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몬스터 웨이브 (4)
샤샤와 이반은 대열에서 이탈했다.
정확히는 조금 전에 지나갔던 계곡으로 돌아왔다.
나머지 인원들은 계속해서 성을 향해 이동했다.
이반의 등에 업힌 올가가 물었다.
“언니, 우리는 왜 안 가?”
“응, 언니가 계약한 소환술사 님이 이쪽으로 가라고 했거든.”
“여기로?”
“그래, 여기로.”
“여기에 뭐가 있는데?”
띠링!
[선물이 도착했습니다.]
“선물함”
선물함에는 사람 몸통만 한 플라스틱 통이 여러 개 들어 있었다.
샤샤는 플라스틱 통을 꺼냈다.
제법 무거웠다.
출렁출렁!
통에는 어떤 액체가 잔뜩 담겨 있었다.
“언니, 그게 뭐야?”
띠링!
[쪽지가 도착했습니다.]
“쪽지 열기.”
[그거 불에 아주 잘 타는 기름이야. 계곡 옆의 산 쪽으로 길게 뿌려둬. 그리고 후발대가 지나가면 계곡에 잔뜩 뿌려. 그리고 오크가 들어오면 불을 질러. 일부 오크는 태워버릴 수도 있고 불의 벽이 길게 세워지면 시간을 벌 수 있을 거야.]
“이거 불에 아주 잘 타는 기름이래.”
“기름?”
“그래, 기름.”
샤샤는 기름통을 꺼냈다.
하나, 둘, 셋… 기름통은 꺼내도 꺼내도 계속 나왔다.
철로 된 커다란 기름통도 나왔다.
선물함 속의 기름통을 다 꺼냈다 싶으면 다시 선물함 속에 기름통이 생겼다.
마치 마법처럼 나오는 기름통에 이반도 적극적으로 샤샤를 도왔다.
이반도 올가를 내려두고 기름통을 날랐다.
“아빠, 산 쪽에는 기름을 먼저 부어둘게요.”
“알았다. 올가야. 올가는 여기 가만히 있을 수 있지?”
“응, 그럼.”
이반은 사냥꾼이다.
노루 한 마리쯤을 어깨에 가볍게 짊어지고 산을 오르는 사람이다.
이반은 체력이 가득 찬 사냥꾼답게 통을 들고 산을 뛰어올랐다.
그렇게 산에 기름을 뿌려 댔다.
저기 후발대가 오고 있었다.
샤샤와 이반은 후발대의 촌장을 찾았다.
이반이 촌장에게 말했다.
“촌장님, 이곳에 몬스터들이 오지 못하도록 불을 피울 겁니다. 불에 잘 붙는 기름이 많이 있습니다. 불의 벽을 세워 시간을 벌어야 해요.”
“이것이 기름이란 말인가?”
촌장은 기름을 만져보고 냄새를 맡아보았다.
촌장은 기름을 살짝 부은 후, 부싯돌을 튀겨 불을 붙여보았다.
확!
불이 붙었다.
한주먹도 안되는 작은 양의 기름은 생각보다 크고 활활 타올랐다.
검은 그을음도 솟아올랐다.
맑고 투명하고 불에 잘 붙는 기름이었다.
고급 기름이었다.
이반이 어디서 이런 비싼 기름을 구했을까?
촌장이 말했다.
“기름이 얼마나 있길래. 어지간한 양으론 큰 의미가 없어.”
이반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양은 충분합니다. 작업을 할 인원 스무 명 정도 모아주세요.”
* * *
오크 전사 크롹은 무리를 따라 산맥을 내려갔다.
산맥을 따라 내려가니 마을이 있었다.
기쁜 마음으로 마을을 습격했다.
크롹은 자신의 강함을 뽐내며 소리를 질렀다.
“쿠아악!”
그 소리에 마을 주민들이 소리를 지르며 달아났다.
“꺄악!”
“악!”
크롹은 가장 가까운 인간에게 도끼를 던졌다.
휙휙휙!
회전하며 날아가는 도끼.
퍽!
인간의 등에 도끼가 꽂혔다.
“크롸롸롸!”
크롹은 인간의 등에서 도끼를 빼냈다.
“으으으!”
인간이 신음을 흘렸다.
크롹은 무심하게 도끼질을 했다.
퍽, 퍽, 퍽, 퍽!
크롹은 인간을 잘게 다지는 이 도끼질이 좋았다.
사방에 오크들의 외침과 인간들의 비명이 난무했다.
피에 절은 몬스터 무리는 몹시 흥분했다.
