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팀워크
이어진 던전 사냥은 무난하게 진행이 되었다.
달아나는 폭시와의 술래잡기를 제외하면 다른 어려움은 없었다.
“어, 폭시! 달아나요.”
관장과 싸우던 폭시가 어그로가 풀렸는지 달아나기 시작했다.
“바인드.”
내가 외쳤고 동시에 샤샤의 화살도 날아갔다.
휘릭!
팍!
나의 바인드와 샤샤의 화살이 동시에 도착했다.
바인드에 걸려 다리가 묶인 채 화살에 꿰인 폭시.
“캐앵.”
“옳지, 잡았다.”
나는 잠시 팀원들의 전체 헌팅을 지켜보았다.
팀원들에게는 이곳 던전이 난이도가 딱인 듯싶었다.
지금 던전에서 탱커들에게 작은 상처들이 나는데 이 정도는 감당 가능한 상처였다.
나나 샤샤에게는 조금 수월했지만, 이렇게 적당한 던전을 도는 것도 괜찮았다.
여유 있는 레이드.
관장이 달아나던 폭시의 숨을 끊었다.
띠링!
[레벨이 올랐습니다.]
기분 좋은 알림 소리가 들렸다.
[스킬 뽑기 1회 생성되었습니다.]
오호, 5레벨당 스킬 뽑기 하나를 주는데 이번이었구나.
이제 25레벨이다.
그렇게 사냥하다 잠깐의 여유가 생겼다.
내가 말했다.
“동서 형님, 잠시만 쉬었다 할까요.”
“그래, 그러자. 자, 잠깐 모여 쉴게.”
나는 알파를 불렀다.
“알파야.”
―네. 민준 님.
“뽑기 한번 가보자.”
―네. 스킬 뽑기 시작합니다.
눈앞 가득 스킬 카드들이 나타났다.
화려한 무늬를 띄는 금색 카드들이 은은한 빛은 내었다.
눈 앞에 펼쳐진 수십 장의 카드 뒷면.
집에 가서 천천히 해도 되겠지만 혹시 또 지금 유용한 스킬이 나올 수도 있어서 열어보았다.
모든 카드가 뒷면을 보이면서 나를 유혹한다.
“아, 고민된다.”
나는 늘 뽑기가 긴장되면서도 고민이 된다.
샤샤에게 물어볼까?
“샤샤야.”
“네, 민준 님.”
“넌 이거 보여?”
“네? 어떤 거요?”
“카드…. 안 보이나 보구나.”
“카드요?”
아쉽다. 혹시라도 샤샤에게 카드가 보이면 앞면 물어보려 했는데 이놈의 뽑기는 융통성이 없다.
앞면을 좀 보여주거나 힌트를 주면 안 되나?
나는 또 나만의 주문을 외워본다.
어느 것을 고를까요? 알아맞혀 봅시다, 척척박사님!
찍었다.
오늘 나의 원픽은 바로 너!
나는 카드 한 장을 손가락으로 찍었다.
[카드 개봉합니다.]
카드가 빙글빙글 돌더니 앞면이 드러났다.
[이단 점프 스킬 카드를 습득했습니다.]
[이단 점프 스킬(D등급)]
공중에서 한 번 더 점프를 할 수 있습니다.
아…….
애매하다.
뭐, 아주 나쁜 건 아닌데 그렇다고 지금 꼭 필요한가 하면 또 그렇지도 않다.
힐 같은 대박 스킬은 아니더라도 좀 아쉽다.
나는 샤샤를 한 번 쳐다보았다.
이단 점프를 샤샤에게 줘?
그리고 나의 상태를 고민해 보았다.
이단 점프라면 뭔가 민첩한 동작으로 상대와 근접전을 벌이는 캐릭터에게 적당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원거리에서 소환하는 나, 원거리에서 화살을 날리는 샤샤.
둘 다 반드시 필요한 스킬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고민이네.
에라이.
킵하자.
일단, 이 스킬도 보관하기로 했다.
지금이야 5레벨 정도는 금방금방 오르지만, 고레벨이 되면 레벨 하나 올리는 데도 많은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나오는 스킬을 다 내가 익혀버릴 수도 있지만, 또 혹시 아나? 이 스킬을 활용하기에 적당한 소환수가 나왔는데 내가 사용하지도 않는 스킬을 익히고 있을지.
이 스킬은 킵하는 게 맞을 것 같다.
그러면 벌써 안 쓰고 보관하는 스킬이 두 개나 된다.
실드 배쉬와 이단 점프.
실드 배쉬는 방패를 쓰는 탱커를 소환하면 주려고 킵하고 있고.
이제 이단 점프도 킵하는 대상이 되었다.
