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쪽같은 소환수들-55화 (54/230)

55화. 꼬리

샤샤가 나에게 백작과의 회의 결과를 말해 주었다.

“민준 님, 백작님과의 회의에서 민준 님이 주신 사진을 회의에 참가한 여러 사람에게 보여드렸어요. 그런데 알타르 님이 사진에 나온 마법 지팡이가 베이론의 마법사들이 쓰던 것들과 비슷하다고 했어요.”

베이론?

그건 어디지?

낯선 이름에 잠시 고개를 갸웃했다.

샤샤가 말했다.

“베이론은 우리 왕국의 옆에 있는 왕국이에요. 대대로 우리와 사이가 좋지 않은 왕국이에요.”

사이 나쁜 이웃 왕국.

우리나라와 일본 같은 사이인가?

샤샤가 말을 이었다.

“몬스터 웨이브가 그 금속봉 때문이라면 사람이 한 짓인 것이죠.”

“그렇지.”

“그런데 그 금속봉을 사진상의 인물들이 설치했는데 그들이 가지고 다니는 스태프가 베이론에서 주로 사용하는 모양이라는 것이죠.”

내가 거들었다.

“그런데 마침 그 베이론이란 왕국과는 사이가 별로였던 관계라는 것이구나.”

샤샤가 손뼉을 치며 말했다.

“네, 그렇죠. 그래서 백작님이 왕궁으로 가서 보고하기로 했어요.”

음.

확실히 베이론 왕국이 수상하다.

이웃한 왕국이라면 여러 가지 이권도 걸려있을 듯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직 베이론이 확실한 범인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사이가 안 좋은 애가 범인과 비슷한 물건을 가지고 있긴 한 것인데···….

그놈이 베이론 왕국의 마법사란 걸 확인해 보아야겠다.

내가 허공을 보며 알파를 불렀다.

“알파야.”

―네. 민준 님.

“베이론을 뒤져봐야겠어. 베이론 왕국으로 가자.”

―알겠습니다.

늘 디아론 영지에 맞추어두었던 화면이 높이 떠올랐다.

그리고 화면은 빠르게 날아갔다.

슈우욱.

화면은 베이론 왕국을 향했다.

한참을 날아갔다.

화면은 넓은 평야 지대를 지나간다.

드문드문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넓게 펼쳐진 평야를 스쳐 갔다.

프란시아 왕국에는 높은 산지가 많았던 것과 대조적인 지형이었다.

그 넓은 평야 지대에는 누렇게 익은 곡식들이 펼쳐졌다.

어느 순간.

천천히 느려지는 화면에 연한 황토색 성이 보였다.

드론으로 내려다보는 듯한 각도로 보이는 성은 삼중 구조로 되어 있었다.

최외곽 성곽, 안쪽의 성곽, 그리고 다시 제일 안쪽 성곽.

제일 안쪽 성곽에는 높은 탑이 네 방향에 있었다.

화면을 조금 가까이 당겼다.

“오호~”

생각보다 컸다.

높은 하늘에서 내려다볼 때는 뭔 성을 삼중 구조로 만들었지?

그러면 성벽과 성벽 사이가 좁지 않나?

이런 생각이 잠시 스쳤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성은 꽤 넓었다.

그래서 가장 바깥쪽 첫 번째 성벽과 두 번째, 세 번째 성벽의 간격도 상당히 넓었다.

그래 이렇게 크니까 이중도 아니고 삼중 구조로 성을 짓지

나는 옆에서 함께 화면을 보고 있는 샤샤에게 말했다.

“샤샤야, 잘 봐. 이제 우리는 여기서 그 마법사들을 찾아봐야 해.”

“넵.”

샤샤가 손가락으로 눈을 크게 뜨는 시늉을 했다.

그리고 샤샤가 제리를 불렀다.

“제리야~ 뭐하니~”

혼자보다는 둘, 둘보다는 셋이 좋을 것 같다.

그런데 날 듯이 달려올 제리를 기대했는데 뭘 하는지 잘 보이지 않았다.

일단 샤샤와 함께 정찰을 시작했다.

