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쪽같은 소환수들-22화 (22/230)

22화. 동네 사람

샤샤는 롱 에이프런 치마를 입고 있었다.

긴 흰색 원피스를 받쳐입고 그 위에 하늘색 원피스를 다시 겹쳐 입었다.

머리카락 색과 옷 색이 깔맞춤이다.

매번 작업복이나 전투를 위한 복장만 모습만 보다가 이런 복장을 보니 새롭다.

샤샤가 나를 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민준 님?”

나도 참.

내가 소환해놓고 멍하고 있었네.

“민준 님, 커피 한잔 타드릴까요?”

커피라.

좋지.

멍 때리는 상황이라 카페인이 필요해 보이나?

“응, 땡큐.”

샤샤는 이제 내 방이 익숙한 모양이다.

샤샤는 내 말을 듣자 자연스럽게 주방으로 갔다.

원룸에 주방이랄 것이 있냐만 나름대로 싱크대도 있고 식기도 있으니 주방인 셈이다.

한국 사람이 다 된 샤샤는 능숙하게 커피포트에 물을 올렸다.

차르르르.

잠시 기다리자 커피포트에서 물이 끓기 시작하는 소리가 들린다.

샤샤가 커피포트의 물 상태를 확인하며 나에게 물었다.

“던전에 가신다고요?”

나는 산책하러 가자는 듯 편안한 제안을 건넸다.

“어, 그래. 같이 가자. 몬스터 잡으러.”

샤샤에게 오크 멱 따는 건 산책이지.

샤샤가 싱긋 웃었다.

“제가 뭘 준비하면 좋을까요?”

“아, 뭐 별건 없어. F급 던전이라 설렁설렁해도 돼. 너나 나나 24렙인데. 막말로 우리 둘이 가도 될걸? 그리고 우리만 가는 건 아니고, 지난번에 조원들 봤지? 조원들이랑 다 같이 가려고. 아마 몇 번 더 조원들이랑 던전을 돌게 될 것같아. 레벨업도 중요하지만, 경험도 쌓아야지.”

“그렇군요.”

어느덧 물이 끓었다.

그러자 샤샤는 일회용 커피 드립백을 뜯었다.

지익.

그리고 찬장에서 꺼낸 머그잔.

사실 나는 얼마 전까지 내 방에 이런 머그잔이 있었는지도 몰랐다.

드립백 양쪽의 종이 클립을 당겨 머그잔에 걸었다.

쪼르륵.

천천히 원두 가루에 뜨거운 물을 부었다.

서서히 스며 나오는 커피.

사실 이 커피는 내가 마실 용도로 산 건 아니다.

공시생이 커피를 내려 마실 정도의 여유가 어디 있었을까?

그동안 나에게 커피란 단지 잠이 안 오도록 입에 넣는 물질일 뿐이었다.

하지만 샤샤에게 커피를 몇 번 사줘 봤더니, 너무 좋아해서 좀 괜찮은 것으로 사다 놓았다.

향이 좋다나.

향을 따지면 커피 믹스로는 부족할 것 같다.

요즘은 원두를 직접 갈아서 마시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내가 그 정도로 커피를 구분하는 사람이 아니라 우선 머그잔에 걸어서 내려 마시는 걸 준비해 두었다.

이것만 해도 저렇게 좋아하네.

‘나중에 커피 좀 선물함으로 넣어줘야겠네.’

그라인더는 수동으로 넣어줘야겠지?

그거 한참 돌리면 손목 아프다던데.

맞다. 샤샤도 힘 스텟 높지.

샤샤가 커피를 마신다.

아니, 커피의 향을 느낀다.

“음~”

그렇게 잠시 커피의 향을 음미한다.

그리고 나서 머그잔을 입으로 가져간다.

호르륵.

저 봐라.

누가 알려주지도 않았는데 향을 먼저 맡고 맛을 음미한다.

내가 물었다.

“맛있어?”

“네, 맛있어요.”

“커피는 종류가 많아. 다음에 일회용 말고 제대로 사다 놓을게. 선물함에도 좀 보내고. 아니다. 샤샤 입맛에 맞게 고르는 게 낫겠다. 다음에 같이 고르러 가자.”

샤샤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네, 좋아요.”

그래. 샤샤도 이 동네 사람이 다 되었는데 이곳저곳 구경도 해봐야지.

커피 사러도 가보고 겸사겸사 지구에 대해서, 한국에 대해서 알려주어야 할 것 같다.

혹시 누가 두유 노우 김치? 이렇게 물으면 대답할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나.

