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쪽같은 소환수들-26화 (26/230)

26화. 석션 보조하겠습니다

며칠 후.

던전에 들어가기로 약속한 날이었다.

오늘은 과천에서 만났다.

저 멀리 곰 같은 형님과 김관장이 보였다.

동서 형님이 손을 들며 말을 걸었다.

“어, 왔어.”

동서 형님이 손을 흔드는데 두툼한 손에 눈길이 갔다.

저 손바닥이 곰 발바닥이 되겠지

오늘은 또 어떤 패션을 준비하셨나 괜히 궁금해진다.

그래도 오늘은 바바리맨 스타일은 아닌 듯하다.

적당히 펑퍼짐한 옷 같다.

자기 사이즈보다 한 치수 정도 큰 티셔츠

“형님, 오늘은 옷이 비교적 평범해 보이시네요.”

동서 형님이 허허 웃으며 말했다.

“어, 이거 돈 좀 썼어.”

“그래요.”

“이거 특수재질 옷이야. 신축성이 장난 아니야. 아주 옷이 쭉쭉 늘어나. 그냥 입고 있다가 변신해도 괜찮아.”

동서 형님의 패션을 구경하는 것도 나름 재미있었는데 뭔가 아쉬웠다.

“샤샤는.”

“들어가서 부르려고요. 들어가기 전에 부르면 입장료 더 내야 하잖아요.”

“그렇지. 알뜰하네.”

“뭐, 그렇죠.”

김관장이 물었다.

“그런데 다들 길드는 고민해 보셨어요.”

동서 형님도 볼을 긁으며 말했다.

“그러게. 결정이 쉽지 않네.”

헌터 자격증을 받고 아직 일주일도 되지 않았다.

그래서 길드에 가입한 팀원은 없었지만 다들 고민이 많아 보였다.

“민준이 형은 어떻게 할 거예요.”

동서 형님과 관장이 나를 바라보았다.

관장이 정말 궁금하다는 듯한 눈빛으로 물었다.

“난 좀 보류하려고.”

“보류요? 왜요.”

“나는 지구 생활도 중요하지만, 샤샤네 동네도 중요해서. 샤샤네 동네에 일이 터지면 그거 매달리느라 지구 생활에만 집중할 수가 없어.”

관장과 동서 형님이 집중하며 들어주었다.

”샤샤도 가족이 있어. 동생이 얼마나 귀여운데. 걔한테 뭔가 문제라도 생겨봐. 소환 못 하는 건 당연하고 나도 거기만 쳐다보고 있어야 해.”

“오~ 여동생이요.”

“응, 지구로 치면 유치원생 정도 돼. 엄청 귀엽지.”

“와 샤샤 닮은 유치원생이면 너무 치명적일 것 같네.”

“그러게요. 아무튼 민준 형님은 매니지먼트 이런 게 적당하지 않을까요.”

매니지먼트?

이건 또 뭔 소리지?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연예인들 관리해주는 회사처럼 형님도 매니저도 붙고, 관리할 사람이 붙어야지요. 지구에서 던전 레이드 스케줄도 잡아주는 사람도 있어야 하잖아요. 혼자 다 하게요? 저쪽 일할 때는 또 보조할 사람도 있어야 할 것 같고요.”

문득 나는 샤샤네 동네의 몬스터 웨이브가 끝난 후 쓰레기장이 되어 있던 내 방이 생각났다. 관장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그리고 제가 보기엔 형님은 샤샤를 너무 방치하는 것 같아요. 샤샤를 가만히 내버려 두는 것은 자원 낭비라고요. 얼굴에 능력까지. 만약 제가 매니지먼트 사장이었으면 밴에 태워서 각종 연예인 스케줄 돌리고 있었을걸요? 막말로 샤샤가 너튜브에서 피토니만 먹어도 떡상할 걸요.”

그런가? 하긴 지난 며칠을 돌아보면 나는 던전에서의 시간을 제외하고 게임과 드라마 시청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샤샤는?

술사인 내가 폐인 생활하고 드라마나 보는데 나의 소환수인 샤샤가 무엇을 하겠나?

지구에 있을 때는 샤샤도 드라마를 보았다.

어제는 의학 드라마를 완결까지 같이 봤는데 나보다 더 몰입해서 보더라.

어제 본 드라마 제목은 닥터 L.

어느 병원 레지던트 의사 한 명이 헌터로 각성했다.

각성 스킬은 감정.

레벨이 오르자 환자의 질환을 감정할 수 있었다.

