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쪽같은 소환수들-21화 (21/230)

21화. 길드의 조건

얼음 여신 민지혜.

그녀의 어깨까지 내려오는 머리카락은 바깥쪽으로 곱게 말려 있다.

하늘색 블라우스와 스커트에는 마치 눈꽃 송이처럼 입체적이며 흰 무늬가 수놓아져 있었다.

민지혜는 한 손으로 머리를 쓸어올려 귀 뒤로 넘기며 단상 위로 올라왔다.

여기저기서 환호 소리가 들렸다.

“와, 예뻐요. 팬이에요!”

민지혜는 A급 헌터일 뿐만 아니라 영화에도 나오는 연예인이다.

왕의 던전.

K 드라마라 불리며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시리즈다.

왕의 던전에서는 실제 헌터들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과거 히어로물의 영화들은 스턴트맨을 쓰거나 CG를 사용했다는데 왕의 던전은 리얼 그 자체다.

실제로 불을 뿜고, 마법을 일으킨다.

왕의 던전에서 나오는 몬스터들과의 전투는 리얼 100%라고 한다.

그리고 민지혜는 그러한 왕의 던전의 여주인공이다.

민지혜는 단상 위에 올라서 고개를 돌려 객석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싱긋 미소를 띠었다.

그 모습에 객석이 조용해졌다.

민지혜는 오른손을 옆으로 뻗으며 고개를 돌려 손끝을 바라보았다.

자연스레 모든 관중은 그녀의 손끝을 바라보았다.

사라라락.

햐얀 눈 결정 같은 모양이 새겨진 옷을 입은 그녀의 하얀 손끝에서 그보다 더 순백의 안개가 퍼져나갔다.

그 연기는 이리저리 구불거리며 나아가다가 군데군데 모여서 어떤 형상을 만들었다.

얼음꽃.

여러 송이의 얼음꽃들이 단상에 만들어졌다.

민지혜가 왼손을 왼쪽으로 뻗었다.

사라라락.

마찬가지로 얼음꽃들이 생성되었다.

그리고 이제 민지혜는 두 손을 가운데로 모아 위로 뻗었다.

위로 뿜어진 하연 연기는 천장 가까이 솟더니 얼음 결정으로 변했다.

사라라라라라.

단상 위에 얼음 결정들이 아주 천천히 눈꽃처럼 내린다.

마치 보석이 허공에 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와, 아름답다.’

스킬도 컨트롤도 훌륭하지만, 허공에 떠 있는 반짝이는 얼음의 신비로움과 민지혜의 아름다움이 더해졌다.

그 와중에 민지혜의 스커트와 머리카락은 바람에 살랑거린다.

실내인데 바람이라니

마나를 활용해서 옷과 머리카락이 살랑거리게 만든 것 같았다.

깨알 같은 디테일.

하지만 명품은 디테일에서 오는 법.

이건 그냥 영화의 한 장면이었다.

그 순간.

나는 뭔가 가슴 속에 쿵 하는 느낌이 들었다.

가슴에 느껴지는 충격!

이건 뭐지?

아! 알겠다.

치였다.

이런걸 덕통 사고라고 하나?

이래서 연예인을 함부로 가까이서 보면 안 된다는 건데 아무래도 오늘 집에 가서 ‘왕의 던전’을 정주행해야 할 듯하다.

민지혜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여러분 오늘 수료하는 날이시죠?”

초승달처럼 휘어진 민지혜의 눈웃음에 사람들은 최면이 걸린 것처럼 대답했다.

“네에에!”

덕통 사고를 당한 사람은 나뿐만이 아닌 듯했다.

사람들의 반응이 열광적이다.

사람들은 민지혜에게 매료되어 만약 돈을 달라고 하면 지갑 채 바칠 기세였다.

민지혜가 온 이유는 단순했다.

길드 홍보.

오늘 오전 시간은 통으로 길드 홍보 시간이라고 한다.

헌터 자격증을 받은 헌터들은 자신의 등급에 맞는 던전에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보통은 팀으로 들어간다.

아무리 실력이 있는 헌터라 하더라도 혼자 들어가는 헌터는 거의 없다.

그리고 던전에 함께 들어가는 동료는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다들 길드에 가입한다.

그리고 오늘은 수료하는 날이라서 여러 길드에서 나왔다고 한다.

민지혜의 길드는 크리스털.

민지혜는 빙결 마법을 주로 사용하는 고위급 마법사다.

마법사에게는 매력적인 길드겠지.

그리고 주위를 보아하니 매력을 느낀 건 마법사들뿐이 아닌 것 같았다.

꽤 많은 남자가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아.

그래서 민지혜가 왔구나.

홀리려고.

