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몬스터 웨이브 (5)
샤샤가 손가락으로 어느 지점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저쪽을 보세요.”
마침 그들이 서 있는 곳은 언덕 위쪽이어서 지대가 높아 멀리까지도 잘 보였다.
“저기 연기 보이시죠?”
저 멀리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산불이다.
샤샤는 손가락으로 연기가 나는 지점을 가리켰다.
“저 산불은 우리 마을의 후발대에서 지른 거예요. 몬스터들이 계곡을 따라오지 못하도록 길을 막았어요. 그래서 몬스터들은 저 불길을 우회해서 오고 있어요.”
샤샤는 뻗은 손을 시계 방향으로 돌리며 말했다.
“그리고 몬스터들 중에서 일부 선발대는 이렇게 돌아올 거예요.”
샤샤는 손을 돌리다가 왼쪽 길에서 멈추었다.
“그리고 이쪽으로 나타날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오른쪽 길로 가야 해요. 왼쪽 길로 가면 몬스터와 빨리 만나게 될 거예요.”
주변의 사람들이 말을 잇지 못했다.
샤샤는 큰소리로 외쳤다.
“몬스터들은 저기 불길에 막혀 저쪽으로 돌아 이쪽으로 올 거예요. 저 불길은 우리 마을의 후발대가 지른 거예요. 자! 여러분 오른쪽 길로 가세요. 오른쪽 길이에요. 오른쪽!”
몇몇 사람들이 오른쪽 길로 접어들었다.
그러자 군중들은 오른쪽 길을 따라 이동했다.
지게꾼 토이 아저씨도 샤샤 옆을 지나갔다.
토이 아저씨의 지게에 앉은 이웃집 할머니가 샤샤에게 말을 건넸다.
“샤샤야, 힘내거라.”
샤샤는 할머니를 보며 주먹을 쥐어 보였다.
“네, 할머니 성에 먼저 들어가 계세요. 곧 따라갈게요.”
할머니께서 지긋이 미소를 지어주셨다.
* * *
나는 활 전문샵 탁자에 앉아 샤샤를 보며 손에 땀을 쥐었다.
점원 아저씨에게 종이와 볼펜을 빌려서 여기저기 지도도 그려보고, 볼펜을 화면에 대어서 축척을 활용해 거리도 재어보았다.
점원은 매상을 많이 올려줘서 그런지 서비스가 좋았다.
너무 안 나간다고 눈치를 주더라도 화살이 더 필요할지 몰라서 못 나가고 있는데, 음료수도 계속 챙겨주는 걸 보면 서비스가 좋았다.
하긴, 내가 오늘 얼마를 질렀는데.
게다가 내가 각성자로서 화살도 허공에 휙휙 던지고 뭔가 하고 있으니 더 잘해주는 것 같았다.
샤샤는 내가 알려준 대로 스텟을 올리고 알려준 작전을 잘 수행하였다.
나는 스포츠 경기의 감독 혹은 전쟁의 지휘관이 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샤샤가 너무 잘 따라와서 기특하기도 하고 부담감도 생겼다.
힐링 포션을 너무 쓰는 것 같아서 약국에서 스테미너 포션을 구매해서 다시 넣어줬다.
달리기하는데 힐링 포션을 쓰는 건 좀 아까웠다.
퀵 배달 아저씨를 다시 불러서 주유소를 다섯 군데를 돌았다.
주유소에 기름은 많아도 기름을 담을 수 있는 통이 얼마 되지 않았다.
기름보다 기름을 담는 통을 구하는 게 더 바빴다.
아무튼 지구에 있는 나도 숨 가쁘게 바빴고 샤샤는 나보다 더 바빠 보였다.
그래도 샤샤의 활약에 힘입어 나 역시 몬스터 얼굴 한번 보지 않고 16렙이 되었다.
정말 대박이다.
나는 몬스터를 화면으로만 보았고 나의 소환수인 샤샤가 몬스터를 잡아도 내 레벨이 오른다.
