저희가 금속 봉을 제거하면 범인이 한 번쯤은 확인해 보러 올 수도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다들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정체불명의 마법사들이 금속 봉이 박혀 있던 곳을 확인하러 왔습니다. 그리고 그 마법사들이 어느 국가의 소속인지도 모두 확인 했습니다.”

“그래서 그곳이 어딘가?”

디아론 백작이 고개를 들며 말했다.

“베이론입니다.”

“뭐라!”

왕이 의자의 손잡이를 거세게 내리쳤다.

쾅!

“이런 잡것들이.”

베이론과 프란시아는 앙숙이다.

그런데 이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이다.

웅성대는 대신들 사이로 한 신하가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디아론 백작, 방금 말한 내용은 아주 중요한 내용 같구려. 그 말의 근거가 있소이까?”

디아론 백작이 말을 받았다.

“네, 트란 산맥의 마나가 모이는 곳에서 뽑아낸 금속 봉을 가져왔습니다. 그 금속봉에서 암흑 마나를 검출했습니다. 또한, 금속봉을 확인하러 온 마법사의 영상을 가져왔으며, 베이론에 침투하여 해당 마법사의 모습을 확인하고 왔습니다.”

오오.

여기저기서 대단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디아론 백작은 샤샤와 제리를 손으로 가리켰다.

“이쪽은 샤샤이며, 이쪽은 제리아나마스라는 수인족입니다. 이들은 직접 베이론의 마법사의 얼굴을 확인하였습니다. 샤샤, 제리아나마스 너희가 본 것을 말씀드리도록 해라.”

샤샤가 말했다.

“폐하, 저희는 베이론 왕성 내에서 트란 산맥의 마법사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마법사보다 더 높은 서클을 가진 마법사도 보았습니다. 얼굴에 검버섯이 많이 나 있고 눈썹이 흰 마법사였습니다.”

누군가 외쳤다.

“타지프!”

샤샤가 말을 이었다.

“그렇습니다. 소녀도 처음에는 누군지 몰랐으나 해당 마법사가 타지프였음을 후에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베이론 왕성에서는 대량의 군사 장비를 제작 중이었으며, 왕성 외곽에서는 키메라도 제작 중이었습니다. 타지프와 트란 산맥에서 발견한 마법사는 왕성 외곽에서 발견하였습니다.”

“대량의 군사 장비라고?”

“예, 폐하, 적어도 1만 개 이상의 검과 그 정도의 방패, 갑옷을 보았사옵니다. 이는 왕성에서만 본 것으로 다른 곳에 장비들이 또 얼마나 있을지는 알지 못합니다.”

“으음.”

“또한, 키메라 연구소로 보이는 곳에서는 다양한 몬스터를 사육하고 있었습니다. 머리는 오크, 몸은 트롤, 다리는 와일드 보어인 키메라 등 많은 수의 키메라가 돌아다니는 것을 목격했사옵니다.”

이곳 저곳에서 탄식이 흘렀다.

“저런.”

어느 대신이 앞으로 나오며 물었다.

“그런데 그 트란 산맥의 마법사라는 자는 누구인가?”

“여기 트란 산맥에서 발견한 마법사의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디아론 백작의 지시로 해당 사진이 돌려졌다.

“그, 그림의 인물은 마법진을 이용해 텔레포트를 사용하였습니다. 그래서 6서클 정도로 추정했습니다. 그런데 그자도 인식하지 못한 저희의 잠입을 타지프는 알아냈습니다.”

그때 한쪽 구석에 있던 자가 앞으로 나오며 말했다.

마법사의 복장을 하고 있었다.

“이 그림에서 보이는 자는 아마도 갤리미스로 보입니다. 타지프의 첫 번째 제자이지요. 저는 그자를 본 적이 있습니다.”

왕이 말했다.

“오, 스피오크 있었는가?”

“네, 조금 전에 왔습니다.”

프란시아 왕국의 수석 마법사이자, 왕국의 마탑주이며 7서클의 대마도사인 스피오크였다.

“흠… 그런데.”

