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화. 조용한 명성
나는 얼른 상태창을 열어 보았다.
“상태창.”
[김민준]
직업: 소환술사
레벨 30
힘 30
민첩 30
체력 55
마나 70+30
미분배 스탯 20
소환수 1/2
거주 행성: 지구
연결된 행성: 글리제
스킬: 하급 소환술, 힐, 바인드
“대박.”
상태창에서 가장 중요한 숫자가 바뀌었다.
[소환수 1/2]
소환수를 한 명 더 뽑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거 보통 일이 아니다.
누구를 뽑지?
나는 앞에 있던 샤샤를 불렀다.
“샤샤야.”
“네.”
“대박이야.”
“……?”
“나 소환술 스킬이 올랐어. 이제 소환 가능한 인원수가 2명이 되었어. 즉, 샤샤 너 이외에 한 명을 더 소환할 수 있다는 뜻이지.”
샤샤가 손뼉을 치며 말했다.
“어머, 그럼 저의 동료가 생기는 건가요?”
“그렇지.”
“누구를 뽑으실 생각이세요?”
나는 잠시 고민하며 말했다.
“거기까진 아직 생각하지 못했어. 찾아봐야지.”
“아무튼 축하드려요. 저도 이제 동료가 생기는군요.”
“그래.”
소환수를 누구를 더 뽑아야 하려나?
“알파야 네 생각은 어때? 누굴 더 뽑으면 좋을까?”
―처음 샤샤를 뽑을 때의 생각을 해보시면 아시겠지만, 민준 님을 전혀 모르는 대상은 소환을 거절할 가능성이 큽니다. 지금 탐사대의 인원들은 어떤가요? 기사들은 상당히 실력이 좋습니다. 그리고 민준 님에 대해서 호의가 가득합니다. 그리고 마법사 알타르는 민준 님에 대한 관심이 매우 많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구나.
소환수를 뽑는데도 인지도가 필요한 모양이다.
첫 소환수를 뽑을 때는 내가 누군지 모르니 늑대에게도 까였었다.
이제는 내가 인지도가 있어서 기사나 마법사도 내 제안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
“샤샤야, 네가 기사들에게 내가 소환수 한 명 더 뽑을 건데, 생각 있는 사람 있는지 좀 물어봐. 왜 안톤인가 있지? 그 정도 상급 기사가 와주면 정말 좋을 것 같은데.”
“안톤 님이요?”
“어.”
“네, 물어볼게요.”
샤샤는 탐사대로 돌아와서 기사 안톤을 찾았다.
“안톤 님.”
“응, 샤샤야.”
“저의 마스터께서 소환수를 한 명 더 뽑으신대요.”
“오호, 그래?”
“네, 그래서 혹시 안톤 님이 생각이 있으신지 물어보라고 해서요.”
“으음.”
안톤은 어색한 얼굴로 말했다.
“미안한데 나는 어려울 것 같아. 나는 디아론 백작님에게 충성하기로 서약을 한 몸이라서 말야. 그런데 아마 여기 탐사대의 기사들은 다 마찬가지일 거야. 성으로 돌아가서 주인을 정하지 않은 자유 기사들에게 이야기를 해봐야 할 거야. 그들은 아직 모실 주인이 없거든.”
“아, 그렇군요.”
샤샤가 나에게 쪽지를 보내왔다.
성으로 돌아가서 충성 서약을 하지 않은 자유 기사를 찾아야지 현재 충성 서약을 한 기사들은 소환수의 계약을 맺기 어렵다고 한다.
쩝, 상급 기사를 얻을 수 있다는 부푼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조금 실망감이 느껴졌다.
하긴 갑자기 직장 그만두라면 그게 쉽나.
그리고 저쪽 세계는 지구와 달리 이직이 자유로운 분위기도 아닌 듯했다.
샤샤에게 이어서 쪽지가 왔다.
[민준 님.]
[응, 샤샤야.]
[제리아나마스는 어떠세요? 실력은 상급 기사급이던데요?]
아!
그 아이도 있었구나
그 생각을 못 했네.
새끼늑대를 키울 생각까지 했었는데, 상급 기사급의 실력을 갖춘 수인족이라면 땡큐다.