[최하급 소환술]
소환 가능 개체 1.
이건 언제 늘려나.
뭐 꾸준히 샤샤를 소환하고 있으니 또 언젠가 소환술의 경지가 늘겠지.
민첩한 근접 딜러를 소환하게 되면 이단 점프 스킬을 줘야겠다.
그렇게 스킬을 다 뽑고 팀원들을 돌아보니 다들 내가 뭐하나 쳐다보고 있었다.
나리가 물어본다.
“오빠, 뭐 해요?”
나는 적당한 바위가 있어서 잠시 걸쳐 앉았다.
“스킬 뽑기를 했어.”
“뽑기요?”
“나는 가끔 뽑기가 뜨거든. 그때 뒤집혀 있는 여러 카드 중에서 한 장을 고르면 카드 뒷면의 스킬이 떠.”
“정말요? 신기하네요.”
“그래, 다른 사람들은 스킬 뽑기 이런 것 없나?”
“저는 뽑기로 스킬을 갖는다는 걸 처음 들어 봤는데요.”
“그래?”
내가 특이한 거였다.
보통 스킬은 각성할 때 주고, 일정 렙에 도달하면 주거나 열심히 특정 수련을 하면 생긴다.
아니면 가끔 고레벨 몬스터들을 사냥하면 스킬북이 운 좋게 떨어지는 일도 있다고 한다. 좋은 스킬북은 가격이 비싸다.
나만 해도 힐 하나에 대우가 달라지는데, 스킬북으로 힐 스킬을 얻을 수 있다면 그 스킬북을 얼마를 줘야 살 수 있을까?
쭈그려 앉아 있던 김관장이 말했다.
“저는 들어 본 적이 있어요. 뭐라더라? 룰렛 방식으로 스킬을 얻기도 한다고 하고 사다리 타기로 스킬을 얻는 사람도 있다고 했어요. 뭐 진짜인지는 모르겠지만요.”
룰렛? 사다리?
카드 뽑기도 그렇지만 그런 종류의 뽑기도 스킬을 뽑을 때 심장 쫄깃하긴 할 것 같다.
나리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물었다.
“그래서 좋은 것 나왔어요?”
“이번엔 조금 애매한 게 나왔어. 나는 스킬이 나오면 내가 쓰거나 소환수를 줄 수 있거든. 그런데 근접전 민첩 캐릭터에게 적당한 스킬이 나왔네. 그래서 보관해두려고. 나나 샤샤는 원거리잖아.”
그렇게 수다를 떨며 잠시 휴식을 취했다.
동서 형님이 말했다.
“자, 이제 또 한 바퀴 돌아 보자고.”
다시 몹 몰이가 시작되었다.
“워워, 이쪽으로 몰아.”
“나리야, 그쪽에 구멍 있어 거기 먼저 막고 있어 봐.”
“오케이, 한 마리 잡고.”
왠지 오래전 어렸을 때, 부모님과 함께 송어체험을 갔을 때가 떠올랐다.
그때도 물고기를 잡으려고 이리저리 뛰어다녔는데.
지금은 몬스터를 몰고 있긴 했지만, 이리저리 함께 뛰는 느낌이 그때와 같았다.
몸은 힘들고 바쁘지만 다들 기분이 좋아 보였다.
왜 안 그러겠는가?
우리 팀원들은 다들 초짜다.
팀원들만 들어온 던전은 두 번째이니 당연히 초짜다.
그런데 다들 초짜라서 좋다.
왜냐고?
초짜라서 다들 열심히 한다.
나리도 열심히 하고.
곰돌이 팀장도, 종구도, 관장도 얼굴에 그늘이 없고 표정이 밝다.
그리고 초짜 특전이 있다.
성장.
뭐든 초짜는 빠르게 성장한다.
이제 막 새롭게 시작하고 성장해가는 느낌.
너와 나의 호흡이 맞아들어가고 팀의 조직력이 점점 상승하는 느낌.
개인의 성장과 팀의 성장이 눈에 그려지는 듯한 느낌.
개인과 팀의 성장이 느껴지는데 즐겁지 않은 멤버가 없었다.
“내가 왼쪽.”
지금도 저 짧은 외침 만으로 여섯 명의 움직임이 유기적으로 연계된다.
대화를 통한 시간차 공격.
그리고 팀워크가 좋아질수록 저런 짧은 대화도 필요 없어지겠지.
짧은 시간에 또 여섯 마리의 폭시를 잡았다.
동서 형님이 진지한 표정으로 팀원들과 눈빛을 마주쳤다.
그래, 저 눈빛.
곰돌이 팀장님이 팀원들에게 말을 하려고 한다.
무슨 이야기를 할지 알 것 같았다.
