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쪽같은 소환수들-14화 (14/230)

14화. 지켜보실 거죠?

테스트를 진행하는 사람은 왼손에는 딱딱한 판에 꽂은 종이를, 오른손에는 볼펜을 들고 나에게 물었다.

“소환수의 주요 포지션이 뭔가요?”

포지션?

뭘 말하는 거지?

내가 잠시 못 알아듣자 진행하는 아저씨가 날 보며 다시 말했다.

“그러니까 탱커, 검사, 법사, 서포터 등등 뭐냐고요. 소환수의 특징에 따라 측정 방법을 달리해야 하니까요.”

“아, 궁수예요.”

“궁수시군요.”

진행하는 아저씨는 체크리스트에 체크를 하며 말했다.

“그럼 따라오세요.”

샤샤가 궁술을 쓴다고 하자 옆 방으로 이동했다.

옆 방에는 제법 멀리에 몸통만 있는 더미가 몇 개 있었다.

테스트를 진행하는 아저씨가 말했다.

“일단 저 더미에 화살을 쏴보세요.”

나는 샤샤를 보며 말했다.

“샤샤야, 저기 더미 보이지?”

“네.”

“저기 화살을 몇 발 쏴봐.”

핑, 핑, 핑!

화살은 더미의 몸통 가운데 오밀조밀하게 꽂혔다.

가까이서 보니 더 잘 쏘네.

뭔가를 끄적이며 적고 있던 진행자가 말했다.

“네, 감사합니다. 이제 과녁판이 지나갈 겁니다. 그걸 쏘아서 맞히시면 됩니다.”

과녁판이 휙 날아갔다.

샤샤는 권총을 쏘듯이 순식간에 자세를 잡고 화살을 날렸다.

당기고 쏘는 동작이 물 흐르듯 한 호흡으로 이루어졌다.

핑!

콰직!

와우! 브라보!

날아가는 새를 맞춘다는 말이 여기서 쓰여야 할 것 같았다.

이어서 과녁판이 여러 개가 동시에 쏘아졌다.

핑, 핑, 핑!

연속으로 빠르게 쏘는 것은 또 샤샤의 특기다.

내가 활도 연사하기 좋은 것으로 샀었다.

한방의 파워를 생각하면 더 좋은 것이 있지만 난전에서는 연사도 중요하니까

콰직, 콰직, 콰직!

보라 저 정확성과 빠름을.

가까이서 보니 더 대박이었다.

진행하던 아저씨가 말했다.

“이제는 가상 몬스터와 대결을 할 텐데요. 실제 몬스터는 아니니까 놀라지 마시고, 여기 빨간 선 보이시죠. 몬스터가 여기까지 못 오게 만드시면 됩니다. 보자… 음, 오크로 하면 될 것 가네요. 한 마리부터 시작해서 숫자를 계속 늘리겠습니다.”

지잉!

오크가 한 마리 나타났다.

와, 그럴듯했다.

가상이란 것을 알고 보니 가상으로 보이긴 하지만 실제와 비슷했다.

실감이 난다.

모르고 보면 진짜인 줄 알고 놀랐을 것 같다.

핑!

오크를 보자 샤샤가 화살을 날렸다.

콱!

오크의 이마에 박히는 화살.

오크 두개골이 단단할 텐데 샤샤의 화살은 오크의 두개골을 가볍게 꿰뚫었다.

민첩이 높아질수록 활의 공격력이 세진다.

달리기하라고 스텟을 민첩 위주로 올리는 것이 아니다.

오크 두 마리.

콰직, 콰직!

오크 세 마리.

콰직, 콰직, 콰직!

오크가 다섯 마리, 여섯 마리까지 되어도 오크들은 붉은 선까지 도달하지 못했다.

오크들은 하나같이 머리에 화살이 박힌 채 누워버렸다.

좀 쉬운데?

지난번 오크들을 유인하는 작전을 펼칠 때는 오크들이 방패로 막고, 동료의 시체로 막으면서 달려왔는데 이건 인공지능이 좀 딸리는 듯했다.

샤샤는 오크들의 수가 늘어나도 묵묵히 하나씩 오크 머리에 화살을 심었다.

잘하네.

