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쪽같은 소환수들-54화 (53/230)

54화. 얼굴 기억했다

나는 얼른 알파를 불렀다.

“알파야.”

―네, 민준 님.

“마정지 좀 띄워봐.”

디아론 성을 띄워놓았던 화면이 빠르게 마정지를 향해 날아갔다.

슈우욱.

한참을 빠르게 날아간 화면이 서서히 느려졌다.

화면이 마정지 근처에 다다르자 나는 화면을 미세 조정했다.

“어어어어, 거기 오른쪽. 아니, 거기. 확대, 오케이.”

알파가 마정지를 화면에 비췄다.

그곳엔 의문의 사람들이 있었다.

검은 후드를 쓰고 있는 사람들.

무언가 스태프를 들고 있는 사람도 있고 바닥을 관찰하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하나, 둘, 셋.

총 세 명이었다.

그들은 마정지에 금속 봉을 설치해둔 부분을 살폈다.

금속봉에 문제가 생긴 것을 깨닫고 확인하러 온 모양이었다.

이제 금속봉이 제거된 것을 알았겠지.

나는 유심히 그들을 살폈다.

화면이 녹화 중이겠지?

혹시 녹화가 안 될 수도 있으니 나는 그들의 모습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맞다.

나 혼자 관찰하는 것보다는 소환수들과 함께 관찰하는 것이 좋을 듯했다.

“샤샤 소환.”

화아악.

“민준 님!”

샤샤도 중요한 순간임을 아는 듯 긴장했다.

“샤샤야, 얼른 이리 와서 화면 좀 봐.”

샤샤도 급하게 달려와 화면을 바라보았다.

“이놈들인가 보죠?”

“응, 그런 것 같아.”

샤샤도 화면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내 소환수는 둘이다.

나는 큰 소리로 제리를 불렀다.

“제리야~”

휙.

“불렀나?”

어디선가 고양이 한 마리가 날아왔다.

“잘 봐둬. 디아론 영지의 몬스터 웨이브를 일으킨 주범들이야.”

두 소환수 모두 화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나 혼자보다는 여럿이 보는 게 낫잖아. 생김새, 특징, 잘 지켜봐. 저놈들이 어디서 온 놈들인지 밝혀내야 해.”

화면 안의 인물들은 잠시 마정지에 머물렀다.

이리저리 마정지를 훑어보았다.

그들은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마정지에서 물러나기 시작했다.

내가 알파를 불렀다.

“알파야.”

―네.

“저놈들 놓치지 않게 잘 따라붙어.”

정체 모를 인원은 산을 달려서… 아니, 날아서 내려갔다.

탁, 탁.

발이 땅에 닿는 듯했지만, 한걸음에 수백 미터를 날아갔다.

날아가는 모습만 보아도 보통 놈들이 아니었다.

그 모습이 나를 더욱 긴장하게 했다.

그래도 한번 화면에 잡혔으니 놈들을 놓칠 리 없었다.

날아가던 놈들이 멈췄다.

그런데 그들이 멈춰 선 곳의 바닥에는 정체 모를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다.

지름이 20m는 되어 보이는 커다란 마법진.

후드를 쓴 인원 중 한 명이 후드를 벗었다.

이때다 싶어서 나는 화면을 확대했다.

녀석의 얼굴이 화면 전체에 가득 찼다.

회색 머리, 반쯤 희끗한 눈썹, 파란 눈동자에 큰 코, 귓불 없는 귀.

눈가에 주름이 있으며 광대가 제법 튀어나왔다.

한 뼘 정도 길이의 회색 긴 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나는 그 얼굴의 점 하나하나 주름살 하나하나를 노려보았다.

“잘 봐둬.”

파아앗!

환한 빛이 주변을 비추었다.

그리고 그들이 사라졌다.

“알파야!”

―네.

“추적 가능해?”

―아니요. 어디로 간지 알 수 없습니다.

이런 제길.

얼굴을 보았는데 누군지 알 수 없었다.

내가 외쳤다.

“CCTV.”

샤샤와 디아론 영지의 사람들이 화면 저장장치라고 알고 있는 캠코더.

녹화 영상을 가져와야겠다.

