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금쪽같은 소환수들-9화 (9/230)

9화. 몬스터 웨이브 (3)

어떡하지?

이건 시간 싸움이다.

샤샤의 무리 뒤로 얼마 후에 또 한 무리의 피난 행렬이 있었다.

그렇게 두 무리의 피난민이 있고 그 한참 뒤에 오크 무리가 오고 있었다.

샤샤를 포함한 인원들이 나름대로 열심히 걷고는 있지만, 오크 무리의 속도가 더 빠르다.

성까지 가려면 아직 멀었다.

따라잡힐 것 같았다.

우선 샤샤의 화살 100여 발 가지고는 안 되겠다.

일단 화살이 더 많아야 할 것 같았다.

“안 되겠어.”

나는 밖으로 나와 택시를 탔다.

택시 아저씨가 물었다.

“어디로 가실까요?”

“강남이요.”

아저씨는 유유히 택시를 운전하기 시작했다.

나는 마음이 급했다.

나는 활 전문샵의 지도를 검색해서 아저씨에게 보여주었다.

“아저씨. 급한데 이쪽으로 최대한 빨라 가실 수 있을까요?”

“아, 이 시간에 강남이 좀 막혀서.”

택시가 강남 근처에 도착했다.

기사님 말씀처럼 길이 막혔다.

뛰어가는 게 더 빠를 것 같았다.

조급한 마음에 택시 안에서 안절부절하고 있었다.

그때, 길가에 모여 있는 택배 오토바이와 라이더들이 보였다.

“아저씨 스톱. 여기서 내릴게요.”

나는 택시에서 내려 오토바이 라이더들에게 다가갔다.

몇 명의 라이더분들이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하고 있었다.

활 전문샵의 지도를 보여주며 말했다.

“여기까지 태워주시면 십만 원!”

“저요!”

라이더 한 분이 제일 먼저 소리치며 손을 드셨다.

부왕!

나는 말 그대로 빠른 배송을 당했다.

라이더분께서는 나를 배송해주시고 명함 한 장을 꽂아주신 후 엄지척을 날리며 사라지셨다.

활 전문숍에 도착하자 익숙한 점원이 나를 반겼다.

“손님 또 오셨군요. 지난번 활 선물은 어떻게 마음에 드셨다고 하나요?”

“네, 활도 세 개 더 주시고요. 화살 200발… 아니, 500발 주세요.”

점원은 얼굴에 환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고객님.”

활을 준비하고 또 뭘 줄 수 있을까?

그래, 맞다. 힐링포션.

“아저씨, 여기 약국 가까운 곳이 어디 있어요?”

“나가서 오른쪽으로 50m만 가면 있어요.”

“약국 갔다가 올 테니 준비 좀 해주세요.”

“네, 다녀오세요.”

나는 약국까지 뛰어갔다.

약국에 들어간 나는 약사에게 말했다.

“힐링포션, 두 개 주세요.”

“네, 400만 원입니다.”

음, 비싸다.

하지만 지금은 돈을 아낄 상황이 아니다.

“12개월 할부로 끊어주세요.”

나는 힐링 포션을 사고 활 전문샵으로 다시 왔다.

점원은 열심히 활을 창고에서 꺼내오고 있었다.

나는 다른 좋은 무기가 있는지 물었다.

“사장님.”

“네.”

“만약에요. 전쟁 영화 같은 것 보시면 피난민들이 도망치고 있어요. 그런데 뒤에서 적들이 엄청 많이 쫓아와요. 피난민들은 전투력이 별로 없어요. 그런데 조금만 가면 안전한 장소가 있긴 해요. 그런 적들을 지연시킬만한 뭐 그런 무기 없을까요? 뭐. 아. 그래. 최루탄! 그런 것 없을까요?”

“최루탄이요?”

“네. 그런 건 없나요?”

“저희 가게에는 없고. 그런 거 판다는데도 들어본 적이 없는데요. 경찰이나 군대나 가야 있을까 일반인들이 사긴 어렵겠죠. 그리고 여기도 활이니까 판매할 수 있지, 다른 무기류는 까다로워요. 지난번에 보니까 각성자시던 것 같은데 헌터 면허증 없으세요?”