“밥 먹고 합시다.”
얼핏 시간을 보니 던전에 들어온 지 벌써 여섯 시간은 지난 듯하다.
배가 고플 때가 지났지.
일반적인 던전 레이드 팀이라면 간단한 육포, 초코바 정도를 씹었을 것이다.
던전에서 요리를 할 만한 시간도 없고 거창하게 식사 준비를 하는 것 자체가 위험하기 때문이다.
몬스터들의 후각을 자극할 수도 있고, 이동하면서 전투도 해야 하는데 식자재와 조리도구를 들고 다니기 불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팀은 좀 다르다.
샤샤의 선물함에서 완성된 형태의 요리가 나온다.
식자재나 조리도구를 들고 다닐 필요가 없다.
심지어 선물함에서 나온 요리는 따뜻하다.
따뜻한 요리를 넣어 보관하다가 꺼내면 온도까지 유지된다.
그러니 기대를 안 할 수 있나?
다들 샤샤가 뭘 또 싸 왔나 기대하는 눈치다.
샤샤는 이들의 기대를 채워주었다.
또 새로운 음식이 나왔다.
뭔지 잘 모르겠지만 한 입 먹어봤다.
부드럽고 고소하다.
그릇에 곡물, 생선 살, 채소 등을 넣고 치즈를 얹고 구운 듯하다.
뭐였더라.
그라탕 비슷한 느낌이다.
“샤샤야, 맛있네.”
“고마워요.”
“샤샤가 만든 거야.”
샤샤는 부끄러운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어쩌다 보니 샤샤가 식사 담당이 되어 있었다.
맨 처음 샤샤에게 무얼 잘하냐고 물었을 때도 요리를 한다고 했지.
식당을 차릴까 고민하기도 했었고.
던전에서 오래 먹을 순 없어서 교대로 빠르게 식사를 해치웠다.
“후식은 피토니에요.”
샤샤가 선물함에서 예쁘게 깎은 피토니를 꺼냈다.
던전에서 과일 디저트라니.
다른 헌터들이 들으면 어떻게 생각하려나.
동서 형님이 물었다.
“샤샤가 이렇게 음식을 싸 오는데 밥값은 잘 주고 있는 거야? 샤샤야, 민준이가 샤샤 막 부려 먹는 거 아니냐.”
헐.
사람을 뭐로 보고 그러신대?
샤샤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니에요. 얼마나 잘해주시는데요. 그리고 부끄럽게도 제가 가져오는 음식보다 가져가는 음식이 더 많아요. 제가 민준 님이 주시는 음식으로 마을에서 얼마나 인기 있는 줄 모르실걸요.”
“민준이가 음식을 해줘?”
다들 의아한 표정이었다.
내가 부연 설명을 했다.
“아니, 제가 음식을 해준다는 게 아니고요. 마트에 있는 과자, 빵, 음료수 같은 것들을 박스 단위로 넣어주거든요. 처음에는 샤샤도 마을에서 쓰라고 마정석을 줄까 했는데, 흔한 마정석 보다는 지구의 음식들이 훨~씬 좋은가 봐요.”
물건의 가치는 수요와 공급이 좌우한다.
우리 입장에서야 마정석이 비싸지만 몬스터 천지인 샤샤네 동네에서는 그리 희귀템이 아니다.
하지만 초콜릿이 듬뿍 들어간 폭신한 파이, 짭조름한 과자, 달콤한 아이스크림이라면?
우리야 흔하게 먹어서 감흥이 없지만 처음 먹어보는 이들에게는 신세계이리라.
그렇게 점심을 먹고 또 폭시 사냥을 나갔다.
이번에는 폭시들이 조금 많이 몰려왔다.
10여 마리가 한 번에 몰려온다.
나와 샤샤도 본격적으로 실력 발휘를 했다.
“탱커 전방, 나리, 관장도 붙어서 수비 대형으로.”
몬스터가 많으면 우리가 뭉쳐야지.
“바인드, 바인드, 바인드.”
“파이어 애로우.”
“파이어 볼트.”
아낌없이 마법을 난사했다.
각종 마법이 난사되고 힐로 체력을 채워주었다.
열 마리쯤 되니까 살짝 긴장되고 딱 좋았다.
열 마리 정도로는 우리의 수비를 깰 수 없었다.
다섯 마리 정도 잡았다.
“슬슬 숨는 녀석들이 생길 것 같아요.”
“샤샤, 나리는 달아나는 녀석 있으면 그 녀석들부터 잡아.”
결국 한 마리는 숨어버렸지만 열 마리중 아홉 마리를 잡았다.
마정석은 세 개가 나왔다.
짭짤하네.
“분위기 좋은데 내친김에 보스까지 가볼까.”
