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쪽같은 소환수들-13화 (13/230)

13화. 당연한 일

오크들을 발견한 기사단은 진형을 갖추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오크 무리의 선두에 한 소녀가 있었다.

오크들이 소녀를 뒤쫓는 모습이었다.

팬니르는 언덕에서 내려온 소녀를 숲에 숨어 있던 피난민일 거로 생각했다.

소녀는 뛰다가 멈춰서 오크에게 화살을 날렸다.

핑, 핑, 핑!

매우 빠른 속사.

팬니르는 소녀의 속사 실력에 놀랐다.

콱, 콱, 콱!

오크들이 화살을 맞고 줄줄이 쓰러졌다.

그렇게 빠르게 화살을 날리는데 빗나가는 화살이 없었다.

팬니르는 높은 명중률에 감탄했다.

소녀는 뛰어난 궁사였다.

팬니르는 생각했다.

‘누구지?’

저 정도로 뛰어난 소녀 궁사라면 이름이 알려질 법도 했다.

팬니르는 기사들에게 명령했다.

“오크들을 향해 전진!”

라이온 기사단이 오크들을 향했다.

어느새 기사단이 샤샤가 있는 위치에 도착했다.

팬니르는 샤샤를 바라보았다.

아직 성인이 되지 않은 소녀인 듯했다.

팬니르가 기사단을 지휘했다.

“정지! 방어 진형 구축!”

척, 척, 척!

순간적으로 방어 진형이 만들어졌다.

“활과 발리스타 장전!”

채 열을 세기도 전에 발리스타가 장전되었다.

팬니르의 손짓에 방어 진형의 가운데에는 한 사람이 들어올 만한 틈이 생겼다.

그 틈 옆에 있던 기사는 샤샤를 향해 틈 사이로 들어오라는 손짓을 했다.

샤샤는 달려가 그 틈 사이로 쏙 하고 들어갔다.

방패와 창이 거치되어 다가가기 어려운 뾰족한 방벽이 만들어졌다.

오크들은 기사단의 방진을 향해 돌진해왔다.

“카륵!”

“쿠르르륵!”

팬니르가 외쳤다.

“발사!”

핑, 핑, 핑, 쇄액!

백여 발의 화살이 동시에 발사되었다.

그리고 중간중간 발리스타도 포함되어 있었다.

화살이 이쑤시개라면 발리스타는 젓가락이다.

발리스타는 오크의 조악한 방패를 무시하며 오크 꼬치를 만들었다.

화살과 발리스타의 공격이 세 차례 이어졌다.

오크들은 방진에 제대로 도착하지 못했다.

팬니르가 외쳤다.

“방진 풀어.”

방진이 풀렸다.

“돌격!”

기사단은 가볍게 나머지 무리를 정리했다.

살아남은 수십 마리의 오크들을 도륙하는 데는 차 한 잔 마실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잠시 여유를 찾은 팬니르는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샤샤를 보았다.

팬니르가 물었다.

“너는 누구냐.”

“밤나무 마을의 샤샤라고 합니다.”

“활 솜씨가 뛰어나더군.”

“감사합니다.”

“그런데 왜 피난민 무리와 함께 있지 않고 저쪽 언덕을 통해 내려온 것이지?”

샤샤는 불의 벽을 만든 작전에서부터 오크들을 유인한 과정을 다시 설명했다.

“기사님, 잠시 후면 저희 밤나무 마을의 후발대가 이리로 올 것입니다. 저는 그 후발대와 함께 오크들이 오는 길목에 불을 질러 오크들의 추격을 막았습니다. 그런데 오크들 일부가 불길을 우회해 피난민을 습격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우회한 오크들을 유인하다가 이곳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팬니르는 생각했다.

불을 질러서 추격을 막아?

혼자 오크 떼를 유인했다고?

지금 이 소녀의 말이 허풍인가? 아니면 사실인가?

길목에 불을 질러 추격을 막았다는 이야기는 후발대와 대질하면 금세 드러날 이야기다. 그리고 화살을 날리던 솜씨를 보아하니, 오크 떼를 유인하고 있었다는 말도 일리가 있었다. 화살만 충분했다면 혼자서도 오크들을 다 잡을 기세였다. 물론 그만큼 충분한 양의 화살이 없으니 결국 달아나야 했을 것이고 오크보다 체력이 부족했다면 잡혔을 것이다.

아무튼 목숨을 걸고 오크들을 유인했다는 소녀.

그런데 꼭 오크들을 유인해서 자신들 앞으로 유도한 것 같았다.

우연일까?

아니면 달아나다가 기사단을 발견하고 살고자 달려 온 것일까?

힐끔 소녀를 보니 전통에 화살이 남아있지 않았다.

활과 빈 전통.

기사단 앞에서 딱 화살이 떨어진 것이 우연일까?

팬니르는 왠지 이 소녀가 궁술 실력 이상의 능력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녀린 모습과 활을 쓰는 모습이 기사로 키우기는 좀 그렇지만, 정찰병이나 레인저로 쓰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라루스 자작에게 주면 잘 써먹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할 무렵 부하의 보고가 들어왔다.

