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쪽같은 소환수들-51화 (50/230)

51화. 소화 좀 시킬까?

고양이 카페는 고양이뿐만 아니라 사람이 먹는 음식도 맛있었다.

나도 간만에 사무실이 아닌 곳에서 외식하니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고양이카페에서 배부른 점심을 먹었다.

고양이 카페의 간식들을 싹쓸이했지만, 낭비는 아니었다.

“선물함.”

남으면 싸가면 된다.

제리가 선물함에 남은 간식들을 넣어두었다.

그리고 한참을 선물함을 바라보았다.

슬그머니 퍼지는 제리의 미소.

식량창고를 바라보며 흐뭇해하는 느낌 같았다.

보고만 있어도 배부른 듯한 표정.

밥을 먹고 고양이카페는 바로 나왔다.

그곳에 고양이들은 많았지만 제리와 함께 놀 수준은 아니었다.

제리는 겉모습만 고양이지, 수준은 아주 높았다.

“어디를 가볼까나.”

다시 자전거를 탔다.

강변을 따라 달렸다.

“제리야. 쭉 달릴 테니까, 달리다가 맘에 드는 곳이 있으면 가보자.”

무작정 달리는 자전거 하이킹.

이런 것 또한 낭만이다.

각성자인 내가 밟는 페달로 삼십 분쯤 달리는데 제리가 말을 걸었다.

“저건 뭔가?”

저 멀리 놀이동산이 보였다.

“저거? 놀이동산이란 거야. 가볼래?”

그런데 놀이동산에 고양이를 데리고 가도 되나?

맞다. 수인족으로 변하면 되지.

놀이동산 근처 옷가게를 먼저 갔다.

글리제에서는 수인족이 옷을 입지 않았지만, 그래도 지구에서는 뭔가 걸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딸랑!

“어서 오세요.”

옷가게 점원이 인사를 했다.

고양이를 어깨에 올린 남자가 여성복 매장을 방문하자 살짝 의아해하는 모습이었다.

“제리야, 인간형으로 변해봐.”

수우욱.

고양이가 점점 부풀어 덩치가 커졌다.

팔이 길어지고 다리도 길어졌다.

키가 커지고 둥글게 말린 허리를 폈다.

“오케이, 사장님. 얘에게 맞는 걸로 추천 좀 해주세요.”

깜빡깜빡.

옷가게 점원은 말도 못 하고 손으로 입을 가린 채 눈만 깜빡거리고 있었다.

하긴 놀라운 모습이지.

“아, 저 헌터에요. 사이즈 맞는 걸로 스타일 좀 다르게 해서 몇 종류 부탁드려요.”

헌터.

납득하기 어려운 이상한 현상을 설명하는 마법의 단어다.

당장 차동서 형님만 해도 곰으로 변신을 하는 헌터다.

점원이 헌터를 눈앞에서 본 경험이 별로 없나 보다.

헌터라는 단어에 얼음에서 풀려난 점원이 프로답게 일을 했다.

“기본적으로 피부색이 아니 피부털은… 아니, 그냥 털 색이 보라색이시고, 얼굴은 그냥 고양이상이시니까… 밝은 계통 색깔이 어울리실 것 같아요.”

점원은 몇 가지 세트를 가져왔다.

때아닌 패션쇼를 벌였다.

베이지색 면 재질의 반바지에 흰 남방에 멜빵 조합.

찢어진 슬림 청바지에 화려한 무늬가 그려진 헐렁한 티셔츠.

블랙 앤 화이트로 아래위.

몸이 슬림하고 얼굴이 작고 귀여운 고양이상 자체라서 그런지 옷들이 잘 어울렸다.

“제리야, 여러 가지 다 잘 어울려. 일단 나는 개인적으로 반바지에 멜빵 조합 추천.”

“그런가?”

제리는 구석으로 가더니 옷 한 벌을 집어 왔다.

“나는 이 옷이 마음에 든다. 옷을 만져보는 순간 알 수 있었다. 극한의 활동성을 추구하는 재질이란 걸. 이 옷을 입는다면 어떠한 자세를 취하든 옷이 동작을 방해하지 않을 것 같다. 전사라면 이런 옷을 입어야지.”

