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쪽같은 소환수들-34화 (33/230)

34화. 저 비싼걸 왜

뭔가 상쾌하면서도 기운이 나는 물 한잔이었다.

쟝은 물잔을 바라보고 다시 샤샤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 샤샤가 답했다.

“지구력을 조금 올려주는 재료를 조금 탔어요.”

샤샤는 텐트를 반납하러 오는 사람들에게 한 잔씩의 물을 나누어주었다.

빼먹으면 안 된다는 듯.

나는 샤샤에게 스테미너 포션 두 병을 물에 희석해서 탐사대의 인원들이 나눠주라고 했다.

힘들게 산악행군하는데 이렇게 희석해서라도 스테미너 포션을 마셔두면 산악행군이 한결 편안할 것이다.

짐꾼들도 스테미너 희석 포션을 마시게 했다.

짐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샤샤에게 감사를 표했다.

“샤샤 님, 고맙습니다.”

“아이고, 저희들까지 챙겨주시니 감사합니다.”

짐꾼들은 더욱 깊이 감사를 표했다.

짐꾼들의 시선에는 샤샤가 이미 상급 기사이자 대마법사의 제자처럼 보였다.

계급이 당연한 세상.

샤샤가 짐꾼들을 차별하더라도 누구 하나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짐꾼들 역시 당연하게 받아들였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지구의 대한민국의 사고방식으로는 짐꾼들을 차별할 이유가 없었고, 산골 마을 출신 샤샤도 모두에게 똑같이 나눠주라는 내 말을 잘 들었다.

탐사대는 간단히 아침을 먹고 짐을 한데 모았다.

그리고 샤샤는 열심히 짐을 선물함에 넣었다.

선물함이 꽉 차자 샤샤가 말했다.

―알파 님, 민준 님께 소환해 달라고 말해 주세요.

화아악!

탐사대원들과 함께 있던 샤샤가 사라졌다.

그리고 내 눈앞이 빛났다.

샤샤는 지구의 내 창고 안에 나타났다.

커다란 쓰레기봉투를 양손 가득 들고 있는 샤샤가 인사를 했다.

“민준 님, 저 왔어요.”

“여어, 샤샤. 수고가 많아.”

“네, 짐은 어디에 둘까요?”

나는 이미 창고에 철제 선반을 여러 개 만들어 두었다.

“자, 쓰레기는 저쪽에, 그리고 텐트는 이쪽 선반에. 다른 짐은 일단 이쪽 바닥에 쏟아놔.”

“네.”

샤샤가 짐을 꺼내기 시작했다.

꼭꼭 접은 텐트가 이십여 개가 나왔다.

내가 말했다.

“다 꺼냈어? 더 가져와야겠네.”

“네.”

“그럼 다녀와. 소환 취소.”

샤샤가 다시 탐사대로 이동했다.

산맥에서 내 창고로, 그리고 다시 산맥으로.

그렇게 총 다섯 번을 왕복하니 트란 산맥에 있는 짐을 다 옮겼다.

그렇게 짐을 옮긴 다음에는 샤샤의 선물함에 샤샤가 사용할 무기와 물약을 채워놓는 것도 잊지 않았다.

“샤샤가 사용할 화살과 물약들은 이쪽 테이블에 정리해 두었어. 왔다 갔다 짐 정리 다 하고 나서 마지막에는 이것들로 선물함에 챙겨둬.”

“네, 고마워요.”

전투하는데 보급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무기를 소홀히 하면 안 되지.

나는 수북이 쌓인 짐을 마저 정리했다.

쓰레기는 한쪽으로 치웠다.

저 쓰레기는 이따가 오실 청소 도우미분께서 치워주실 것이다.

“읏차.”

짐을 다 정리하고 다시 나만의 관람석으로 돌아왔다.

어제저녁에 배달온 소파인데 푹신한 소파에 앉아서 벽면에 글리제를 보이는 화면을 띄워놓았다.

소파를 향해 몸을 날렸다.

풀썩!

소파에 잠시 누워 있다가 다시 소파에 앉았다.

