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쪽같은 소환수들-25화 (25/230)

25화. 에헤라디야

던전에서의 사냥이 끝나고 밖으로 나오자 던전 관리원들이 우릴 맞이했다.

판에 꽂힌 종이를 들며 인원 파악을 했다.

“자자, 나오셨으면 출입 카드에 서명 부탁드립니다.”

동서 형님이 우리를 돌아보며 말했다.

“마정석 먼저 정산하고 올게. 김관장, 같이 가자.”

“넵.”

동서와 관장이 정산하러 갔다.

F급 마정석은 시세가 거의 정해져 있어서 어디서 팔아도 별 차이가 없었다.

고등급 마정석이나 특이템을 습득했다면 몰라도 F급은 날품팔이나 다름없어서 다들 던전 입구에서 환전을 해간다.

그렇게 정산하러 간 사람들을 기다리는데 임종구가 주위를 둘러보며 눈을 가느다랗게 뜨며 말했다.

“민준, 나리. 오늘 바빠? 우리 조원··· 아니, 팀원끼리 첫 사냥이었잖아?”

우리를 지도했던 헌터 없이 우리 팀원끼리만 들어온 것은 처음이었다.

“간단히 뒤풀이나 할까?”

종구의 물음에 조원들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아까 샤샤가 싸 온 도시락은 소화가 돼버린 지 오래였다.

배가 고프기도 했다.

내가 손으로 배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난 좋아. 나리는?”

“저도 좋아요. 배고파요. 맛있는 것 먹으러 가요.”

종구가 씨익 미소를 지었다.

동서 형님과 관장이 돌아왔다.

돌아오는 표정이 좋다. 히죽 웃으며 온다.

“오늘 사냥해서 번 돈이 650만 원이야. 인원수로 나눠서 지금 바로 입금할게.”

다섯 명이 함께 650만 원을 벌었으니 한 사람당 백만 원이 넘는다.

하루 일해서 백만 원 이상을 벌었으니 입꼬리가 절로 올라가리라.

허접 F급 헌터이지만 한 달에 며칠만 일해도 어지간한 월급쟁이 부럽지 않은 금액이다.

그래서 헌터, 헌터 하는구나 싶었다.

동서 형님은 곰 같은 손으로 스마트폰을 조작했다.

“보자. 아, 이게 왜 안 눌리냐.”

손가락이 커서 그런 것 같았다.

“어, 됐어. 입금 완료. 지금 확인들 해봐.”

“뭐, 맞게 넣었겠죠.”

“아니, 그러지 말고 지금 확인들 해보라니까.”

나는 스마트폰을 보았다.

어? 그런데 금액이 조금 이상하다.

생각보다 많이 들어온 것 같은데?

동서 형님이 말했다.

“민준아, 샤샤도 한 사람 몫으로 쳤어.”

나리가 샤샤의 어깨를 감싸며 말했다.

“그럼요. 샤샤도 저희 팀원이잖아요.”

“그럼요. 당연하죠.”

이 사람들이 나 몰래 말을 맞춘 듯했다.

돈을 나눌 때 샤샤 몫을 나눌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샤샤는 얼떨떨해하며 나만 바라보았다.

내가 말했다.

“이건 생각도 못 했는데···. 감사하네요. 그럼 오늘 뒤풀이 어떠세요? 많이 받았으니 제가 쏩니다.”

“오, 비싼 거 먹으러 간다?”

“한우 먹어욧, 한우!”

하루 일당으로 이백이 넘게 들어왔는데 한우가 별거냐?

나는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다.

“갑시다, 한우!”

“가으자!”

“오빠, 멋져욧!”

“으랏샤이마세.”

동서 형님이 말했다.

“자, 그러면 짐들 놓고, 요 앞에 사우나가 있어. 오늘 사냥하느라 고생들 했는데 좀 씻고, 요 앞에 한우마을이라고 있거든? 거기서 만납시다. 나리야, 너무 오래 씻지 말고 빨리 나와.”

“네, 빨리 나올게요.”

“늦으면 다 먹는다.”

나는 샤샤에게 말했다.

“샤샤도 집에 잠시 다녀와. 한 시간 후에 다시 소환할게.”

“네, 알겠어요.”

나리가 샤샤에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

“샤샤야~ 올 때 피토니~”

한 시간 후.

팀원들은 모두 한우 마을에 모였다.

그런데 우리는 잘 익은 한우와 소주를 앞에 두고 예상치 못한 주제로 토론을 벌이게 되었다.

내가 말했다.