물론 그렇겠지.

츄리닝이니까.

쩝.

뭔가 내가 원하는 그림은 그게 아닌데.

일단 나는 어떻게든 꼬드겨서 츄리닝이 아닌 옷을 입혔다.

블랙 엔 화이트.

검은 스키니진에 흰 티를 입혔다.

신발도 몇 켤레 골랐다.

그래. 내가 너 운동화 고를 줄 알았어.

운동 천재라서 그런지 뭘 고르던 운동하기 좋은 쪽으로 고르려고 했다.

그렇게 옷을 입고 놀이동산을 향했다.

놀이동산에서도 여지없이 시선이 날아왔다.

“어머, 저기 봐”

“분장인가?”

“진짜 잘했다.”

하지만 여기가 어딘가?

모험과 신비가 가득한 놀이동산이다.

곳곳에 인형탈을 쓴 알바들 천지였고, 어린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백설 공주가 되고 얼음공주가 되어 있는 곳.

꿈과 희망이 자라는 놀이동산이다.

놀이동산 내부를 걷다가 앞에서 강아지 모양의 인형탈과 만났다.

강아지 탈 알바는 제리를 보며 훌륭하다고 연신 엄지척하며 지나갔다.

훗, 보는 눈은 있어서.

놀이동산을 걷다가 유령의 집을 지키고 있는 해골 귀신과 눈이 마주쳤다.

제리의 눈매가 찌푸려졌다.

그러더니 손톱을 30cm 정도 꺼냈다.

주욱.

“제리야. 워워, 넣어 둬. 넣어 둬. 여기서 그런 거 꺼내는 거 아니야.”

“저건 언데드가 아닌가?”

“응, 아니야. 더운데도 탈 쓰고 힘들게 일하시는 거야. 그런 거 꺼내면 안 돼.”

제리는 해골 귀신 앞으로 조금 더 다가갔다.

킁킁.

냄새를 맡았다.

“그렇군.”

해골 귀신 알바는 제리가 다가오자 반가워하며 리액션을 보여주었다.

쟤는 자기가 정말 해골 귀신이 될 뻔했다는 것을 알까?

제리와 함께 놀이기구 몇 가지를 타 보았다.

바이킹, 특급열차를 탔다.

꺅꺅거리는 손님들과 다르게 제리는 심드렁했다.

“그런데 이건 왜 타는 것인가?”

“음, 스릴을 느끼기 위해?”

나는 말하면서도 스스로 부적합한 대답이란 걸 느꼈다.

제리에게는 이런 놀이기구가 스릴 있을 턱이 없었다.

저 까마득히 탑처럼 솟아있는 놀이기구 꼭대기에 올라가서 편안히 낮잠을 잘 아이에게 스릴이라니.

그래도 퍼레이드는 재미있게 보는 것 같았다.

음악에 맞추어 화려한 모습으로 분장한 사람들이 지나는 행렬.

그 흥겨움과 화려함은 볼만 했다.

물론 제리는 당장이라도 저 퍼레이드의 한 가운데에 서 있어도 어울릴 것 같았다.

그렇게 구경을 하고, 고양이 머리띠를 한 소녀들의 부러움을 받으며 저녁을 먹으러 갔다.

“제리야. 생선구이, 콜?”

“괜찮을 것 같군.”

저녁으로 간 집은 갈치구이 전문점.

각종 해산물이 입맛을 돋우었다.

그리고 나온 거대 갈치.

1m도 넘어 보였다.

“맛있네. 제리도 맛있어?”

“드리마스에게 생선은 사랑이다.”

아, 그렇구나.

“알았어. 앞으로 많이 사줄게.”

나 나름 중소기업 사장이다.

그런데 이거 법인카드로 긁어야 하는 건가?

어쨌든 알차게 놀았다.

한강 구경부터 시작해 카페, 놀이동산까지.

아직 시간이 많이 늦지는 않았지만 이 정도면 오늘 하루 제리에게 충실한 하루였다.

