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쪽같은 소환수들-16화 (16/230)

16화. 화살 끝에 담긴 불꽃

성벽 위에서 백인장 한 명이 크게 소리를 질렀다.

밤나무 마을 전투조들을 맡은 백인장이었다.

짙은 눈썹, 거친 수염. 부리부리한 눈빛에 험상궂은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런 험상궂은 모습이 이런 전쟁 상황에서는 더 믿음직스러웠다.

“아직 활 들지 마라. 활 내려. 쓸데없는 화살은 날리지 마. 북소리가 울리고 내가 지시하면 발사한다. 활 내려.”

활을 들고 있는 사수들이 나란히 줄지어 서 있었다.

“사수 뒤에 방패, 그 뒤에 창이나 칼 든 사람들 준비합니다.”

1선은 사수, 2선은 방패, 창이나 칼을 들고 있었다.

“거기, 기름 끓이는 분들 조심하세요. 넘어지면 크게 다칩니다. 조심하세요. 거기 뛰지 마!”

그리고 3선에서는 앞에 성벽에 부을 기름을 끓이고 몬스터에게 던질 암석이나 장비들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웃집 지게꾼 아저씨는 열심히 암석을 지게로 날랐다.

어디서 가져왔는지 지게에 암석 덩어리들을 실어서 군데군데 쌓아두고 있었다.

저 지게는 못 하는 게 없는 것 같았다.

1, 2선은 전투조, 3선에서는 운반조.

운반조와 지원조에는 여성은 물론 아직 어려 보이는 소년, 소녀들까지 동원되었다.

이웃집 다리 불편하신 할머니도 아이들 돌보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모두가 자기 역할을 다하고 있었다.

몬스터 대군이 점점 다가왔다.

“크와아아악!”

“카구루루루!”

온 천지에 몬스터의 괴성이 들린다.

멀리 떼지어 있던 몬스터들이 다가온다.

300m, 200m, 100m.

이제 오크 한 마리 한 마리의 생김새를 구분할 수 있었다.

백인장이 계속 소리를 질렀다.

“기다려. 내가 명령하면 발사한다.”

샤샤는 긴장감과 떨림을 누르고자 잠시 눈을 감고 깊은숨을 쉬었다.

“후.”

몬스터들이 더욱 다가왔고 사람들은 더욱 조용해졌다.

꿀꺽!

누군가 침 넘기는 소리가 들린다.

70m.

백인장이 외쳤다.

“화살 걸어.”

샤샤는 눈을 뜨고 활시위에 화살을 걸었다.

바로 옆 이반도 굳은 표정으로 샤샤처럼 시위에 화살을 걸었다.

플레닉은 울 것 같은 얼굴로 시위를 당기고 있었다.

긴장감에 시위를 당긴 팔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걸어오던 오크들이 뛰기 시작했다.

“쿠캬캬캬캬캬!”

“우르라라라라가!”

몬스터들의 광기가 성벽 위까지 닿는 듯했다.

몬스터의 괴성 소리가 묵직하게 심장을 파고든다.

50m.

둥.

북소리가 울렸다.

“전원 발사!”

파파파파파팍!

순간적으로 하늘이 까맣게 보일 정도의 화살이 쏟아져 나갔다.

하늘을 뒤덮은 수많은 화살.

그 화살들이 비처럼 쏟아졌다.

“캬아아아아아!”

방패를 든 오크들은 방패로 머리를 가리며 뛰었다.

방패가 없으면 칼이나 도끼, 그것도 없는 오크들은 팔로 머리를 가리며 뛰었다.

화살 비가 땅에 꽂혔다.

수많은 몬스터들이 화살에 맞았다.

한 방에 급소에 맞아 몬스터를 죽이거나 전투 불능으로 만든 화살도 많았다.

하지만 방패에 막히거나, 비켜 맞아서 두꺼운 가죽을 뚫지 못한 화살이 더 많았다.

게다가 인간과 다르게 몬스터들의 가죽은 매우 두꺼웠다.

팔에 화살이 꽂힌 오크 한 마리가 화살을 뽑아버리며 괴성을 질렀다.

“크왁!”

팔에서 나오는 피와 통증은 오크를 더욱 흥분시켰다.

눈이 빨개지고 침을 질질 흘리며 성벽을 향해 달린다.

둥. 둥. 둥.

북소리가 계속 울려 퍼진다.

백인장이 입에서 침을 튀겨가며 계속 소리쳤다.

“쏴! 연사! 계속 쏴! 쏘란 말이야!”