“알파야, 일단 제일 가운데로 가보자. 여기 왕 얼굴부터 좀 보자. 혹시 알아? 마법사들이 왕에게 보고하고 있을지?”

슈욱.

화면이 왕성으로 다가갔다.

스치는 화면이 드론을 타고 그들을 지나가는 것 같았다.

문이 닫혀 있으면 문을 뚫고 안을 바라보는 드론.

정말 이 화면은 글리제 세상에서는 사기급 능력인 것 같았다.

어디가 왕성인지 조금 헤맸지만, 곧 찾을 수 있었다.

가장 화려한 장소, 많은 이의 조아림을 받는 자

궁성에는 베이론 왕이 있었다.

베이론 왕은 신하들과 회의하는 듯했다.

많은 신하가 모여 있었다.

조금 호기심이 들었다.

나는 여기까지 온 김에 베이론 왕을 조금 더 가까이 보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손가락을 화면을 향한 후 엄지와 검지를 벌렸다.

이렇게 하면 화면이 줌인 되는 것이었다.

화면이 확대되며 베이론 왕이 다가왔다.

천천히.

조금 더.

얼굴 좀 볼까?

“어?”

그때 갑자기 왕의 뒤에 있던 누군가가 왕의 앞으로 나왔다.

화면에서 왕을 가렸다.

뒤이어 여러 기사가 베이론 왕을 감싸는 모습.

뭔가 부산스러웠고 급작스러웠다.

“뭐지?”

나 때문인가?

걸린 거야?

왕의 앞을 가리던 자는 주위를 둘러보며 경계했다.

샤샤가 말했다.

“저희 걸린 것 같은데요?”

나는 슬그머니 엄지와 검지를 줄여 화면을 뒤로 물렸다.

와, 이거 만만치 않네.

왕의 얼굴은 보지 못했다.

나는 왕의 뒤편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기사를 향해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알파야? 쟤 뭐야?”

―네. 베이론 왕국의 소드마스터입니다.

“소드마스터?”

―소드마스터 급의 인물이면 저희의 화면을 느낄 수 있습니다. 조금 더 가까이 갔으면 검으로 저희 화면을 무력화시킬 수도 있습니다. 그들의 검은 공간 자체를 벨 수 있으니까요.

와 놀랍다.

“공간을 벤다고?”

―네, 마스터의 경지에 오르면 그럴 수 있습니다.

조금 걱정이 됐다.

“그럼 내가 위험한 건 아니고?”

―일반적인 소드마스터 정도의 수준으로 공간을 격하고 지구에 계신 민준 님을 가격할 수는 없습니다. 그 정도면 마스터보다 더 위의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구나.”

화면이라고 만능은 아니었다.

하긴 예전에 샤샤와 계약하기 전에도 어느 기사의 외침에 화면이 뒤로 물러난 적이 있었다.

뭐라고 했더라.

나보고 꺼지라고 했던 것 같은데.

흥, 칫, 뿡.

내가 꼭 샤샤와 제리를 그 기사보다 더 키워주고 말 테다.

아무튼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마스터 급은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편이 좋겠다.

공간을 벤다는 게 뭔 소리야.

화면은 왕에게서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그들을 살폈다.

음. 조금 떨어지니 감지하지 못하는 듯했다.

알았으면 달려왔겠지.

조금 멀지만, 대충은 보였다.

붉고 펑퍼짐한 옷을 입은 왕.

그리고 그를 지키고 있는 갑옷 입은 기사.

저기요?

내 관심사는 댁들이 아니거든요?

그렇게 긴장해서 두리번거릴 거 없어요.

나는 왕성을 둘러보며 마법사가 없나 찾아보았다.

그렇게 한 시간쯤 둘러보았나?

넓어서 볼 것도 많다.

어?

“샤샤야. 쟤 마법사 아냐?”

주황색 바탕에 금색 무늬가 들어간 화려한 로브를 두른 남자를 발견했다.

게다가 한 손에 들고 있는 스태프.

나 마법사요 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제리가 말했다.

“저 스태프.”

그래 우리가 트란 산맥에서 보았던 놈과 비슷한 모양의 스태프다.