“그리고 던전 이야기 마저 하면 던전의 지형은 초원지대야. 그리고 주로 나오는 몬스터는 래빗이지. 토끼 알아? 뭐 암튼 세진 않고 땅굴에 잘 숨는다고 하더라. 막타까지 쳐야 경험치 나오는데, 몇 대 맞고 도망쳐서 좀 짜증 나는 경우가 많대. 던전은 다 클리어하려면 열 시간 정도 생각하면 되고.”

“열 시간이요? 그러면 꽤 기네요. 먹을 것도 가지고 가야겠네요?”

“어, 그렇지. 뭐 전투식량 같은 것 간단히 싸가면 돼. 너무 걱정 안 해도 돼. F급 던전은 너나 내 레벨에서는 쉬워. 다른 조원들도 있으니까 절반은 몬스터 헌팅, 절반은 소풍 간다는 생각으로 가도 돼.”

샤샤의 눈이 빛났다.

“소풍이요?”

“그래, 반쯤은 그런 생각으로 가도 될 거야.”

소풍이라는 말에 샤샤가 반기는 분위기다.

내가 샤샤에게 좀 소홀했나?

몬스터 웨이브가 끝나고 나도 그렇고 샤샤도 그렇고 각자의 세상에서 바빴다.

나는 자격증을 따느라 수업도 들어야 하고 집합 연수에 던전 실습에 여러 가지를 하느라 글리제만 바라보고 있지 못했다.

나는 샤샤의 근황을 물었다.

“근데 샤샤야. 던전은 그렇고, 요즘 뭐 달라진 것 있어? 요즘 내가 자격증 따느라 소환을 좀 뜸하게 한 것 같아서. 자격증이 있어야 던전을 돌 수 있거든.”

샤샤가 말했다.

“저 이번에 이사했어요.”

“이사?”

이사라면 나름 큰일이었는데 그것도 모르고 있었네.

내가 너무 무심했나 보다.

“어디로 이사를 했는데?”

“백작성 내에서 살기로 했어요.”

“성 내에서?”

“네, 백작님께서 집을 주셨어요. 그리고 아빠는 병사가 되셨고요.”

그쪽에선 나름 도심지에 집을 얻은 셈인가?

산골에서 살다가 도심지에 집을 얻어 살게 되었으니 축하받을 일인 것 같다.

“와, 잘됐네. 축하해, 집이라니.”

나도 내 명의의 집은 없는데.

“이번 몬스터 웨이브에서 공을 세웠다고 백작님이 신경을 써주셨어요. 그래서 민준 님께 상의드릴 일이 있어요.”

“상의?”

샤샤가 끄덕이며 말했다.

“백작님께서 민준 님의 도움을 받고 싶으신 것 같아요.”

“나한테 도움을 받고 싶다고?”

날 본적도 없으면서 어떤 도움을 받고 싶은 걸까?

“네, 고정적인 건 아니고요. 원래 백작성에서는 몬스터를 정기적으로 토벌하거든요. 그때, 토벌대에 제가 포함되기를 원하세요. 그런데 저를 데려가고 싶다기보다는 민준 님의 능력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무력은 저보다 강하신 기사분들이 많이 계시지만 영지를 내려다보는 사람은 민준 님뿐이니까요.”

몬스터 토벌에 샤샤를 데려 간다라···….

그러면 당연히 경험치 먹고 레벨업하겠지?

사실 내가 먼저 부탁할 일이다.

그렇지만 백작이 먼저 부탁한 상황이다.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건 전체적인 지도를 내려다보는 것이다.

막말로 맵핵 아닌가?

전쟁에서 맵핵을 쓸 수 있다면 얼마를 내야 할까?

내가 먼저 부탁해야 할 상황이긴 하지만 상대가 먼저 맵핵을 요구한다면 조금 비싸게 굴어도 되겠지?

“그래, 좋아. 시간 맞춰보면 되겠지. 그런데 그러면 우리도 뭘 받아야지. 대가가 뭐냐고 물어봐. 소환술사님도 나름 바쁘다고. 물론 그렇다고 너무 튕기지는 말고 적당히.”

“안 그래도 행정관님이 민준 님에게 특별히 원하시는 것이 있는지 여쭤보라고 했어요.”

내가 원하는 것?

갑자기 이렇게 물으니 당황스럽네.

일단 돈이면 좋긴 한데 그 동네 돈이 여기 있어 봤자고.

보석류나 금속류를 얻어야 하려나?

그렇게 생각을 하다 보니 문득 천마 길드 사람의 말이 생각났다.

돈과 매력적인 이성은 힘이 있으면 저절로 따라온다는 말.

각성자니까.

헌터니까.

기본에 충실해야겠지?

글리제가 지구와 비교해 더 많은 것이 뭘까?

그리고 기왕이면 나에게 힘이 될 수 있는 건 뭘까?

나는 허공을 바라보며 나의 도우미를 불렀다.

“알파야.”

곧 대답이 들려왔다.

―네, 민준 님.