파바바바박!

화살비는 끊임없이 쏟아졌다.

수직으로 이루어진 6m 높이의 성벽.

어지간한 몬스터는 뛰어넘을 수 없다.

오크들은 뛰어오를 수 없는 높이.

하지만 무리를 이루어 침공하는 몬스터다.

인간만큼 영리하지는 않지만, 성벽을 오르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도는 알고 있다.

오크의 키는 2m 정도 된다.

하지만 오크들은 사다리가 없어도, 흙을 쌓아서 길을 만들지 않아도 성벽을 오를 수 있었다.

오크 무리는 그 자체가 사다리이며 길이었다.

성벽 곳곳에서 오크들이 뭉쳐서 성벽을 오르기 시작한다.

오크들이 떼로 몰려들면서 오크 위에 오크, 그리고 다시 그 오크 위에 오크를 쌓으며 위로 솟구쳤다.

조직적이지도 않고 서로 자기가 올라가려는 난잡하고 이기적인 움직임이지만, 그 이기적인 움직임이 작은 언덕을 쌓으며 성 위로 치솟았다.

그러다 맨 밑의 오크가 짓밟혀 다치는 것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정도 짓밟힌다고 오크는 죽지도 않았다.

또한, 오크들은 성벽 아래에서 성벽 위로 무기를 던지기 시작했다.

오크들의 무기는 조악하긴 했지만, 날아오는 세기마저 조악한 것은 아니었다.

돌로 만든 형편없는 돌창도 어떤 세기로 던지느냐에 따라 다른 결과를 가질 수 있었다.

기본적으로 인간보다 센 힘을 지닌 오크.

던지는 무기 하나하나에 강력한 힘이 실려 있었다.

성을 향해 무기를 던지는 오크, 그리고 성벽에 붙어 기어오르는 오크.

위기였다.

하지만 인간들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기름 부어!”

성벽을 향해 뭉쳐서 기어오르는 오크들의 머리 위로 끓는 기름이 쏟아져 내렸다.

치이이이익!

“크아아악!”

끓는 기름에 튀겨지는 오크들은 비명을 지르며 무너져 내렸다.

“바위 던져!”

높은 곳에서 던진 돌은 그 높이와 무게만으로도 강한 파괴력을 낸다.

특별한 기술이 없어도 위에서 던진 돌은 아래에 있는 적에게는 상당히 강력한 무기였다.

성벽 위의 사람들은 뭉쳐있는 오크들에게 돌을 던졌다.

또한, 이곳은 몬스터 천국인 트란 산맥에 가장 가까운 백작성이다.

대 몬스터 전용 무기가 없을 리 없었다.

곳곳에서 발리스타가 있었고, 발리스타에서 대형 화살이 발사되었다.

대형 화살은 화살이라기보다는 창에 가까웠다.

쇄애액!

퍽!

발리스타의 목표는 일반오크보다 더 강력한 특수 몬스터 혹은 주로 성벽에서 조금 떨어져서 뭔가를 던지는 오크였다.

오크들은 화살이 박힌 채 전진할 수는 있었지만, 발리스타에서 발사한 대형 화살에 박히면 즉사하거나 꼬챙이에 꿰인 몸이 되어 움직일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샤샤도 끊임없이 손을 움직였다.

핑, 핑, 핑!

샤샤의 눈앞에 보이는 수많은 붉은 점!

샤샤는 그 점을 하나씩 지워나갔다.

띠링!

[레벨이 올랐습니다.]

한결 가뿐해지는 몸놀림.

레벨이 오른다는 소리가 들릴 때는 체력도 회복되는 모양이었다.

“잔여 스텟 모두 힘을 올릴게.”

아직 불의 활을 사용하기에 힘이 모자랐다.

하지만 힘을 올려서 그런지 활시위를 당기기가 더욱 쉬워졌다.

핑, 핑, 핑, 핑!

사방에서 들리는 고함 소리.

귀를 찢을 듯한 오크들의 괴성.

그 혼란 속에서 샤샤는 끊임없이 화살을 날렸다.

얼마나 화살을 날렸을까?

샤샤는 화살을 시위에 걸어 붉은 점을 향해 화살을 쏘았다.

전통의 화살이 떨어지면 선물함에서 꺼내 화살을 꺼냈다.

쏘고 또 쏘고.

기계적인 반복뿐이었다.

무아지경.

띠링!

[레벨이 올랐습니다.]

19레벨.

듣기 좋은 소리에 신이 나서 더욱 시위를 당겼다.

