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화. 로딩 중인데
다음날.
나는 아예 우철이네 공방을 향했다.
우철이가 찍어준 주소로 가니 근방에 가죽 공방들이 모여 있었다.
이런 골목도 있었구나.
알려준 건물 2층으로 올라갔다.
여기가 맞나 싶어서 조심스레 문을 열어 보았다.
실내로 들어가니 넓은 공간에 큼직한 작업용 테이블이 여러 개가 있었다.
벽에는 물건을 놓을 수 있도록 대부분 선반으로 만들어져 있었고, 그 선반에는 뭔지 모를 물건들로 가득 차 있었다.
각종 가방, 가죽, 작업 도구들.
그 속에서 작업용 앞치마를 입은 우철이가 나를 반겼다.
“여어, 왔어?”
“어.”
나는 주변을 보며 신기해하며 물었다.
“뭐가 신기한 게 많네.”
“처음 보면 그렇지.”
주변에서 나를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일하고 계시는 분들이 계셨다.
나는 우철이에게 주변 분들을 향해 인사를 해야 하지 않냐는 듯 물었다.
“인사해야 하는 거 아냐?”
“아냐, 냅둬. 다들 작업할 때 말 거는 거 안 좋아해.”
그 말에 내가 목소리를 아주 작게 속삭이며 물었다.
“그럼 조용히 해야 해?”
“크크, 그냥 말해. 여기 공방이야. 각종 소음이 난무하는 곳이지.”
땅, 땅, 땅.
우철이가 말을 마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옆에 있는 작업자분이 망치질하셨다.
다른 분들은 마치 그 소리가 들리지 않는 듯 각자 자기 일만 하셨다.
“그리고 여기는 물건 납품하는 사람들도 수시로 왔다 갔다 하는 곳이라 누가 와도 신경 안 써.”
“그렇구나.”
“굳이 누가 오는지 신경 쓴다면 1층에 손님을 맞이하는 곳이라던가, 아니면 사장님 인챈트실 정도야.”
인챈트실.
내가 궁금했던 곳이었다.
“그 인챈트실, 구경할 수 있을까?”
“그래, 사장님한테 말해 뒀어. 아는 헌터 친구가 인챈트에 관심 있다니까 사장님이 더 좋아하시던데? 혹시 마법사냐고. 그래서 그건 아니라고 했어. 크크, 암튼 데려오래.”
아무튼 사장님이 나에게 호의적이면 나도 좋다.
“따라와.”
나는 우철이를 따라서 인챈트실로 향했다.
똑똑.
우철이가 반쯤 열려있는 문을 노크하며 들어갔다.
“사장님.”
방 안에는 어떤 마흔 살쯤 돼 보이는 아저씨 한 분이 가방을 노려보고 계셨다.
짧은 스포츠머리, 둥글둥글한 체형에 우철이처럼 작업용 앞치마를 하고 계셨다.
사장님은 팔에는 토시를 끼고 눈에는 뭔가 작은 안경 같은 걸 끼고 계셨다.
사장님은 우리가 오자 가방을 내려놓고 눈에 낀 작은 안경을 벗고는 우릴 반겼다.
“그래, 우철아. 이분이 그 친구분이신가?”
“네, 안녕하세요. 우철이 친구 김민준이라고 합니다.”
사장님은 악수를 청하며 물었다.
“어서 와요. 반가워요, 민준 씨. 헌터라고?”
악수를 하니 거친 공방 작업자의 손길이 느껴졌다.
“네, 얼마 전에 각성했고요. 직업은 소환술사예요.”
“와, 소환술사. 좋은 직업이네요. 그래, 인챈트에 관심이 있다고요?”
“네, 정확히는 인챈트가 아니라 마법진이에요. 제가 아는 마법사들이 좀 있는데요. 그분들 중에서 4서클 마법사가 있는데, 5서클에 올라가고 싶어 해요. 그런데 좀 알아보니까 5서클 마법진을 열심히 쓰다 보면 5서클에 익숙해져서 서클을 올릴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오호, 그거 좋은 방법이죠. 요즘엔 잘 안 쓰긴 하지만, 라떼만 해도 다들 그런 식으로 서클을 올렸죠. 아주 좋은 방법이죠. 요즘 마법사들은 마법서를 익히고 각성제를 먹으면서 서클을 올리는데, 그거 별로 좋지 않아요. 그렇게 급하게 올린 서클은 다 나중에 급하게 올린 대가가 필요하다는 걸 몰라요. 요즘 마법사들은 끈기가 없어요. 끈기가. 응? 노오오력을 안 해. 안 그래요? 그렇죠?”