이거 나는 응원이라도 해야 하나?

잘한다. 잘한다. 샤샤, 파이팅!

나는 두 주먹을 꼭 쥔 채 괜히 방해될까 봐 속으로 응원했다.

오크는 15마리가 되어서야 붉은 선에 도달했다.

피떡이 된 마지막 오크가 쓰러지면서 간신히 붉은 선을 넘었다.

인해전술이라니.

수가 많으니 앞의 오크에 가로막혀 뒤쪽의 오크들이 가까이 다가왔다.

마지막 오크를 잡긴 잡았는데 쓰러지면서 선을 넘어 버렸다.

진행자가 말했다.

“수고하셨고요. 아까 힐 스킬 있으시다고 하셨죠?”

“네.”

진행자는 바퀴 달린 카트를 끌고 왔다.

카트에는 복잡한 기계장치가 있었다.

“여기 노란색 판에 힐 쓰시면 측정됩니다.”

“여기요?”

“네.”

노란 원판이 있었다.

나는 힐 스킬을 측정한다길래 동물실험이라도 할 줄 알았는데 나름 깔끔했다.

하긴 돼지라도 끌고 와서 상처를 주고 치료하고 그러는 건 조금 원시적이긴 하다.

나는 오른손을 노란 원판 앞에 대고 외쳤다.

“힐.”

가슴에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 느낌은 오른손으로 이동했다.

사악.

내 가슴에서 시작된 무언가가 오른손을 지나 원판을 향해 나간 듯한 느낌

좋은 감각이었다.

이게 힐인가?

뭔가 빠져나간 건 마나인가?

잘 됐나 싶어서 진행하는 아저씨를 힐끔 보았다.

진행자는 무덤덤하게 뭔가를 적고 있었다.

조금 더 해볼까.

“힐.”

마찬가지로 가슴에서부터 손으로 시원한 흐름이 느껴졌다.

아, 좋다.

“힐, 힐, 힐, 힐, 힐, 힐.”

스킬을 쓰다 보니 뭔가 시원하기도 하고 재미있어서 마나가 떨어질 때까지 힐을 썼다.

마나를 다 쓰자 가슴에 찌릿한 느낌이 들었다.

윽.

미약한 통증.

뭔가 내 몸속의 무언가를 다 쥐어짠 느낌이라고나 할까?

음. 앞으로는 마나를 바닥날 때까지 다 쓰지는 말고 적당히 남겨두며 써야겠다.

진행하는 아저씨가 말했다.

“네, 수고하셨습니다. 소환술, 그리고 힐. 또 다른 스킬 있으신가요?”

나는 없다고 하려다가 문득 샤샤의 대쉬 스킬이 생각났다.

“저는 없는데요. 소환수가 스킬이 있는데요.”

“소환수가요?”

“네.”

“뭐 있으신데요?”

“어, 그러니까 패시브로 조준점이 있고요, 액티브로 대쉬가 있어요.”

“그래요?”

진행자는 조금 끄적이더니 샤샤를 다시 불러 달리기를 시켰다.

“각성자님, 소환수에게 그냥 달리다가 대쉬를 써보라고 하세요.”

“아, 네.”

나는 들은 대로 샤샤에게 주문했다.

샤샤는 열심히 뛰다가 스킬을 썼다.

달리기를 하다가 죽 앞으로 나가는 샤샤.

대쉬는 뭐랄까 달리기의 속도가 높아진다기보다는, 갑자기 달리다가 빙판 위에서 누가 확 잡아챈다는 느낌이었다.

축지법인가.

짧은 거리의 축지법 같았다.

진행자가 말했다.

“네, 좋습니다. 더 보여주실 스킬 없으신가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밖에 나가셔서 대기하시면 됩니다.”

나는 샤샤와 함께 밖으로 나왔다.

샤샤는 나름대로 열심히 테스트에 응했는지 살짝 땀을 흘리고 있었다.

진행자에게 수건을 달라고 했고 샤샤에게 수건을 주었다.

“열심히 하네. 수고했어.”

샤샤는 수건을 받고 물끄러미 나를 보았다.

“어, 뛰어서 땀 흘리길래 닦으라고.”

그제야 샤샤는 수건에 땀을 닦았다.

