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팀워크 좋고
친구 우철이의 톡이었다.
녀석, 심심하구나.
우철이가 나에게 물었다.
[뭐하냐?]
답을 해주었다.
[밥 먹어.]
[방에서?]
내가 밥을 먹는다고 하니 자취방에서 혼자 밥을 먹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고 있는 듯했다.
쯧쯧쯧.
나는 네가 생각하는 그런 장소에서, 그런 자세로 그렇게 밥을 먹고 있지 않아.
나는 가볍게 무시하고 질문했다.
[너는?]
[나는 공방.]
가죽공방에 처박혀 있는 녀석이 조금 불쌍해 보였다.
너는 내가 생각하는 장소에서, 그렇게 있구나.
곧 너는 내가 생각하는 모습으로 그저 기계적으로 한때 동물 혹은 식물이었던 것들을 입속에 넣는 과정을 반복하겠지.
나는 왠지 으쓱한 기분에 우철이에게 톡을 날렸다.
[부러우면 뭐라고?]
무슨 소린가 하며 우철이가 물음표를 찍었다.
[?]
내가 다시 톡을 보냈다.
[부러우면 지는 거란다. YOU LOSE.]
[지랄한다.]
나는 맞은편에 앉은 샤샤에게 말했다.
“샤샤야, 이쪽으로 앉아 봐.”
샤샤가 내 옆에 앉았다.
나는 스마트폰을 셀카 모드로 바꾸었다.
“여기 화면 보여? 사진 찍으려고 잘 봐. 따라 해봐. 김치~ 바나나, 딸기~”
찰칵, 찰칵, 찰칵.
여러 장의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스마트폰에서 방금 찍은 사진을 열어 보았다.
“우와.”
나는 보정 할 게 너무 많아 문제였지만 샤샤는 보정 할 게 없었다.
어차피 내 얼굴은 중요한 것이 아니므로 보정 따윈 필요 없었다.
나는 샤샤의 상큼한 미소가 가장 잘 나온 사진을 골라 우철이에게 날려주었다.
그러자 우철이가 연이어 톡을 보냈다.
[헐]
[헐]
[헐…….]
[졌다.]
나는 톡을 하지 않고 그저 스마트폰을 보며 승자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우철이가 다시 톡을 날렸다.
[형님.]
[형님.]
[형님, 소개 좀. 가지치기라도?]
소오오개? 가지치기? 샤샤를 내 여친으로 생각하고 샤샤의 다른 친구를 소개해달라는 소린가?
뭐 오해하라고 보낸 문자니까 나는 우철이가 샤샤에 대해 오해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잠시 후, 우철이는 무릎을 꿇고 있는 이미지가 포함된 이모티콘을 보내왔다.
와.
어이가 없다.
난 이놈이 이렇게 이미지가 있는 이모티콘을 쓰는 걸 처음 봤다.
이놈이 나에게 보내온 이모티콘은 평생 딱 두 종류였다.
하나는 자기 얼굴을 닮은 ‘―_―’ 이거였고 다른 하나는 ‘ㅗ’ 였다.
‘ㅗ’ 표현이 이모티콘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암튼 이것 두 개뿐이었다.
우철이도 이미지가 포함된 이모티콘을 쓸 줄 아는구나.
진심 부러운 듯.
그리고 형님?
자기가 나보다 얼굴은 훨씬 늙어 보이면서 형님이란다.
우철이에게 톡을 보내주었다.
[담에 보여줄게. 그리고 얘 말고 다른 친구 생기면 소개해줄 수도 있고.]
[충성. 충성. 충성.]
지금은 소환수가 샤샤 한 명뿐이지만, 혹시 소환수를 더 많이 소환할 수 있으면 우철이에게 소개시켜 줄 수도 있을 것 같다.
뭐, 스켈레톤이나 언데드 소환수면 우철이와 어울릴 것 같았다.
머리를 옆구리에 끼고 다니는 언데드 듀라한 아가씨와 함께 있는 우철이를 떠올려 보았다.
잘 어울릴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내가 각성한지도 한 달 정도가 지났다.
내가 각성하고 헌터가 된 걸 말해줘야 하는데 얼굴 보고 말하려다 보니 시간이 금세 흘렀다.
정말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음… 내일부터 던전 들어가는데.
시간 날 때 봐야지 뭐.
* * *
다음 날 구의역 1번 출구.