“하하, 그렇죠.”
나는 일단 원하는 게 있으니 꼰대 사장님에게 맞장구를 쳐 주었다.
내가 사장님에게 물었다.
“마법진은 주문 제작이라던데, 만드는 곳을 알 수 있을까요? 그리고 이왕이면 효율적인 마법진도 좀 궁금하고요.”
“효율적이라는 말이 무슨 뜻이죠?”
나는 마법진을 알타르에게 넘길 생각이었다.
4서클인 알타르가 5서클 마법진을 열심히 사용하다 보면 5서클에 익숙해져 서클 향상을 이룰 수 있다고 하니 마법진을 구해다 주려고 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기왕 마법진 연습을 할 거라면 나에게도 도움이 되는 마법을 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예를 들어 5서클에는 파이어 필드라는 마법이 있다.
일정 영역을 불태우는 마법이다.
그 마법진을 주면 알타르는 마나가 허락하고 시간이 날 때마다 불장난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다 5서클 올라가면 그것도 좋겠지만, 알타르의 불장난이 나에게 딱히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 같았다.
내가 사장님에게 말했다.
“그 효율적이라는 건 돈이 되는 마법이란 거죠. 바로 이곳 공방처럼요.”
사장님이 빙긋 웃었다.
“우철이 친구 헌터분이 뭔가 제대로 아시네. 맞아요. 이왕 마법을 쓰려면 돈 버는 마법이 좋죠. 다른 헌터들은 다들 몬스터 때려잡는 것만 좋아하는데, 경제적이고 생활에 도움이 되는 마법이 최고죠.”
그때 가만히 있던 우철이가 한 마디 툭 던졌다.
“사장님, 그 얼마 전부터 저희 삼촌이 A급 통가죽 납품하곤 했잖아요.”
“응, 그런데?”
“그거 얘가 저희 삼촌에게 납품한 몬스터 가공한 거예요.”
“뭐?”
“얘가 이래 보여도 저희 삼촌에게 몬스터 사체 납품 제일 많이 하는 애예요.”
이래 보인다니? 어떻게 보이길래?
내가 말했다.
“제가 잡은 몬스터들은 아니고요. 이래저래 얻어서 납품하는 거예요.”
“오호, 큰 손이셨구나.”
큰 손이라니.
우철이의 사장님이 잠시 고민하더니 말했다.
“그러면. 이렇게 합시다.”
사장님은 작업대 뒤로 돌아가더니 뭔가를 가지고 오셨다.
가로세로 각각 1m 정도 되는 무언가가 곱게 포장되어 있었다.
“이게 전에 알바생들 있을 때 쓰던 건데, 말했다시피 요즘 마법사들은 다들 끈기가 없어서 이렇게 모셔두고 있어요.”
포장을 벗기자 드러난 것은 마법진.
반질거리는 금속판 위에는 기묘한 모양으로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다.
음각으로 판 다음 다시 알록달록한 색이 다른 뭔가로 채워놓은 듯하다.
“예쁘네요.”
“하하, 예쁘죠. 이래 봬도 이게 5서클 마법이랍니다.”
“5서클이요?”
마법진의 이름은 웜앤쿨.
웜은 따뜻하게 하는 1서클 마법.
쿨은 시원하게 하는 1서클 마법이었다.
여기까지면 쉽다.
하지만 3서클짜리 온도 범위 제한 마법.
3서클 마나 집적진과 이를 단단한 판이 아닌 부드러운 가죽에 고정시키기 위한 붙임 마법까지, 총 다섯 개의 마법이 들어간다.
그렇게 다섯 가지 마법이 한 번에 들어가는 세트마법 웜앤쿨.
더울 때는 시원하게, 추울 때는 따뜻하게.
마나 집적진이 있기 때문에 추가로 필요한 마정석도 없다.
5서클짜리 마법이 붙은 옷은 가격이 얼마일까?
사장님은 돌돌 말린 가죽 뭉치들을 가져왔다.
“제가 이 마법진을 대여해 드리죠. 그리고 여기 가죽 뭉치들도 대여해 드리겠습니다.”
나는 사장님의 말을 경청했다.
“민준 씨가 이것들을 가져가서 마법진을 이 가죽에 새겨서 저에게 납품하는 겁니다. 어때요? 돈이 되는 마법 같지 않습니까?”
그래, 내가 원한 게 이런 거다.
“마음에 드는데요? 좋은 거래가 될 것 같아요.”
