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발키리
오우거가 성벽 위에 오르자 모두가 긴장했다.
오우거는 몽둥이인지 아름드리나무인지 모를 것을 손에 들고 자신이 성벽 위의 영역을 차지했다는 듯 괴성을 질렀다.
“크아아아!”
그 괴성에 힘입어 오크들도 오우거의 뒤를 따랐다.
반파된 성벽과 이를 차지하고 있는 오우거.
위기였다.
디아론 백작인 지금 상황이 매우 심각한 상황이라고 생각했다.
몬스터 웨이브가 펼쳐진 상황에서 위기가 아닌 상황이 어디 있겠냐만 지금 상황이 그 위기의 정점이라고 생각했다.
서쪽으로 간 30마리의 트롤.
그리고 눈앞의 오우거.
평소 트란 산맥을 잘 알고 있는 백작은 이보다 더 많은 몬스터가 등장하긴 어렵다고 판단했다.
앞으로도 더 많은 트롤과 오우거가 쏟아져나온다면 사실 답은 없다.
하지만 백작은 이 위기만 어떻게든 막아내면 웨이브를 넘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몬스터들은 뒤가 없다.
막말로 성을 포위하고 마냥 기다리면 성 안의 사람들은 굶다 지쳐 나오게 되어 있다.
인간의 전쟁이라면 포위 후, 누구의 식량이 먼저 떨어지는지 내기하듯 기다리는 식의 전쟁도 빈번하다.
하지만 이놈들은 그런 건 모른다.
오직 돌진.
오직 약탈.
그러기에 이번만 어떻게든 넘기면 된다.
지금 상황이 이번 몬스터 웨이브의 정점이다.
이 자리.
이 상황의 결투가 이번 웨이브를 결론짓는다.
몬스터들이 안 어울리게 양동작전을 펼쳤다.
백작은 팬니르가 없음을 아쉬워하며
백작은 목에 걸고 있던 펜던트를 옷 속에서 밖으로 꺼냈다.
여러 개의 사슬이 엮인 목걸이.
그 목걸이 가운데에는 손가락 두 마디 정도의 지름을 갖는 보석이 달려있었다.
영롱하고 아름다운 푸른 빛을 띠는 보석.
일반적인 마나석보다 더 짙고 묵직함이 느껴지는 푸른 보석이었다.
백작이 얼마나 애지중지하며 아꼈는지 늘 목에 걸고 생활하던 펜던트였다.
그 펜던트는 오래전 백작의 작위를 임명받을 때 국왕이 하사한 펜던트였다.
백작이 펜던트를 보며 말했다.
“아쉽군.”
벌써 20여 년째 지닌 펜던트.
막상 사용하려니 아쉬웠다.
하지만 저 오우거를 잡으려면 다른 방법이 없어 보였다.
기사단장 팬니르라도 이곳에 있었다면 혹시 모를까 팬니르는 서쪽 문에 가 있었다.
“어쩔 수 없지.”
괜히 아끼다가 죽을 수도 있다.
자신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의 목숨이 걸려있는 순간이다.
이럴 때 쓰려고 지니고 있던 것 아닌가?
아쉬운 마음은 접었다.
빠르고 과감한 판단이 전세를 뒤집을 수 있는 법.
백작은 우물쭈물하다가 아무것도 못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백작은 왼손으로 펜던트를 받친 후 검의 손잡이에 마나를 주입한 후 펜던트를 내리쳤다.
20년간 품속에서 간직한 물건을 다루는 것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과감한 행동.
콰직!
푸른 보석이 부서졌다.
휘이잉!
보석에서부터 마나가 휘감겨 나온다.
펜던트를 잡고 있던 왼손이 덜덜 떨려온다.
오랜 세월 간직하고 있던 힘.
그 힘이 밖으로 뿜어져 나왔다.
화아악!
진한 마나의 향기.
백작은 숨을 들이쉬었다.
“스으읍, 후우우우”
절로 신음이 흘러나온다.
“크으음”
백작의 몸 주위로 푸른 막이 형성되었다.
백작의 눈에서 푸른 빛이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이 느낌.
백작은 자신이 약에 취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
백작은 온몸에 흘러 넘치는 마나에 취해 버릴 것 같았다.
백작도 기사다.
그것도 마나 익스퍼트에 달하는 기사다.
백작이라는 위치가 해야 할 일이 많아서 수련만 할 시간이 없어서 그렇지, 자신도 무를 숭상하며 마스터를 꿈꾸는 마음은 늘 간직하고 있었다.
백작은 살짝 마스터의 경지를 엿본 것 같았다.
강력한 힘, 넘치는 마나!
아!
이런 세상이 있구나!
아마도 오러소드를 활용하는 사람들, 인간의 경지를 벗어났다는 초인들은 이런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구나!