우리는 던전 보스까지 깨기로 했다.
보스를 찾아갔다.
보스가 있다고 알려진 언덕.
보스는 금세 찾을 수 있었다.
보스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캬악!”
노란색 여우.
꼬리가 두 개다.
보스를 지키는 듯 일반 폭시도 십여 마리가 함께 있었다.
“자! 한판 뜹시다.”
일반 폭시들이 먼저 달려들었다.
“수비!”
“밀집!”
이제는 단어만 이야기해도 진형이 착착 맞아들어간다.
보스는 상황이 여의치 않은지 직접 달려왔다.
“캬약!”
보스의 앞발에서 50cm는 되어 보이는 발톱이 솟아났다.
저러면 발톱이 아니라 사시미… 아니, 클로라고 해야 하나?
우리 대장곰이 마주 달려가 맞짱을 떴다.
그런데 보스와 맞짱을 뜨던 대장곰이 싸우다가 가만히 멍을 때린다.
어? 눈이 풀린 듯하다.
나와 거의 동시에 동서 형님의 이상을 눈치챈 종구가 동서 형님과 노란 보스 폭시 사이에 끼어들었다.
나이스 종구.
동서 형님은 보스의 스킬에 걸렸나보다.
보스의 스킬로 알려진 것은 매혹.
상대를 현혹하는 정신계 스킬이다.
동서 형님은 방어와 체력이 좋아서 바로 당하지는 않겠지만 내버려 두면 위험하다.
나는 얼른 돌멩이 하나를 주워들어서 대장 곰 머리를 향해 던졌다.
퍽!
내가 던졌지만 아플 것 같다.
“힐.”
돌 하나를 더 던졌다.
퍽!
“힐.”
병 주고 약 주고.
상태 이상 해제 스킬이 없어서 무식한 방법을 썼다.
곰의 눈빛이 돌아왔다.
“형님, 정신 차리세요.”
“어? 어어.”
다행히 동서 형님은 금세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이후는 별 위기 없이 우리 팀은 보스를 잡을 수 있었다.
“아까는 땡큐. 내가 스킬에 걸렸었나 봐.”
“에이, 그게 오빠 잘못인가요? 서로 도우려고 이렇게 팀을 이루는 거죠.”
민망해하는 동서 형님.
“그런데 매혹에 걸리면 한참 멍하다는데, 어떻게 깨웠어.”
나는 나리에게 쉿 하는 손짓을 했다.
노란 폭시는 마정석뿐만 아니라 사체도 제법 가격이 나간다고 들었다.
샤샤의 선물함에 폭시 보스 사체도 넣었다.
오늘은 사냥은 여기까지.
던전을 나왔다.
“잠시 기다려. 정산하고 올게.”
잠시 후 동서 형님이 정산소에 다녀왔다.
즐거운 수익 분배 시간이다.
오호라.
지난번 던전 보다 거의 두 배 가까운 수익이다.
동서 형님이 말했다.
“오늘은 내가 어리바리했으니까 내가 살게. 어때.”
“에이, 어리바리하다는 말은 말아요. 얼마나 듬직한데. 물론 오늘 쏜다는 말은 좋고요.”
오늘도 간단히 시작한 뒤풀이가 쭉 이어졌다.
이 사람들 왠지 사냥보다 뒤풀이를 더 좋아하는 것 같았다.
3차에서 종구가 소리를 질렀다.
“유레카.”
왜 그런가 했다.
피토니 소맥의 황금비를 발견했단다.
음, 맛있긴 했다.
근데 이것도 위험한 술 같았다.
너무 맛있어서.
* * *
며칠 후, 설 당일.
나와 샤샤는 기차를 탔다.
혼자 가서 소환해도 되지만 혼자 가면 심심하니까 소환해서 같이 갔다.
기차역에 처음 가본 샤샤는 기차역의 큰 역사 홀에 놀라고.
커다란 기차에 또 신기해했다.
그 커다란 기차가 열심히 달리는 모습을 보며 물었다.
“지구에도 마법이 있나 보죠.”
충분히 발달한 과학은 마치 마법과 같다.
“과학이란 마법이 있지.”
오늘 샤샤는 연한 노란색 정장을 입었다.
샤샤는 기차를 타고 가면서 창밖을 계속 바라보았다.
“와, 저건 들판이에요? 신기하네요.”
“저건 논이야. 벼라는 건데 쌀 알지? 그게 자라는 거지.”
뭐가 그리 신기한지.
어릴 적엔 나도 그랬던 것 같다.
아직 샤샤에겐 지구가 신기한 것 같았다.
집에 도착했다.
띵동.
초인종을 눌렀다.
금쪽같은 소환수들
— 거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