그래서 환자를 잘 치료하는 먼치킨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닥터 L은 놀라운 통찰력으로 환부를 알아내 짧은 시간 동안 환자를 치료한 후, 긴 시간 동안 연애를 했다.

그래, 원래 드라마는 잘생긴 주인공이 연애를 해야지.

그래도 나는 드라마를 드라마로 보았지만, 샤샤는 드라마가 현실인 줄 알고 보는 것 같았다.

연기라고 알려줘야 하나 살짝 고민했다.

하지만 말하지는 않았다.

환상은 지켜줘야 하니까.

김관장의 사업구상이 이어졌다.

“민준 형, 그러니까 샤샤는 가만히 있는 게 자원 낭비라고요. ‘미소녀 소환수의 이세계 먹방’ 어때요? 괜찮지 않아요.”

음… 듣고 보니 그렇다.

샤샤 정도 되는 소환수를 소환해서 주로 시키는 것이 드라마 감상이라니.

자원 낭비라는 관장의 말도 일리가 있긴 했다.

힐끔 김관장을 보았다.

저 성실해 보이는 눈빛이란.

쟤가 나를 관리하는 사람이 된다면 얼마나 열심히 굴릴까?

그래. ‘미소녀 소환수의 이세계 먹방’이라고 콘텐츠를 짜면 잘 되긴 잘 될 것 같다.

하지만 그거 알고 있나?

그 ‘잘’ 되게 하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갈아 넣어야 하는지?

부지런한 상급자가 게으른 상급자보다 더 힘들다던데 왠지 김관장 밑에서 일해야 할 하급자들의 고생이 눈에 선했다.

그렇게 잡담을 나누던 중에 나머지 인원들이 모두 도착했다.

종구가 얼굴과 다르게 깜찍한 표정으로 나리에게 인사를 했다.

“날하.”

나리 하이~ 라는 뜻이었다.

우리 대장 곰이 말했다.

“자, 얘기는 여기까지만 하고 던전 들어갑시다.”

“입던 고고.”

화아악!

포탈을 넘어서자 상쾌함이 밀려왔다.

숨을 크게 들이마셔 보았다.

“음~”

여기 던전은 향기가 좋은데?

숲속 깊은 곳 나무 향이 느껴지는 듯했다.

“샤샤 소환.”

화아악!

샤샤가 소환되었다.

며칠 전, 샤샤의 패션은 대학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뭇 남성들을 설레게 했을 것 같았는데, 오늘은 그런 샤샤는 어디 가고 몬스터들의 머리를 관통시켜줄 여전사 발키리가 되어 나타났다.

종구가 샤샤에게 인사를 했다.

“샤하.”

우리는 팀원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진형을 갖추었다.

자연스레 나를 중심에 둔 포메이션.

그래 힐러는 소중하니까.

내가 없으면 누가 힐을 줄 것이며 또 내가 없으면 누가 샤샤를 소환할 것인가?

팀의 최우선 보호 대상이지.

근데 레벨은 내가 더 높은걸.

동서 형님이 천천히 걸으면서 말했다.

“자, 톡에서 브리핑한 것처럼 이곳 던전은 지난번 광진구 던전보다 약간 등급이 높아.”

지난번 던전이 전형적인 F급이라면 여기는 F+ 정도?

나오는 것도 순하게 생긴 토끼들이 아니라 제법 사납게 생긴 여우들이다.

붉은 여우가 두 발로 걸어 다닌다.

이빨은 제법 날카로워 보인다.

“민준이도 있고, 샤샤도 있고, 지난번 던전이 조금 수월했던 것 같아서 등급을 약간 올려봤어. 힘들긴 하겠지만 그만큼 수익도 높을 거야.”

종구가 말을 보탰다.

“그래도 여긴 꼬리가 하나짜리들이야. 높은 등급에서는 폭시들이 꼬리가 여러 개이고 더 강하다고 하더라.”

나리가 외쳤다.

“어! 저기 두 마리 있어요.”

자세히 보니 왜 폭시라고 부르는지 알 것 같다.

여우를 닮긴 닮았다.

개와 여우의 중간쯤 되는 모습.

얼굴은 개인 것 같은데 눈이 세로로 쭉 찢어져 있었다.

귀도 쫑긋하고.

그 모습으로 두 발로 걸어 다니는 것이 기괴하다.

뭐 몬스터니까.

두 마리의 폭시가 우리를 발견했다.