그리곤 수건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수건이 신기한가?

뭐,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열심히 뛴 샤샤에게 수건을 주고 있자니 내가 트레이닝 코치가 된 것 같았다.

국가대표 선수와 코치.

감독은 좀 늙어 보이니까 코치가 딱 좋다.

“샤샤야, 이제 나가 있으면 된대.”

테스트실에서 나온 샤샤는 뭐가 그리 신기한지 주변 살펴보았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은 그런 샤샤가 더 신기한지 샤샤를 힐끔 보았다.

나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에 왠지 모를 우쭐함을 느꼈다.

내 소환수가 이 정도야.

나는 문득 샤샤를 모델 시킬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얼굴 천재 소환수 모델.

조준점 스킬은 활을 조준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시선을 본인에게 조준하도록 만드는 스킬인 것이 아닐까?

나는 샤샤의 진로와 스킬에 대한 깊은 고찰을 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벽을 따라 의자가 죽 늘어서 있었고 의자 근처에 커피, 차 등을 마실 수 있는 것이 있었다.

역시 협회. 이 정도는 서비스구나.

내가 샤샤에게 물었다.

“샤샤야, 차 한잔할래?”

샤샤는 지난번 선물함으로 넘어온 차를 떠올렸다.

“네, 좋아요.”

“어디 보자. 커피도 있고, 녹차도 있고 둥굴레차도 있네. 샤샤 커피 안 마셔봤지?”

“네.”

“그러면 커피를 마셔 봐야지.”

나는 커피믹스 두 잔을 타서 한 잔을 샤샤에게 주었다.

“뜨거우니까 천천히 마셔. 처음 마시는 거라 조금 쓸 수도 있어.”

샤샤는 호호 불어가며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샤샤의 눈이 커졌다.

생각보다 달콤했다.

쓴맛이 없는 것은 아닌데 뭐랄까, 쌉쌀하면서도 달콤한 맛?

“쓴데, 달콤하기도 하고 맛있어요. 묘한 맛이네요.”

“하하, 커피는 커피믹스가 최고지.”

커피를 마시며 내가 물었다.

“소환수가 되니까 어때? 몬스터 웨이브 터지고 이렇게 낯선 세계로 소환되고 정신없지?”

샤샤는 커피를 한 모금 더 마셨다.

호로록.

그리고 씩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니요.”

의외의 대답이었다. 나 같으면 갑작스러운 변화에 정신이 없었을 같은데

“정말? 나는 어디 여행만 가도 정신이 없던데.”

“몸은 바빴죠. 저 태어나서 그렇게 커다란 불을 질러본 적은 처음이에요. 몬스터들도 유인해보고.”

그러고 보니 갑자기 미안해졌다.

지금 보니 샤샤는 나보다 키가 작았다.

165 정도?

몸도 튼실하다기보다는 날씬한 편이고.

이런 소녀에게 휘발유 방화에다가 오크 몰이를 시켰었구나.

“아, 그래. 미안하네. 내가 너무 힘든 일을 시켰지.”

도리도리.

샤샤가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에요. 민준 님이 아니었으면 저도, 우리 가족도 그리고 우리 마을 사람들도 죽었을 거예요. 민준 님, 저는 소환수가 되어서 감사하고 있어요. 산속에서 혼자 쓰러져 있을 때, 몬스터들이 몰려와서 도망치고 있을 때, 민준 님이 도와주셨잖아요. 민준 님이 있어서 하나도 두렵거나 혼란스럽지 않아요. 이제 그 ‘띠링’ 하는 소리가 얼마나 위안이 되었는지 몰라요. 게다가 활도 주시고 화살도 주시고 그 고마움을 어떻게 다 갚아야 할지 모르겠어요.”

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었구나.

나는 샤샤를 바라보며 말했다.

“샤샤야. 너와 나는 한 팀이야. 너는 내 소환수고 나는 소환술사이지. 내가 활을 주고, 포션을 주는 건 우리가 하나의 팀이라서 그래. 네가 몬스터를 잡으면 나에게도 도움이 돼. 너의 성장이 곧 나의 성장이거든.”

“네, 알겠어요. 열심히 할게요.”

“아니야, 쉬엄쉬엄해도 돼.”

