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쪽같은 소환수들-50화 (49/230)

50화. 내 그럴 줄 알았다

제리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놀자고?”

고개를 갸웃하는데 갸웃하는 각도가 45도 기울어졌다.

이런 진정하자.

보라색 고양이가 고개를 갸웃하는 것은 그 동작만으로 귀여움을 유발한다.

존재 자체가 귀엽다는 것은 이런 것을 말하는 것 같았다.

심장에 좋지 않다.

내가 물었다.

“제리야, 그런데 너 왜 고양이의 모습을 하고 있어? 트란 산맥에서는 고양이 보다는 대부분 인간형 모습을 하고 있었잖아. 그리고 탐사대와 만날 때는 드리마스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 안 그래?”

제리는 꼬리를 살랑살랑하며 말했다.

“맞아. 나 사실 고양이의 모습은 별로 안 한당. 지금 내가 고양이의 모습을 하는 것은 인간들 때문이야.”

내가 놀라며 물었다.

“인간?”

“그래, 내가 드리마스의 모습을 하고 있으면 경계를 하거든. 덩치가 커서 무서운가 봐.”

“아!”

이해했다.

길가에 표범이나 암사자 한 마리가 있다고 생각해보자.

줄에 묶여 있거나 철창 속에 갇혀 있어도 자연스레 긴장하게 된다.

무슨 의미인지 바로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그렇다고 인간형 형태를 띠면 더 쳐다봐. 아주 동네 사람들 다 모인다니까.”

하긴 그것도 그럴 것이다.

뮤지컬 캣츠의 배우가 고양이 분장을 하고 길을 걷고 있다면 어떻게 안 쳐다볼 수 있을까?

스마트폰으로 찍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아. 그래서 고양이의 형태로 있는 것이구나. 이해했어.”

제리도 다 나름대로 생각이 있어서 이런 모습을 띠고 있는 것이었다.

“제리야. 이 동네는 잘 모르지. 동네 구경 좀 할까? 어때?”

제리를 소환한 적은 있었지만, 지구를 제대로 소개해준 적은 없었다.

트란 산맥을 탐사하며 바빴고 지구로 소환하더라도 몬스터 사체만 넘겨주고는 다시 트란 산맥으로 돌아가기 바빴다.

지난 몇 달간은 나도 그렇고 소환수들도 트란 산맥에 시간을 다 바쳤다.

“제리야, 산책 좀 할까?”

나는 제리와 함께 건물 밖으로 나왔다.

나도 오랜만에 햇빛을 쐬는 것 같았다.

따뜻하고 좋다.

그래 이게 사람 사는 것이지.

면벽 수련 3개월에 아주 그냥 사리가 생기겠다.

제리를 위해 산책을 하려 했지만, 오히려 내가 더 힐링이 되는 느낌.

이런 느낌 좋았다.

“제리야, 그동안 소환을 했었어도 항상 사무실 안이나 창고 안에서만 이따 갔지? 우리 창고와 사무실 건물 바깥은 이렇게 생겼어.”

제리와 함께 건물을 빙 둘러보았다.

“여기가 민준이 사는 곳이냥?”

“자취방은 따로 있는데 그동안 탐사한다고 계속 여기 있던 것이지. 창고는 말하자면 직장?”

“그렇구낭.”

“탐사대가 산맥을 오르면서 나도 얼떨결에 석 달을 풀로 야근한 셈이지. 그러고 보니 이 직장 완전 나쁘네. 악덕 사장이··· 나구나.”

솔직히 우리 창고에서 지난 석 달 매출은 엄청났다.

이만한 공간에 엄청난 매출, 그리고 직원도 둘이나 있으니 직장이 맞다.

내가 이 작은 창고의 사장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보니 창고가 새삼 다르게 보였다.

사장이 되니 집에도 못 가고 일하고 있었구나.

제리가 건물을 한 바퀴 다 돌고 돌아왔다.

다시 마당을 둘러본다.

나름대로 넓다.

한쪽 구석에는 수도 시설도 있었다.

1층을 모두 둘러보았다는 듯 제리는 고개를 들어 건물 지붕을 보았다.

타닷.

제리에게 이 정도 건물 지붕으로 올라가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계단 한 칸 올라가듯 가벼운 발돋움 한 번에 이미 건물 지붕 위로 올라갔다.

혼자 마당에 남겨진 나는 지붕을 이리저리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이렇게 고개를 들어 지붕을 자세히 본 적도 없었다.

샌드위치 패널.

금속판과 단열재를 붙여서 샌드위치처럼 만든 재료로 만든 나지막한 세모 모양의 지붕.

파란 지붕의 처마 끝으로 삐죽 제리의 얼굴이 나왔다.

내가 물었다.

“다 봤어?”

제리가 영역 확인을 다 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휙 하고 바닥으로 점프를 뛰었다.

“어?”

그런데 바닥에 닿기 전 제리가 잠시 공중에 멈췄다.