그런데 즐거운 살육의 시간은 얼마 가지 못했다.
몬스터의 수와 비교해 인간의 수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캬오오오!”
트롤 한 마리가 짜증을 냈다.
“크라라라락!”
오크 부족장이 길을 재촉했다.
무리는 다시 사냥하러 출발했다.
크롹은 한참을 길을 걸었다.
이 길에는 인간들의 냄새가 난다.
즉, 이 길을 따라가면 인간이 나온다.
킁킁!
그런데 이게 무슨 냄새지?
크롹의 코에 이상한 냄새가 났다.
시큼하기도 하고 비릿한 냄새가 났다.
그때, 소리가 들렸다.
“야이, 오크 새끼들아. 여기다, 여기!”
“야아아아아!”
“덤벼라. 덤벼!”
인간들이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크르르르!”
겨우 몇 명의 인간들이 덤비다니 가소롭기 짝이 없다.
그 용기는 가상하다만 곧 죽어줘야겠다.
도끼질로 인간을 다질 때의 감각이 남아있다.
어서 빨리 이 감각을 재현하고 싶어 손이 간질거린다.
“크아악!”
옆의 오크가 먼저 뛰기 시작했다.
눈앞에 보이는 인간이 몇 마리 안 되기 때문에 빨리 뛰어야 했다.
늦으면 자신의 몫이 없기 때문이다.
크롹도 뛰었다.
인간들이 나무토막을 쌓아서 길을 막아 두었다.
하지만 이까짓 나무토막 따위는 자신의 앞길을 막을 수 없다.
크롹은 통나무를 넘으며 달렸다.
피잉!
화살이 날아온다.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날아오는 화살.
멀리서 쏜 화살이라 빠르지 않았다.
저따위 화살을 공격이랍시고 쏘다니 가소로웠다.
그런데 화살촉이 붉었다.
허무하게 아무도 없는 곳으로 떨어지는 화살.
저런 화살을 믿고 덤비는 것인가?
어이가 없다.
그런데 화살이 땅에 닿자 이상한 일이 생겼다.
파앗!
화르륵!
마치 잔잔한 호수에 돌멩이를 던진 것처럼 불꽃의 파동이 원을 그리며 퍼져나갔다.
눈앞의 모든 공간이 화염이 번지며 붉어져 뜨거워졌다.
“크아악!”
크롹의 몸에 불이 번졌다.
여기저기 비명 소리가 들렸다.
사방 천지가 불이었다.
뜨거운 불꽃과 검은 연기가 사방을 메웠다.
샤샤는 불화살을 쏘아댔다.
힘이 늘어서인지 활을 당기는 힘이 더 강해졌다.
더 흔들리지 않고 안정적으로 활을 쏠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더 멀리 활을 날릴 수 있었다.
함정에 빠진 몬스터 무리가 불로 범벅이 되었다.
작전을 펼친 사람 중에는 나무꾼을 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나무꾼이 아니더라도 자기 집 땔감을 구하는 일은 모두가 하고 있었다.
적당히 불에 잘 타는 나무를 구하는데 이골이 난 사람들이다.
그들은 짧은 시간에 마른 나무를 구해서 길을 막았다.
그리고 구한 마른 나무 위에 기름을 뿌려 두었다.
오크들이 막아 둔 나무들을 기어오르면서 자연스럽게 기름 범벅이 됐다.
몸통에 기름이 범벅인 오크에게 불화살을 날리면 오크는 어떻게 되겠는가?
실시간으로 오크 통구이가 되는 건 당연했다.
샤샤는 가로로 길게 늘어선 불의 벽을 바라보았다.
뜨겁다.
제법 멀리서 화살을 날렸음에도 순식간에 만들어진 불의 벽에서 퍼져 나오는 열기가 여기까지 전해진다.
이 정도면 꽤 시간을 벌어줄 수 있을 듯했다.
이제 다시 달아날 시간이다.
작전을 펼친 인원들은 다시 뛰었다.
나무를 모으고 기름을 뿌리는데 꽤 많은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피난민들을 따라잡으려면 한참을 뛰어야 했다.
감나무 집 아들 플레닉은 자진해서 작전을 도왔다.
자신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인원이 자진해서 작전을 도왔다.
가족을 위해, 마을 사람들을 위해 길을 막는 작업에 나섰다.
나무를 모으고 기름을 뿌렸다.
얼마 후 몬스터들이 몰려왔다.
엄청난 수였다.
오크들이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다.
몬스터 떼가 도착했을 때 그 엄청난 수에 다리가 후들거렸다.