붉은 점은 너무나 많았고 화살은 시위에 걸기 바쁘게 쏘아져 나갔다.

띠링!

[레벨이 올랐습니다.]

드디어 20레벨이 되었다.

어떤 스텟을 올려야 할지는 이미 민준과 이야기가 되었다.

“힘 30까지, 나머지 체력을 올려줘. 선물함.”

드디어 샤샤가 2억 9천 9백만 원짜리 물건을 꺼냈다.

손잡이에 달린 보석이 아름다운 붉은색 활이었다.

샤샤가 화살을 걸고 시위를 당겼다.

방금 당기던 활에 비해 상당한 묵직함이 느껴졌다.

핑!

손을 놓자 화살이 날아가 오크 한 마리의 머리에 명중했다.

퍽.

화살촉이 머리를 뚫고 반대편으로 튀어나왔다.

강력했다.

핑, 핑, 핑, 핑!

원샷, 원킬.

쏘는 것은 화살인데 발리스타에서 대형 화살을 쏜 것과 같은 결과가 같았다.

오크들의 가죽이 언제 두꺼웠냐는 듯 샤샤의 화살은 쉽게 오크를 뚫어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샤샤의 주변 50m 이내로 오크들이 접근하지 못했다.

샤샤의 무위에 이반은 눈을 크게 뜨며 놀랐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백인장도 순간적으로 자신이 담당하는 영역에 오크들이 다가오지 못하자 멍하니 샤샤를 바라보았다.

플레닉은 활을 들 생각도 못 하는지 두 손을 내리고 샤샤만 바라보았다.

샤샤 본인도 놀랐다.

샤샤는 손에 들고 있는 활을 다시 바라보았다.

매끄럽게 휘어진 붉은 활

이 아름다운 활이 만들어낸 결과가 놀라웠다.

헐레벌떡 뛰어온 전령이 와서 소리를 질렀다.

“북문, 북문 지원 바람.”

모두의 시선이 샤샤를 행했다.

샤샤가 아빠를 한 번 보고 주변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곳을 지켜주세요.”

타타탁!

샤샤는 빠르게 북문을 향해 뛰어갔다.

북문은 아수라장이었다.

조금 전 샤샤가 있던 곳은 오크들만 있었지만, 이곳에서는 오크만 있는 것이 아니라 트롤도 함께 있었다.

오크보다 상위 몬스터.

평범한 화살은 타격을 주지 못하는 몬스터다.

마침 발리스타에서 쏘아져 나간 대형 화살 한 발이 트롤에게 날아갔다.

퍼억!

트롤의 몸통에 명중한 대형 화살.

트롤은 자신의 몸통 가운데 꽂힌 대형 화살을 바라보았다.

배에서부터 들어가서 몸통을 지나 등 뒤로 촉이 튀어나왔다.

트롤은 배 쪽에 남아 있는 화살을 잡아당겼다.

주욱.

화살이 조금씩 뽑혀 나왔다.

턱!

하지만 대형 화살이 잡아당겨지다가 촉 부분이 등에 걸렸다.

화살의 앞부분은 세모난 모양이다.

그래서 촉은 박히기는 잘 박히지만 잘 빠지지 않는다.

짜증이 난 트롤은 배에 박힌 대형 화살을 두 손으로 거칠게 잡아당겼다.

푸악!

살을 거칠게 찢으며 뽑히는 화살.

사람이라면 이런 방식으로 화살을 뽑아내지 않았을 것이다.

화살의 중간을 자르고 양쪽으로 뽑아냈을 것이다.

하지만 트롤은 화살이 배에 박혔을 때보다 더 크게 뚫린 구멍 따윈 고려하지 않았다.

서서히 메꿔지는 트롤 배에 뚫린 구멍.

아직도 배에 구멍이 남아 있는 트롤이 괴성을 질렀다.

“크와왁!”

트롤이 성벽을 향해 달려왔다.

달려오던 트롤은 성벽에 달라붙어 있던 오크 덩어리들을 밟고 뛰어올라 성벽에 매달렸다.

두 손으로 성벽에 매달린 채 성벽을 기어오르려는 트롤.

사람들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곧이어 트롤의 머리 위로 끓는 기름을 부어졌다.

치이이이이익!

“캬아아아악!”

트롤이 바닥으로 떨어져 나뒹굴었다.

끓는 기름을 뒤집어쓰고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트롤은 가능했다.

잠시 시간이 지나자 트롤은 다시 일어났고 또 한 번 성벽에 매달렸다.