스태프의 몸체는 당구 큐대처럼 생겼는데 큐대보다는 조금 굵었다.

그리고 스태프의 머리 부분은 금색으로 육각형 모양의 금속판이 달려있었다.

그 금속판의 중앙에 박힌 보석.

굵은 마정석처럼 보였다.

그리고 금속판에는 마치 귀 모양처럼 두 개의 작은 날개 비슷한 것이 달려있었다.

저런 모양이 이 동네 유행인가?

마법사 알타르와 그 후배들은 자연산 나무를 사용하던데 여긴 저렇게 당구 큐대처럼 생긴 스태프를 쓰나보다.

스태프도 동네마다 차이가 있는 듯했다.

나는 샤샤 무릎 위에 올라가 있는 제리를 보았다.

근데 제리야, 너 언제 왔냐?

뭐 아무튼 내가 화면을 보며 말했다.

“자, 화면 속 마법사여. 어서 너의 대장에게 우릴 모셔봐라.”

마침 마법사는 어딘가로 바쁘게 가고 있었다.

걷다 뛰다 급한 모양이었다.

헨디크.

베이론 왕국의 중급 마법사 헨디크는 바쁜 걸음을 재촉했다.

“헛둘, 헛둘.”

걷다가 뛰고, 힘들면 걷다가 다시 뛰었다.

배 나온 마법사라서 뛰기가 조금 힘들었다.

마법이라도 쓰고 싶었지만, 궁성 내에서 허락되지 않은 마법을 쓰다 걸리면 안 된다.

부지런히 다리를 재촉했다.

아직 스승님들이 올 시간은 멀었지만, 미리 가서 준비하고 있지 않으면 크게 혼이 나기 때문이었다.

서둘러 뛰어가는 곳은 마탑의 중앙 제작실.

왕성 밖으로 나가셨던 스승님께서 돌아오셨다.

스승님께서 시킨 일들이 많았다.

헨디크는 중앙 제작실에 들어갔다.

수천 명의 인원.

땅, 땅, 땅!

망치질하는 소리가 들리고,

“1조, 물품 검수 완료요.”

“방패 100개 마감했습니다.”

“이쪽이요~”

물건 제작과 운반에 관해 소리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헨디크는 제작실에서 제작이 이루어지는 모습을 잠시 살피다가 관리인에게 갔다.

관리인은 뭔가 나팔 비슷한 것에 입을 대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2조 물건 빼, 물건 빼라고! 야! 어? 헨디크 님 오셨습니까요?”

헨디크가 다가가자 관리인이 냉큼 달려와 꾸벅 인사를 했다.

“일정은 이상 없이 맞출 수 있지?”

“아이고, 물론입니다요.”

관리인의 대답에 헨디크가 나직하게 말했다.

“스승님이 물량에 대해 관심이 많으시다.”

그 소리를 들은 관리인이 긴장한 채 헨디크만 바라보았다.

헨디크는 품에서 뭔가 종이를 꺼냈다.

“여기 적힌 품목들을 준비해서 지금 바로 마차에 실어라.”

“알겠습니다요.”

한참을 물건을 준비하던 관리인은 헨디크가 타고 갈 마차에 이것저것 물건을 실었다.

나는 그 모습을 쭉 지켜보았다.

이곳, 제작실.

규모가 상당히 컸다.

나는 글리제 세상에서는 이정도 인원이 모여 뭔가를 만들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도대체 여긴 뭐지?

뭘 만들고 있나 구경해 보았다.

창, 칼, 방패, 갑옷.

병장기였다.

여긴 공장인가?

그런데 이런 규모라니.

지구의 병장기 제작 공장이라고 해도 믿을만한 규모였다.

뭘 하려고 이렇게 많은 병장기를 찍어낼까?

헨디크는 마차를 타고 열심히 달렸다.

“이랴!”

다그닥, 다그닥!

마차가 한참을 달려 도착한 곳은 수도 외곽이었다.

인적은 뜸했지만, 건물들이 많이 있었다.

창문 없는 단층 짜리 건물.

드문드문 감시하는 보초들이 눈에 띄었다.

헨디크가 건물의 어느 입구에 도착했다.