제리는 어느새 고양이로 변해 자전거 바구니에 앉아 있었다.

“옷은?”

“선물함에 잘 넣어 두었다.”

“그래. 그럼 조금 더 둘러볼까? 특별한 목적지는 없고 그냥 사람 구경 건물 구경하러. 출발할까?”

“알았다.”

페달을 밟았다.

일부러 사람이 많은 곳으로 향했다.

어둑어둑해지는 시간.

번화가의 각종 불빛들이 거리를 밝혔다.

낮보다 더 환한 서울의 거리.

자전거를 타고 고양이 한 마리와 그 길을 달렸다.

어느 먹자골목을 들어서니 사방이 음식점 천지였다.

공기를 불어 넣어 흔들거리는 광고용 흔들이 인형이 제리의 시선을 빼앗았다.

얼른 들어오라며 손을 파닥파닥 흔드는 모습에 나조차 시선을 빼앗겼다.

고기 냄새가 난다.

나도 골목 전체에 퍼져있는 음식 냄새가 나는데 제리에게는 어떻게 느껴질까 궁금했다.

사람들은 식당에서 밥을 먹고, 술도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제리가 물었다.

“저긴 뭐냥?”

제리가 가리킨 곳에는 인형뽑기 가게가 있었다.

훗.

뽑기하면 나지.

내가 뽑기로 여기까지 온 사람이야.

동전을 몇 번 바꿨는지 모르겠지만, 결국 커다란 인형을 뽑았다.

돈으로 사는 것이 더 쌀 것 같다는 생각이 스쳤지만 그래도 뽑은 게 어딘가?

하얀색 강아지 인형.

고양이 상태의 제리보다는 두 배 이상 컸다.

자전거 앞 바구니에 잘 들어가지도 않는 인형을 어찌어찌 넣고, 그 위에 제리를 올려두고 다시 자전거는 달린다.

수십 층은 기본인 높은 건물들이 죽 늘어선 거리.

제리는 높은 건물을 보며 고개를 뒤로 꺾었다.

제리야 높은 건물보다 니 목이 더 신기해.

고양이는 액체라는 설이 있는데 저 목을 보니 그 말이 맞는 것 같았다.

나는 문득 궁금해져서 제리에게 물었다.

“제리야, 너 저기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어?”

제리의 눈앞에는 까마득히 높은 건물이 있었다.

“마나가 문제인데 잘하면 오를 수 있을 것 같다.”

뭐?

그냥 해본 말인데 이걸 오를 수 있다고?

“어떻게? 아! 손톱이나 발톱으로 벽면을 콱콱 박으면서 올라갈 수 있겠구나.”

제리는 나는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말했다.

“저 건물에 손톱자국 내면 안 되는 것 아닌가?”

“물론 그렇지.”

“손톱자국 내면서 올라가면 당연히 끝까지 올라갈 수 있다. 내가 생각한 방법은 벽을 한 번 밟아 공중으로 도약하고, 공중에서 이단 점프 스킬로 다시 점프해서 벽을 밟는다. 그러면서 벽과 허공을 좌우로 반동해서 올라가는 것을 말한 것이었다. 이 건물이라면 이단 점프 스킬에 쓰이는 마나가 아슬아슬할 것 같다.”

아! 그렇구나.

가까이 붙은 두 건물을 좌우 반동을 계속 주면서 위로 오르듯, 한쪽 벽만 있어도 이단 점프 스킬로 허공을 마치 벽처럼 도약할 수 있다는 뜻이구나.

나는 자전거 바구니에 담긴 고양이 한 마리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그 대단한 모습을 글리제를 비추는 화면이 아닌 내 눈 바로 앞에서 보고 싶었다.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제리야.”

“왜.”

“밥도 먹었으니까 소화 좀 시킬까?”

제리가 이번엔 또 어디를 가려나 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소화? 어디서?”

내가 미소를 띠며 말했다.

“던전.”

제리가 씨익 웃으며 나를 보았다.

“그거 재밌겠군.”

“오케이.”

나는 얼른 스마트폰으로 검색을 해보았다.

F등급 던전, 지금 들어갈 수 있는 곳.