나는 이점을 깨닫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할 것 같았다.

연예인 얼굴에 반해서 길드를 선택하는 그런 어리석은 결정을 내려서는 안 된다.

물론 왕의 던전 정주행 정도는 괜찮다.

두 번째로 오성 길드 인사과장이란 사람이 나왔다.

평범한 아저씨.

나이는 50쯤 되어 보였다.

나름대로 정장을 갖춰 입었지만, 그저 그런 키.

그저 그런 몸.

그저 그런 얼굴로는 깊은 인상을 줄 수 없었다.

조금 전 민지혜가 워낙 비주얼이 강해서 비교되었다.

오성 길드 인사과정은 간단하게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오성 길드 인사과장 김두식입니다. 잠시 동영상을 시청하겠습니다.”

조명이 어둑하게 가라앉고 단상 앞에 밝은 화면이 떴다.

둥둥! 두두둥!

북소리와 함께 동영상이 흘러나왔다.

F급 헌터 자격증을 든 어떤 헌터가 등장했다.

까까머리.

어리숙한 몸동작.

군데군데 여드름이 있는 얼굴.

결코 미남 혹은 호감형이라고도 부를 수 없는 헌터였다.

누군가 그에게 오성길드 배지를 달아준다.

그리고 나지막이 들리는 내레이션.

―10억, 여러분이 오성 길드에 가입하는 첫날 지급되는 아이템의 가격입니다.

친절하게 아이템의 모습이 나타나며 나래이션의 설명이 들려왔다.

―고급 가죽을 사용한 방어력 200대의 하드 레더, 직업군에 따른 고급 등급의 주 무기, 부츠, 링, 목걸이, 장갑에 헬멧까지. 이 모든 것을 가입 첫날 지급합니다.

풀 패키지로 입히는구나!

그리고 이어지는 화면과 내래이션.

화면에서는 최고급 오성 자동차와 호텔의 실내를 비추었다.

―개인별 오성 자동차 지급.

―호텔급 숙소.

―타 길드의 평균 2배의 연봉.

영상의 마지막은 F급 헌터가 초호화 크루즈에서 선상 파티를 하며 끝났다.

여긴 돈으로 뚜드려 패는구나!

줄줄이 입이 쩍 벌어지는 조건들이 나왔다.

민지혜와는 다른 의미로 사람을 홀렸다.

단상 위의 배 나온 아저씨의 뒤편 천장에서 빛이 내리쬐는 것 같았다.

돈의 후광이 비치는 듯했다.

다음은 천마 길드에서 올라왔다.

그는 도복을 입고 올라왔다.

천마 길드원은 굵고 단단한 음성으로 말했다.

“돈? 매력적인 이성? 그까짓 것 다 가질 수 있습니다. 단!”

그는 좌중을 둘러보며 잠시 뜸을 들였다.

그리곤 단상 아래의 민지혜와 오성 길드 아저씨를 힐끔 보는 것 같더니 씩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힘이 있다면 말이죠.”

천마 길드원의 말은 이랬다.

돈이고 뭐고 중요한 건 헌터로서의 무력이라는 거다.

부수적인 것은 고위급 헌터가 되면 원하는 만큼 따라오는 거라고 했다.

이 말도 맞는 것 같았다.

천마 길드는 현재 길드장을 천마라고 부른다.

지금 길드장인 천마는 S급 헌터 차지율이다.

그리고 그 S급 헌터가 직접 추궁과혈을 통한 신체 개조를 돕는다고 한다.

S급 헌터의 추궁과혈···. 이것도 땡긴다. 몹시!

이어서 여러 길드들이 자신의 길드로 오라며 길드 자랑을 했다.

우리 길드 밥이 제일 맛있다면서 길드 식당 밥 사진을 쭉 보여준다.

대박! 반찬으로 랍스터가 나온다.

장난 아닌데?

하긴 다 먹고 살자고 하는 것이지.

저기로 갈까?

한나리가 물었다.

“다들 어디 길드 생각하고 있어요?”

음…….

길드라.

나는 조금 고민이 된다.

어느 길드를 가입하느냐의 고민이 아니라 길드 가입 자체에 대한 고민이다.

길드에 가입하는 것도 좋겠지.

그런데 나는 서둘러 가입을 할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레벨 헌터들은 길드의 보호를 받지 않으면 던전을 돌거나 레벨업을 하기가 쉽지 않다.

팀을 이뤄서 던전을 도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난 던전을 한 번도 안 가보고 이미 꽤 많은 렙업을 했다.

그냥 집에만 있어도 레벨업이 되는데 길드를 가입해야 하나?

하지만 샤샤도 몬스터 웨이브가 끝나서 조금 한가하다.