이처럼 안전한 헌팅이 있을까?
아무튼 불의 벽을 세워 한숨 돌렸지만, 적들은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우회해서 돌아오고 있는데 한 번 뜨거운 맛을 봐서 그런지 눈이 돌아간 녀석들이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우회해서 오는 녀석 중에는 미친 듯이 뛰어오고 있는 것들도 있었다.
나는 화면을 확대해서 선두에서 달려오고 있는 오크에 설정해 두었다.
화면이 선두의 오크를 따라 이동한다.
와.
징그럽다.
얘는 아까 불길에서 화상을 입은 녀석인가 보다.
몸에 화상자국이 있다.
아프면 뒤로 가서 빠져야지 이건 화상을 입은 녀석이 제일 앞에서 뛰고 있다.
몬스터의 습성은 인간과 다른 모양이다.
열받았나 보다.
저것들은 왜 뛰고 그러냐.
천천히 걸어서 오면 얼마나 좋아.
나는 불의 벽을 세우면 시간을 벌어 피난민들을 모두 구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눈이 뒤집혀 미친 듯이 뛰어오는 것들을 보니 피난민을 모두 구하긴 어려울 것 같았다.
아무래도 오른쪽 길을 선택한다고 해도 피난민 후발대는 몬스터의 선두와 만날 것 같았다.
나는 손가락을 탁자에 두드리며 고민했다.
싸워? 말아?
싸우면 누가 어떻게?
안 싸우면 안 싸울 방법이 있나?
음…….
에이 뭘 혼자 고민이냐? 나에겐 뛰어난 작전 참모들이 있는데.
나는 깨끗한 종이를 다시 받아 최대한 깔끔하게 지도를 그렸다.
자, 여기 불의 벽이 있고.
피난민들은 이쪽으로 쭉 내려오다가 오른쪽 길로 빠져서 성으로 향하고 있어.
그런데 불의 벽을 우회해서 몬스터 대군이 오고 있어.
그중 미친 듯이 뛰어오는 몬스터의 선발대는 아마도 피난민들의 후발대를 습격할 수 있을 것 같아.
후발대 인원은 150 정도이고 몬스터 선발대는 100여 마리 정도 돼.
후발대는 남녀노소 섞여 있고 전투가 가능한 인원은 몇십 명 정도 되는데 무장 상태는 매우 빈약해. 그리고 내가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것은 이 피난민 중에 16레벨짜리 궁수 한 명이야.
궁수는 민첩 위주로 스텟을 올렸어.
궁수에게는 내가 소량의 힐링 포션이나 스테미너 포션을 줄 수는 있어. 그런데 돈이 별로 없어서 많이는 못 줘.
어쩌면 좋지?
좋은 작전을 알려줘.
나는 이렇게 그림과 글을 아까 올렸던 여러 게시판에 다시 올렸다.
하나, 둘 댓글이 달렸다.
└ 대출받아서 스테미너 포션 뿌려.
└ 신용등급과 관계없이 누구나 대출 가능…….
└ 대출은 읏맨이지.
└ 안녕하세요. 김지영 대출 상담사입니다. 010―***―****로 연락주세요.
└ 대출받아서 힐링 포션 뿌리고 맞짱 떠. 싸움은 물약빨이지.
└ 안녕하세요. 김지영 대출 상담사입니다. 010―***―****로 연락주세요.
└ 근데 16렙 정도면 혼자서는 튈 수 있는 것 맞나?
└ 민첩 위주로 찍고 스테미너 포션 마시면 기본 몬스터들보다는 빠르겠지. 하지만 비행형이나 대형 몬스터에겐 안 통할 수도 있어.
나는 몬스터의 종류를 적지 않았다는 생각에 대댓글을 달았다.
└ 오크, 트롤, 코볼트 정도밖에 없어요.
└ 그 정도면 충분하겠네. 민첩이 얼만데?