“단장님, 피난민들이 보입니다.”

피난민들이었다. 밤나무 마을의 후발대라고 하는 그 무리인 것 같았다.

팬니르가 명령했다.

“피난민을 향해 이동한다. 피난민 중에서 이동이 느린 자는 수레에 태운다.”

이반은 피난민 무리와 함께 백작 성을 향해 길을 걸었다.

언덕 두 개를 지나 오른쪽 길로 가라던 샤샤의 말을 믿고 촌장을 설득해 오른쪽 길로 방향을 잡았다.

백작성까지는 조금 돌아가는 길이지만 불의 벽을 세운 샤샤의 말이었다.

이반은 촌장이나 다른 사람들이 샤샤가 말한 오른쪽 길이 아니라 왼쪽 길로 가고자 하면 어떻게 설득하나 걱정하기도 했다.

왼쪽 길이 백작성까지 더 가까운 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샤샤의 말을 무시하거나 의심하는 자가 없었다.

걸으면서 생각해보니 샤샤는 불을 질러 몬스터들을 저지하는 작전을 지휘했다.

뛰어난 궁술 실력도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동하면서 곡예를 부리듯 나무 꼭대기에 올라 정찰을 하였고, 그리고 놀라운 마법의 음료를 나눠주며 사람들의 체력을 회복시켰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놀라운 모습에 아빠보다 주변 사람들이 더 빨리 샤샤를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언제 이렇게 컸지?

그저 말 잘 듣는 어린 딸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덧 마을을 이끌고 있었다.

문득 사냥꾼 동료가 샤샤도 이제 시집갈 때가 되었다는 말이 떠올랐다.

조금 앞쪽에서 감나무 집 가족이 걷고 있었다.

저 집 아들도 아까 불을 지르는 작전을 펼칠 때 함께했다.

자진해서 남아 작전을 펼치는 모습이 대견해 보였다.

하지만 달리다 지쳤을 때 샤샤가 그 마법 음료로 회복시켜주자 그녀를 선망의 눈빛으로 보았었지.

음… 샤샤를 바라보던 반짝이는 눈빛.

이반은 마음에 안 들었다.

‘쟨 탈락.’

선두가 소리를 질렀다.

“기사단이다!”

“와! 살았다!”

“흑, 우릴 구하러 왔어.”

정말 기사단이 오고 있었다.

사람들은 기사단을 찬양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기사단 끝에는 샤샤도 있었다.

이반이 샤샤에게 물었다.

“샤샤야, 괜찮니? 다친 곳은 없고?”

“네, 괜찮아요. 올가야, 안 힘들어?”

아빠 등에 업힌 올가가 말했다.

“응, 올가는 괜찮아.”

샤샤는 후발대와 함께 다시 한 시간쯤 걸어서 백작성에 도착했다.

추가적인 몬스터의 습격은 없었다.

몇 번 와봤지만, 오늘은 성이 더 믿음직해 보였다.

커다란 바위로 사람 키의 세 배는 높게 세운 성벽.

성벽 위에는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샤샤는 백작성에 도착하자 피난민들과 함께 임시 거주지가 배정되었다.

지금도 사람들이 열심히 천막을 세우고 있었다.

간단한 모포와 음식을 받고 배정된 거주지에 자리를 잡았다.

* * *

후와, 성공이다.

나는 샤샤가 성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아, 힘들었다.

내가 실제로 걷고 싸운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지켜보고 계속 정찰하고 있으려니 뭐랄까… 긴장감에 진이 빠진다고 해야 할까?

남의 가게에 자리를 잡고 한참이나 있었으니 이제 나가야 할 것 같다.

“아저씨, 저 이제 갈게요.”

나는 택시를 타고 헌터 협회로 가달라고 했다.

각성자 인증을 받기 위해서였다.

헌터 자격증은 교육 기간이 있어서 시간이 제법 걸리지만, 각성자 인증은 바로 나온다고 한다.

각성 여부만 판별하면 되기 때문이다.

도착한 헌터 협회는 으리으리하게 큰 건물이었다.

헌터들이 가져오는 몬스터 부산물이 우리나라 총생산량의 몇십 퍼센트를 차지한다고 한다.

마정석, 몬스터 사체, 이 세계의 광물과 식물자원.

옛날에는 대항해 시대라는 말이 있었다는데, 요즘은 이를 빗대어 대던전의 시대라 부른다.

그리고 헌터협회는 이런 시대에서 제일 잘나가는 집단이고.

그러니 저렇게 건물이 으리으리하지.

나는 건물 1층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어디로 가야 하지?

어리바리하게 조금 얼 타고 있다 보니 안내데스크가 보였다.

단아한 모습의 안내원이 깔끔한 대리석 테이블 너머로 보였다.

스튜어디스 스타일의 머리카락이 어찌나 머리에 착 달라붙어 있는지 얼굴에서 머리카락까지 일체형인 줄 알았다.

계란형이네.

쓸데없는 감상을 뒤로하며 물었다.