그리고 맹수와 인간형의 모습을 변신하는 소환수.
소환술사로서의 로망 중 하나다.
그리고 쟤는 혼자 돌아다니니까 어디 계약에 묶이지도 않은 듯했다.
[샤샤야.]
[네.]
[네가 그 수인족에게 살살 운을 좀 띄워봐.]
밀당을 해야지.
갑자기 들이대면 거부감이 느껴질 수도 있다.
내가 샤샤에게 얼마나 잘해주는지 옆에서 보다 보면 부러워질 수도 있다.
그런데 고양이가 뭘 좋아하지?
나는 스마트폰을 들고 고양이가 좋아하는 것을 검색해 보았다.
탐사대가 행군을 멈추고 잠시 쉬는 시간.
샤샤가 제리아나마스를 찾았다.
“제리아나마스.”
“왜?”
“이것 좀 먹어 보라고.”
제리아나마스는 샤샤가 건네는 음식을 바라보았다.
지난번 수인족 그림이 그려진 금속 캔은 참 놀라웠다.
그런데 이번엔 또 뭘 가져왔을지 궁금하다.
샤샤가 손으로 한 뼘 정도 되는 길이의 막대 모양의 뭔가를 찢었다.
그 속에서는 말랑말랑하고 탱글탱글한 음식이 들어있었다.
“츄르라는 거래.”
“츄르?”
제리아나마스는 츄르 한 개를 받았다.
화악!
향이 진하다.
진하게 풍겨오는 향이 놀랍도록 진하다.
손가락 몇 개 정도 크기의 음식인데 이런 향이라니.
한 입 먹어 보았다.
“헉!”
머리에서 펑펑 별이 터지는 느낌이었다.
이런 음식이 있다니.
지난번 음식도 좋았지만 그래도 그건 맛있는 음식이었다.
하지만 이건 음식이라는 개념을 뛰어넘었다.
오직 향과 맛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샤샤가 궁금한 눈빛으로 물었다.
“어때? 맛있어?”
“응, 행복해”
“크크크, 그 정도야?”
샤샤도 한입 먹어 보았다.
조금 짠 맛이 느껴진다.
행복할 정도는 아닌데?
아무래도 이 음식은 마스터께서 수인족 전용으로 준비하신 것 같았다.
샤샤가 말했다.
“내 입맛에는 조금 짠 맛인데, 그렇게 맛있어?”
제리아나마스가 강한 어조로 말했다.
“어서! 어서 하나 더 줘.”
“어… 그래, 알았어.”
제리아나마스는 샤샤에게서 츄르 하나를 더 얻어먹고 나른한 표정을 지었다.
“이게 뭔 약이니?”
“하아, 넌 몰라.”
샤샤는 츄르 봉지에 그려진 수인족 그림을 보았다.
역시 이것도 수인족을 위한 음식이다.
그러니 제리아나마스가 이런 반응이지.
샤샤가 은근히 본론을 꺼냈다.
“제리아나마스, 너 혹시 모시는 주인이 있어?”
“나? 없는데? 그리고 나 독립했다고 했잖아.”
“그래? 그럼 이번에 나의 마스터께서 소환수를 한 명 더 모집한다고 해. 한 명은 나고 한 명 더 모집한다는 뜻이야. 어때? 생각 있어?”
“소환수?”
“그래, 소환수. 아마 마스터의 소환수가 되면…….”
샤샤는 츄르 하나를 더 꺼내 흔들었다.
“적어도 이런 건 마음껏 먹게 될걸?”
제리아나마스의 눈빛이 흔들렸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제리아나마스도 소환수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보류했다고나 할까?
츄르에 거의 넘어올 뻔했지만 잠시 고민해 보겠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나의 낚시를 덥석 물지는 않았다.
상급 기사 수준의 수인족이면 땡큐인데.
일단 며칠 기다려 보기로 했다.
레이저 포인트, 캣타워, 숨숨집 등 아직 수인족을 공략할 무기들은 제법 남아 있었다.
탐사대는 꾸준하게 행군했다.
트란 산맥의 날씨는 비가 왔다가 멈추기를 반복했다.
비가 오는 산에서의 행군.
쉽게 지칠 수 있었다.