나는 오른쪽 무릎을 세워 오른 팔꿈치를 무릎 위에 올렸다.

엄지와 검지를 벌렸다 오므린다.

손바닥을 들어 왼쪽으로 옮겼다가 오른쪽으로 옮긴다.

탐사대를 비추는 화면을 이리저리 바꿔보는 것이다.

이제 슬슬 탐사대도 출발하려나 보다.

띠링!

샤샤에게 쪽지가 왔다.

[오늘은 북쪽으로 더 이동하기로 했어요. 어제 숙영지는 몬스터들의 영역은 아니라서 비교적 안전했지만, 오늘부터는 몬스터들의 영역 내부로 들어간대요. 아마도 몬스터와의 접전을 피하기 어렵다고 해요. 지금 있는 곳에서 북쪽은 일단 오크들의 영역으로 알려져 있어요.]

샤샤는 이렇게 중간중간 나에게 보고를 한다.

나도 쪽지를 보냈다.

[어, 샤샤야. 주변을 한 번 둘러보았는데, 딱히 몬스터가 보이지는 않아. 하지만 위에서 내려다보는 화면이라서 숨어있는 몬스터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조심해. 오늘 하루도 파이팅!]

화면 속의 샤샤가 내 쪽지를 보았는지 하늘을 보며 웃어 보인다.

각종 보급창고,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감시자.

내 담당은 보급관과 맵핵이다.

나는 다시 화면을 지켜봤다.

탐사대가 다시 행군을 시작했다.

세 시간 정도 행군했을 때, 사냥꾼 쟝은 자신 옆에 있는 사냥꾼에게 물었다.

“오늘 행군 어때?”

“네? 어떻다니요?”

“평소보다 안 힘들지 않아?”

“아, 그러게요. 오늘따라 몸이 쌩쌩하네요. 어제 푹 자서 그런가요?”

쟝은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며 말했다.

“아니야.”

“아니라고요?”

“그래, 오늘 아침에 마신 물 기억나?”

“물이요? 아…….”

“그래, 그거 그냥 물이 아니야.”

“그럼?”

“체력을 올려주는 물약이지.”

“오오오!”

사냥꾼은 감사의 눈길로 샤샤가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쟝에게 이야기를 들은 짐꾼은 다시 옆의 짐꾼에게 그 이야기를 전했다.

그렇게 샤샤에 대한 평판이 높아지던 중, 사냥꾼 쟝이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잠시 쪼그려 앉아 바닥을 살핀다.

그 모습에 옆에 있던 사냥꾼이 재빨리 상급 기사에게 신호를 주었다.

전 대원이 행군을 멈췄다.

팬니르가 쟝에게 다가왔다.

“뭔가?”

쟝은 색이 검고 주먹만 한 덩어리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오크의 배설물입니다.”

쟝은 오크의 배설물을 나뭇가지로 휘휘 부숴보고 냄새도 맡아 보았다.

“상태로 봐서는 배설물이 생긴 지 며칠 안 되었습니다. 이제 오크의 영역으로 들어온 것 같습니다.”

팬니르가 전원 집합시켜 말했다.

“이제 오크의 영역으로 들어왔다. 모두 경계를 소홀히 하지 말도록.”

팬니르가 상급 기사 몇 명을 불렀다.

“안톤, 발자크, 레민.”

“네.”

“너희는 사냥꾼 두 명과 함께 선발대로 먼저 이동한다. 너희가 이동한 후, 삼십 분 후에 우리도 출발하겠다. 표식을 남겨두도록. 오크를 발견하면 될 수 있으면 접전하지 않고 대기하거나, 일부 인원을 보내 본대에 알린다. 알겠나.”

“네.”

세 명의 상급 기사와 두 명의 사냥꾼이 먼저 출발했다.

본대는 잠시 휴식을 취했다.

샤샤는 현재 상황을 쪽지로 민준에게 알렸다.

* * *

나에게 쪽지가 왔다.