아침 시간이라 그런지 많은 사람이 저마다의 갈 길을 가며 바빠 보였다.
지하철은 이름과 어울리지 않게 머리 위에서 지나가고 있었다.
지하철 아래 도로에는 차들이 혼잡하게 지나고 있었다.
나는 바쁜 사람들 틈에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약속했던 커피숍이 보였다.
커피숍 안에는 아침 시간인데도 사람들이 꽤 있었다.
대화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노트북이나 종이를 쌓아둔 사람들도 많았다.
이리저리 누가 왔나 살펴보니 차동서 형님이 먼저 와계셨다.
역시 우리 리더셨다.
동서 형님도 나를 발견했는지 손을 흔들어 주셨다.
“민준, 왔어?”
“네.”
“일찍 왔네?”
“뭘요.”
시계를 보니 아직 15분 남아 있었다.
동서 형님과 이런저런 잡담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동서 형님의 옷이 특이했다.
바바리코트.
바바리맨이 생각나는 진한 베이지색 바바리였다.
바바리를 입고 온 것도 이상한데, 바바리코트 안에 무언가 꽉 채워져 있었다.
저 형님이 쫄쫄이바지만 입고 있던 모습을 본 나로서는 저 코트 안이 순수 형님의 살이 아님을 예상할 수 있었다.
저 꽉 찬 바바리코트 속에는 뭐가 들어있을까?
그렇게 의심스러운 눈빛을 보내고 있는 와중에 시간이 흘러 임종구와 한나리가 왔다.
동서 형님이 말했다.
“자, 장비들 단단히 챙겨 왔나?”
“네.”
“그럼요.”
한나리가 동서 형님에게 말했다.
“근데 오빠, 그 수상한 바바린 뭐에요?”
역시 동서 형님의 복장에 의심을 품고 있는 것은 나뿐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오빠, 그 속에 또 변신용으로 이상한 옷을 입고 온 것 아니에요?”
흠칫!
동서 형님이 뭔가 놀라는 표정이었다.
준비했네.
커피숍 문이 열리고 김관장이 마지막으로 도착했다.
“아, 늦었습니다.”
왠지 민망해하는 동서 형님이 말했다.
“자. 관장도 도착했으니, 얼른 갑시다.”
동서 형님은 나리의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곧 알게 되겠지.
우린 조원들은 던전으로 향했다.
던전 앞에는 물건을 파는 자판이 죽 늘어서 있었다.
그 중 어느 아주머니께서 날 보며 소리쳤다.
“헌터 오빠, 여기 힐링 포션 좀 보고 가세요. 싸게 드릴게. 3병에 99만 원! 무이자 할부 가능해.”
딱 봐도 어머님 연세신데, 오빠라고 하다가 반말로 끝을 낸다.
호객 행위 레벨이 높으시다.
나는 가격에 혹해서 슬쩍 바라보았다.
투명한 유리병에 담긴 적갈색 액체.
에휴, 아서라.
누가 뭘 넣어서 만든 줄 알고 저걸 마시냐
물론 좋은 물건일 수도 있지만, 목숨이 걸린 판에 돈 좀 아끼자고 검증되지 않은 물건을 살 필요는 없다.
그리고 내가 있는데 힐링 포션을 왜 사나?
나라는 힐러를 데려가는 조원들도 당연히 포션 호객 행위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동서 형님이 대표로 입구에서 예약된 번호를 이야기했다.
입구에서 관리인이 말했다.
“헌터 자격증 보여주시고, 여기 서류 읽어보시고 각자 서명해주세요.”
나는 헌터 자격증을 내밀고 서류를 받아 보았다.
서류에는 개인정보 동의가 적혀 있었고, 던전석을 부수지 않는다는 조항이 적혀 있었다.
던전석은 던전의 핵이다.
던전석을 부수면 던전이 붕괴되어 완전히 사라진다.
진정한 의미의 던전 클리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말하는 던전 클리어는 던전석을 부수지 않고, 던전의 몬스터와 보스까지만 레이드하는 것을 말한다.
그래야 던전은 유지되면서 몬스터만 리젠되니까.
그리고 던전석에는 A급 이상의 결계사들이 결계를 세워둔다.
F급들인 우리 실력으로는 부수고 싶어도 부수지 못한다.
던전이 지구에 나타난 초기에는 던전석도 부숴서 아예 없애버렸고 지금도 던전을 아예 없애야 한다는 사람도 있다.