하지만 희석 스테미너 포션으로 체력을 보충하고 비에 젖지 않도록 우의를 뒤집어썼다.
신발도 이미 물에 젖지 않는 신발로 교체해준 지 오래다.
그리고 젖으면 교체해준다.
그래도 이제 며칠 안으로 드리마스 족장과 만날 수 있을 듯했다.
사냥꾼 쟝은 다른 사냥꾼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쟝이 다른 사냥꾼들에게 말했다.
“트란 산맥에서 이번 탐사대처럼 편안했던 적은 없어.”
“형님, 이게 다 그 누구냐. 샤샤 님의 마스터님 덕분이지 않습니까.”
“그래, 솔직히 이곳까지 오면서 큰 부상자가 나오지 않은 것. 그 자체가 나는 좀 놀랍다.”
“그러게 말입니다. 사실 저는 여기 오기 전에 제가 죽을지도 모르니까, 혹시 제가 죽으면 가족들 알아서 잘살라고 이야기를 남겨두고 왔습니다. 이곳 트란 산맥에서 기사님들이야 몰라도, 솔직히 저희 목숨은 언제 없어져도 이상할 게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 그렇지.”
“형님도 보셨지 않습니까? 트롤에다가, 그 뭐냐. 굵직한 스네이크, 으힛. 저는 제가 이렇게 멀쩡하게 살아 있다는 것이 놀랍다니까요”
“그래.”
“형님. 가족들 보고 싶진 않으십니까?”
“보고 싶지만, 어쩔 수 없지.”
“가족들도 우리가 살아있나 궁금하겠죠?”
“그렇겠지.”
그때 샤샤가 큰 물통을 들고 사냥꾼들에게 다가왔다.
“아저씨, 이것 좀 드세요.”
“샤샤야, 또 뭘 이렇게 가져왔니?”
“이건 그냥 차에요. 따뜻할 때 드세요.”
샤샤는 종이컵을 꺼내 한 명 한 명에게 따뜻한 차를 나누어주었다.
“샤샤야. 늘 고마워.”
“그러게요. 샤샤 님, 늘 감사합니다.”
“에이, 아저씨들 왜 그러세요. 저희 다 같은 탐사대잖아요.”
샤샤가 물었다.
“무슨 이야기들 하고 계셨어요?”
“응, 집에 있는 가족들 이야기지, 뭐.”
“아…….”
샤샤도 아빠와 올가가 떠올랐다.
잘 지내고 있겠지?
트란 산맥에 들어온 지도 이십 일이 넘게 지났다.
긴장하며 숨 가쁘게 지내와서 잘 못 느꼈지만, 가족에 대한 이야기하자 아빠와 올가가 보고 싶었다.
샤샤는 쪽지를 보냈다.
띠링!
[민준 님.]
[응, 샤샤야.]
[민준 님, 혹시 디아론 영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연락할 방법이 없을까요?]
[영지에?]
[네, 여기 탐사대 사람들이 가족에게 연락할 방법이 없을까 해서요.]
“알파야.”
―네, 민준 님.
“탐사대 사람들이 집에 연락하고 싶어 하는데 방법이 있나?”
―마침 지금은 가능합니다.
“지금은 가능하다고?”
―네, 지금은 소환수의 인원에 여분이 있어서 다른 이들에게 제안을 할 수 있는 상태입니다.
“아, 소환수 인원이 비어있으면 말을 걸어서 제안을 해야 하니까 그 기능을 이용하자고?”
―네, 맞습니다.
“그럼 소환수 인원이 꽉 차면 말을 못 거나?”
―네, 그러면 다시 제안 기능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렇구나.”
[샤샤야.]
[네.]
[탐사대 사람들에게 편지를 걷어와. 편지를 자체는 전해주지 못하지만, 내용은 전해줄 수 있어.]
[정말요?]
샤샤는 이를 팬니르에게 이야기했다.
“대장님.”
“그래.”
“저희 마스터님께서 대원들이 편지를 쓰면 그 내용을 디아론 영지로 전달해 드릴 수 있다고 하세요.”
편지를?
이곳에서 디아론 성까지 편지를 보낸다고?
이곳에서 디아론 성과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다?
