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너는 이미 알고 있다
마나초가 부드럽게 목을 넘어갔다.
샤샤는 눈을 크게 뜬 채 내가 마나초를 삼키는 것을 쳐다봤다.
쟤 입장에서는 자기가 가져온 것을 잘 먹나 살피는 것 같은데, 나로서는 뭐 먹는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는 것이 좀 부담스럽다.
너무 혼자 먹고 있나?
좀 줘야겠다.
그런데 마나초를 삼키니 몸속 느낌이 묘하다.
두근.
미약하게 빨라지는 심장박동.
마나초의 향기가 입안 가득 퍼졌다.
그 향기가 내 콧구멍을 지나 기관지 아래로 내려갔다.
신기하게도 나는 그 향기가 내 몸의 어디쯤을 지나는지 느껴졌다.
사아악.
아! 점점 내려간다.
기관지를 지나 폐까지 도착했구나.
꿀꺽.
폐로 도착하는 마나초의 향기뿐 아니라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느낌도 생생했다.
씹어 삼킨 마나초 덩어리도 내 식도의 어느 위치 정도를 내려가고 있는지 느껴졌다.
이런 느낌 오랜만이었다.
아주 예전에 무슨 과학 실험에서 암모니아수의 냄새를 맡아본 적이 있었다.
조교 형이 냄새 독한데 맡아볼 사람 있냐고 그래서 한 번 도전해 봤었지.
강렬한 경험이었다.
암모니아수의 기체가 내 콧구멍을 지나 어디까지 내 몸속으로 들어오는지 느낄 수 있었다.
식도 역시 마찬가지다.
독한 술을 마셨을 때처럼.
식도를 따라 내려가는 마나초의 위치가 느껴진다.
후끈.
몸이 더워진다.
마나초 이거 물건이네.
한 입 삼켰는데 몸에서 이 정도 반응이라고?
“후아.”
나는 손바닥으로 얼굴에 부채질했다.
“샤샤야, 이거 몸에 반응이 바로 오는데.”
샤샤가 손부채질로 내 얼굴을 식혔다.
“더우세요?”
그렇게 말하고 있는 와중에도 뱃속에 들어간 마나초는 따뜻함을 전해왔다.
이내 귓가를 알리는 소리가 들렸다.
띠링!
[마나가 1 늘었습니다.]
“어? 마나가 늘었어.”
나는 얼른 상태창을 열어보았다.
“상태창.”
[김민준]
직업: 소환술사
레벨 26
힘 30
민첩 30
체력 40
마나 56
미분배 스탯 10
소환수 1/1
거주 행성: 지구
연결된 행성: 글리제
스킬: 최하급 소환술, 힐, 바인드
원래는 마나 수치가 55이어야 하는데 56으로 하나 올랐다.
나는 손에 들고 있는 마나초를 바라보았다.
20cm 정도의 길이
한쪽 끝부분은 내가 한입 베어낸 자국이 남아있다.
아직 9개나 더 남아있는 마나초
이걸 다 먹으면 마나가 얼마나 늘어나는 거야?
나는 마나초 한 개를 꼭꼭 씹어 삼켰다.
마나초 한 개에 최대 마나가 5가 늘었다.
다시 하나를 먹어보았다.
이번엔 최대 마나가 4가 늘었다.
약간 줄어드는구나.
나는 내 앞의 샤샤에게 마나초를 건넸다.
혼자 먹으면 정 없지.
“샤샤야, 너도 먹어봐.”
“아니에요. 민준 님이 드시는 걸 제가 먹으면 되나요.”
“사양하지 마. 네가 세지는 게 곧 내가 세지는 거야.”
거듭된 권유에 샤샤도 마나초를 먹었다.
“어때? 마나 좀 올라?”
나는 한 입 삼켰을 때 바로 마나가 올랐는데 샤샤는 그 정도는 아니었다.
하나를 다 먹고 난 후 샤샤가 말했다.
“마나가 2 올랐어요.”
마나가 2만큼 올랐다고? 나는 5가 올랐었는데 나보다 효율이 높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렇게 마나가 풍부한 음식에 노출된 경험이 없는 내가 반응이 더 컸던 것 같았다.
1렙일 때 내가 마나 10일 때 샤샤는 마나가 30이었지.
그만큼 샤샤는 마나가 풍부한 세상에서 살고 음식에도 마나가 많았을 것 같다.
“내가 마나초 한 개에 마나가 5 올라갈 때 샤샤는 2가 올라갔어. 그럼 나 7개 샤샤 3개 먹자. 마나가 올라가는 효율이 내가 높아서 그래.”
나는 샤샤에게 마나초를 두 개 더 주었다.
나는 나머지 마나초를 하루에 하나씩 먹어볼 생각이었다.
“자, 마나초 먹고 배부르니까 소화도 시킬 겸 마정석이나 팔러 가보자.”
나는 샤샤와 함께 마정석 거래소에 가기로 했다.
마정석은 안전하게 샤샤의 선물함에 넣어두었다.
샤샤와 함께 지하철을 탔다.
