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화. 너 뭐하냐?
“안녕하세요? 한상일이라고 합니다.”
“저는 나홍민이라고 합니다.”
나는 건장한 두 청년을 보고 있었다.
이렇게 내 사무실에서 이렇게 마주 앉아 이야기하는 두 청년은 이제부터 내 일을 도와줄 직원이다.
며칠 전에 구인 광고를 내서 전화 면접을 거친 후, 방문 면접을 보러 두 사람이 왔다.
이야기를 나눠보니 둘 다 괜찮은 사람 같았다.
한상일은 둥글둥글한 얼굴에 작은 눈. 그리고 튼튼해 보이는 굵은 몸매를 지니고 있었다.
흰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키는 평범했지만, 청바지가 터질듯한 허벅지와 팔뚝을 보니 일을 잘할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통나무 같은 몸매와는 다르게 상업계열 학교를 나와서 돈 계산도 잘한다고 했다.
나홍민은 던전 짐꾼 업무를 많이 해서 헌터 업계에 대해서도 나름대로 잘 알고 물건을 관리하고 나르는 일에는 자신 있다고 하였다.
내가 두 청년을 보며 말했다.
“우선 1년 계약을 할 건데요. 두 분도 열심히 일하시고 저 또한 레벨업을 열심히 해서 함께 오래 일했으면 좋겠어요.”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두 사람이 오래 일할 수 있는지는 두 사람보다는 내가 더 관건이다.
고레벨 헌터는 1인 기업이다.
그리고 기업이라고 부를 정도로 고레벨 헌터는 딸린 직원들도 많다.
나는 지금은 직원이 둘 뿐이지만, 레벨업 상황에 따라 직원 수는 더 많아질 수 있다.
하지만 헌터는 고수익, 고위험 직군이다.
헌터가 던전에서 죽으면 그 헌터에 딸린 직원들은 순식간에 직장을 잃게 되는 셈이다.
길드에 속한 경우라면 다르겠지만, 지금 나와 두 직원은 개인 간의 계약이기 때문에 내가 죽으면 직장 자체가 없어지는 것이다.
“제가 헌터이긴 하지만, 고위험 던전에 자주 출입하는 헌터는 아니에요. 다른 헌터들보다는 상당히 안전하게 레벨업을 하니까 너무 걱정하지는 않으셔도 될 거예요.”
내가 나의 안전을 자신하자 두 사람도 한결 안심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저는 안전하게 레벨업을 하지만, 그렇다고 던전에서 얻는 자원이 적은 것은 아니에요. 개인 헌터치고는 꽤 많은 편이에요. 창고에 보시면 아시겠지만, 물건들이 제법 많이 있어요. 우선 하실 업무는 물건 구매, 관리 및 운반이고요. 제가 몬스터 사체를 가져오면 그것을 업체에 판매하는 일이에요. 그리고 몇 달 뒤에는 제가 던전을 돌 수도 있어서 그때는 또 던전 조회, 예약 업무가 추가될 수도 있어요.”
두 청년은 내 말을 경청했다.
몬스터 사체라는 말이 나오자 조금 흥미가 동하는 듯했다.
“창고로 가보시죠.”
나는 이들과 함께 창고로 갔다.
창고에는 다양한 물건들이 가득했다.
마치 창고형 대형마켓에 진열된 물건 같았다.
“여기 선반에 올라가 있는 것들은 텐트, 매트리스, 침낭 등이고요. 이쪽은 각종 식량 그리고 이쪽은 각종 무기 및 포션들이에요.”
한상일과 나홍민은 대형 창고에 수북하게 쌓인 짐을 보며 눈에 익히려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이쪽은 몬스터 사체들이에요.”
그곳에는 오크들이 짐짝처럼 쌓여 있었고 트롤과 샤벨 타이거가 있었다.
“뭐 아시겠지만, 이것들은 오크들이고요. 얘네들은 트롤이고, 저쪽엔 샤벨 타이거가 있어요.”
목이 잘린 트롤 두 마리가 우릴 보고 있었다.
샤벨 타이거도 기다란 송곳니를 보이며 누워있었다.