“면허증이요?”

“네, 각성자 중에서도 무기 사용 허가를 받으려면 헌터 면허증이 필요할 겁니다.”

“아… 면허증이 있어야 하나요?”

“네, 아마 협회에서 신청하셔야 할걸요?”

이런.

나는 스스로를 자책했다.

겟플릭스나 보고 있는 게 아니었다.

나는 얼른 헌터 면허증을 검색했다.

교육 기간만 몇 주가 걸린단다.

겟플릭스가 아니더라도 헌터 자격증은 딸 시간이 없었다.

“저 잠시 여기 좀 있을게요. 여기 앉아 있어도 되죠? 혹시 화살 다 떨어지면 더 구매해야 할지도 몰라서요.”

점원은 환한 미소와 함께 말했다.

“물론입니다. 손님, 커피, 음료 무엇을 가져다드릴까요?”

카페인이 필요했다.

“커피 주세요.”

점원이 커피를 타러 가자 알파를 불렀다.

“알파야, 샤샤 화면 좀 띄워 봐.”

―네. 민준 님.

다행히 피난민들은 아직 오크와 거리가 있었다.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헌터 자격증이 있었으면 이런 상황에서 더 효율적인 대책을 마련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후회는 항상 늦는 법.

하지만 아직 기회는 있다.

아직 샤샤가 오크에게 잡힌 것도 아니다.

샤샤 한 명이라면 사실 크게 고민할 건 아니었다.

이미 샤샤가 렙업을 조금 했으니 민첩에 올인하고 뛰면 그만이다.

아니면 그냥 소환해도 된다.

다 죽어도 샤샤는 산다.

하지만 그게 과연 정답일까?

이 많은 피난민을 버리고 샤샤 혼자 도망치라고 하는 게 정답일까?

화면을 띄워 샤샤 주변을 비췄다.

지금 보아하니 샤샤 옆에서 업혀 가는 게 올가다.

그리고 올가를 업은 사람은 이반쯤 되어 보인다.

저들을 버리고 혼자 뛰라고 하면 샤샤가 말을 들을까?

열심히 올리고 있는 친밀도가 확 떨어지지 않을까?

소환수가 소환을 거부할 수도 있다고 했다.

가족이 죽어가는 상황이라면 소환을 거부할 수도 있겠지.

그런데 내가 군사 전문가도 아니고 이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지?

잠깐만.

군사 전문가?

있다.

그것도 많이.

나는 인터넷 사이트 몇 군데에 질문을 올렸다.

[질문. 300명의 사람이 산길을 통해 피난민들이 피난한다. 피난민들의 행렬은 500m 정도 늘어져 있어. 피난민들은 남녀노소 섞여 있어서 행군 속도가 그리 빠르지 않지만, 3시간만 가면 안전한 피난처가 있다. 그런데 수 km 뒤에서 적군이 추격하고 있다. 한두 시간 후면 따라잡힐 것 같다. 이들을 안전하게 피난시킬 방법은?]

└ 삼국지인가?

└ 이거 유비네, 유비.

└ 장판교에서 장비가 팍! 눈깔을 부라리며 빡.

└ 총으로 갈겨.

└ 총 받고 크레모아

└ 무기 있으면 이러겠냐?

└ 설정이 분명하지 않네. 총격전이라거나 백병전, 무기의 수준이 정해져야 알지.

└ 시간을 끄는 것이 목적인 것 같은데 길을 막거나 매복을 해야지. 덫을 놓거나

└ 함정이나 수공, 화공 그런 건 어떨까요?

└ 화공 좋네. 산이니까 불 질러버려. 파이어.

└ 다리가 있으면 건너가서 다리를 끊거나, 지형지물을 이용해야지.

오래지 않아 댓글들이 달렸다.

솔직히 나는 샤샤에게 줄 화살과 포션만 생각했다.

전체를 고려하지 않고 샤샤 한 명만 생각한 것이다.

역시 집단 지성의 힘은 놀라웠다.

지형지물.

화공.

참 다행인 건 나는 지형지물을 이용하기 최적의 각성자라는 것이다.