└ 55 찍었어요.
└ 속도는 충분하네. 나라면 유인책 쓴다. 몬스터들은 저기 그림의 위쪽 길로 먼저 왔다가 피난민들이 없으면 아래쪽 길로 넘어올 수 있어. 그래서 후발대랑 마주친다는 거잖아. 유인책이 적당할 것 같아. 16레벨짜리가 윗길 가서 화살로 팅팅거리면서 유인하면 몬스터 선발대들이 따라갈 것 같은데. 오크, 트롤, 코볼트 정도면 단순하니까. 그렇게 시간 끌다가 16레벨짜리는 스테미너 포션 빨면서 빙 돌아서 성에 들어오면 클리어.
오옷, 이거 할만한데.
아니, 할만한 게 아닌가?
결국은 샤샤 혼자서 몬스터 무리를 유인하라는 거잖아.
샤샤가 혼자서 할 수 있을까?
물론 급하면 소환해버리면 된다.
그래, 그런 방법도 있겠네.
아예 반대쪽 길로 유인하다가 소환해버린다.
그리고 몬스터들이 지나간 후, 돌려보내는 것이지.
그런데 돌려보내는 건 원래 소환했던 자리 그대로 돌려보내니까 안 되려나?
몬스터들도 계속 그 자리를 지키고 있지는 않을 것 같다.
음…….
토도독. 토도독.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렸다.
이거 고민되네.
물어나 볼까?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데 알파가 나에게 말했다.
―민준 님.
“어. 왜?”
―뽑기는 안 하십니까?
“뽑기?”
―네, 민준 님도 렙업하면서 스텟도 생겼고 스킬 뽑기도 쌓였습니다. 5레벨당 한 번씩 스킬 뽑기가 나옵니다. 지금 16레벨이시니까 3번이나 스킬 뽑기를 할 수 있습니다.
아, 그래. 내가 이걸 잊고 있었구나.
나는 샤샤에게 집중하느라 내 스텟이나 내 스킬 뽑기도 신경을 못 쓰고 있었다.
샤샤 쪽이 워낙 긴박했어야지.
샤샤 쪽도 지금은 조금 여유가 있는 것 같으니 나는 뽑기를 먼저 해보기로 했다.
혹시 아나? 대박 스킬이 나올지.
“자자, 운빨 한번 터져보자. 스킬 뽑기 오픈.”
[스킬 뽑기를 오픈합니다.]
허공에 카드가 수십 장이 보였다.
뒤집혀 있어서 앞면을 볼 수 없는 카드들.
“여기서 세 장을 뽑으면 되나?”
―그러셔도 되고 한 장을 뽑은 후 다시 섞어도 됩니다.
나는 카드를 한 장 한 장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자, 너로 골랐어. 좋은 거 나와라!”
나는 카드 한 장을 집었다.
그리고 그대로 탁자 위에 엎어 두었다.
후.
심호흡을 한 번 했다.
“자자, 한 번 더 가자고.”
―확인은 안 하십니까?
“응, 한방에 뒤집어보게.”
―마음대로 하십시오.
“자, 한 번 더. 어느 것을 고를까요. 알아맞혀 봅시다. 이번엔 너다.”
나는 또 한 장의 카드를 골라 탁자에 엎어 두었다.
“연타로 가자. 바쁘다. 샤샤 기다린다. 이번엔. 이 카드.”
나는 탁자에 세 장의 카드를 엎어 두었다.
아, 떨려라.
첫 번째로 뽑은 카드를 잡았다.
“뒤집는다. 하나둘, 셋, 얍!”
[실드 배쉬(B등급)]
방패에 마나를 두른 후 방패를 휘둘러 타격을 합니다.
어, 이건 뭐야.
지금 상황에서 방패 타격기는 도움이 안 된다.
이건 탱커용 같은데.
“쳇, 별로네. 알파야.”
―네.
“혹시 다시 뽑기는 안 돼?”