대통령 선거 때만 되면 이놈의 던전을 모두 폐쇄하겠다는 후보가 항상 나온다.
물론 지지율은 형편없지만.
한때 던전이 생기면 던전석을 부숴서 던전을 소멸시키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던전은 다른 곳에서 계속 새로 생긴다.
부수면 생기고, 부수면 생기고.
새로 생기는 장소를 찾지 못해 방치되면 던전 브레이크가 터져서 몬스터가 튀어나온다.
그러면 그때마다 대량의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그때 던전 수 일정의 법칙이라는 이론이 나왔다.
지구상에는 일정한 수의 던전이 있어야 하며, 던전을 폐쇄할 경우엔 새로운 던전이 생기고 던전을 폐쇄하지 않으면 더 이상의 던전이 생기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은 완전히 맞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는 맞았다.
던전을 폐쇄하지 않자 가끔 엉뚱하게 생기는 던전도 있지만, 추가로 생기는 던전의 수가 확연하게 감소하였다.
하지만 던전을 가만히 놔두면 일정 시간 후, 몬스터가 밖으로 나온다.
던전은 놔둬야 하지만 몬스터는 내버려 두면 안 된다.
그래서 이제는 던전을 폐쇄하지는 않고 몬스터만 잡는다.
또, 그렇게 던전을 관리하다 보니 던전에서 얻는 마정석, 동식물 자원들이 풍부해졌다.
이로 인해 발달하는 던전 산업들.
그래서 오늘 우리의 목표도 던전의 완전 폐쇄가 아니라 몬스터만 잡고 나오는 것이다.
헌터들은 몬스터 잡아서 레벨업도 하고, 돈도 벌고.
던전이 청소되면 브레이크 될 걱정 없으니 시민들도 안전하고.
모두가 좋은 일이다.
동서 형님이 말했다.
“자자, 어여 들어갑시다.”
던전의 입구가 보였다.
포탈.
실습을 받으면서 여러 번 들어가 보았지만, 여전히 신기하다.
문득 이 세상은 왜 이렇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지구와 다른 세상이 연결되었을까?
더군다나 소환술사인 나와 글리제 세상은 어떻게 연결되었을까?
잠시 상념에 빠졌으나 그걸 알 수도 없고 안다고 바뀔 것도 없었다.
꿀렁.
임종구가 말했다.
“아으으. 포탈 들어가는 느낌은 영 적응이 안 되네.”
“맞아요. 뭔가 푸딩 속으로 빠져드는 것 같아욧.”
푸딩에 퐁당 빠진 느낌 다음으로 눈 앞에 펼쳐진 것은 초원이었다.
우리나라의 가을하늘처럼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그리고 넓은 초원에는 짧은 풀들이 드넓게 펼쳐져 있었다.
낯선 세상.
우선 주위를 경계했다.
하지만 긴장한 것과 다르게 별로 특별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내가 동료들에게 말했다.
“저는 우선 샤샤부터 소환할게요. 샤샤 소환.”
화아악!
샤샤가 나왔다.
오늘은 던전에 들어간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그런지 전투복을 갖췄다.
가죽옷에 허리에는 화살 가득한 전통을 차고 활을 뒤로 걸어 메고 있었다.
동서 형님이 사람 좋은 미소로 말했다.
“여어. 샤샤, 왔어?”
나리도 눈웃음을 치며 말했다.
“어서 와, 반가워.”
“네, 오랜만이에요. 반가워요.”
샤샤도 팀원들에게 인사를 했다.
자 그러면 헌팅을 해볼까나.
동서 형님이 말했다.
“자, 이동 대형을 갖춰보자.”
이동 대형은 앞뒤로 탱커를 두었다.
전위는 차동서, 후위는 임종구.
그리고 가운데 다른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이러다 몬스터가 나타나면 전투 대형이다.
전투 대형은 몬스터 방향으로 투 탱커를 세우기로 했다.
얼마간 이동하니 저 멀리 풀을 뜯고 있는 토끼들을 발견했다.
멀리서 보면 귀엽다.
그런데 가까이서 보면 아니다.
사람만 한 토끼.
이빨이 부엌칼 같다.
살벌한데.
한나리가 말했다.
“토끼가 사람만 해욧.”
종구가 실없는 농담을 했다.
“그러게. 고기가 아주 많이 나오겠어. 나리야, 닭꼬치 알지? 요즘은 저 래빗 고기 쓴대.”