나는 트롤과 샤벨 타이거를 보며 고민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까지 오크들은 그냥 아는 업체 한 군데에 전량 넘겼는데요. 계속 그렇게 하기 좀 고민이 되네요. 오크만 있는 것도 아니고 트롤과 샤벨 타이거 같은 고등급 몬스터도 있는데, 막 넘겨버리기 좀 그래서요. 여기저기 업체도 좀 알아보고 견적 비교도 하고 그래야 하는데, 제가 바빠서 시간이 없어요. 그래서 견적을 좀 받아서 선정하는 일도 부탁드릴까 해요.”
나홍민이 말했다.
“트롤과 샤벨 타이거라면 상당히 등급이 높은 몬스터로 알고 있는데 대단하시네요.”
나홍민은 던전 짐꾼 일을 했다더니 상위 몬스터를 알아보는 듯하다.
왠지 내가 고레벨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하하, 제가 잡은 건 아니에요. 제 등급은 낮아요. 하지만 제가 사체를 받을 수 있는 곳이 있어요. 제 소환수가 와서 사체들을 부어놓고 갈 거예요. 그동안 제가 이 사체들을 판매했고요. 저기 보면 각종 무기와 포션 등이 있잖아요. 그런 걸 구매해서 다시 제공하곤 했죠. 그런데 그 일이 바빠서 두 분을 모시게 된 것이고요.”
한상일과 나홍민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물건을 싸게 사고 몬스터 사체는 비싸게 팔고 하면 좋은데 그러려면 또 시간을 들여야 하잖아요. 그런데 제가 그럴 시간이 없어요. 저는 사무실에 있는 소파에서 종일 벽만 보고 있을 거예요. 하지만 그게 제 능력과 관련된 일이라 소홀히 할 수가 없는 일이거든요. 그래서 두 분께서 구매, 판매, 관리를 해주셨으면 해요.”
한상일과 나홍민이 자신 있게 답했다.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저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소환술사거든요. 앞으로 함께 일하셔야 할 테니 제 소환수를 보여드릴게요.”
“알파야, 화면 좀.”
―네.
나는 탐사대가 뭘 하고 있는지 잠시 바라보았다.
마침 쉬는 시간인 듯 행군을 쉬고 있었다.
나는 허공에 말을 걸었다.
“알파야, 샤샤한테 소환해도 괜찮냐고 물어볼래?”
―네. 괜찮다고 합니다.
나는 멀뚱하게 나를 바라보는 두 사람에게 말했다.
“아, 그리고 제가 허공에 대고 말하곤 할건데요. 혼자 말하는 건 아니고 저와 소환수에게만 목소리가 들리는 도우미가 있거든요.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시고 그냥 그런가 보다 하시면 돼요.”
나는 두 사람에게 설명을 마치고 샤샤를 불렀다.
“샤샤 소환.”
화아악.
샤샤가 나타났다.
“민준 님, 안녕하세요. 어머? 다른 분들도 계셨네요?”
“어, 오늘부터 내 일을 도와주실 분들이야. 창고에 짐이 많아서 관리할 분들이 필요한 것 같아서 모셨어.”
“네, 민준 님을 도와주시는 분들이라고요?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저는 민준 님의 소환수인 샤샤라고 합니다.”
샤샤의 다소곳한 인사를 받은 직원들은 조금 얼빠진 얼굴로 대답을 했다.
“네… 저는 한상일입니다.”
“와. 아, 죄송합니다. 저는 나홍민이라고 합니다.”
샤샤가 웃는 얼굴로 말했다.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툭.
한상일은 손에 들고 있던 볼펜을 떨어뜨리며 허둥댔다.
“네, 저도 이 한 몸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한상일은 아예 오른손으로 거수경례를 하는 시늉을 했다.
“추…충성! 저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한 몸? 충성? 내 직원으로 뼈를 묻을 기세였다.
* * *
탐사대가 행군할 때 샤샤는 수인족인 제리아나마스와 함께 걸었다.
기사들은 팬니르의 명령을 받아 수인족을 감시의 대상으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샤샤는 수인족을 감시의 대상으로 보지 않았다.
어차피 감시는 기사들이 하고 있었고, 만약 기사들의 감시가 뚫고 달아나더라도 민준의 감시를 벗어나지는 못할 거로 생각했다.
그리고 탐사대에 여자라고는 자신뿐이었는데 인간은 아니지만, 대화가 통하는 암컷 수인족이 합류하자 친하게 지내고 싶었다.