사장님과 나는 다시 악수했다.
* * *
샤샤가 알타르를 찾았다.
“알타르 님.”
이틀 만에 찾아온 샤샤를 알타르는 반갑게 맞이했다.
“어서 와요. 샤샤 양.”
샤샤는 알타르의 연구실을 둘러보며 신기해했다.
한쪽 벽을 채운 책, 각종 마법 도구에 다양한 종류의 약병들.
“여긴 신기한 것이 많네요.”
“허허, 마법사의 연구실이 다 이 정도는 되지요. 그래 어떤 일로 오셨나요?”
알타르는 질문을 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기대에 눈을 빛냈다.
“네, 마스터께서 알타르 님께 드리라고 하는 물건이 있어서요.”
샤샤는 마침 깨끗하게 치워져 있는 빈 테이블을 향했다.
“이 테이블에 뭘 좀 올려도 될까요?”
“물론이죠.”
“네, 그럼. 선물함.”
샤샤는 선물함을 열었다.
그리고 가로세로 각각 1m는 정도 되는 금속판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그 모습을 본 알타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이건.”
마법진이었다.
그것도 알타르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종류.
반짝이는 광택이 나는 회색 금속판.
그 금속판에는 화려한 무늬의 마법진이 새겨져 있었다.
음각으로 금속판을 판 후, 다양한 색의 물질로 음각된 부분을 채워 넣었다.
알타르는 정신없이 마법진을 살피기 시작했다.
“이 부분은 온도를 높이는 것 같고, 이 부분은 온도를 낮추는 부분인 것 같아···. 그런데 이 부분은 뭐지? 아! 조절이구나.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마법진이야. 아니, 이걸 이렇게 엮어 놨구나!”
알타르는 마법진에 얼굴을 들이밀어 그 속에 빠져들고 싶어 하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좋나?
샤샤는 이내 마법진 옆에 돌돌 말린 가죽 뭉치들을 꺼냈다.
샤샤는 잠시 알타르가 마법진에서 헤어 나오길 기다려주었다.
그런데 한참을 기다려도 알타르가 마법진에서 헤어 나올 생각을 못 했다.
“알타르 님?”
“이건 이렇게 회로가 연결되는구나! 아하!”
알타르가 무릎을 쳤다.
“저기, 알타르 님?”
“어? 샤샤 양 불렀습니까?”
“네, 마스터께서 이 가죽에 마법을 사용해 달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이 가죽에 마법진의 마법이 새겨지면 다시 가죽을 제가 마스터께 돌려드리는 것이죠. 마스터께서 말씀하시길 마법진을 많이 사용하시다 보면 마법진에 새겨진 마법에 익숙해지실 거라고 했어요.”
알타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당연한 일입니다.”
샤샤가 말했다.
“그리고 열심히 하시면 다른 마법진도 가져다드릴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셨어요.”
알타르가 불타는 눈빛으로 말했다.
“매일 제 마나통이 뻐근해질 때까지 마법진을 쓰고 또 쓰겠습니다.”
“네, 그럼 저는 이만 가볼게요.”
“안녕히 가십시오.”
알타르가 허리까지 숙여 가며 인사를 했다.
샤샤는 조금 부담스러웠지만, 저 인사의 대상은 자신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저 알타르의 인사는 민준 님께 향하는 인사일 것이다.
일주일 후
샤샤가 창고로 소환되었다.
“안녕하세요.”
샤샤가 나와 직원들에게 인사를 했다.
직원들도 샤샤에게 반갑게 인사를 했다.
“응. 샤샤, 안녕?”
“왔어요?”
샤샤가 오자 창고에서 놀던 고양이 한 마리가 다가왔다.
“제리~ 여기 있었어?”
제리가 말했다.
“여긴 새로운 게 많아 재미있당.”
샤샤가 제리를 끌어안고 볼을 부볐다.
제리는 디아론 영지에 있는 시간보다 이곳에 있는 시간이 더 길다.
샤샤야 가족도 있고 해서 거의 출퇴근 개념이지만, 제리는 뭐랄까 창고 지키는 고양이가 된 기분이었다.
“잠깐 제리야. 물건만 조금 내리고 같이 놀자.”
샤샤가 선반 앞으로 다가가서 선물함을 열었다.
“민준 님, 오늘 작업 완료한 물량이에요.”
샤샤는 선물함에 가죽 뭉치를 하나씩 꺼내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가죽 뭉치 세 개가 나왔다.
나는 마법진을 주문 제작해서 알타르에게 여러 개를 넘겼다.