장소는 많았다.

나는 자전거 페달을 밟는 발에 힘을 주며 말했다.

“꽉 잡아, 달린다.”

어지간한 오토바이 속력으로 달리는 나의 자전거를 희한한 듯 바라보는 시선을 뒤로한 채 우리는 금세 던전에 도착했다.

“여기야.”

“호오, 신기하게 생겼군.”

던전의 포탈은 신비로운 거울처럼 그 테두리가 일렁거리고 있었다.

자전거를 파킹하고 접수하는 곳으로 갔다.

접수 직원이 물었다.

“혼자 오셨어요?”

“아뇨, 소환수와 둘이요.”

접수 직원이 힐끔 나를 보았다.

“그 고양이인가요?”

“네”.

직원이 나에게 헌터증을 받아 컴퓨터를 조작하더니 다시 물었다.

“던전 출입은 가능합니다. 그런데 자료를 보니까 던전 들어간 횟수도 적으시고 소환수와 둘이 들어가시면 솔플이나 마찬가지이신데 괜찮으시겠어요?”

걱정하는 마음이 드는 건 이해한다.

내가 평범한 1렙에서 시작했고 던전 경험이 기록된 것이 다라면 나라도 걱정했을 것 같았다.

내가 웃으며 말했다.

“네, 괜찮습니다.”

직원은 내 눈을 보더니 다시 말했다.

“F급 던전이라고 함부로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이곳에는 오스트들이 많아요. 자칫 여러 마리에게 둘러싸이면 위험할 수 있습니다.”

오스트는 개 정도 크기의 새다.

그런데 날지는 못한다.

뛰어다니는 새.

그런 새가 부리로 쪼는데 제법 매섭다.

싸움닭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네, 괜찮습니다.”

그렇게 직원의 걱정을 뒤로하고 던전에 들어왔다.

약간은 메마른 환경.

흙과 돌이 반반 섞인 땅 위에는 드문드문 가시덤불처럼 보이는 풀들이 나 있었다.

지형은 곳곳에 언덕이 있어서 멀리까지는 보이지 않았다.

슈우우우욱.

제리가 인간형으로 변신을 했다.

언제 입었는지 츄리닝을 입고 있었다.

남색 츄리닝.

츄리닝의 팔과 다리에는 흰색 줄이 두 줄이 이어져 있었다.

응? 왜 두 줄이지? 원래 세 줄 아닌가?

뭐 두 줄이던 세 줄이던 제리가 입으면 그게 곧 명품이다.

왜냐고?

명품 동작을 취할 수 있는 츄리닝이 곧 명품이니까.

저 멀리서 뭔가의 소리가 들렸다.

오스트였다.

자세히 보니 두 마리의 오스트가 우리 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제리가 두 손을 깍지 끼더니 허리를 구부리고 팔을 앞으로 쭈욱 늘였다.

어? 어디까지 늘어나는 거냐?

고무고무냐?

제리가 예전 엑스맨이라는 영화의 주인공처럼 두 손에서 클로 같은 발톱을 뽑아내었다.

주욱.

그 발톱에 푸른 마나가 입혀진다.

지이잉.

제리가 말했다.

“그럼 소화 좀 시켜 볼까?”

제리의 칼날발톱이 빛을 받아 희번덕거렸다.

입꼬리를 살짝 올린 제리의 미소도 희번덕거리는 것처럼 보이는 건 그냥 내 느낌일 거다.

왜 갑자기 삼국지의 명언 중 하나가 생각나는 것일까?

오스트가 새가 아니라 닭처럼 보였다.

왠지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쓰는 것 같았다.

그렇게 제리와 함께 한 시간 정도 던전을 돌았다.

“어때 소화는 다 됐어?”

“소화는 된 것 같당.”

“그럼 집에 갈까?”

“알았당.”

어째 제리의 말투도 부드러워진 것 같은 건 기분 탓일까?

띠링!

―친밀도가 1 올랐습니다.

귓가를 울리는 소리를 들어보니 기분 탓만은 아닌 것 같았다.

금쪽같은 소환수들

— 거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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