[민준 님, 이제 오크의 영역으로 들어왔대요. 오크들의 흔적을 발견했다고 해요. 그래서 선발대를 운용해 선발대가 먼저 정찰하며 가고 본대가 조금 늦게 따라간대요.]

[오케이.]

나는 오케이라고 쪽지를 날리긴 했는데 조금 걱정이 되었다.

탐사대가 본대와 선발대로 나누어졌으니 나는 본대도 살펴봐야 하고 선발대도 따라가며 확인해야 했다.

손놀림이 바빠졌다.

“알파야.”

―네, 민준 님.

“탐사대가 선발대를 운용한다는데 본대도 봐야 하고 선발대도 봐야 하는데 화면을 둘로 구분할 수는 없을까?”

―화면을 둘로 구분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구나. 그러면 이렇게 왼쪽 검지 하나만 들면 선발대, 검지와 중지 두 개를 펴면 본대를 살피는 걸로 하자. 화면을 빨리빨리 옮기면서. 그건 가능하지?”

―네.

나는 그렇게 손가락을 하나, 또는 두 개를 펴가며 선발대와 본대를 왔다 갔다 하면서 살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벽을 쳐다보고 수화 연습을 하는 사람처럼 보일 것 같았다.

다시 두 시간 정도 묵묵히 행군이 이어졌다.

“어?”

나는 선발대가 향하는 방향에서 오크 무리를 발견했다.

“알파야, 확대.”

―네.

손가락으로 확대하면 되지만 급한 마음에 입에서 말이 나왔다.

휙휙!

손바닥을 움직였다.

주변을 한참 탐사했다.

“스무 마리 정도 되네.”

지금 선발대가 걷는 속도를 보면 삼십 분이면 마주칠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얼른 샤샤에게 쪽지를 보냈다.

[샤샤야. 선발대의 앞쪽 삼십 분 거리에 오크 스무 마리를 발견했어.]

바로 샤샤의 쪽지가 왔다.

[네, 대장님께 전달할게요.]

샤샤는 팬니르에게 달려갔다.

“대장님, 저의 마스터님께서 선발대가 앞으로 삼십 분 후에 오크 스무 마리와 만날 것 같다고 하십니다.”

팬니르는 속으로 감탄했다.

‘허어.’

샤샤의 마스터는 선발대의 앞길까지 알려줬다.

이걸 뭐라고 불러야 할까?

선발대의 선발대라고 불러야 할까?

상급 기사 세 명이면 오크 스무 마리에게 당할 전력은 아니다.

그리고 싸우지 말고 대기하고 본대에 알리라고 했으니 아무도 다치지 않고 본대와 합류할 가능성이 제일 크다.

팬니르는 오크 스무 마리보다 샤샤의 마스터에게 더욱 관심이 생겼다.

하지만 팬니르는 그런 관심을 드러내기보다는 탐사 대장으로서의 일을 먼저 했다.

“벨라르.”

상급 기사 벨라르가 대답했다.

“네, 대장님.”

“선발대가 앞으로 삼십 분 후면 오크 스무 마리와 조우할 것이라는 정보가 있다. 너는 선발대에게 가서 본대가 올 때까지 대기하라고 전해라. 빠르게 선발대에게 달려가 알려주도록.”

“네, 대장님.”

나는 마침 탐사대의 본대가 선발대의 의견을 듣고 어떻게 해결하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본대에서 기사 한 명이 날아갈 듯 뛰어간다.

띠링!

샤샤의 쪽지가 도착했다.

[본대에서 선발대로 상급 기사 한 명이 민준 님이 알려주신 정보를 전달하러 간대요.]

“헐. 저걸 뛰어가서 알려준다고?”

편리한 현대 문물에 적응된 나로서는 뛰어가서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이 너무 원시적으로 보였다.

지구에서는 방문 열기 귀찮아서 거실에 있는 가족에게도 톡으로 이야기하는 세상인데 무려 수십 명의 목숨을 걸고 진행하는 탐사대의 의사소통 수단이 뛰어가서 말해 주기라는 것이 조금 아쉬웠다.