그러자 건물에서 몇 명의 인부들이 나와 헨디크의 마차에 실린 짐을 날랐다.

나는 여긴 또 뭐 하는 건물인지 살펴보았다.

쑤욱.

화면이 건물들을 파고들며 이리저리 살폈다.

어?

트롤이다.

뭐지?

왜 여기 트롤이 있는 거지?

트롤 사육장인가?

트롤은 천장이 막힌 동굴 같은 곳에 있었다.

잠시 트롤을 살펴보다가 다른 곳들을 살펴보았다.

다른 곳에는 오크, 베어울프, 와일드 보어, 타란툴라 등등 여러 가지 종류의 몬스터들이 있었다.

동물원인가?

그러다 다시 마법사들을 발견했다.

여긴 꽤 여러 명의 마법사가 있었다.

여러 명의 마법사가 몬스터를 다루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방을 들어갔다.

“꺅!”

샤샤가 소리를 질렀다.

“음…….”

나 역시 침음성이 나왔다.

그곳엔 괴물이 있었다.

말 그대로 괴물이었다.

몬스터가 아닌 괴물.

내가 물었다.

“이게 뭐지?”

“저도 모르겠어요.”

제리가 말했다.

“여러 마리의 몬스터를 합한 것 같다. 잘 봐라. 머리는 오크, 몸은 트롤, 다리는 울프.”

그렇구나.

몸의 한 부위씩 보면 그런 것 같았다.

그러니까 몬스터를 잘라다 붙이는 작업을 하는 건가?

여긴 뭐 하는 곳이지?

이상했다.

그 부근의 방들을 하나씩 살펴보았다.

뭔가 수상한 일들을 하는 건물

그러다 왕성에서 보았던 마법사를 발견했다.

다른 마법사들을 만나는 것 같았다.

잠시 그를 다시 지켜보았다.

마법사 헨디크가 몬스터 관련 업무를 하는 자들을 닦달했다.

“스승님이 오셨다! 긴장해라!”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이 긴장하며 일을 했다.

잠시 후.

문이 열리고 세 명의 마법사가 들어왔다.

검붉은 바탕에 금빛 무늬가 수놓아져 있는 로브를 입은 마법사들.

그중 한 명의 마법사를 보자 나는 화면을 확대할 수밖에 없었다.

회색 머리, 반쯤 희끗희끗한 눈썹, 파란 눈동자에 큰 코, 귓불 없는 귀.

한 뼘 정도 길이의 회색 긴 수염.

트란 산맥의 마정지에서 보았던 그놈이었다.

“그놈이야!”

“아!”

“마정지에서 봤던 마법사다.”

이로써 베이론 왕국이 트란 산맥의 몬스터 웨이브를 일으킨 범인임이 확실해졌다.

“이번엔 안 놓친다.”

우리는 이제 마정지에서 보았던 마법사를 화면에 중심으로 고정했다.

마정지에서 보았던 마법사는 건물 곳곳을 다녔다.

꼭 뭔가를 시찰하고 점검하는 듯했다.

그러다 어느 방에 다다랐다.

괜스레 옷차림까지 다시 점검하는 마법사.

좀 전까지 잔뜩 거드름을 피우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조신한 자세로 노크를 했다.

똑똑.

잠시 후, 문이 열렸다.

끼이익.

문이 열리자 그놈이라 불린 마법사가 들어갔다.

이 안엔 또 누가 있을까?

나는 화면을 이용해 방 안으로 뒤따라 들어갔다.

처음 보는 늙은 마법사가 있었다.

회색빛 허름한 로브를 걸친 마법사.

희고 구불거리는 머리카락.

길고 흰 눈썹.

얼굴 곳곳에 핀 검버섯.

깊게 파인 주름살.

매부리코에 축 처진 볼살.

한눈에 보아도 나이가 많아 보였다.

하지만 뭐랄까?

그의 눈빛만은 형형하게 살아있었다.

빛나다 못해 이글이글 타오를 것 같은 눈빛.

그 눈빛은 정확히 나를 보고 있었다.

그가 말했다.

“꼬리를 달고 왔구나.”

금쪽같은 소환수들

— 거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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