그때, 나를 부르는 소리가 났다.

“143번 각성자님.”

각성자란다.

씨익.

입꼬리가 절로 올라간다.

“2층에 가시면 자격증 발급실이 나옵니다. 그리로 가세요.”

나는 샤샤와 함께 자격증 발급실에 갔다.

자격증은 세 가지를 주었다. 간단한 신상과 함께 각성자 증명서라고 쓰여 있는 카드 한 장, 종이로 된 각성자 증명서, 그리고 스킬의 종류까지 써진 각성자 스킬 증명서였다.

평소엔 카드 한 장, 어디 뭐 제출할 땐 종이로 된 각성자 증명서와 스킬 증명서를 내면 될 듯했다.

“샤샤야, 이 건물에서 할 건 전부 한 것 같아.”

나는 샤샤를 돌려보낼까 하다가 조금 더 얘기나 할까 해서 우선 백작성의 상황을 먼저 확인해 보기로 했다.

“음…. 샤샤도 볼 수 있으려나. 알파야.”

―네.

“백작성 좀 띄워봐.

―알겠습니다.”

대리석으로 이루어진 바닥과 각종 현대 물건들이 보이는 주변 배경과 어울리지 않게 커다란 구멍이 열렸다.

그리고 그 커다란 구멍은 초대형 고화질 TV가 된 것처럼 백작성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샤샤야, 너도 보이니?”

“어, 네. 보여요. 와, 이렇게 보고 계셨군요.”

샤샤가 화면을 보며 신기해했다.

“샤샤도 보이는구나. 샤샤야, 신기한 것 보여줄까? 이거 화면 확대하거나 축소할 수도 있어. 이렇게.”

나는 화면을 확대, 축소해보았다.

“그리고 이렇게 옆으로 이동하면서 주변 상황을 볼 수도 있지.”

“아, 그렇군요”

“자, 이렇게 보면 백작성 동쪽에 몬스터 들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지. 그리고 이렇게 이동하면 북쪽에도 몬스터가 있네…. 어, 서쪽도 마찬가지고…….”

백작성 주변이 심상치 않았다.

아직 몬스터들의 공격이 시작되지는 않았지만 몬스터들이 상당히 가깝게 있었다.

몬스터들이 백작성을 포위하려는 것 같았다.

조금 전까지 샤샤와 즐겁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백작성을 보고 있으니 분위기가 심각해졌다.

“몬스터들이 백작성을 포위하려는 것 같아.”

“그렇군요.”

샤샤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민준 님, 이제 돌아가 봐야 할 것 같아요.”

그래, 가봐야겠지. 남겨진 가족을 생각하면 마음이 급할 것이다.

게다가 샤샤는 이제 오크 열 마리쯤은 쉽게 잡아버리는 능력자다.

전투에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샤샤를 전쟁터에 보내는 상황이었다.

피와 살이 튀는 전쟁터.

그것도 현대식으로 총을 쏘거나 폭탄이 터지는 것이 아니라 화살, 칼, 도끼를 사용하는 몬스터들과의 백병전.

그 원초적인 살육의 한복판으로 샤샤를 보내야 한다.

내가 망설이고 있자 샤샤가 나에게 말했다.

“민준 님, 저희는 몬스터 웨이브를 주기적으로 겪고 있어요. 쉽게 당하지는 않아요.”

나는 지금이 보내야 할 타이밍이란 걸 알았다.

“그래, 알았어.”

샤샤가 물었다.

“지켜보실 거죠?”

눈빛이 마주쳤다.

나는 많은 말을 하려 했지만, 샤샤의 눈빛을 보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샤샤는 망설임 없는 결연한 눈빛이었다.

나는 그저 무운을 빌어 주는 수밖에 없음을 깨달았다.

나는 굳게 입을 다물고 주먹을 들어 샤샤에게 내밀었다.

샤샤는 내가 내민 주먹을 보며 무슨 뜻인지 잠시 생각하더니 나처럼 주먹을 들어 앞으로 내밀었다.

나의 주먹과 샤샤의 주먹이 맞닿았다.

“지켜볼게. 반드시.”

파앗!

샤샤가 사라졌다.

금쪽같은 소환수들

— 거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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