저렇게 많은 수의 몬스터가 올 줄 알았다면 작전이고 뭐고 달아났을 것 같았다.
달아나지 않았음을 후회했다.
자신의 만용을 자책했다.
하지만.
피잉!
단 한발의 화살로 상황이 뒤바뀌었다.
화살에 붙은 작은 불꽃은 거대한 불의 바다로 변했다.
엄청난 규모의 불의 장벽이 세워졌다.
저 불은 벽이다.
몬스터들로부터 그들을 지켜주는 불의 장벽.
플레닉은 장벽을 세우는 데 자신이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었다니 그저 놀랍기만 했다.
불꽃이 피어오르고는 너무 놀라서 자신이 언제 주저앉았는지도 몰랐다.
그때, 누군가 말했다.
“오빠, 일어나.”
플레닉은 목소리의 주인을 올려다보았다.
“오빠, 이제 가야지.”
이반의 등에 업힌 어린 여자아이, 올가였다.
작전을 펼친 인원들은 열심히 뛰었다.
플레닉은 체력에 한계가 왔다.
원래 플레닉은 젊었기에 체력에 자신이 있었고 달리기도 잘했다.
하지만 산에서 아빠를 찾아오느라 정신없이 뛴 이후에 이어진 작전, 그리고 또 도주를 위해 달려야 하니 하늘이 노래질 것 같았다.
“헉… 헉!”
입에서 쓴물이 올라왔다.
그때, 이반의 등에 업힌 올가가 말했다.
“오빠, 한잔해.”
뭘 한잔하라는 거지?
올가를 업은 이반이 마실 것을 약간 주었다.
물인가?
적은 양이지만, 그래도 이 순간에 물을 건네주는 이반에게 고마움이 느껴졌다.
플레닉은 이반이 건네는 물을 한입에 털어 넣었다.
화아악!
상쾌했다.
그리고 신기했다.
입에 넣은 액체가 식도를 타고 내려간다.
그 액체가 어디까지 넘어가고 있는지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다섯을 세기도 전에 발끝까지 힘이 났다.
깊은 잠을 자고 일어나 가볍게 세수를 한 뒤의 느낌.
떨리던 다리가 안정을 찾았다.
플레닉은 이반을 보았다.
이반은 그저 미소를 지어주곤 앞으로 달려갔다.
샤샤는 작전을 펼치는 전체 인원을 살폈다.
너무 처지는 인원이 있는지 살폈다.
작전을 펼친 인원들이 피난민의 최후미다.
어서 달아나야 했다.
체력이 너무 떨어진 인원에게는 샤샤 또는 이반이 힐링포션을 나눠주었다.
그리고 중간중간 높은 나무 꼭대기까지 올라가 뒤를 살폈다.
샤샤가 나무를 타는 모습은 한 마리 다람쥐 같았다.
플레닉은 자신도 나름대로 나무를 잘 탄다고 생각했지만, 밧줄도 없이 발에 차는 징도 없이 저렇게 빠르게 나무 꼭대기에 올라갈 자신은 없었다.
그러고도 샤샤는 아무렇지도 않게 나무에서 내려와 다시 인원을 이끌었다.
산골 마을 사람들은 늘 마수의 위협을 받으며 살았다.
그래서 강한 자를 알아보는 감이 좋았다.
누가 강한지 누구와 함께 전투를 벌여야 하는지 누구를 따라야 사는지 본능적으로 잘 알았다.
플레닉은 생각했다.
이 무리의 대장은 샤샤다.
얼마나 뛰었을까?
작전을 펼쳤던 무리는 다시 피난민 무리와 합류했다.
열심히 뛰기도 했지만, 피난민 무리의 속도가 빠르지 않기 때문이었다.
샤샤는 작전도 성공적이었고 머지않아 백작성에 도착하므로 모두 안전할 거라는 희망을 품었다.
띠링! 띠링!
[선물이 도착하였습니다.]
[쪽지가 도착하였습니다.]
샤샤는 반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쪽지 열기!”
[지금 보낸 물약은 스테미너 포션이야. 처음에 준 것은 힐링포션이라서 다쳤을 때 사용하고 이제 달리기를 해야 할 때는 스테미너 포션을 사용하도록 해. 달리기 전에 한 병 마시고 뛰면 어지간하면 지지치 않을 거야.
그리고 레벨이 올랐잖아. 힘 20, 체력 20까지 올리고 나머지는 민첩을 올려.