덜컹덜컹.
지하철이 흔들린다.
힐끔.
샤샤와 함께 지하철을 타니 여기저기 시선이 느껴진다.
나 혼자 길을 가거나 지하철을 타면 전혀 안 느껴지는데.
샤샤는 이런 시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번 역은 역삼 역삼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왼쪽입니다.
“샤샤야, 이번에 내리자.”
“네.”
내가 교통카드를 출입구 태그하는 곳에 찍었다.
삑.
샤샤도 교통카드를 찍고 출입구를 나왔다.
샤샤는 이제 교통카드 정도는 척척이다.
[강남 마정석 거래소.]
던전 앞에서도 마정석과 몬스터 부산물들을 거래할 수 있지만, 마정석이 제법 커서 강남 거래소까지 와봤다.
던전 앞이 소매상이라면 여기는 도매상이다.
아무래도 마정석이 크니까 규모가 큰 곳에서 거래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멋진 대리석이 깔린 건물.
으리으리하다.
저 건물에서 하루에 거래되는 마정석만 해도 가격이 어마어마하겠지.
건물에 들어서자 사람들이 많다.
저마다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여기도 마정석만 거래되는 작은 시장이라 할 수 있다.
시장이니 사람들이 많지.
잠시 어디를 가야 하는지 고민했는데 대형 표지판이 우릴 반겼다.
[마정석 판매 3F]
안내하는 사람에게 물어볼 것도 없다.
그리고 그 옆에는 대형 전광판에 마정석 시세가 적혀 있었다.
판매할 때, 구매할 때 등급별 가격이 적혀 있었다.
지하철에서 오면서 인터넷에서 마정석의 크기와 등급을 살펴보았었다.
가져온 마정석은 크기로 따지면 대부분 B급이라던데 B급 정도 되면 얼마인가?
와, 입이 쩍 벌어진다.
B급도 B—급에서 B++급으로 범위가 있는데 못해도 수천만 원이다.
나는 살짝 긴장되는 마음으로 말했다.
“샤샤야, 3층이래. 올라가자.”
3층에 올라와서 번호표를 뽑고 기다렸다.
195번이다.
“민준 님.”
“어.”
“긴장되세요.”
“아니, 긴장이라기보다는 기대된다고 할까.”
“왜요?”
“아, 이거 마정석 비싼 거라서. 아마 너희 동네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여기서 더 비싸게 거래되는 것 같아.”
샤샤는 고개를 끄덕였다.
띵동.
“195번 고객님.”
“네.”
나는 얼른 번호표를 보여주었다.
번호표를 받아 샤샤와 함께 안내된 방으로 들어갔다.
아무래도 고가의 마정석 거래인만큼 다른 사람들이 보이지 않게 하려는 것 같았다.
방에 있던 직원이 말했다.
“판매하시려는 마정석을 이곳 테이블에 올려두시면 됩니다.”
나는 주먹만 한 마정석 한 개를 꺼내 올려두었다.
직원은 흰 장갑을 낀 손으로 마정석을 들더니 네모난 통 속에 넣었다.
위이이이잉.
띠딕.
“마나 밀도가 4825이네요. B0급입니다. 보자. 오늘 시세로 계산하면…….”
직원은 계산기를 톡톡 두드리더니 계산기를 나에게 보여주었다.
“6,730만 원이네요.”
나는 나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만세!’
속으로 외쳐보았다.
후훗.
아직 열 개의 마정석이 남았다.
직원이 말했다.
“입금해 드릴까요?”
“샤샤야, 다 꺼내 봐.”
“네.”
주섬주섬.
샤샤가 마정석을 모두 꺼냈다.
열 번째 마정석을 꺼낼 때까지 직원의 표정은 전혀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마지막 오우거의 마정석을 꺼내자 직원은 작은 감탄을 터트렸다.
“호오.”
온종일 마정석만 보는 직원 눈에도 놀라운 크기의 마정석이다.
직원은 오우거의 마정석부터 기계에 넣고 마나 밀도를 측정했다.
위이이이잉.
마나 밀도를 측정하는 기계를 돌리는 동안 직원은 나에게 미소를 건네주었다.
마치 ‘대박 축하해’라는 듯한 미소였다.
나는 기계가 돌아가는 동안 속으로 중얼거렸다.
높이 나와라. 높이 나와라. 대박 나와라!
가즈아!
띠딕!
[52640]
아싸!
단위 수가 다르다.
아까는 4천 얼마였는데 6천만 원인데 이건 5만으로 시작한다.
“A0급이네요. 표를 보시면 아시다시피 급수에 따라 마나 밀도에 곱하는 시세가 다릅니다. A0급 시세에 마나 밀도를 곱해보면…….”
톡톡톡.
계산기를 두드린 후 계산기를 돌려서 그 값을 나를 향해 보여주었다.
“8억 6천 5백만 원입니다.”
“넵.”
존댓말이 절로 나왔다.
“나머지 마정석들도 측정해볼게요.”
직원은 차례차례 마정석의 마나 밀도를 측정했다.