우리를 발견하더니 이빨을 드러냈다.

손 아니 앞발의 발톱이 날카롭게 드러냈다.

이빨과 발톱이 무기인가 보다.

그러더니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다.

“우우우우~”

폭시가 운다.

뭐지?

동료를 부르는 건가?

토끼들처럼 단순하지만은 않다는 거네.

나는 솔직히 조금 몰려와 주었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다.

너무 띄엄띄엄 있으면 찾아다니는 것도 힘들다.

울 만큼 운 폭시 두 마리가 천천히 우리에게 다가왔다.

경계하는 것이 느껴진다.

도망치지도 않고, 그렇다고 마구잡이도 달려들지도 않는다.

살살 간을 보는 듯하며 다가오는 폭시.

얘들 똑똑하구나.

괜히 여우가 아니네.

소리를 질러 동료를 부르고 간을 보며 거리를 좁힌다.

머리가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래봤자 F급 몬스터다.

“바인드.”

“파이어 애로우.”

“파이어 볼트.”

묶은 다음 불화살과 불덩이가 콤보로 날아갔다.

꽉, 푹, 펑!

한 마리 순삭이다.

“캐앵!”

다른 한 마리가 놀랐나 보다.

미안, 네 친구 닭꼬치 만들어서 놀랐니?

남은 폭시는 재빠르게 달아나더니 샥 하고 어디론가 숨어버렸다.

어?

어딜 간 거지?

우리는 폭시가 사라진 근처에 가보았다.

이런

땅굴이 몇 군데 뚫려있다.

여우굴이라고 해야 할까?

종구가 물었다.

“굴속으로 들어가서 숨으면 어떻게 하죠.”

“어, 그냥 내버려 둬.”

이렇게 폭시가 숨으면 땅굴에서 바깥으로 나오게 해야 하지 않으면 잡기 어렵다.

땅굴 전체에 연기나 독을 뿌릴 수 있으면 좋은데 그럴 능력이 있는 헌터가 있든가, 아니면 아이템이 있어야 했다.

하지만 우리 중에는 그런 능력이 없다.

아이템을 뿌리다 보면 가성비가 안 맞는다.

그래서 많은 뉴비들은 폭시가 숨으면 그냥 지나간다.

나와 있는 폭시들만 잡는 것이 가성비가 좋기 때문이다.

물론 그러다 보면 숨어 있던 폭시가 가끔 뒤통수를 칠 때가 있다.

그건 뭐 주의하는 수밖에 없다.

종구가 말했다.

“방금 첫 번째 폭시를 잡을 때, 너무 한 번에 세게 죽여서 옆에 있던 놈이 놀라서 달아난 것 아닐까요.”

“그러게 그러면 어느 정도 어그로가 끌릴 때까지 센 공격은 하지 말고 탱커들에게 붙인 다음에 잡도록 하자.”

어느새 도축을 마친 관장이 공중으로 마정석을 튕겼다 받으며 말했다.

허공에 떠오른 마정석이 빛을 받아 반짝였다.

“그래도 첫 번째부터 마정석 나오고 출발이 좋은데요.”

두 번째 폭시 사냥부터는 폭시를 탱커에게 붙일 때까지 나와 샤샤는 가만히 있기로 했다.

다시 두 마리 폭시를 발견했다.

폭시들은 짝지어 다니는 경우가 많다고 하더니 계속 두 마리씩 보였다.

우리의 팀장님이 곰으로 변신했다.

헐렁하던 티셔츠가 배꼽티… 아니, 크롭티가 되었다.

아니 늘어난다며?

늘어난다는 말이 찢어지지 않고 버틴다는 뜻이었나?

나리가 동서 형님에게 말했다.

“오빠, 이번에 돈 벌면 꼭 윗도리 사세요.”

동서 형님이 억울하다는 곰의 얼굴로 말했다.

“이거 신상인데.”

상체의 굴곡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포인트로 배꼽을 보여주고 있는 우리 대장 곰과 여우가 맞짱을 떴다.

그렇게 탱커에게 몬스터가 붙자 내가 나섰다.

“바인드.”

한 마리의 다리를 묶어준다.

“오른쪽은 제가 다리를 맞출게요.”

그리고 옆에 있던 폭시에게 휙 하고 샤샤의 화살이 날아갔다.

퍽!

화살이 폭시의 다리를 맞추었다.

나도 그렇고 샤샤도 그렇고 폭시가 달아나지 못하게 기동력을 빼앗는 전략이다.