“샤샤가 술이라니요? 안 돼요. 딱 봐도 미성년자잖아요.”

종구가 말했다.

“몇 살인데?”

다들 샤샤를 바라보았다.

그러게. 나도 샤샤의 나이를 모른다.

샤샤가 말했다.

“어, 그런데 나이를 세는 방법이 지구랑 조금 달라요. 저희는 두 개의 달이 뜨는 것을 몇 번 보았는가를 기준으로 세거든요. 다섯 번 봤어요.”

그러자 다들 여기저기서 각자의 주장을 펼쳤다.

“그럼 다섯 살이야?”

“아니 다섯 살이 뭔 소리야. 그게 말이 돼?”

“그러면 지구와 그 뭐냐 그쪽 세계의 일 년이란 개념 자체가 다른 것 같은데 샤샤가 미성년자인지 어떻게 알지?”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니까 술을 마셔도 되는 거 아니야?”

“그건 아니지. 외국인도 우리나라에 오면 우리나라 법을 따라야 하지.”

“맞아, 로마에 오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고 했잖아.”

“아니에요. 한국은 술을 마시는 것 자체는 법이 없어요. 미성년자에게 술을 파는 게 불법이지, 미성년자가 마시는 건 불법은 아니에요. 왜 제삿날 청소년들도 한 잔씩 할 수 있잖아요. 그거 불법 아니에요.”

“그렇다고 외국 어린이들에게 술을 마시게 하진 않잖아요.”

“아니, 그러니까. 샤샤는 지구와 나이 개념이 애초에 다른데 미성년자라고 하는 것 자체가 무리지 않아?”

“딱 봐도 어려 보이잖아요.”

“얼굴은 나리도 어려 보여.”

“어머나, 고마우셔라.”

“그럼, 그냥 간단히 샤샤에게 물어봐요. 본인에게 물어보면 되잖아요.”

모두가 샤샤를 바라보았다.

“샤샤, 술 마셔?”

샤샤가 대답했다.

“술이 귀해서 마셔보진 못했어요.”

그러자 다시 시작되는 논쟁.

“못 마셔봤다고 하잖아.”

“아니, 없어서 못 먹는다는 의미잖아요.”

“주면 먹는다는 것 같은데?”

샤샤가 말했다.

“음, 술은 잘 모르겠는데요. 제 또래는 결혼도 하고 아이를 낳은 친구들도 있긴 해요. 저도 시집 언제 가냐는 소리를 몇 번 듣긴 했어요.”

“그래? 애 낳을 정도면 어른이네.”

“그러네요. 시집가서 애도 낳는다는데, 그럼 어른이지.”

그렇게 샤샤도 어른이므로 술을 마셔도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긴 술자리에서 술을 마셔야 하는가 마시지 말아야 하는가 하는 토론을 했다면 이미 토론을 시작하기 전부터 결론은 났을지도 몰랐다.

다음 날 아침이 밝았다.

나는 각성을 해서 일반인보다 훨씬 뛰어난 체력을 갖게 되었다.

며칠 밤을 안 자도 끄떡없는 체력.

높은 곳에서 밧줄 하나만 있어도 팔 힘만으로 타고 올라갈 수 있는 특전사 이상의 체력이었다.

그런 내가 침대에서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머리가 지끈지끈 두 손으로 머리를 꾹꾹 눌러 보았다.

아이고, 머리야.

그런데도 이렇게 머리가 아플 정도면 얼마나 마셔댄 것인지.

집에 어떻게 들어왔는지 모르겠다.

“알파야.”

―네, 민준 님.

다행이다.

이럴 때 말하면 바로 대답해주는 도우미가 있어서 좋다.

“샤샤, 머리 안 아프냐고 물어봐.”

―네.

잠시 시간이 흘렀다.

―괜찮다고 합니다.

“그래? 그럼 해장국 먹으러 가게 소환해도 되냐고 물어봐.”

―5분만 기다려 달라고 합니다.

그래그래, 샤샤에게도 프라이버시가 있으니까 이 정도 기다림이야.

나도 알코올에 절은 몸을 씻었다.

나갈 준비를 마치고 샤샤를 불렀다.

“샤샤 소환.”

확.

샤샤가 소환되었다.

어? 쟤는 왜 이렇게 멀쩡해?

방금 깨서 부스스한 나와 다르게 깔끔 그 자체다.

뭔가 비교되는데?

“어, 샤샤야. 어제 고생했다. 한국에선 술 많이 먹으면 다음 날 해장을 하러 가곤 해. 가자.”

“네, 좋아요.”

숙취엔 콩나물 해장국이지.