“와이파이는 안되더라도 무전기 정도는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나는 인터넷 헌터 용품 쇼핑몰에서 무전기 종류를 찾아보았다.

“어디 보자.”

인터넷 쇼핑몰에 있는 무전기는 종류가 다양했다.

던전 지형에 강하다!

어떤 산악지형에서도 터진다!

그래도 안 터지면 초소형 중계기를 쏘아 올린다.

헌터 용품 쇼핑몰에서는 화려한 성능을 자랑하는 무전기가 많았다.

“좋은 것 많네.”

지구에서도 던전에 들어가면 다양한 지형이 나타난다.

던전의 환경이 숲이나 평지가 나타나면 감사한 일이다.

극지방, 화산지대, 사막이나 물속인 경우도 있다.

그리고 그러한 악조건 속에서도 던전의 탐사팀들은 서로 의사소통을 해야 했고 사람들은 그들이 원하는 통신기기들을 개발했다.

던전용 무전기.

나는 무릎에 손가락을 두드리며 고민했다.

“음, 예산이 빠듯한데.”

탐사대 인원이 많아서 한 번 뭔가를 먹이려고만 해도 수십만 원이다.

그러면 하루에 한 끼만 넣어주려고 해도 열흘이면 수백, 한 달이면 식비만 천 단위로 나간다.

던전용 무전기의 가격이 눈앞에서 흔들린다.

저걸 사 말아.

혹시 몰라서 예비비를 조금 남겨놨는데 그 예비비를 지금 쓸까 말까 고민이 된다.

내가 그런 고민을 하는 사이에 상급 기사 벨라르는 선발대를 따라잡았다.

내가 발견한 오크 무리가 삼십 분 거리에 있다.

그리고 본대와 선발대는 삼십 분 거리에 있다.

마나를 써서 뛰어가면 5분이면 간다.

5분이다.

생각보다 금세 뛰어간다.

나는 상급 기사가 마음먹고 뛰면 얼마나 빠른지를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에이, 모르겠다. 일단 보류.”

나는 무전기를 사려고 검색하던 인터넷 사이트를 잠시 내려 두었다.

그러는 사이, 뛰어서 선발대에 도착한 벨라르가 말했다.

“안톤.”

“벨라르, 어쩐 일이야?”

“안톤, 이대로 가면 선발대는 약 25분 후에 오크 20마리와 만난다는 정보가 있어.”

“뭐?”

“샤샤의 마스터께서 너희 주변도 살펴보시는 것 같아. 그분께서 선발대가 25분 후에 오크와 조우할 것이라 전하셨다. 선발대는 더 이상 북쪽으로 가지 않고 이곳에서 본대를 기다린다.”

안톤은 주변을 살펴보았다.

누군가의 시선을 느끼지는 못했는데?

새삼 샤샤 마스터의 위력을 느꼈다.

앞으로 25분 거리라.

안톤은 북쪽 언덕들을 살펴보았다.

앞쪽에 언덕이 큼직한 것이 하나 있었다.

아마도 저 언덕 너머에 오크들이 있나 보다.

그렇게 선발대는 언덕을 넘지 않았고 그 자리에서 기다렸다.

시간이 흐르고 본대가 선발대와 만났다.

팬니르가 말했다.

“지금 저기 언덕 뒤편에 오크들이 있다고 한다. 오크들은 십여 마리는 잠을 자고 있고 나머지는 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능선을 타고 가면 발견되기 쉬우므로 좌측 산 사면과 우측 산 사면으로 각각 10명씩의 기사가 우회한다. 각각 안톤과 벨라르가 지휘한다. 약 30분 후에 좌우에서 동시에 공격하도록 하라. 나머지 인원은 이곳에서 대기한다.”

“충!”

샤샤의 마스터가 전해준 정보다.

이 정보를 의심하는 기사들은 없었다.

그들은 이미 지난 몬스터 웨이브 때 잔당 소탕 작전에서 샤샤의 마스터에게 놀라고 또 놀랐다.

스무 명의 기사들이 오크들을 잡으러 떠났다.

팬니르는 생각했다.