팬니르는 대원들의 사기가 오를 거라는 생각과 함께, 전략적으로도 활용할 수 있는 가치가 매우 높다고 생각했다.
팬니르는 대원들에게 각자 집에 보내는 편지를 작성하도록 했다.
대원들은 편지를 썼다.
글을 모르는 대원은 옆에서 도와주었다.
그 편지를 들고 샤샤가 지구로 넘어왔다.
샤샤가 일일이 나에게 편지를 읽어주면 내가 우리말로 적어두었다.
“이 편지 내용을 누구에게 전해주어야 할까?”
“편지를 전달하는 과정을 대장님께 이야기했더니 행정관님에게 전달하면 좋을 거라던데요?”
“그래?”
* * *
고풍스러운 성 내의 어느 집무실.
수북하게 쌓인 서류.
수석행정관 차이세는 집중해서 행정 업무를 보고 있었다.
띠링!
이게 무슨 소리지?
귓가를 울리는 소리에 차이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차이세 님?
차이세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물었다.
“누구십니까?”
―샤샤 님 아시죠? 저는 샤샤 님의 마스터, 민준 님의 도우미입니다.
순간 차이세는 백작도 관심을 두는 소녀인 샤샤와 그녀의 마스터라는 미지의 소환술사를 떠올렸다.
“네. 샤샤라면 잘 알고 있습니다.”
―탐사대원들이 쓴 편지를 샤샤가 전해달라고 해서요. 팬니르 대장님이 편지를 꼭 좀 잘 전달해달라고 하셨습니다.
“팬니르 님께서요?”
―네.
“어떻게 하면 되죠?”
―불러드릴게요. 적으세요. 먼저. 경비대원 엔토리엘이 부인과 딸에게 전하는 편지입니다.
...
* * *
디아론 성 바깥.
평야 지대에는 심어둔 곡식들이 황금물결을 이루고 있었다.
평야 지대에는 지난 몬스터 웨이브 때 피해가 약간 있었다.
하지만 그 피해가 극심한 건 아니었다.
만약 인간들 사이의 전쟁이었다면 식량을 주요 공격 대상으로 삼겠지만 몬스터들은 들판의 곡물들에 별 관심이 없었다.
그 평야 지대 한 귀퉁이에서 농사일에 한창이던 한 여인.
여인의 가족은 남편과 딸 한 명이었다.
남편은 경비병으로 일하고 있었고, 자신은 집 근처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었다.
그런데 남편은 얼마 전 작전에 뽑혀 트란 산맥을 올랐다.
그래서 지금은 자신과 딸만 지내고 있었다.
“계십니까?”
밭의 도랑에서 누군가 큰 소리로 여인을 불렀다.
밭에서 일하던 여인이 그 소리를 들었다.
“누구세요?”
“편지 배달왔습니다.”
“편지요?”
편지가 올 데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준다고 하니 편지를 받았다.
편지의 겉봉투에 적힌 글자.
[사나리스에게 남편 엔토리엘이]
“흑.”
편지 봉투에 쓰인 이름만으로도 눈물이 나왔다.
사나리스는 조심스레 편지를 뜯어보았다.
고급스러운 종이에 유려한 필체로 글이 적혀 있었다.
남편이 직접 쓴 글은 아닌 것 같았다.
[보고 싶은 사나리스와 에바가에게.
트란 산맥에 오른 지도 벌써 이십 일이 넘는구려.
나는 무사히 몸 건강하게 지내고 있소.
그동안 많은 몬스터들을 만났지만, 용감하신 기사님과 샤샤 님, 그리고 샤샤 님의 마스터 님 덕분에 나뿐만 아니라 모든 대원이 한 명도 크게 다친 사람 없이 무사히 탐사하고 있소. 이렇게 편지를 보낸 것도 모두 샤샤 님과 그분의 마스터님 덕분이라오.
보고 싶소. 에바가는 내가 여기 오기 전에 앞니가 빠졌었는데, 이제는 이가 나오고 있는지 모르겠소.
...
사나리스의 남편이자 에바가의 아빠가.]
사나리스는 조용히 눈물을 훔쳤다.
디아론 백작성에서 샤샤와 샤샤 마스터의 명성이 조용히 오른 하루였다.
금쪽같은 소환수들
— 거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