스피오크는 샤샤와 제리를 품평하는 듯 이리저리 바라보았다.

“그대들이 왕성에 잠입하여 염탐을 하였는데, 6서클의 갤리미스는 눈치채지 못했다. 게다가 그 성질 더러운 타지프를 보고도 이렇게 멀쩡하게 여기 있다는 게…. 왜 난 영 믿기지 않을까?”

스피오크가 그렇게 말하자 동조하는 무리가 생겼다.

“맞아, 대마도사의 얼굴을 보고도 그냥 왔다는 말이잖아. 6서클에게 들키지 않은 것만 해도 엄청난 거라고.”

“거짓말인가?”

“타지프를 보고도 멀쩡했다면 이미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세뇌에 걸렸을지도 몰라.”

웅성웅성.

디아론 백작이 피식 웃었다.

훗.

“폐하.”

“오, 백작 말하라.”

“증명하겠사옵니다.”

“증명을? 어떻게?”

“증명은 여기 계신 스피오크 마탑주님께서 해주실 것입니다.”

스피오크가 물었다.

“내가?”

“예, 탑주님, 오직 탑주님과 이곳에는 안 계신 헬른 공작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스피오크는 뭔가 재미있다는 듯 말했다.

“어디 해보시오. 그 증명.”

디아론 백작이 샤샤에게 눈짓을 주었다.

샤샤가 허공에 말을 했다.

“알파 님, 민준 님께 여기 앞에 계신 스피오크 님한테 가까이 접근해달라고 전해주세요.”

나는 샤샤가 왕성에 들어가는 모습을 먼 화면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샤샤는 왕성으로 오면서 왕에게 뭐라고 말할지 나와 상의했었다.

왕에게 뭐라고 말하죠?

제 말을 믿어줄까요?

의심하면 어떻게 하죠?

민준 님의 능력을 보이라 하면 어떻게 해요?

그때 그래서 베이론을 어떻게 염탐했는데? 그럴 능력이 있나? 이런 말이 나올 줄 예상했다.

그래서 나와도 이미 얘기가 되어 있었다.

증명해 달라면 증명을 해줘야지.

띠링!

샤샤에게서 쪽지가 왔다.

[여기 앞에 계신 스피오크 님 가까이 접근해 주세요.]

보아하니 저 마법사다.

“알파야.”

―네. 민준 님.

“화면 저 앞에 누리끼리한 마법사복 입은 사람 앞으로 일직선으로 화면 확대할 거야. 최고 속도로. 준비 하나, 둘, 셋, 지금!”

―갑니다.

화아악!

화면이 최고 속도로 앞으로 확대되었다.

고배율 카메라의 초점을 확 당기듯 화면이 마법사의 코앞으로 다가갔다.

마법사의 눈, 코 정도가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화면 가득 나타났다.

4K화질, 아니 8K 화질은 되는 선명한 화면 해상도.

“웩.”

다 가진 얼굴이었다.

여드름 흉터, 주름, 기미, 주근깨, 쥐젖, 각종 털 등 얼굴에 가질 수 있는 것은 다 가졌다.

미안하다. 내 눈아. 저런 걸 확대해서 보게 하다니.

이 동네 사람들은 피부관리라는 개념이 없을 것 같았다.

이참에 마스크 팩 좀 팔아 봐?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서서히 할배의 동공이 커진다.

8K 화면으로 보니 동공이 커지는 모습까지 생생하다.

뜨아 하며 할배의 코 평수가 넓어지고 뭔가 촤악 펼쳐지며 화면이 뒤로 물러나졌다.

“오~”

화면 뒤로 물리는데

할배, 솰아있네.

샤샤가 민준에게 쪽지를 보내고 3초쯤 지났다.

스피오크가 비명을 질렀다.

“앗!!”

촤아아앙!

스피오크가 깜짝 놀라며 배리어를 펼쳤다.

7서클 마도사의 내공이 꾹꾹 담긴 배리어였다.

왕이 물었다.

“뭔가?”

스피오크가 대답했다.

“폐하, 죄송합니다. 너무 놀라서 그랬습니다.”