잠깐이지만 넘치는 마나를 얻었다.
그리고 짧은 시간 동안만 허락되었지만, 오러 마스터의 경지를 엿볼 수 있게 되었다.
백작이 오우거를 바라보았다.
온몸을 휘감는 자신감.
그 자신감에 백작은 오우거를 내려다보았다.
백작이 오우거를 보며 달려갔다.
“타앗!”
백작의 온몸에 진한 마나의 향기가 피어올랐다.
백작이 달려들자 오우거가 몽둥이를 휘둘렀다.
“크와악!”
위에서 아래로 내려찍는 오우거의 몽둥이.
붕!
조금 전까지 성벽을 부수던 몽둥이였다.
나무가 돌로 만들어진 성벽을 부순다는 것도 이상한 일이었다.
보통은 돌이 나무를 이긴다.
하지만 오우거의 나무 몽둥이는 성벽을 부쉈다.
그런 이상하고 단단하고 커다란 오우거의 나무 몽둥이가 휘둘러졌다.
오우거의 몽둥이가 백작에게 내리꽂혔다.
누군가 외쳤다.
“백작님!”
쾅!
백작이 피하지 않았다.
거대한 나무 몽둥이에 가려져 백작을 보지 못한 인원들도 많았다.
많은 이들이 백작이 오우거의 몽둥이에 당할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백작은 오우거의 몽둥이를 힘으로 받아내고 있었다.
사람이 한 자루의 검으로 거대한 통나무를 받치는 모습.
백작이 검에 힘을 주며 기합을 외쳤다.
“으아아아!”
거대한 통나무가 위로 들려 올라갔다.
잠시 오우거가 움찔했다.
오우거가 기대했던 결과가 아니었다.
오우거도 괴성을 질렀다.
“크와와왁!”
오우거는 몽둥이를 찍어 내리려 하고 백작은 아래에서 받치고 있었다.
백작과 오우거가 힘겨루기를 하여 서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과 몬스터들은 둘의 대결에 압도되어 움직일 생각을 못 하고 있었다.
샤샤는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했다.
활에 화살을 걸고 시위를 당겼다.
주욱!
시위가 당겨졌다.
등 근육과 팔에 힘을 더 주었다.
그러자 약간 더 시위가 당겨졌다.
“파이어 애로우!”
불길에 휩싸이는 화살.
샤샤가 시위를 놓았다.
쇄액!
백작에게 집중하였기 때문에 오우거가 샤샤의 화살을 미처 피하지 못했다.
펑!
파이어 애로우가 오우거의 한쪽 눈에 명중했다.
“쿠어억!”
오우거가 비명을 질렀다.
고통으로 인한 괴성을 지르는 오우거.
이때를 틈타서 백작이 오우거의 몽둥이를 위로 쳐냈다.
기회임을 파악한 친위대의 리더가 외쳤다.
“지금이다! 모두 오우거를 향해 모두 공격하라!”
다섯 명의 기사로 이루어진 친위대가 오우거에게 달려들었다.
오우거는 샤샤의 화살과 친위대의 공격에 정신이 없었다.
그 순간을 노려 백작은 스스로가 오우거의 왼쪽 어깨에 올라탔다.
푸욱!
푸른 빛이 감도는 백작의 검이 오우거의 목에 깊숙이 박혔다.
스각!
오우거의 머리가 몸과 분리되었다.
기우뚱!
쿵!
오우거가 쓰러졌다.
백작이 승리의 외침을 부르짖었다.
“우리는 승리할 것이다!”
그 외침에 얼마나 마나가 충만한지 성벽 너머의 몬스터들도 잠시 움찔했다.
푸른 막에 둘러싸인 백작은 마치 마스터 급 기사인 듯 신위를 내뿜었다.
마스터.
1인 군단이라고 불리고 초인이라고도 불린다.
무엇이든 자른다는 오러 블레이드를 형성한다.
오러 블레이드는 같은 오러 블레이드가 아니면 막을 수 없다.
방패로 막으면 방패까지 자른다.
그래서 마스터의 수가 곧 국력의 크기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제국에나 가야 숫자가 조금 될까?
이곳 프란시아 왕국에서도 마스터라고는 헬른 공작 한 명뿐이다.
그런데 백작은 그런 마스터와 비슷한 신위를 뽐내고 있었다.
아직도 몬스터가 많았다.
하지만 비장의 카드를 사용하고 있는 백작의 푸른 빛은 아직도 유지되고 있었다.
오우거는 죽었고 몬스터들은 성벽을 넘어오지 못했다.
샤샤는 조금 높은 곳에서 자리를 잡고 끊임없이 화살을 날렸다.
샤샤의 귓가로 레벨업 소리가 들렸다.
띠링!
[레벨이 올랐습니다.]