“와, 제리. 방금 뭐 어떻게 한 거야?”

“이단 점프다. 바닥에 닿기 전에 살짝 뛰어주면 거의 정지할 수 있지. 그러면 아무런 충격 없이 바닥에 착지할 수 있다.”

높은 곳에서 뛰어내렸는데도 바닥에 닿기 전에 그 충격을 완전히 상쇄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제리는 내가 알고 있던 물리적인 상식과 점점 동떨어져 갔다.

“제리야. 밖으로 나가자. 서울 구경 좀 해 봐야지.”

어디가 좋을까?

도심의 높은 건물과 수많은 사람을 봐야 서울 구경을 한 거라고 할 수 있지.

“일단 한강으로 가보자.”

나는 택시를 불렀다.

아직 차를 구매하지 않았고 버스를 타자니 제리를 데려가는 게 문제였다.

케이지 안에 제리를 넣기 좀 그랬다.

아니 이참에 차도 한 대 장만할까?

돈은 많았다.

통장에 찍힌 금액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몬스터는 몸속의 마정석까지 포함하면 종류에 따라 저렴한 것은 백, 비싼 것은 억 소리가 났다.

그런 몬스터를 삼 개월 동안 끊임없이 받았다.

물론 그것은 현금화하고 아이템과 장비를 구매해서 다시 탐사대에 보내줬지만, 남는 금액이 훨씬 많았다.

정말 어디 가서 사장이라고 말해도 될 만했다.

차는 물론이고 심지어 집과 건물도 살만했다.

서울에 꼬마빌딩 가지고 있으면 노후 걱정 안 한다는데 이참에 질러?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택시가 도착했다.

택시 안에 제리와 함께 타자 기사님이 말씀하셨다.

“고양이가 아주 예쁘네요. 보라색 고양이는 처음 보는데. 이름이 뭔가요?”

“네, 제리라고 해요.”

“그렇군요. 우리 집에서도 고양이가 있어요, 허허.”

고양이를 좋아하는 기사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가니 시간이 금세 흘렀다.

택시는 곧 한강에 도착했고 나는 제리와 함께 한강 둔치길을 걸었다.

나와 함께 나란히 걷고 있는 보라색 고양이의 모습은 다른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길에서 산책하던 여러 여성들이 말을 걸었다.

“어머, 고양이가 참 예쁘네요.”

“와, 색깔 좀 봐.”

“원래 이런 색깔인가요?”

“고양이가 어쩜 이렇게 주인과 함께 나란히 걸어요?”

샤샤도 그렇지만 소환수와 함께 걷는 길은 늘 시선 집중이었다.

왜 내 소환수들은 항상 이렇게 시선을 집중시키는 것일까?

소환수가 있을 때와 없을 때는 길을 걷는 느낌이 너무 달랐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가 벤치에 앉아 잠시 쉬었다.

“제리야, 저기 건너편에 건물들 보이지?”

제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건너편에는 높은 아파트와 빌딩들이 숲을 이루고 있었다.

“내가 사는 지구, 그중에서도 여기는 한국이라는 나라야. 그리고 이곳은 서울이라는 도시지. 보이는 것처럼 높은 건물들도 많고 사람들도 참 많이 모여 사는 곳이야.”

제리는 묵묵히 강 너머를 보며 내 말을 경청했다.

“글리제처럼 여기도 산도 있고 보는 것처럼 강도 있어. 나무와 풀도 있고 지금 너와 비슷하게 생긴 고양이들도 많지. 드리마스처럼 생긴 맹수들도 서울에서는 아니지만, 지구의 다른 곳에는 자유롭게 사는 곳도 있어. 그리고 서울에는 글리제처럼 몬스터들도 있어.”

“몬스터?”

“그래, 몬스터. 지구에도 몇십 년 전부터 포탈이 나타나고 다른 이세계와 연결이 되기 시작했대. 그래서 그곳에 있는 몬스터들이 넘어오기도 해. 물론 지금은 헌터나 길드에서 잘 처리하지.”

“그렇구낭.”

나는 스마트폰으로 검색을 하며 물었다.

“우리 맛있는 것 먹으러 가볼까? 제리 입맛에 맞는 음식이 뭐가 있을까? 탐사대를 하면서 먹었던 것 중에서 뭐가 제일 좋았어?”

내 물음에 제리는 고민 없이 말했다.

“츄르.”

“그래? 너도 고양이 입맛이구나.”

스마트폰으로 먹을 것을 찾아보다 보니 츄르는 사자도 얌전하게 만드는 마약이라고 한다.

사자도 수인족도 츄르 앞에서는 어쩔 수 없나 보다.

“그러면 여기 가자. 고양이 카페라고 고양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이 많대. 놀이 공간도 있고. 아마 츄르도 종류별로 많이 있을걸?”

“츄르의 종류가 많다고?”

“응, 그렇겠지.”

“가자, 민준.”

보자, 여기서 어떻게 가면 좋을까?