내가 말했다.

“마정지에 있는 화면 영상을 가져와야 할 것 같아.”

나는 제리를 쳐다보았다.

트란 산맥을 빠르게 주파하는 것만 따지면, 기사단장 팬니르도 제리를 따라잡지 못할 것이다.

제리가 고개를 까닥거리며 말했다.

“마정지에 다녀와야 하나? 맡겨둬.”

제리는 당장이라도 달려갈 것 같았다.

“잠시만, 그냥 보낼 수는 없지. 나가자.”

택시를 불렀다.

샤샤, 제리와 함께 온 곳은 헌터 마켓이었다.

“제리가 마정지까지 다녀오려면 어떤 형태로 가는 게 좋을까? 인간형? 드리마스 형? 아니면 묘족?”

“트란 산맥을 달려가기에는 드리마스가 가장 낫다.”

역시 그렇군.

산을 달리는 한 마리 재규어의 모습을 떠올렸다.

“제리야. 그러면 드리마스의 형태로 변형을 해줄래?”

슈우욱.

고양이 형태의 제리가 드리마스의 형태로 변했다.

“됐나?”

“응.”

나는 샤샤와 제리와 함께 헌터 마켓을 쇼핑했다.

장소가 장소인지라 재규어만 한 야수가 어슬렁거려도 힐끔 쳐다만 볼 뿐,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헌터 마켓 내부의 작은 상점.

[테이머 전용 마켓]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자 가게 안을 어슬렁거리는 여러 동물이 우릴 반겼다.

“어서 오세요.”

나는 점원에게 제리를 보여주며 말했다.

“민첩, 은신 위주의 물건으로 이 아이가 착용할 만한 아이템이 있을까요?”

점원이 방긋 웃으며 말했다.

“당연하죠. 딱 맞게 오셨습니다.”

* * *

트란 산맥의 깊은 숲속.

울창한 나무들 사이에서 갈색 등줄기 오크들이 정찰하고 있었다.

갈색 등줄기 오크들은 최근 개체 수가 크게 줄어서 새롭게 마을을 구성 중이었다.

“크웨에에엑!”

다른 몬스터들이 있는지 잘 살피라는 뜻이다.

“쿠와아아악!”

알았다는 뜻이다.

휭~

바람이 불었다.

방금 이야기를 나눈 두 오크가 서로를 바라보았다.

갑자기 웬 바람이지?

이런 의미였다.

잠시 머뭇거리는 오크들.

하지만 두 오크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신들이 하던 일을 마저 하기 시작했다.

이런 일은 트란 산맥 곳곳에서 일어났다.

산맥의 상위 포식자 중 하나인 트롤도 지나가는 바람에 잠시 고개를 갸웃했다.

샤벨 타이거 무리도 지나가는 바람을 그저 시원하게 맞았다.

몬스터들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각자 자기 할 일을 했다.

휙, 휙.

바람처럼 제리가 산을 올랐다.

제리가 착용한 아이템.

【은신용 하네스】

▷ 등급 : 상급

▷ 착용한 동물의 기척을 대부분 감춘다.

【동물용 민첩의 신발】

▷ 등급 : 상급

▷ 착용한 동물의 민첩 30 상승

그리고 제리가 중간중간 섭취하는 물약.

【스테미너 포션】

▷ 등급 : 중급

▷ 스테미너 상승

【민첩 포션】

▷ 등급 : 상급

▷ 삼십 분 동안 민첩 40 상승

아이템빨에 물약빨까지.

“이단 점프.”

그리고 스킬빨까지 추가.

바닥을 한 번 딛고, 한참을 날아가다 떨어지기 전 다시 공중을 딛는다.

그래서 제리는 거의 100m에 한 번 땅을 디딜 뿐이었다.

사 일.

석 달 동안 탐사대가 다녀온 길을 제리가 다녀오는 데 걸린 시간이다.

물론 탐사대는 몬스터 사냥도 하고, 여러 마나의 맥을 찾아 돌아다니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런 것을 감안해도 놀라운 속도다.

제리가 디아론 성에 도착하자 나는 제리를 소환했다.

화아악.