편안한 잠자리, 힘들어하는 표정 하나 없는 짐꾼들.

몬스터의 종류와 수를 미리 알고 기습으로 시작하려는 전투.

그냥 싸워도 이길 전력인데 기습까지 한다.

이런 것이 대마법사의 위용인가?

백작성에도 마법사들이 있지만, 그들은 몬스터 헌팅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당장 함께 온 마법사 알타르만 해도 상급 기사는커녕 중급 기사와 싸워도 질 수준이다.

데리고 다니면 경계 마법도 할 줄 알고 식사 때 불피우기 좋긴 하겠지만, 전문적인 전투 인재는 아니다.

이번 탐사에 알타르가 포함된 이유는 몬스터들을 자극한 흑마법이 존재하는지를 판별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샤샤의 마스터는 놀라울 뿐이다.

그는 이번 탐사대는 놀라운 편안함을 제공한다.

팬니르는 기사로서 마법사들을 무시하는 마음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마법의 경지가 높아지면 혹시 그들도 샤샤의 마스터처럼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그들을 무시해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떨결에 영지의 마법사들에 대한 인식까지 높아지는 탐사였다.

기사들은 조를 나누어 능선 아래 산 사면을 타고 이동했다.

산의 가장 높은 줄기인 능선을 통해 이동하면 걷기도 편하고 주변이 잘 보이지만, 반대로 적의 시선에서 능선을 따라 걷는 사람이 잘 보이기 때문에 발각당할 수 있어 위험하다.

기사들은 발각당하지 않기 위해 산 사면을 타고 조심스레 이동했다.

언덕 너머에 있을 오크들.

기사들은 우회해서 오크들을 넓게 포위했다.

나는 기사들이 우회하는 모습을 화면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꿀꺽.

지구에서 나는 소리가 저기까지 들릴 리 없지만, 나 역시 숨소리 하나 내지 못했다.

긴장감이 들었다.

화면에서 보면 저기 언덕 아래 오크들이 모여 있다.

언덕 아래 넓은 평지에서 절반은 자는 듯해 보였고 절반은 빈둥빈둥 쉬고 있었다.

도끼질하면서 무언가를 부수고 있는 오크도 있었고, 무언가를 쩝쩝거리며 먹고 있는 오크도 있었다.

기사들은 주변의 풀숲에 숨은 채로 오크들을 포위했다.

능선의 오른쪽 산 사면으로는 안톤이 기사들을 이끌었다.

안톤은 오크들을 포위하고 있는 병력들에게 수신호를 보냈다.

어느덧 약속한 시각이다.

가장 먼저 활과 투석용 무기를 준비했다.

일단 쏘고, 던지고 그러고 나서 백병전을 한다.

기사들에게는 익숙한 작전이다.

안톤이 수신호를 했다.

자신이 공격을 시작하면 건너편 벨라르도 이에 호응하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다.

모두 활 또는 투석용 무기를 준비한다.

안톤이 손가락을 모두 활짝 편 상태에서 손가락을 하나씩 접는다.

꾸우욱!

시위를 당기는 기사의 활에서 팽팽하게 시위가 당겨지는 소리가 났다.

안톤이 손가락을 모두 접고 손을 앞쪽으로 던지는 표현을 했다.

핑핑핑!

화살이 날아가고.

휙휙휙!

작은 손도끼가 날아갔다.

스무 명의 숙련된 기사들은 자신이 목표한 대상에 빗나감이 없었다.

퍽퍽퍽!

“쿠에에엑!”

화살과 도끼 세례를 받은 오크들이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한 호흡 뒤어이 벨라르가 이끄는 기사들의 무기도 날아왔다.

“크와악!”

오크들이 고함을 질렀다.

오크는 나름대로 강력한 포식자이다.

불시에 습격을 당했지만 겁먹고 달아나지는 않는다.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주변 공격자들을 찾는다.

마치 지옥에서 올라온 복수의 화신처럼 줄줄 피를 흘리며 도끼를 움켜쥐고 두리번거린다.

하지만 이미 첫 공격에서 여러 마리의 오크들이 절명했다.