버스는 정거장 위치가 애매하고, 택시 타기엔 조금 가깝다.

나는 각성자고 제리는 나보다 더 레벨이 높다.

게다가 민첩이나 움직임만 따지면 제리는 고수라고 말할 수 있다.

뛰어가면 금방이다.

그렇게 뛸까 하다가 문득 눈앞에 보이는 것이 있었다.

“제리야. 자전거 타볼래?”

* * *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자전거를 타고 한강길을 달렸다.

따릉따릉.

자전거 차임벨을 눌렀다.

“이건 자전거 차임벨이야.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간다고 알려주는 것이지.”

제리는 자전거 앞에 있는 바구니에 얌전히 앉아 있었다.

각성자인 내가 힘차게 자전거를 밟으니 속도가 상당히 나왔다.

일반인에게는 살짝 위험할 정도의 속도

하지만 나도 각성자고 제리의 몸놀림은 나보다 더 민첩하다.

게다가 아까 허공에서 멈추는 것 봐라.

아마도 제리는 비행기에서 떨어져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래도 한강길을 벗어나 사람들이 많은 길에서는 속도를 줄였다.

그렇게 찾은 곳.

고양이 카페.

자전거를 타고 가니 금방이었다.

건물 입구부터 다른 카페들과 달랐다.

문이 이중이라고 할까?

혹시라도 고양이들이 달아나지 못하게 막는 것 같았다.

“자, 들어가자.”

문을 열었다.

헉!

세상에!

안에는 많은 수의 고양이들이 늘어져 있었다.

여긴 정말 고양이 천국이구나.

솔직히 고양이카페라는 곳을 처음 와봤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이 많다는 소리는 들어봤지만 이렇게 많은 고양이가 늘어져 있는 모습을 보니 그 말이 피부로 체감이 되었다.

바닥에 늘어져 있는 고양이.

여기저기 설치된 캣타워에 올라가 있는 고양이.

둥근 나무통, 기다란 나무통 등 고양이가 좋아할 만한 공간이 많았다.

그런 공간의 곳곳에 고양이들이 있었다.

누군가는 작은 낚싯대로 고양이 앞에서 장난감을 흔들어주고 있었고 또 누군가는 레이저 포인트를 이용해 고양이와 놀아주고 있었다.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우선 먹을 것부터 주문해야지.

“먹을 것 좀 시키고 올게.”

타탓.

음식 주문을 하려고 카운터로 가려는데 제리가 내 어깨 위로 올라왔다.

“어?”

제리가 내 몸 위로 올라온 적은 처음이다.

하하.

먹을 것 앞에서는 이렇게 달라지는구나!

살짝살짝 닿는 고양이 털이 부드러웠다.

“크으!”

이 맛에 집사질 하는 것이지.

“제리야, 뭐 먹고 싶어?”

제리는 잠시 고민을 하더니 한쪽에 진열된 고양이 음식들을 손으로 가리켰다.

카운터로 가자 직원이 물어왔다.

“어떤 것으로 드릴까요?”

제리는 탐사대가 드리마스 부족에 들린 이후로 상급 기사 한 사람 몫 이상을 하며 탐사대를 도왔다.

탐사대에서는 상급 기사 이상

지구로 치면 50레벨의 헌터

50레벨은 초고수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어디 가서 명함 내밀 정도는 된다.

그런데 제리는 50레벨에다가 손톱에 마나를 두르기도 하고, 이단 점프를 사용하면 화려한 보법을 펼쳐 보일 수도 있다.

잘하면 팬니르랑도 맞짱 떠볼만 했다.

그 정도 실력의 제리는 글리제와 지구를 연결하며 꾸준히 몬스터 사체를 이동시켰다.

핵심 인재.

삼고초려를 해서라도 데려와야 할 정도의 핵심 인재다.

그런 제리에게 아이템을 사주긴 했지만 직접 돈을 줘본 적은 없다.

이 정도 인재에게 월급을 줘야 한다면 얼마를 주어야 할까?

제리가 먹을 것을 고르는 모습을 보았다.

무얼 먹을지 고민하는 모습.

“후후.”

제리가 먹는다는데 뭔들 못 사줄까?

“여기요.”

직원이 친절하게 답했다.

“네”

나는 손가락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다 주세요.”

사실 꼭 한번 해보고 싶은 말이었다.

흠칫!

제리가 깜짝 놀라는 게 느껴졌다.

반쯤 뭉개졌던 트롤이 회복해서 피를 철철 흘리며 같이 죽자고 다시 덤빌 때도 놀라지 않던 제리가 나의 럭셔리한 쇼핑에 놀랐나 보다.

나는 한쪽 귀에 손을 가져갔다.

소리를 잘 듣기 위해서다.

무슨 소리냐고?

기다렸다는 듯 소리가 들렸다.

띠링!

―친밀도가 1 올랐습니다.

내 그럴 줄 알았다.

금쪽같은 소환수들

— 거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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