웨이브 때 폭렙했는데 요즘은 잠잠하다.

그래서 나도 길드가 필요한가? 나도 던전을 돌아야 하나?

이런 생각도 든다.

조원들이 저마다 이야기했다.

“나는 천마 길드가 마음에 드네. 뭐든 힘이 있어야지.”

“나리야. 크리스탈도 괜찮은 것 같아. 법사 계열이면 도움을 많이 받을 수 있을 것 같아.”

“근데 나리는 불 계열인데 저기랑 상성이 맞겠어?”

“불이든 마법이든 고렙은 다 통하게 되어 있지.”

“오빠, 저는 오성도 괜찮은 것 같아요. 뭐니뭐니해도 머니죠.”

“민준이는 어디 생각한 곳이 있어?”

나는 조금 고민하다가 답했다.

“저는 조금 천천히 결정하려고요. 급한 것도 아니니까.”

“그래. 뭐, 힐러인데 어련히 모셔들 가려고 하겠지.”

힐 때문은 아닌데.

내 직업은 소환술사라구요.

길드들의 홍보 시간이 지나고 수료식을 마쳤다.

나는 헌터 자격증을 받았다.

이제 F급 던전을 들어갈 자격이 생겼다.

한나리가 물었다.

“길드 가입은 꼭 오늘 당장 해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죠?”

“당연하지. 중요한 결정이니까 다들 심사숙고해야 해.”

나리가 개구쟁이처럼, 뭔가 장난을 거는 것처럼 말했다.

“우리 던전 돌래요?”

그 물음에 모두가 잠시 말을 멈췄다.

임종구가 좋은 생각이라는 듯 맞장구를 치며 말했다.

“그러게. 이제 자격증도 받았는데 우리끼리 모여서 돌면 되는 거 아냐?”

“막말로 인터넷에서 모이는 막공대보다는 우리 조원들이 훨씬 낫지. 함께 훈련도 꽤 했잖아.”

“민준이는 어떻게 할래? 민준이가 있으면 든든하지.”

“오빠, 같이 가요.”

모두의 시선이 모였다.

어쩔까나.

다들 나만 보고 있다.

힐러도 필요하고 샤샤의 존재도 알고 있으니 무력적인 측면에서도 도움이 많이 되겠지.

샤샤가 과녁판 부숴버리는 것을 보았으니.

내가 가면 만약 F급 던전에서 위기가 터지더라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잠시 솔플을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내가 레벨이 높아도 던전 경험은 매우 적었다.

레벨 좀 높다고 설치다 실수하면?

목숨은 한 개다.

시간은 많고 급한 것도 없다.

조원들과 경험을 쌓으면 좋을 것 같았다.

“그럽시다.”

“야호! 오빠 최고! 언제 갈까요?”

조장인 동서가 말했다.

“자자, 그럼 장비 좀 챙기고, 이틀 후 어때? 시간 돼?”

“좋아요.”

“그럼 이틀 후에 보자고. 던전은 내가 예약해서 톡으로 공지할게.”

우리는 그렇게 약속했다.

다음날.

나는 집에서 뒹굴뒹굴하고 있었다.

이리 뒹굴, 저리 뒹굴.

에헤야, 좋다.

이렇게 뒹굴뒹굴하는 게 제일 좋구나.

그렇게 뒹굴뒹굴하며 뒹굴뒹굴하는 삶의 행복에 대한 철학적 고찰을 하고 있는데 동서가 공지를 올렸다.

[동서: 광진구 F급 던전 예약했다. 내일 구의역 1번 출구 별다방에서 오전 9시에 봅시다. 던전 이름은 ‘F광진4’이다. 헌터 협회 들어가면 몬스터 특징들 나오는데 읽어보고 올 것!

나리: 헌터협회 자료 링크 걸어둘게요

―링크―]

나는 링크를 열어 보았다.

[F광진4]

첫 F는 던전 등급, 광진은 위치, 4는 광진구에 있는 F급 던전 중에서 순서대로 붙인 숫자다.

어디 보자.

지형은 초원이다.

주로 나오는 몬스터는 래빗, 웜

몬스터 다 잡으려면 10시간 정도는 걸린다고 하고 보스는 북동쪽 끝이라.

무난하네.

오케이.

내일은 샤샤도 함께 가야겠다.

“알파야.”

―네, 민준 님.

“샤샤한테 내일 던전 같이 돌게 준비 좀 하고 있으라고 해줘.”

―네, 전했습니다. 그리고 민준 님, 샤샤가 소환 요청을 합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소환 요청?

샤샤가 먼저 소환 요청을 한 적은 처음이다.

“샤샤 소환.”

화아악!

샤샤가 소환되었다.

금쪽같은 소환수들

— 거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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