찌릿.
나리가 째려봤다.
그래도 그런 농담 덕분인지 한결 긴장감이 풀렸다.
우리는 몇 번 던전 실습을 했다.
하지만 그때는 보호자 헌터가 있었다.
지금은 우리뿐.
저 앞의 사람만 한 몸집에 부엌칼로 당근 비슷한 것을 먹는지 베는지 모를 토끼는 우리가 알아서 잡아야 한다.
얼른 전투 진형을 갖추었다.
동서 형님부터 시작했다.
펄럭.
동서 형님이 바바리를 풀어 헤쳤다.
드디어 비밀의 바바리가 풀어지는가?
어떤 옷이 등장할 것인가 궁금했다.
“트랜스 폼.”
곰 한 마리가 나타났다.
그런데 그 곰은 자신이 야생 곰이 아니라 애완 곰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부르짖는 듯 대형 체크무늬 셔츠를 입고 있었다.
꼭 교복 같았다.
저런 옷은 어디서 파는 걸까?
이태원에 가면 있을까?
다음부터는 넥타이도 매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곰의 교복 쇼를 이어받아 한나리가 전투 준비를 했다.
“제가 한 방 날려볼게요. 준비하세욧.”
한나리가 마나를 모으고 손을 뻗었다.
“파이어 볼트.”
처음 파이어 볼트를 쏠 때는 마나 모으는 데도 한참 걸리더니 이제는 한 호흡으로 매끄럽게 던진다.
퍼엉!
보란 듯이 명중한 파이어 볼트. 잘하네.
내가 외쳐주었다.
“나리, 나이스 샷.”
나리가 칭찬에 기분 좋은지 미소를 날려준다.
나리의 파이어 볼트에 맞아서 원래는 흰 토끼였던 토끼의 머리가 검게 그을렸다.
그래서 얼룩 토끼가 된 녀석이 달려들었다.
주변에 있던 토끼 두 마리도 함께 달려들었다.
토끼 한 마리 당 이빨 두 개.
합이 여섯 개의 이빨인 듯 부엌칼인 듯한 것을 입에 달고 토끼들이 달려왔다.
내가 외쳤다.
“바인드.”
토끼 한 마리의 앞쪽에 반투명한 끈이 생성되었다.
바인드를 처음 사용할 때는 내 손에서부터 끈이 날아갔는데 익숙해지니 중간부터 날아가게 할 수 있었다.
바인드로 만든 끈이 녀석의 두 뒷다리를 묶어 버렸다.
앞으로 꼬꾸라지는 녀석.
다른 두 마리를 바라보니 벌써 얼룩 토끼의 정수리에는 샤샤의 화살이 박혀 있다.
역시 샤샤.
탱커는 두 명인데 우리 진형에 도착한 토끼는 하나뿐이다.
우리의 교복 곰이 괴성을 질렀다.
“으라차차차!”
교복 곰이 프라이팬만 한 손바닥을 휘둘렀다.
퍼억!
토끼의 볼에 곰의 싸다구가 제대로 들어갔다.
토끼의 고개가 홱 하고 돌아갔다.
주춤주춤 반쯤은 쓰러지는 자세로 토끼가 기울어졌다.
그렇게 토끼가 기울어져 가는 곳에는 임종구가 야구 4번 타자 자세를 잡으며 기다리고 있었다.
스트라이크 존으로 들어오는 토끼를 보며 풀스윙을 날리는 임종구.
부웅!
허리힘을 이용해 제대로 휘둘렀다.
뻑!
정타로 제대로 맞았다.
타격만 보면 홈런 각이다.
그렇게 토끼는 곰한테 죽빵 한 대 맞고, 종구에게 야구 빠따로 한 대 맞았다.
‘어?’
김관장이 토끼에게 칼침을 놓으려는데 저건 뭔가?
토끼가 도망간다.
‘헐.’
도망가는 몬스터라니
래빗 몬스터가 위기 시에 도망을 가서 짜증 난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실제로 도망을 가는 모습을 보니 황당하다.
뭔 몬스터가 도망이래.
근데 어쩌나?
“바인드.”
나의 바인드에 묶이고.
피잉!
콱!
샤샤의 화살이 뒤를 이었다.
이건 뭐 힐 쓸 것도 없는데?
종구가 말했다.
“와. 분위기 좋고, 팀워크 좋고, 달려 봅시다.”
금쪽같은 소환수들
— 거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