두툼한 뚝배기에 부글부글 끓는 콩나물 해장국이 나왔다.

으, 뜨거워.

후후.

후루루루룩.

“으아아아.”

술 많이 먹은 다음 날, 해장국을 먹으면 소리가 절로 나는 법이다.

그런데 방금 으아아아 소리는 내가 낸 소리가 아니다.

샤샤가 내는 소리다.

샤샤는 뜨거운 국을 후후 불어서 후루룩 마신다.

해장국 먹는 모양이 샤샤도 한국 사람이 다 됐다.

“어제 피토니주 먹고 너무 달렸나 봐.”

어제 2차인가 3차 때 샤샤가 피토니를 꺼냈다.

그걸 본 종구가 즉석에서 피토니 짜서 즙을 짜더니 과일주를 만들었다.

다들 처음에는 뭐하는 거냐고 하다가 한 번 마셔보고 나서 환장하고 마셨지.

피토니주가 맛있긴 맛있었다.

그런데 과일주 맛있다고 함부로 마셔댔다가는 떡이 되기 쉽다.

피토니주.

위험하다.

그때, 스마트폰이 울렸다.

지이이이잉.

여동생이다.

“어, 왜.”

―오빠, 설에 내려올 거야? 엄마가 물어보래.

그래, 내려가야지.

“어, 그래. 내려가.”

―언제? 설 당일에?

“응, 당일에 내려갈게.”

―알았어. 그때 봐.

나는 샤샤에게 말했다.

“다음 주에 나 고향 가. 그래서 가족들에게 각성하고 헌터 됐다고 자랑도 좀 해야지. 집에는 엄마, 아빠가 있고 여동생도 있을 거야.”

“민준 님의 가족을 보러 가시는군요.”

“어. 그런데 그날 너도 보여주려고 하는데, 어때?”

샤샤는 우물우물 콩나물을 씹으며 끄덕였다.

“그럼요. 괜찮아요. 제가 뭐 준비할 게 있을까요?”

“아냐. 괜찮아. 음··· 그러면 원래 명절에는 과일 같은 것 선물로 가져가기도 하니까 피토니라도 몇 개 챙겨와. 그거면 돼.”

“네, 간단히 몇 가지 챙겨 갈게요.”

어제 던전에 가져온 음식을 보면 샤샤가 은근히 손이 큰 것 같은데, 또 막 이만큼 가져오는 건 아니겠지.

“아니, 몇 가지가 아니고 피토니 한 종류면 돼.”

그런데 샤샤와 함께 가면 조금 놀라려나?

막 이상한 상상하는 건 아니겠지?

놀려줄 생각을 하니 조금 웃긴다.

크크크.

그런데 그렇게 오해시킬 생각에 즐거워하다 보니 샤샤의 옷이 조금 눈에 띈다.

깔끔하고 단정하지만 뭐랄까 재질 자체의 한계가 있어 보인다.

기왕 오해를 시키려면 좀 그럴듯하게 꾸며줄까나?

“샤샤야, 밥 먹고 쇼핑 좀 하러 가자.”

샤샤가 눈만 크게 뜬 채 날 바라본다.

“옷 사러 가자고. 지금 옷도 깔끔하긴 한데, 스타일이 지구식은 아닌 것 같아서. 지구 스타일로 몇 벌 사두면 좋을 것 같아서.”

샤샤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옷 사러 가는 것 좋아하는 건 글리제 여자나 지구 여자나 똑같나?

음…….

그런데 나도 그렇고 얘도 그렇고 지구의 여성용 옷을 사본 적이 없으니 이를 어째?

뭐 아무거나 사도 될 것 같긴 한데 또 그러면 안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냥 대충 사?

나리에게 톡을 보내봤다.

[나리야, 지금 뭐 하냐?]

답은 금방 왔다.

[어? 왜요?]

[샤샤 옷 사주러 가려는데 여자 옷을 내가 알아야지.]

[샤샤도 같이 가요?]

[응.]

[언제요?]

[곧?]

[알았어요. 금방 나갈게요.]

밥을 먹고 오락실에 들렀다.

나리가 오기까지 시간이 걸릴 테니 조금 놀고 있었다.

샤샤에게 비행기 게임을 가르쳐 주었다.

1945.

“와, 재밌네요.”

처음에 몇 번 죽으면서 조작법을 알아내더니 점점 손놀림이 빨라진다.

타다다다다다.

뾰뵤뵤뵤뵤뵹.

맞다.

샤샤, 민첩 스탯 장난 아니지.