마치 완주한 마라톤 선수를 맞이하는 듯 나와 샤샤는 제리를 격려했다.

“제리야, 고생 많았어. 여기 물 좀 마셔.”

“대단해. 아주 그냥 바람이던데?”

그 말을 들은 제리가 물었다.

“보고 있었나?”

끄덕.

“그럼. 내 소환수가 열심히 뛰고 있는데, 응원해 줘야지. 그리고 혹시 알아? 기척을 감추긴 했지만, 다른 몬스터와 싸움이 일어날 수도 있잖아.”

“흥, 웬만한 몬스터는 나한테 안 된다.”

“물론 그렇지.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 내가 도와줄 일도 있을 수 있으니까. 여차하다 불리하면 소환해버리면 되니까.”

“그렇군.”

제리는 선물함에서 가져온 캠코더를 꺼내서 나에게 내밀었다.

마정지에 숨겨둔 캠코더는 총 3개.

캠코더는 스파이 캠으로 겉보기에는 자연물 같이 생겼다.

게다가 글리제의 사람들은 캠코더라는 것 자체를 모르기 때문에 자신이 찍히고 있다는 생각 자체를 못 했을 것 같았다.

나는 캠코더의 파일을 열어 보았다.

캠코더에는 날짜별로 많은 파일이 있었다.

파일을 하나둘 열어 보았다.

여기다.

놈들이다.

나와 샤샤, 제리는 파일을 한참이나 들여다보았다.

아쉽게도 얼굴이 완벽하게 나오는 모습은 없었다.

하지만 후드 아래로 얼굴이 절반 정도는 드러났다.

코, 입 그리고 턱수염.

나는 화면을 중간중간 멈추면서 화면 캡처했다.

그리고 프린트.

여러 장 놈들의 모습을 출력했다.

이제 디아론 백작에게 넘길 차례.

“샤샤야. 이 사진을 디아론 백작에게 넘겨.”

“네.”

샤샤가 나의 미션을 받고 디아론 성으로 돌아갔다.

그래, 디아론 성의 사람들도 이 단서를 가지고 열심히 찾아보겠지.

이제 나는 잠시 또 다른 단서가 나오기를 기다리면 될 차례였다.

“미야옹~”

“어?”

제리는 어느새 다시 고양이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제리야.”

제리가 나를 쳐다봤다.

“근데 넌 백작성으로 안 가? 듣기로는 영주가 너한테도 집을 줬다는데?”

조금 전까지 야옹거리던 제리가 내 말을 듣더니 사람 말을 했다.

“가라는 말인가?”

기분 나빴나?

나는 두 손을 저으며 말했다.

“아니, 가라는 말은 아니야. 푹 쉬라고. 집이 편할까 봐 그랬지.”

고양이는 다시 고개를 돌려 유유히 걸어갔다.

휙휙.

제리가 창고 지붕 위로 올라갔다.

거참.

왠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집사가 된 기분이었다.

지붕 위의 고양이.

왠지 제리가 창고를 지키는 고양이가 된 것 같았다.

문득 창고에 비싼 물건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몬스터 사체.

그 몬스터 사체들은 마정석을 빼지도 않은 채 들어온다.

그리고 알타르로부터 전달되어 오는 물건들.

마법 처리된 원단부터 완성형 명품도 있다.

창고에 도둑이 들면 어떡하지?

문득 걱정되었다.

아, 물론 도둑이.

* * *

샤샤는 출력된 사진을 들고 백작성으로 갔다.

우선 샤샤는 행정관을 만났다.

차이세 행정관.

행정관은 샤샤의 이야기를 듣고 사진을 보았다.

그리고 곧 회의를 소집했다.

샤샤가 중요 물증을 가지고 왔다는 소리에 백작도 한걸음에 달려와 회의에 참석하였다.

백작이 사진을 보며 물었다.

“이 그림이 무엇이냐?”

회의에는 샤샤도 참석했다.

“지난 트란 산맥 탐사대는 산맥의 마정지를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암흑 마나의 흔적이 발견된 금속 봉을 발견했습니다.”

백작도 익히 알고 있는 이야기라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곳에 보이는 모습을 눈에 보이듯 저장하는 마법 저장장치를 설치해두었습니다.”