그리고 수인족은 처음 보기 때문에 귀엽고 신기했다.
게다가 상대방을 신기해하는 것은 수인족도 마찬가지였다.
샤샤는 허공에서 물건을 꺼낸다.
그런데 그 물건들은 하나같이 신기하다.
도시에 사는 인간들도 놀라는 일인데 트란 산맥의 수인족에게는 마법 그 자체였다.
탐사대가 원래 최초 목적지로 삼았던 곳에 도착했다.
제리아나마스가 샤샤에게 물었다.
“여긴 왜 온 거야?”
샤샤는 아는 대로 말해주었다.
“나도 잘은 모르지만, 이곳이 지난 몬스터 웨이브 때 오크와 트롤들의 집결지였나 봐. 그래서 이곳에서 몬스터들의 흔적을 찾으러 온 것 같아.”
몬스터들의 집결지에 도착하자 팬니르와 쟝, 알타르는 집결지 곳곳을 살폈다.
한참을 살핀 후 쟝이 말했다.
“오크들의 움집의 흔적은 약 백여 개가 있습니다. 이것으로만 보아도 최소 천여 마리의 오크들이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더 많은 오크가 모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오크뿐만 아니고 트롤의 것으로 보이는 배설물도 발견하였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들이 온 방향인데 세 군데 길을 이용해 이곳 집결지로 내려온 흔적이 보입니다.”
이어서 알타르가 자기 생각을 말했다.
“이 장소에서 흑마법의 흔적을 찾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영지에서 조사한 내용으로는 몬스터들이 상호 간에는 적대적이지 않으면서 인간에게 과하게 적대적으로 된 뭔가가 있을 것으로 결론 내렸었습니다. 이 장소에서는 몬스터들을 그렇게 만든 원인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몬스터들이 출발한 장소를 더 추적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팬니르는 몬스터들이 내려온 흔적을 더 추적해서 쫓아 올라가 봐야 할지, 아니면 일단 수인족의 족장을 찾아가야 할지 고민이었다.
팬니르가 제리아나마스를 불렀다.
“너의 부족이 있는 곳은 어느 방향인가?”
제리아나마스는 손가락을 들어 위쪽을 가리켰다.
가리켜진 곳은 험준한 산맥의 봉우리들이 끝없이 펼쳐졌다.
제리아나마스는 그 중의 가장 높은 봉우리를 가리켰다.
“저기 가장 높은 봉우리의 건너편이에요.”
위치를 가늠한 쟝이 팬니르에게 보고했다.
“몬스터들이 내려온 흔적도 그 방향과 크게 벗어나지는 않습니다.”
“드리마스 부족장을 만나러 가겠다. 앞장서도록.”
다시 행군이 시작되었다.
높은 산봉우리에 가까워지자 산은 점점 험해졌다.
산세가 험해서 지치는 짐꾼들이 있었다.
그 모습을 화면을 통해 지켜보던 내가 말했다.
나는 샤샤에게 쪽지를 보냈다.
[샤샤야. 스테미너 포션 넉넉히 사 두었어. 서너 병 희석해서 나눠 마셔.]
[네, 감사해요.]
샤샤가 팬니르에게 말했다.
“대장님.”
거칠어지는 산세와 이를 힘겹게 오르는 대원들을 보던 팬니르가 대답했다.
“무슨 일이지?”
“제가 아침마다 오래 걸을 수 있도록 해주는 물을 나눠주는 것을 알고 계시죠?”
“그래.”
“지금 아침보다 조금 더 진하게 타서 나눠주면 어떨까요?”
팬니르는 대원들을 다시 살폈다.
기사 중에는 근육의 힘뿐만 아니라 살짝 마나를 쓰며 산을 오르는 기사가 있었다.
팬니르는 그 모습을 보고 인상을 썼다.
산세가 험하다고 기사들이 마나를 쓰면서 이동하면 갑자기 몬스터가 나타났을 때, 마나가 부족할 수도 있다.
산은 근육의 힘만으로 올라야 했다.
팬니르가 샤샤를 보며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그리고 대원들에게 외쳤다.
“대원 전원 정지. 잠시 휴식을 취한다.”
샤샤는 선물함에서 스테미너 포션 세 병을 꺼냈다.