던전 앞에서 마정석을 거래할 때는 이렇게 일일이 마나 밀도를 측정하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고가의 마정석이라서 그런지 측정을 세밀하게 하는 것 같았다.
“A0급 하나, B+급 2개, B0급 8개이고요. 금액은 모두 합쳐서…….”
꿀꺽.
침이 넘어간다.
“14억 2천 5백만 원이네요.”
크흠.
나는 애써 담담한 표정을 지으려 노력했다.
이래서 헌터 헌터 하는구나.
나는 헌터 자격증을 받았지만 던전에 들어갈 수 있다는 점을 빼고는 크게 달라진 것을 느끼지 못했다.
대출받은 빚이 쌓여 있었다.
사는 곳도 그대로였다.
삶의 방식은 달라졌지만, 삶의 수준이 달라졌다고 느끼진 못했다.
하지만 14억이라니 뭔가 느낌이 붕 뜨는 듯했다.
갑자기 세상이 달라진 느낌.
아니, 이거 이래도 되는 건가 하는 느낌이다.
몬스터를 잡을 때도 막 내가 달라졌다는 생각을 못 했는데 14억이란 금액이 뭔가 기분을 싱숭생숭하게 했다.
그래. 로또네, 로또.
로또 1등을 하면 대략 이 정도 받는다고 했다.
탐사대 착수금이 로또 1등 값어치이다.
나 성공한 거지?
아니, 샤샤야. 네가 내 로또다.
샤샤가 탐사대를 진행할 동안 절대 한눈을 팔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오우거 한 마리 잡으면 수억씩 떨어지니 고레벨 헌터들의 삶이 어떨지 살짝 엿보이는 듯했다.
F급 던전 종일 돌고 샤샤 몫까지 받아 이삼백 받았었는데 갑자기 이렇게 단위 수가 올라가니 황당할 따름이다.
“글리제가 로또네.”
지구 던전보다는 글리제에 집중하는 게 효율이 높았다.
지금 26레벨까지 레벨업한 것도 대부분 글리제에서 몬스터 웨이브 때문이며, 금전적인 부분도 지구 던전 F급 도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지구에서는 내가 단지 F급을 돌 수 있는 E급 정도의 헌터일 뿐이지만 글리제에서는 유일무이한 소환술사다.
백작이 직접 챙기니 대우가 다를 수밖에.
하긴 지구에서도 백작급의 인물이 나를 직접 챙긴다면 10억이 대수일까?
지이이잉.
톡이 왔다.
누군가 해서 보니 친구 우철이다.
[뭐하냐?]
지금 14억 수금하는 중이라고 말해야 할까?
나는 무난하게 답했다.
[일해.]
[일한다고?]
[응.]
[공부는?]
[때려치웠어.]
[헐, 진짜?]
[그래.]
[그렇구나. 그럼 한잔해야지?]
공부를 때려치우고 일한다는 게 왜 한잔과 연결되는지 모르겠다.
설마 어울리지도 않게 날 위로하려고 하지는 않겠지?
어쨌든 오늘은 현금 상황이 매우 좋은 날이다.
[오늘 돈 좀 벌었다. 시간 있으면 나와. 찐하게 쏠 수 있다.]
[얼~ 그럼 나가야지.]
늘 보던 먹자골목 입구에서 우철이를 기다렸다.
우철이가 나를 보자 아는 척을 했다.
“여어~ 공시생, 드디어 때려치웠는감.”
이놈은 보자마자 시비다.
“그래, 언제 붙을 줄 몰라서 때려치웠다.”
“어디 들어가자. 때려치운 기념으로 한잔 마셔야지.”
늘 먹던 골목, 늘 가던 식당
익숙한 장소에서 익숙한 놈이랑 술을 먹으니 편안했다.
지글지글 곱창 익어가는 소리가 요란하다.
“이모님, 여기 이슬처럼 두 병이요.”
“네~”
곱창을 뒤집어보니 이제 먹어도 될 것 같았다.
“한잔 마셔.”
쨍.
한잔 부딪치고.
한입에 털어 넣었다.
크.
쌉쌀하면서도 달다.
“그래, 공시 때려치우고 이제 무슨 일 해?”
나는 쿨하게 말했다.
“응, 헌터.”
“컥!”
우철이가 놀라서 사레들린 듯하다.
“큼큼. 어흐흐흠흠.”
“괜찮냐?”
“어 괜찮아. 흠… 흠…….”
“나 각성했어.”
“진짜?”
나는 지갑에서 헌터 자격증을 꺼내 보여줬다.
“와, 씨. 대박이네. 뭔데? 스킬이 뭐야? 기술이 뭐야.”
우철이가 호기심에 눈이 빛난다.
“소환술사.”
“소환술사? 뭘 소환해? 몬스터? 정령? 보여줄 수 있어.”
나는 곱창 하나를 입에 넣었다.
우물우물.
쫄깃하게 고소하니 맛있다.
내가 씩 웃으며 말했다.
“너는 이미 알고 있다.”
우철이가 또 왜 저래 하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보았다.
금쪽같은 소환수들
— 거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