* * *
나는 화면을 보다가 오우거 목이 따이는 순간 허공에 오른손으로 어퍼컷을 때리며 외쳤다.
“거러췌~ 오예, 나이스. 아 백작 잘 싸우네!”
먹던 과자 부스러기가 튀었지만 상관없었다.
“와, 이거 영화가 따로 없네.”
아니, 영화보다 흥미진진하고 박진감 넘쳤다.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영화인 듯, 게임인 듯, 현실인 듯.
영화처럼 구경하고.
게임처럼 힐 넣어주었다.
힐을 넣어주어야 해서 한눈을 팔 수가 없다.
그렇게 게임 같기도 하지만 실제 내 레벨이 높아진다.
그리고 스텟을 올리면 힘이 세졌다.
놀라운 현실이었다.
나는 우리 편이 오우거를 잡자 조금 안심이 되었다.
갑자기 무쌍을 찍는 백작이 놀라웠다.
역시 백작쯤 되는 사람은 숨겨둔 한 수가 있었던 것 같다.
아직도 몬스터들은 많았지만, 기사들을 앞에 두고 안정적인 위치에서 화살을 날리는 샤샤를 보니 마음이 놓였다.
이제 샤샤도 전투에 익숙해진 것 같았다.
누가 저 모습을 산골 소녀라 부르겠는가?
띠링!
[레벨이 올랐습니다.]
귓가에 울리는 소리를 들으며 입에 피자 한 조각을 입에 넣었다.
맛있었다.
“개꿀.”
* * *
몬스터 웨이브는 3일간 유지되었다.
하지만 둘째 날, 셋째 날은 첫날만큼 강력하진 않았다.
나는 고카페인 음료를 계속 들이켜며 함께 자리를 지켜주었다.
놀랍게도 사흘 동안 잠을 자지 않을 수 있었다.
많이 힘들지도 않았다.
신기해서 검색해보니 각성자들은 잠을 안 자고 버티는 시간이 길다고 하였다.
체력 스텟이 높을수록 그 기간이 더 길다고 하였다.
그래서 보통 던전에 들어갈 때 삼사일은 아예 잠을 안 잔다고 한다.
던전이란 곳이 위험하기도 하고 그 정도는 잠을 자지 않아도 헌터의 신체에는 별 무리가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물론 던전 탐사 기간이 그 이상이면 돌아가면서 휴식을 취한다고 한다.
뭐 나도 각성자고, 화면 속의 전우들도 열심히 전투하고 있으니 잠을 퍼질러 자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샤샤에게 힐을 넣어줘야 하니까.
더 찾아보니 고카페인 음료보다 힐링 포션이 더 좋다고 한다.
나는 한 박스를 사다 놓은 고카페인 음료를 보며, 저거 사지 말고 그냥 내가 나한테 힐을 쓸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을 했다.
* * *
샤샤는 성벽 위에서 밖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살아있는 몬스터가 없었다.
성벽 밖에 가득한 것은 그동안 전투의 흔적, 그리고 몬스터 사체뿐이다.
샤샤는 이제는 전우가 되어버린 아빠에게 말했다.
“아빠, 고생하셨어요.”
이반은 갑자기 커버린 딸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언제 이렇게 큰 것일까?
“샤샤도 고생했다.”
지휘하던 백인장이 외쳤다.
“밤나무 마을 전투조는 성벽에서 철수합니다.”
백인장이 샤샤에게 다가왔다.
“샤샤 님, 고생하셨습니다.”
갑작스러운 존댓말에 샤샤가 놀랐다.
“아니요. 백인장님이 더 고생하셨습니다.”
“샤샤 님이 계셔서 수월했던 것 같습니다. 괜히 성벽 위의 발키리라고 불리는 것이 아니라니까요.”
성벽 위의 발키리.
성벽 위에서 화살을 쏘아 수많은 몬스터들을 사냥하고 불의 화살을 쏘아 대형 몬스터를 처치한 소녀.
어지간한 상급 기사 이상의 존재감을 뽐낸 소녀.
난세는 영웅을 필요로 한다.
밤나무 마을 사람들은 피난할 때 있었던 작전까지 소문을 내어 샤샤의 위상을 더욱 높였다.
그래서 만들어진 칭호가 성벽 위의 발키리.
누군가 외쳤다.
“와~ 발키리 님이시다!”
병사들이 따라 외쳤다.
“발키리! 발키리! 발키리!”
“몬스터들아, 우리에겐 발키리 님이 계시다.”
샤샤는 얼굴이 화끈해졌다.
“아빠, 얼른 가요.”
이반이 말했다.
“그래, 어서 가자. 우리 발키리.”
찌릿!
샤샤가 이반을 째려봤다.
금쪽같은 소환수들
— 거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