주변에서 힐끔거리며 샤샤가 게임하는 모습을 쳐다보았다.

평소에도 샤샤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많이 받는다.

외모 때문이었다.

하지만 단연코 지금은 외모 때문이 아니리라.

보라. 저 현란한 스틱 컨트롤을.

오락실에서 적당히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나리가 도착했다.

“샤샤야, 가자.”

샤샤가 듣지 못한 것 같았다.

“샤샤야. 샤샤야?”

오락실 게임은 호환마마보다 무섭다는데 글리제인 최초로 게임 중독자가 발생하는 건 아닌가 싶었다.

“아!!!”

샤샤가 끝판왕에게 죽었다.

샤샤야, 저건 원래 총알로 깨라고 만든 게임이 아니야.

폭탄을 쏟아부어 깨라고 만든 게임이야.

물론 그 폭탄을 쏟아부으려면 그만큼 돈을 계속 넣어야겠지.

나 끝판왕 처음 봤어.

나리가 오자 나는 지갑에서 카드 한 장을 꺼냈다.

“나리야, 여기 카드를 줄게. 샤샤가 입게 정장, 대학생 스타일, 운동복, 마트 갈 때 입는 옷 각각 사주고 수고비로 나리 옷도 한 벌 사. 다 사면 연락해.”

나리는 알았다며 샤샤를 낚아채 멀어졌다.

네 시간이 지났는데도 연락이 안 온다.

간간이 카드 긁히는 문자가 온다.

와, 이 여자들 신났네.

근처 만화방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밥도 먹어야 하나 생각하고 있는데 연락이 왔다.

다시 만난 샤샤는 지구 식으로 변신해 있었다.

스키니진에 붉은 계열의 니트.

샤샤가 키가 좀 커진 듯해서 보니 신발도 통굽으로 이만한 신발을 신겨놨네.

안 그래도 저 얼굴에 저 머리카락이 시선 집중이었는데 세련미까지 추가되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이 패션 뭔가 조금 알 것 같다.

“이건 혹시 대학교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패션?”

“마트 갈 때 입는 옷인데요?”

“엥, 마트 가는데 왜 통굽을 신고가?”

“신발은 자존심이라고욧.”

신발 뒷굽과 자존심의 관계를 고민하던 나는 이해하기를 포기했다.

쇼핑을 둘만 보내버리고 만화방에 간 나를 스스로 현명하다 생각했다.

“어, 그래. 고생했고, 배고픈데 밥이나 먹자.”

“훗, 안 그래도 봐둔 데 있어요. 따라와요.”

눼눼, 알겠습니다.

밥을 먹고 있는데 나와 나리의 핸드폰이 동시에 울렸다.

지이이잉!

띠록!

동서 형님의 단체 톡이다.

[3일 후, F급 던전 하나 더 어때?]

[좋아요.]

[기다렸어요(댄스 흔들흔들 이모티콘)]

나리가 나를 본다.

어떻게 할 거냐는 눈빛.

어떡하긴?

놀면 뭐 해? 돈 벌어야지.

톡을 올렸다.

[저도 좋습니다.]

[오케이, 자세한 건 다시 공지 올릴게.]

이 형님, 생긴 건 곰인데 일 처리 하는 건 깔끔하다.

지난번에 이야기할 때 어디 회사에서 과장하다가 때려치웠다는데 각성 못 했어도 먹고 사는 데는 문제가 없었을 것 같다.

시간은 금세 흘렀다.

공무원 시험 준비할 때는 공부할 양이 정해져 있고 학원 일정이 있어서 하루하루 시간이 빠듯했는데 이제는 남는 게 시간이다.

어제 대충 열 시간쯤 온라인 게임을 하고, 또 열 시간쯤 드라마를 봤다.

요즘 드라마들은 한 번 틀면 멈출 수가 없다.

왕의 던전.

지난번 민지혜를 눈앞에서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안 볼 수 없었다.

그리고 드라마가 짧게 10화 정도에서 끝나니 더 멈출 수가 없다.

옛날 드라마처럼 수십 회 이상이면 부담스러워서 보는 걸 멈출 텐데, 조금만 더 보면 엔딩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새벽이 지나고 아침이 밝아와도 멈출 수가 없다.

게다가 내가 각성자인데.

드라마 정도로 내 체력을 방전시킬 수는 없었다.

하루 일해서 백만 원 단위의 돈을 벌고, 며칠은 백수처럼 사는 삶.

나는 나도 모르게 콧노래를 불렀다.

“에헤라디야.”

금쪽같은 소환수들

— 거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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