스피오크가 깜짝 놀라하며 배리어까지 펼치자 다른 사람들이 호기심을 가졌다.

모두들 아무 일도 없었는데 왜 저러나 하는 눈빛이었다.

스피오크가 중얼거렸다.

“그렇군. 그런 거였어.”

스피오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폐하, 방금 저는 누군가의 시선을 느꼈습니다. 그것도 매우 가까이, 제 얼굴에서 한 뼘쯤 되는 곳에서 저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다들 깜짝 놀랐다.

스피오크는 혼자 박수를 짝 치더니 설명을 했다.

“저기 샤샤, 제리아나마스는 아마도 저조차 가까운 거리에 있어야 느낄 수 있는 염탐 마법을 익히고 있는 것 같습니다.”

스피오크는 주변을 돌아보며 말했다.

“공간에 대한 깨달음은 7서클은 되어야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베이론의 6서클인 갤리미스에게는 걸리지 않고 7서클인 타지프에게는 걸렸겠지요.”

스피오크는 다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여기서 저와 소드마스터이신 공작님만 증명이 가능하다는 말도 그 뜻이었을 것입니다. 다른 이들은 바로 앞에서도 느낄 수 없다는 그런 뜻이었을 것입니다.”

스피오크가 디아론을 보며 말했다.

“훌륭한 인재를 거두었소.”

디아론 백작이 웃으며 감사를 표했다.

“감사합니다.”

스피오크가 말했다.

“폐하, 신의 생각에 여기 샤샤라는 아이가 말한 것은 모두 사실일 것으로 생각되옵니다. 이들은 쉽게 들키지 않고 베이론을 들여다볼 능력이 있습니다.”

왕이 말했다.

“스피오크가 이렇게 보증하는데 짐이 믿지 않을 수 없겠구려. 좋다, 샤샤가 말한 것을 모두 믿겠소.”

“황공하옵니다.”

왕이 외쳤다.

“저 간악한 베이론이 몬스터 웨이브를 일으켜 디아론 백작령을 공격했다. 이는 명백한 침략행위다. 저 베이론에게 벌을 내릴 방법을 논하라.”

그러자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일단 경고문을 보내야 합니다.”

“경고문이 필요할까요? 이미 상대는 전쟁 준비 중입니다.”

“확실합니까? 상대가 전쟁 준비 중이란 건 거 알아봐야 합니다.”

“첩자를 보내야 합니다.”

“그러다 먼저 훅 밀고 들어오면 어떻게 합니까?”

“우리도 준비해야 합니다.”

“그럼 우리도 싸워야지.”

왕이 말했다.

“여러 대신들의 여러 의견은 좋소. 우선. 베이론을 더 자세히 알아볼 인원들을 수배해 보아야겠소. 작전장군?”

왕의 호명에 갑옷을 입은 기사가 말했다.

“네, 폐하.”

“베이론이 벌이고 있는 작당을 더 자세히 알아 오시오.”

“받들겠사옵니다.”

왕이 모두를 돌아보며 말했다.

“베이론에 대해 더 알아보는 것은 알아보는 것이고, 한 대 맞고 가만히 있으면 안 되지 않겠소. ”

모두 왕의 명을 경청했다.

“결론은 하나요. 싸워야지. 전쟁을 준비하라.”

“충!”

이 주일 후.

프란시아 왕국은 디아론 영지의 몬스터 웨이브를 베이론 왕국이 일으킨 것으로 확정하였으며, 베이론 왕국에 외교적인 방법을 통해 강력하게 항의했다.

하지만 베이론 왕국은 모르쇠로 일관했다.

다시 이 주일 후.

프란시아 왕은 대신들에게 전쟁을 준비할 것을 명했다.

“육 개월의 시간을 줄 것이오. 베이론을 한 방 먹일 테니 준비를 하시오. 전쟁을 준비하시오.”

하지만 육 개월의 시간 동안 전쟁을 준비하라는 프란시아 왕의 명령을 신하들은 제대로 수행할 수 없게 되었다.

베이론이 먼저 국경을 넘었기 때문이었다.

금쪽같은 소환수들

— 거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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