“글리제 쪽에서 지구보다 더 많으면서, 또 그것이 나의 힘을 강하게 해줄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힘을 강하게 한다는 건 근력을 강하게 한다는 의미입니까? 아니면 넓은 의미입니까?

“당연히 근력만 말하는 건 아니지. 헌터니까 다른 스텟도 좋고, 아이템이라던가 스킬 그런 것도 좋지.”

―글리제는 기본적으로 지구보다 마나가 풍부한 곳입니다.

맞다, 그걸 잊고 있었네. 글리제가 지구보다 마나가 풍부하다고 했지.

그래서 샤샤도 1렙일 때 나보다 힘이 약했으면서도 마나는 몇 배 많았었다.

“그러면 내 마나를 높여줄 뭔가가 있을 수 있겠네.”

―글리제는 지구와 달리 마나를 활용하는 방법이 발달해 있습니다. 기사가 그렇고 마법사가 그렇습니다. 기사의 심법, 마법사의 마나 심법, 마법진이나 마도구가 지구와 비교해 발달해 있습니다. 또, 마나를 풍부하게 포함하고 있는 동식물이 있습니다. 지구에서는 마나를 풍부하게 포함한 동식물을 찾기 어렵습니다.

오호라. 그렇구나.

나는 고개를 돌려 샤샤를 바라보았다.

“그래? 샤샤, 들었지?”

“네, 마나를 올릴 수 있는 심법···. 또는 도구나 먹을 수 있는 것들을 원하신다고 전할게요.”

내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 좋아.”

아, 너무 김칫국부터 마시고 있나?

그래도 나름 백작인데, 영지도 꽤 넓던데 그 영지에서 뭐라도 좋은 것 좀 없겠어?

기사들도 세 보이고 나름 노하우가 있겠지.

주면 좋고, 뭐 안 줘도 어차피 몬스터 잡는 건 경험치니까.

마음 편하게 먹기로 했다.

“그럼 샤샤, 시간 있지?”

“네.”

나는 고갯짓으로 문밖을 가리켰다.

“밥이나 먹으러 나가자.”

남자 혼자 사는 자취방에 뭐 먹을 게 있을까?

샤샤도 온 김에 같이 나가서 먹어야겠다.

혼밥 안 하고 좋지.

딸랑.

김밥집 문을 열고 들어갔다.

김밥집 손님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솔직히 샤샤와 다니고 나서 시선이란 개념이 생겼다.

이런 시선은 평생 처음이었다.

그동안 나도 살면서 나름대로 꾸미고, 정장을 입고, 다양한 짓을 하며 살았을 텐데 한 번도 이런 시선을 느껴보지 못했다.

이런 세상이 존재하는구나.

이런 시선을 받는 사람도 있구나.

한편으로는 마음이 편해지기도 했다.

어차피 나는 뭔 짓을 해도 시선을 못 받으니 뭔 짓을 할 필요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선을 안 받으니 대충 살아도 되지 않을까?

여자들은 이런 시선을 받으며 살아가는 걸까?

불편하겠네.

신경 쓰인다.

익숙하지 않은 시선들 참 낯설다.

그런데 다 이렇게 사는 건 아니겠지. 샤샤는 누가 봐도 튀니까.

하긴.

에메랄드빛 머리카락과 깔 맞춤한 눈동자의 예쁜 러시아 소녀가 지나가는데 안 쳐다볼 자신 있을까?

적어도 나는 없다.

“샤샤, 김밥 먹을래?”

“김밥이요?”

나는 적당히 자리에 앉아 메뉴판에 있는 사진을 보여주었다.

“이게 김밥이야.”

“예쁘게 생겼네요.”

“그래, 김밥이 모양도 좋지. 그런데 김밥만 아니라 반드시 먹어봐야 할 음식이 있어.”

“반드시요?”

“그래, 반드시. 이건 정말 정말 먹어봐야 하는 음식이야. 샤샤가 대한민국에 소환되는 소환수라면 이걸 안 먹어 보면 안 돼. 진심이야.”

“뭔데요?”

나는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라면.”

그래, 라면은 먹어봐야지.

김밥에 라면은 국룰이다.

곧 김밥과 라면이 나왔다.

알록달록 여러 가지 속을 넣어 둘둘 말린 김밥.

그리고 구불구불한 면발이 얼큰한 국물에 담겨 익숙한 향기를 뽐내는 라면.

후루룩!

세상에 라면보다 맛있는 음식은 많이 있다.

하지만 어떤 식당에서도 실패하지 않고 맛있는 음식이라면 단연 라면이다.

실패할 수 없는 맛.

샤샤도 눈이 동그래져서 먹고 있다.

그렇게 라면을 먹고 있는데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지이이이잉.

금쪽같은 소환수들

— 거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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