기름에 화상을 입어서 뜨거운 연기가 폴폴 피어오르는 트롤이 다시 성벽을 기어올랐다.

트롤의 얼굴과 어깨가 성벽 위로 드러났다.

배에 구멍이 뚫려도, 머리에 끓는 기름을 부어도 끊임없이 기어오르는 트롤은 공포였다.

말 그대로 괴물이었다.

트롤의 진짜 무서움은 저 회복력에 있었다.

칼에 찔리고 대형 화살에 박히고, 끓는 기름에 화상을 입어도 회복해버린다.

심지어 목이 반쯤 잘려도 죽지 않는다.

상처를 입혀 전투 능력을 상실시킨다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개체.

오직 죽음만이 트롤의 전투력을 상실시켰다.

트롤은 성벽을 향해 달렸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인간들 편에게도 괴물이라 불리는 존재가 있다는 것이었다.

마나를 쓰는 기사 역시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존재다.

라이온 기사단의 상급기사 한 명이 트롤에게 달려갔다.

트롤은 양손에 이어서 한쪽 다리까지 성벽에 걸친 상태였다.

“타앗!”

메이스가 은은하게 빛이 났다.

마나가 담긴 메이스다.

메이스를 휘두르며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시원하게 들렸다.

붕!

트롤의 무방비한 머리통에 제대로 부딪힌 메이스.

퍽!

기사의 메이스 질에 머리가 움푹 함몰된 트롤은 성벽 아래로 떨어졌다.

메이스에 맞고 높은 성벽에서 떨어져 처참하게 처박힌 트롤.

하지만 곧 트롤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머리 한쪽 부분이 움푹 들어간 트롤이 고개를 좌우로 비틀었다.

뿌드득, 뿌드득!

뼈 비틀리는 소리가 났다.

머리를 한차례 움직여보던 트롤은 다시 흉포한 표정을 지으며 달려온다.

언제 얻어맞았냐는 듯한 트롤.

그런 괴물 같은 모습에 상급 기사도 긴장감을 멈추지 못했다.

북문 근처에서는 이런 상황이 여러 군데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심지어 성벽 위로 오르는 데 성공한 트롤도 있었다.

성벽 위로 몬스터들이 오르면 피해가 크다.

손에 쥔 오크를 무기 삼아 전진하려는 트롤.

그리고 이를 어떻게 해서든 다시 성벽 아래로 떨어뜨리려 하는 인간들의 대치가 벌어졌다.

상급 기사는 트롤과 힘겨운 싸움을 벌였다.

여러 병사가 있었지만, 성벽에 오른 트롤은 자신의 몫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기사단의 기사가 자기 혼자는 아니었지만 다른 기사들도 곳곳에 배치되어 각자의 몫을 다하고 있었다.

상급 기사는 다시금 성문 위로 오르는 데 성공한 트롤을 바라보았다.

다시 한번 트롤과 생사투를 벌여야 함을 직감했다.

상급 기사는 트롤을 향해 외쳤다.

“와라!”

이를 악다물고 메이스를 쥔 손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몸속의 마나를 일으켜 몸을 가볍게 했다.

그리고 몸의 중심을 앞꿈치에 두어 당장이라도 튀어 나갈 준비를 했다.

그 순간, 붉은 빛줄기가 날아왔다.

쇄액!

퍼엉!

갑자기 트롤의 머리가 불길에 휩싸였다.

활활 타오르는 트롤의 머리.

“쿠웨엑!”

트롤은 두 손으로 머리를 부여잡고 어쩔 줄 몰라 했다.

고통스러워하는 트롤.

기사가 트롤을 자세히 보니 트롤의 머리를 화살 한 발이 관통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화살 자체에서 불길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머리가 불길에 휩싸여서 어쩔 줄 몰라 허우적거리던 트롤은 뒷걸음을 치다가 그만 성벽 아래로 떨어졌다.

쿵!

기사가 성벽 아래를 힐끔 보니 트롤의 머리에 붙은 불은 쉽게 꺼지지 않았고, 트롤은 아직도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상급 기사는 생각했다.

누구지? 마법사가 도착했나?

백작성에는 마법사가 몇 명 되지 않았다.

기사가 주위를 둘러보며 마법사로 보이는 사람을 찾아보았다.

백작성의 마법사라면 자신이 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알던 마법사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눈에 띈 것은 하늘색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어느 소녀.

소녀의 화살 끝에 불꽃이 담겨 있었다.

금쪽같은 소환수들

— 거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