나머지 오크들도 상처 입은 경우가 대부분.

피를 흘리며 도끼를 든 오크는 가까이 다가가기 어려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하지만 오크보다 더 강하고 더 많은 수의 기사들이 달려왔다.

타앗!

상급 기사 안톤이 땅을 박찼다.

오크를 향해 날아가며 공중에서 빙글빙글 회전했다.

흡사 올림픽 경기의 체조 선수를 보는 듯했다.

아니, 올림픽 체조 경기를 두 배 속도로 빠르게 돌려 보는 것만 같았다.

몇 바퀴를 도는 거지?

트리플 더블?

빙판 위의 피겨 스케이트 선수처럼 회전하면서 날아간다.

그렇게 공중에서 날아가며 오크에게 도착한 안톤은 회전력을 그대로 실어서 메이스를 휘둘렀다.

그러자 초반 기습에 화살이 배에 박혔던 오크가 안톤의 메이스에 도끼를 들어 저항했다.

뻐억!

하지만 오크의 저항은 무의미했다.

안톤은 도끼와 함께 오크를 뚜드려 팼다.

마나와 회전력이 함께 실린 안톤의 메이스를 막기에는 오크의 도끼는 너무 약했다.

나는 그 모습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던 내가 소리쳤다.

“와 쟤도 엄청 세네! 알파야, 봤어?”

벌떡!

나는 소파에서 일어나 몸을 빙글빙글 돌다가 한 손으로 몽둥이를 휘두르는 포즈를 잡았다.

“봤어? 이렇게 빙글빙글 돌다가 뚝배기를 똭. 예술이구만.”

―네, 마나 익스퍼트 중급 정도의 수준으로 보이는군요. 점프와 함께 5회전을 하고 마지막에 회전력을 이용해 마나가 실린 메이스를 휘두르는군요. 오크 수준으로는 저 일격을 막기 어렵겠습니다. 아마 민준 님도 못 버티실 것 같군요.

“뭐?”

―만약에 적이라면 말입니다.

“거기서 내 얘기가 왜 나와. 나도 알아. 딱 봐도 나보다는 세 보이네. 그리고 나는 소환술사라고 소환술사. 저 기사가 강해 보이면 내가 싸워서 이길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저 기사를 내 소환수로 삼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야 하는 게 맞는 사람이라고.”

―그렇군요. 맞습니다. 민준 님, 너무 흥분하진 마시죠.

“어, 알았어. 흥분은 안 했어. 아니 조금 했는데 너 때문은 아니고 조금 전에 기술이 너무 인상적이었나 봐.”

나는 기사가 오크 잡는 모습을 한두 번 본 것도 아니었지만, 오늘따라 큰 기술을 구경해서 조금 흥분한 것 같았다.

화면에서는 기사들이 오크들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이미 오크들의 수는 기사들보다 훨씬 적었다.

몇 마리 남은 오크가 발악한다.

오크가 도끼를 휘두르면 기사 한 명이 방패를 이용해 가볍게 탱킹을 한다.

그러면 도끼를 휘두르느라 드러난 오크의 무방비한 옆구리에 다른 기사가 검을 찔러넣었다.

과감하고, 안정적이고, 강력하다.

큰 기술을 다시 보여주진 않았지만 정확하고 기계적이었다.

이래서 기사라고 하는구나.

나는 왜 기사가 전투 기계라고 불리는지 알 것 같았다.

“기계네, 기계야.”

착착 들어맞는다.

물론 기사보다 오크가 약하기도 하고 기습으로 싸움을 시작한 덕도 있을 것이다.

싸움. 아니 오크 학살이 끝나고 기사들이 주변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움푹 파인 장소에 오크들을 밀어 넣고 풀과 흙으로 덮기 시작한다.

그 모습을 보자 나는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쟤네 뭐 하는 거지?”

―오크 사체를 흙으로 덮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냥 묻어버린다고?”

―그런 것 같습니다.

조금 당황스럽다.

저 비싼 걸 왜?

금쪽같은 소환수들

— 거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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