“저, 각성자 검사는 어디로 가서 하나요?”

“네, 3층으로 가시면 됩니다.”

3층으로 가려고 하니 곳곳에 각성자 검사소 3층이라고 쓰여 있었다.

3층으로 올라가니 화살표가 쭉 놓여 있었고 자연스레 번호표를 뽑게 되었다.

나는 143번이었다.

잠시 기다리자 나를 호명하였다.

“143번 고객님.”

나 고객인 건가?

뭐 아무튼 부르는 대로 갔다.

개인정보를 적고, 가벼운 체육복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신체검사는 처음엔 병원처럼 하더니 중에는 군대처럼 검사했다.

아니, 왜 밧줄을 타고 올라가라는 거야?

내가 특전사야?

내가 어떻게 덩그러니 매달려있는 밧줄을 타고 올라…가진다.

와 내가 손의 힘만을 이용해 밧줄을 타고 올라가다니

내가 올라가 놓고 신기했다.

[힘 20, 민첩 20]

일반 성인 남성의 힘이 10 정도 되니 나는 일반인 보다 두 배 빠르고, 두 배 민첩하다는 거다.

이래서 각성자, 각성자하는구나.

나 일반인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절레절레.

일반인이 아니긴 그냥 다 똑같은 인간이다.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 서서히 올라오는 선민의식을 지우려 했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재수 없는 차별주의자가 되겠지.

암.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나한테 이것저것 시키던 아저씨가 말했다.

“이제 스킬을 써 주셔야 하는데요. 어떤 것들 있으신가요?”

“소환이랑 힐 있어요”

아저씨는 열심히 뭔가를 적더니 또 다른 사람에게 뭐라고 지시를 했다.

“그럼 소환 스킬부터 보여주세요.”

소환 스킬을 보여달라고?

샤샤를 보여달라는 말이네.

“알파야.”

―네, 민준 님.

“샤샤한테 지금 소환 가능하냐고 물어봐.”

―네, 물어보겠습니다. 그런데 그냥 소환하셔도 되긴 합니다.

“어허, 숙녀에게 갑자기 그러는 거 아냐. 샤샤도 개인 프라이버시가 있는 거지.”

음…. 종일 쳐다보고 있던 사람이 할 말은 아닌가?

―지금 가능하다고 합니다.

“그래, 그럼 샤샤 소환.”

화아악!

빛이 나며 샤샤가 나타났다.

눈에 확 띄는 하늘색 긴 생머리, 에메랄드빛 눈동자, 흰 피부.

아무리 봐도 얼굴 천재다.

저 외모에 활을 들고 전통을 차고 있는 모습.

왜 난 갑자기 패션잡지의 표지모델이 떠오를까?

카메라 째려보는 연습만 몇 번 시키면 손색없은 모델이 될 것 같았다.

샤샤가 날 보며 말했다.

“민준 님, 고마워요.”

“어? 뭐가?”

“저와 저희 마을 사람들을 구해주셨잖아요.”

“아.”

샤샤 입장에서는 그게 그렇게 되나 보다.

나는 나에 대한 위험 하나도 없이 레벨을 올렸는데 샤샤 입장에서는 구원자가 된 모양이다.

“하하, 뭘. 당연한 일을.”

샤샤는 고개를 저었다.

“당연하지 않아요. 민준 님이 없었다면 많은 사람이 죽었을 거예요. 저도 그랬을 거고요.”

“아니, 당연한 거야. 뭘 그래.”

샤샤가 나를 보며 물었다.

“왜 당연하다고 생각하세요?”

왜 당연하냐고? 당연한 걸 당연하다고 말하지, 뭐라고 말해야 하나.

빤히 내 대답을 기다리는 샤샤를 보니 부담스러워졌다.

“그야. 넌 내 소환수니까?”

샤샤가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검사하는 아저씨가 우리를 보며 말했다.

“인간형 소환수인가 보죠?”

“아, 네.”

“우선 전투력부터 보죠.”

나는 샤샤에게 말했다.

“샤샤야. 여기는 신체 능력을 검사하는 장소야. 내가 소환술사로 각성을 했잖아. 네가 내 소환수고. 그래서 너의 능력이 얼마나 되는지 알아보려고 불렀어. 테스트를 통과해야 각성자로 인증을 받거든.”

샤샤가 물었다.

“민준 님께 도움이 되는 일인가요?”

“도움? 물론 그렇지. 인증을 받고 등록해야지, 미등록 각성자가 스킬 쓰고 그러면 안 돼. 벌금 물어.”

그러자 샤샤의 눈에 각오가 엿들었다.

“열심히 할게요.”

“어? 뭘 그렇게 열심히 할 것까진 아닌데? 적당히 해도 돼.”

“아니, 열심히 할 거예요.”

“왜?”

“저는 민준 님의 소환수니까. 민준 님에게 도움이 된다면 열심히 하는 게 당연한 일이니까요.”

이글이글.

샤샤의 눈에 의욕이 솟았다.

금쪽같은 소환수들

— 거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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