백작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그런 마법 저장장치가 있음에 신기해하였다.

백작이 알타르를 호명했다.

“알타르.”

“네, 백작님.”

“저 말이 무슨 뜻이냐?”

“말 그대로 사람의 눈에 보이는 모습을 그대로 그림으로 기록하는 장치를 말합니다. 저도 처음 보았을 때는 어찌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이게 다 샤샤의 마스터인 소환술사의 물건입니다.”

백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계속 말하도록.”

“네, 백작님. 그 마법 장치뿐 아니라 영상 장치에 특별한 사건이 기록되면, 예를 들어 사람이 찍히면 알림이 울리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전에 알림이 울렸습니다.”

“오오!”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저의 동료인 제리아나마스가 트란 산맥에 다시 다녀와 영상 장치를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마정지의 낯선 인물들을 사진… 그러니까 눈에 보이는 대로 그려주는 마법 장치로 그려온 것입니다.”

“그러면 이 인물들이 그 금속 봉과 관련이 있는 인물인가?”

“저와 제리아나마스, 그리고 저의 마스터는 그들이 금속봉이 박혀있던 자리를 관찰하는 모습까지 보았습니다. 그들이 마정지에 그 금속 봉을 심은 자들이옵니다.”

아쉽게도 그들은 후드를 뒤집어써서 얼굴이 완벽히 나오지 않았다.

가장 자세히 나온 얼굴이 코, 턱 정도 나온 모습이었다.

“이들이 누군지 알아본 자가 있는가?”

회의에 참가한 이들은 서로 소곤거리며 누군지 이야기했지만, 확실하게 알겠다는 사람은 없었다.

샤샤가 말했다.

“그들은 이 영상이 저장된 곳을 벗어나 마법진을 사용하여 사라졌습니다. 그때 스태프를 들고 있던 인물이 후드를 벗었습니다. 저는 그자의 얼굴을 똑똑히 보았습니다. 다시 본다면 확실히 알아볼 수 있습니다.”

백작이 말했다.

“그렇다면 누군지 의심되는 자가 있으면 얼굴을 알아볼 수 있겠구나.”

“네, 그렇습니다.”

그때 알타르가 손을 들었다.

다른 사람들이 알타르를 주목했다.

“마법진을 사용해 사라졌다면 이는 텔레포트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리고 텔레포트로 그림 속의 세 인물이 모두 사라졌다면, 대단위 마법인 매스 텔레포트일 것 같습니다. 매스 텔레포트는 7서클 마법입니다. 마법진의 도움을 받았다 해도 6서클입니다.”

사람들은 더욱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6서클이면 마도사급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6서클의 마도사입니다.”

알타르가 다시 말했다.

“그리고 저 스태프. 손잡이 부분을 제외하고는 아주 곧은 모양입니다. 스태프의 모양도 국가적으로 유행하는 모양이 좀 다릅니다.”

알타르는 자신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예전에 베이론 왕국의 마법사들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때 그들이 들고 다니던 모양이 저 모양과 꽤 유사합니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더 커졌다.

“베이론?”

“베이론이 배후였던 거야?”

“이 빌어먹을 베이론!”

베이론 왕국은 프란시아 왕국의 동쪽에 있는 왕국이었다.

인근 왕국이 사이가 좋은 나라들도 있지만, 프란시아와 베이론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오랜 역사 동안 몇 차례의 전쟁을 겪어서 서로에 대한 불신이 뿌리 깊이 잠재된 국가.

몬스터 웨이브가 인간에 의한 것임이 드러나고, 베이론이라는 이름이 거론되자 사람들은 벌써부터 베이론을 욕하고 있었다.

백작이 손을 들었다.

좌중이 조용해졌다.

“경거망동하지 말도록. 더욱 확실한 근거가 있어야 할 것 같다. 또한 이 문제는 내 선에서 끝낼 문제가 아닌 것 같구나.”

백작이 기사단장을 바라보았다.

“팬니르.”

“네, 백작님.”

백작이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왕성으로 갈 준비를 해라.”

금쪽같은 소환수들

— 거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