몬스터의 기동력을 빼앗고 난 후 곰의 앞발 한 방, 관장의 풀 스윙 한 방.

새로 발견한 폭시 두 마리를 도망치지 못하게 하면서 안정적으로 잡아냈다.

일반적으로 여러 마리가 있으면 공격력을 집중해서 한 마리씩 잡아낸다.

하지만 폭시는 놀라서 달아나지 않게 조심조심 다루다가 기동력을 억제한 후 잡는 게 좋았다.

“이거 살살 다루는 것도 일이구먼.”

“그러게요. 처음에 너무 세게 때려버리면 쏙 하고 숨어버리니 달아나지 않도록 적당히 패기도 쉽지 않네요.”

“원래 뭐든 적당히 하는 게 어렵죠.”

그래도 두세 번 더 작업을 하니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사냥 진형도 수비형이 아닌 포위형으로 바꿨다.

어차피 내가 최고렙인데 힐러라고 보호할 필요도 없고.

폭시들이 도망가기 일쑤니 일단 탱커가 가까이 달라붙으면 관장, 나리, 샤샤가 폭시 주변을 넓게 둘러싸기로 했다.

그렇게 살살 달래면서 잡다 보니 우리 탱커들께서 약간의 상처들이 생겼다.

칼로 죽 하고 그은 듯한 상처.

폭시 발톱이 날카로웠나 보다.

탱커들이라서 방어력이 좋아 상처가 깊지는 않았다.

얕고 길쭉하게 나 있는 상처.

나는 두 탱커들에게 각각 손짓하며 힐을 날려 주었다.

“아이고. 형님, 종구야. 고생들 많아요. 힐, 힐.”

깊지 않은 상처라서 그런지 금세 상처가 회복되었다.

나는 원거리 서포터 겸 힐러라서 폭시와 직접 맞닿지 않았다.

그래서 아직도 몸이 깨끗하다.

동서 형님과 종구는 탱커이기도 하고, 초반 강한 공격을 자제하다 보니 몸에 상처가 늘어갔다.

아무리 포지션이 그렇고 작전이 그렇다 해도 두 탱커를 앞세우고 뒤에서 살살 바인드나 걸고 있자니 조금 미안해졌다.

도축이라도 내가 더 해야겠다.

관장과 내가 각각 폭시 한 마리씩 맡아서 마정석 테스트기를 가져다 대었다.

폭시의 몸 구석구석에 마정석 테스트기를 대어 보았다.

삑~

이번엔 내가 검사하고 있던 폭시의 몸에서 마정석 반응이 나왔다.

나는 손바닥을 내밀며 말했다.

“메스.”

어제 샤샤랑 의학 드라마 완결까지 본 후유증이 던전에서까지 나타났다.

나는 폭시의 사체를 앞에 두고 닥터 L의 흉내를 내어버렸다.

아, 괜히 했나?

순간 썰렁하면서 뻘쭘하다는 생각이 스쳤다.

던전에서 이런 농담을 하다니.

때와 장소를 못 가린다고 눈총을 받을 것 같았다.

그때였다.

“네, 민준 님.”

샤샤가 작은 단검 하나를 내게 내밀었다.

그리고 샤샤는 초롱초롱한 눈을 빛내며 한 마디를 덧붙였다.

“석션 보조하겠습니다.”

크윽, 역시 샤샤 너밖에 없다. 이걸 받아주다니.

나는 나에 대한 샤샤의 친밀도는 샤샤의 상태창을 통해 볼 수 있었다.

자주 확인하진 않았지만 얼마 전 샤샤의 상태창에 적힌 친밀도는 99였다.

거의 100이지.

자칫 썰렁함에 빠질 수 있는 상황에서 그걸 받아주다니.

만약 내가 샤샤의 소환수였고 샤샤가 소환술사였다면, 아마도 조금 전에 샤샤의 귓가에는 ‘친밀도가 1 올랐습니다’ 이런 소리가 들렸을 것 같았다.

나리는 인상을 찌푸리며 쟤네 왜 저래? 라는 눈빛을 보냈다.

고개를 갸웃거리기는 동서 형님도 마찬가지였다.

이럴 땐 부지런히 뭔가 하는 척하는 게 상책이다.

“음음, 마정석 적출 완료.”

생수를 부어 피를 제거했다.

영롱하고 푸른 마정석.

아름다웠다.

“맑고 투명한 마정석 이쁜이로 하나 추가합니다.”

금쪽같은 소환수들

— 거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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