그리고 선물함에서 1.5리터 생수 여섯 통을 꺼냈다.
그리고 샤샤는 능숙한 손길로 희석액을 제조했다.
이것도 여러 번 해봐서 이제 어느 정도의 물이 필요한지 잘 알았다.
샤샤가 포션 희석액을 제조하자 짐꾼들이 얼른 와서 희석액 통을 받았다.
“어이쿠, 샤샤 님. 나누어 주는 일은 저희가 하겠습니다.”
매일 아침 샤샤가 희석액을 제조하면, 그들이 받아서 나누어주는 일을 하곤 했다.
샤샤가 웃으며 말했다.
“고맙습니다.”
그 모습을 수인족이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 눈길에 샤샤는 제리아나마스에게도 한 잔 건네주었다.
“이것 마셔봐. 오래 걸을 수 있게 해주는 물이야.”
“정말?”
제리아나마스는 그 물의 냄새를 맡아 보았다.
미약하지만, 마나의 향이 섞여 있었다.
“마나가 섞여 있구나.”
“그게 냄새가 나?”
“그럼 안 나?”
샤샤가 물의 냄새를 킁킁 맡아 보곤 어깨를 으쓱했다.
“글쎄, 난 잘 모르겠네.”
“너야 인간족이니까 그렇지.”
제리아나마스는 스테미너 포션 희석액을 한 모금 마셨다.
차가운 물의 시원함과 포션이 주는 기운참이 동시에 느껴졌다.
싱긋 미소가 지어졌다.
“맛있네.”
“그렇지? 전혀 새로운 과일 맛이 나지? 마스터께서 이번 포션은 포도라는 과일 맛이라고 하셨어.”
제리아나마스는 자신이 맛있다고 한 말은 그런 뜻은 아니고 본질적인 맛이라는 뜻이었지만, 새로운 과일 맛이 나는 것도 맞긴 하니 더 따지지 않았다.
제리아나마스가 물었다.
“너의 마스터는 어떤 분이야?”
샤샤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나의 마스터는 아주 아주 멋진 분이시지. 얼굴도 잘생기셨고, 능력도 대단하셔. 너도 봤지? 내가 꺼내는 물건들. 그게 다 마스터께서 주시는 거야.”
제리아나마스는 물건들이 대단하다는 데 동의하는 듯 끄덕였다.
샤샤는 두 손을 가슴에 모으며 말했다.
“그리고 사실 내가 마스터를 존경하는 건 단지 그분의 능력 때문은 아니야.”
“그럼 뭔데?”
샤샤는 아련한 표정으로 말했다.
“사실 나는 그냥 평범한 산골 소녀였어. 이렇게 트란 산맥을 오른 적도 없었고, 몬스터를 잡기는커녕 멧돼지 한 마리만 나타나도 도망쳐야 했지. 아니 사실 멧돼지를 만났는데 제대로 도망도 못 치고 비탈에서 굴렀지.”
샤샤는 제리아나마스에게 민준에 대한 이야기를 구구절절하게 했다.
제리아나마스도 처음 듣는 샤샤와 소환술사의 이야기에 흥미 있게 귀 기울였다.
샤샤는 민준이 자신을 구해준 이야기, 마을 사람들을 몬스터의 추격에서 따돌리도록 도와준 이야기, 성벽에서 함께 싸울 수 있도록 해준 이야기를 했다.
샤샤는 이야기하는 도중에 울컥했는지, 그만 눈물이 핑 돌기까지 했다.
“…그래서 그때 이후로 나는 하늘을 보는 습관이 생겼어. 지금도 마스터께서 우릴 내려다보고 계신다고 하셨거든.”
“지금?”
“그럼.”
샤샤는 두 손을 들어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고 두 팔을 활짝 벌렸다.
그리고 하늘을 향해 크게 손을 흔들었다.
그 모습을 본 제리아나마스가 물었다.
“이걸 정말 본다고?”
그때 샤샤가 소리를 질렀다.
“꺅!”
제리아나마스가 물었다.
“왜?”
“히히, 쪽지가 왔거든. 너 뭐하냐? 이렇게 말씀하셨어, 히히.”
제리아나마스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파란 하늘에 흰 구름 몇 조각이 떠다니고 있었다.
금쪽같은 소환수들
— 거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