―안 됩니다.
“아, 지금 방패가 왜 나와.”
아무리 좋은 방패 스킬이 나왔더라도 지금은 안된다. 몬스터 수천에 둘러싸이면 방패 스킬이고 뭐고 무조건 죽는다.
―그러니까 뽑기 아니겠습니까. 뒀다가 나중에 쓰십시오.
“아, 정말.”
나는 머리를 벅벅 긁었다.
자, 다음 카드를 뒤집어보자. 혹시 아냐 이번에 울트라 초 파워 S등급 스킬이 나올지.
“자, 두 번째 카드. 하나, 둘, 셋 얍!”
나는 두 번째 카드를 뒤집었다.
[대쉬(D등급)]
마나를 이용하여 단거리를 빠르게 달립니다.
“오호, 좋아. 딱 좋네.”
지금 상황은 몬스터들을 유인하며 도망쳐야 하는 상황.
샤샤가 쓰기에 딱 적당한 스킬이 떴다.
“좋아, 이건 지금 샤샤 주면 딱 맞네. 원래 궁수는 거리를 유지하면서 화살을 쏘는 게 정석이지. 자, 한 장 더.”
나는 마지막으로 남은 카드를 붙들었다.
하. 제발 좋은 거 떠라.
“제발 떠라!”
[힐(B등급)]
마나를 이용해 본인, 파티원의 상처를 치료하거나 체력을 상승시킵니다.
“오예! 대박, 나이스!”
나는 주먹을 쥐고 어퍼컷을 올렸다.
힐이다.
다른 스킬도 아니고 힐이라고.
귀족 스킬이라는 힐이다.
솔직히 힐 스킬 하나만 있어도 먹고 사는 데는 지장이 없을 지경이다.
요즘은 각성자가 많아졌다지만 그래도 인구의 1%가 안 된다.
그중에 대부분은 그저 그런 전투 스킬이 대부분이다.
처음에 뽑은 쉴드 배쉬 같은 것 말이다.
솔직히 방패를 휘둘러 적을 타격한다는 게 말이 좋지, 목숨을 거는 거다.
반면에 힐 스킬이 있으면 의느님이다.
의대 가려면 고등학교 때 공부도 엄청나게 잘해야 하고 대학 가서도 또 공부 엄청나게 해야 한다.
하지만 힐은 그냥 스킬만 쓰면 치료가 된다.
힐 스킬이 있는 각성자는 서로 모셔가려고 안달이다.
던전에 가서 몬스터 헌팅할 때도 물약빨로 버티면 된다지만, 능동적이고 생각하는 인간 물약인 힐러가 필요한 건 두말할 필요가 없다.
던전을 안 가더라도 병원에서 모셔가려고 안달이다.
일반인은 안 아픈가?
세상에 아픈 사람은 많다.
아니 세상의 모든 사람은 언젠가는 아프다.
뭐 융합형 치료라던가?
힐러와 의사가 협업하여 치료하는 게 요즘 대세라고 한다.
누구더라, 최 모였는데.
아무튼 그 사람은 외과 의사면서 동시에 고위 힐러다.
원래 외과 의사였는데 각성하면서 힐 스킬을 얻었고, 레벨업도 많이 해서 고렙이 되었다.
암튼 그 사람이 대한병원 원장이다.
외국 아랍 왕자들도 그 사람한테 치료받으러 온다던가.
뭐 암튼 힐 스킬 하면 대표적인 돈 버는 스킬이다.
화살값이 얼마?
힐링 포션에 스테미너 포션이 얼마?
괜찮아, 괜찮아. 많이 마셔.
흐흐흐.
아 잠깐 내가 이럴 때가 아닌데.
내가 힐을 뽑아서 잠시 정신줄을 놓고 있었다.
샤샤는 지금 타임 어택을 하고 있는데.
화면을 다시 보았다.
앗! 깜짝이야.
금쪽같은 소환수들
— 거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