디아론 영지에는 마법사가 알타르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3서클도 있고 2서클 마법사들도 여럿 있었다.
4서클 마법진, 3서클 마법진으로 연습하면 그들도 한 단계 위의 서클상승을 바라볼 수 있다.
때아닌 마법진 활용 훈련.
디아론 성의 마법사들에게 새로운 바람이 불었다.
그동안 디아론 성의 마법사들은 그동안 상위 서클 마법을 눈으로 보거나, 글을 읽는 등의 방법을 통해서만 배웠다.
그리고 명상을 하며 마법의 원리를 깨닫는 것이다.
직접 자신이 써보며 익힐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렇게 마법진을 이용해서 상위 마법을 몸에 익혀버리는 방법이라니.
혁신적인 방법이었다.
그리고 5서클 이상의 마법 자체도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샤샤가 말했다.
“마법진을 이용하니까 상위 서클 마법도 쓸 수 있고, 또 여러 번 쓰다 보니 머리에 쏙쏙 들어간다고 하더라고요.”
“그럼~ 원래 교육은 주입식이 최고거든.”
샤샤가 배시시 웃었다.
다시 며칠 후.
샤샤와 제리가 모두 소환되었다.
둘은 선물함을 열어 선반에 각종 물건을 쌓았다.
물건들은 다양했다.
마법진이 새겨진 가죽 원단부터, 옷, 가방, 구두까지 여러 가지였다.
“그렇게 물건이 많아?”
“그러게요. 알타르 님뿐만 아니라 다른 마법사님들도 너무 열심히 하시는 것 같아요.”
“그래? 수고하네.”
나는 수북이 쌓인 물건들을 보았다.
그중 가방 두 개를 꺼내 보았다.
크로커다일 가죽과 트롤 가죽의 합성 가죽이었다.
느낌은 크로커다일 가죽인데 가죽에 상처가 나면 재생한다.
아무리 험하게 굴리고 심지어 칼로 긁어도 재생하는 가방.
손잡이와 단추는 예쁘게 금으로 도금되어 있었다.
이 가방에는 재생마법, 마나 집적 마법, 광택 마법이 걸려 있다.
“샤샤, 제리야. 이리 와봐.”
나는 두 소환수에게 이리저리 여러 가지 가방을 들려 보았다.
어떤 게 어울리려나.
“내 소환수라면 명품 가방 정도는 들어 줘야지. 맘에 드는 거 골라봐.”
샤샤에게는 하늘색 숄더백을, 제리에게는 스포츠용 크로스백을 하나씩 들려주었다.
“잘 어울리네.”
내친김에 가방 몇 개 골라 부모님과 여동생 쓰라고 택배로 보내주었다.
아들의 창고에 명품 가방이 굴러다니는데 가족들도 좀 드려야지.
다음 날,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뭘 이런 걸 보내느냐고.
하지만 좋아하시는 것 같았다.
동생은 넙죽 절하는 이모티콘을 보냈다.
이 녀석이 나에게 절을 하다니.
헌터 오빠 둔 덕도 좀 봐야지.
자, 그러면 일은 알타르가 열심히 하고 있으니, 나는 또 게임과 드라마 삼매경에 빠져 볼까나?
알고 보니 민지혜가 나왔던 드라마가 왕의 던전 뿐이 아니었다.
예전에 덜 인기 있을 때 했던 드라마가 있다더라.
요건 못 참는다.
봐줘야겠다.
그렇게 모니터를 켜고 드라마를 정주행하기 시작했다.
드라마 한 편이 끝났다.
늑대소녀.
수인족 소녀의 던전 정벌기였다.
첫 화에서는 수인족 소녀가 미남 헌터의 도움을 받으면서 끝났다.
이번 드라마는 왕의 던전처럼 다 때려 부수지 않고 조금 달달한 분위기였다.
하긴 다 때려 부수려면 제작비가 많이 들지.
원래 처음에 예산 부족할 때는 예산 많이 안 드는 걸로 가야지.
그러다 금전적인 자신감이 붙으면 블록버스터로 키우는 것이고.
아무튼 자연스레 다음편 버튼을 눌렀다.
잠시 로딩시간.
그때.
띠링!
쪽지가 왔다.
샤샤의 쪽지였다.
[민준 님! 마정지에 설치해둔 알람이 울렸어요!]
헐.
아무래도 로딩 중인 드라마 다음 편은 꽤 나중에 봐야 할 것 같았다.
금쪽같은 소환수들
— 거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