몬스터들이 불을 지른 계곡을 돌아서 오고 있어. 이대로 가면 몬스터 전체는 아니지만, 선발대 일부와 만날 수 있을 것 같아. 피난민들은 지금 가는 길이 아니라 우회해서 가야 할 것 같아. 지금 위치에서 언덕 두 개 정도 넘으면 갈림길이 나오거든. 거기서 오른쪽으로 빠져야 할 것 같아. 빨리 뛰면 선발대도 오른쪽 길로 유도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해 볼래? 샤샤가 민첩 올리고, 스테미너 포션 마시고 뛰면 충분할 것 같은데. 잘하면 아무도 죽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아.]
샤샤가 상태창을 불렀다.
“상태창.”
[샤샤]
직업: 소환수
레벨 16
힘 10
민첩 19
체력 6
마나 30
미분배 스탯 60
소환술사 : 김민준
거주 행성 : 글리제
연결된 행성 : 지구
스킬 : 조준점
레벨이 16이라 언제 이렇게 많이 올랐지?
불에 타죽은 몬스터가 많았나보다.
“힘과 체력을 각각 20까지 올리고 나머지는 민첩을 올릴게.”
힘이 10에서 20으로.
민첩이 19에서 55으로.
체력이 6에서 20으로 상향되었다.
“아빠, 저 선발대 쪽으로 뛰어갈게요.”
샤샤는 이반과 눈을 맞췄다.
“아빠, 이대로 가면 언덕을 두 개를 넘을 거예요. 그러고 나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거기서 오른쪽이에요.”
샤샤는 무릎을 굽혀 올가를 바라보았다.
“언니 먼저 뛰어갈게. 선발대의 방향을 바꿔야 할 것 같아. 아빠 꼭 붙들고 있어.”
샤샤는 올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선물함.”
선물함에는 못 보던 포션이 들어 있었다.
약간 길쭉한 병에 들어 있는 노란 액체.
선물함은 열 때마다 신기했다.
허공에서 물건을 꺼내는 기분이었다.
매끈하고 투명한 유리병.
샤샤는 이런 병 또한 신기했다.
이렇게 투명하고 매끈하다니.
병 자체도 아름다웠다.
꿀꺽!
힐링포션과는 다른 맛이다.
상큼한 과일 향이 났다.
딸기.
산에서 따먹던 딸기향이 났다.
“아빠, 저 먼저 갈게요. 언덕 두 개 지나 갈림길에서 오른쪽. 꼭이요.”
올가를 등에 업어서 묶고 있는 이반이 말했다.
이반도 밤나무 마을 사람이다.
게다가 사냥꾼이다.
강자를 알아보는 눈이 있었고 불의 벽을 세우고 달아나는 완벽한 작전을 이끈 샤샤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 알았어. 조심해.”
샤샤는 이반과 올가에게 미소를 보냈다.
그리고 뒤돌아 뛰기 시작했다.
휙!
휙!
주변 사물이 샤샤의 뒤로 스쳐 지나간다.
얼굴에 닿는 바람이 거셌다.
“와!”
샤샤는 자신이 이렇게 빨리 달릴 수 있는지 놀랐다.
그리고 이렇게 빨리 달리고 있는데도 숨이 차지 않았다.
직진으로 달리던 중 사람 키만 한 바위가 가로막고 있었다.
평상시라면 당연히 돌아가야 할 바위.
샤샤는 왠지 저 바위를 뛰어넘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강하게 발을 굴렀다.
타앗!
당연하다는 듯 하늘 높이 뜬 샤샤.
순간, 높이 점프하니 주변 시야의 느낌이 달라졌다.
땅과 이렇게 멀리 떨어져 본 적이 있었나 싶었다.
바위를 한두 번 차면서 더 높이 뛰어오를 생각이었는데 그냥 바위를 뛰어 넘어버렸다.
금세 선발대가 보였다.
할머니를 지게에 실은 이웃집 아저씨도 묵묵히 열심히 걷고 계셨다.
샤샤는 선발대 맨 앞으로 뛰어갔다.
곧 맨 앞 선두에 도착했다.
샤샤가 선두에 선 아저씨에게 말했다.
“아저씨 이제 곧 나오는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가야 해요.”
아저씨가 말했다.
“왜? 왼쪽이 성으로 가는 가까운 길이야. 오른쪽으로 가면 돌아가야 해.”
“왼쪽 길 방향으로 몬스터가 오고 있어요.”
“뭐?”
몬스터라는 소리에 주변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누군가 물었다.
“그런데 몬스터가 그 길 방향으로 온다는 걸 네가 어떻게 아니?”
모두가 샤샤를 주목했다.
금쪽같은 소환수들
— 거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