적어도 글리제 행성에서 나는 맵핵이나 다름없었다.

* * *

샤샤는 바로 앞에서 걸어가는 이웃집 아저씨를 보았다.

이웃집 아저씨는 할머니를 지게에 지고도 행렬에 뒤처지지 않았다.

지게질만 20년이라는 말이 농담은 아닌 듯했다.

지게 위의 할머니가 말했다.

“이놈아, 안 힘드냐?”

아들이 말했다.

“왜요? 힘들면 바꿔주게?”

“오냐, 이놈아. 내가 너 하나 못 업을 것 같으냐?”

“알았어요. 성에 가면 지게 줄 테니까 나 업고 한 바퀴 돌아봐요.”

할머니는 자신이 그냥 숨어 있으면 될 걸 괜히 힘들게 지게에 지고 간다며 구시렁거렸다.

그러면서도 옷소매로 눈가를 훔치는 것이 살짝 우시는 것 같았다.

샤샤는 옆에서 걷고 있는 이반을 보았다.

이반도 묵묵히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안색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산에서 내려오자마자 올가를 업고 걷고 계시다.

아빠는 괜찮으신 걸까?

밤나무 마을의 후발대는 출발했을까?

감나무 집 아들은 나무하는 아저씨를 찾아서 후발대에 합류했을까?

오크들은 얼마나 내려왔을까?

우리는 안전하게 성에 도착할 수 있겠지?

불안한 마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때, 귓가를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띠링!

[선물이 도착했습니다.]

샤샤는 즉시 선물함을 열었다.

“선물함.”

선물함이 열렸다.

선물함에는 화살이 수북이 쌓여있었다.

활도 세 개가 있었다.

그리고 두 개의 약병.

그때, 그 약병이었다.

“이건 그때 그 치료제.”

샤샤의 다리를 낫게 했던 그 치료제다.

단 한 병으로 부러진 다리를 낫게 하고 온몸을 휘감는 상쾌함을 주었던 치료제.

울컥!

벅찬 감정이 솟아오른다.

같은 선물이라고 해도 어떤 상황에서 받는 선물이냐가 감동의 크기를 다르게 한다.

피난길에 받는 선물.

샤샤의 눈앞이 뿌옇게 흐려졌다.

샤샤는 생각했다.

산속에서 다리를 다쳐 절망했을 때,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준 사람.

침대 밑에 반쯤 들어가 바둥거렸긴 했지만, 자신의 다리를 치료해준 사람.

그리고 지금 이 피난길에 저 놀라운 무기와 물약을 주는 사람.

너무나 고마운 사람이었다.

띠링!

[소환술사 님의 쪽지가 도착했습니다.]

[쪽지를 열려면 ‘쪽지 열기’라고 말씀해 주세요.]

샤샤는 눈가를 훔치며 말했다.

“쪽지 열기.”

[어, 샤샤야. 지금 피난 가는 거 보고 있어. 그런데 지금 이 속도로 가면 오크한테 따라잡힐 것 같아. 그래서 말인데 오크들의 추격을 지연시킬 작전을 펼쳐야 할 것 같아. 내가 지형을 찾아봤는데, 조금 전에 지나간 좁은 계곡 말이야. 거기가 딱 좋은 것 같아. 거기서 오크들을 잡아둬야 할 것 같아. 다시 거기로 가서 조금 기다리면 너희 마을 후발대가 지나갈 거야. 그러고 나서 얼마 후에 오크들이 오겠지. 그때 불을 질러 버릴까 해서. 어때 할 수 있겠어?]

샤샤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리고 너 레벨 올랐어. 상태창 보고 미분배 스텟을 이용해서 힘을 10까지만 올리고 나머지는 다 민첩을 올려. 체력 빠지면 힐링포션 한 모금씩 마시면 체력은 채워질 거야. 가까운 사람들도 너무 힘들어 보이면 힐링포션을 조금씩 나눠줘도 돼. 이따가 작전 때도 써야 하니까 다 쓰지는 말고.]

샤샤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지금 이 피난 행렬을 보고 있다는 건가?

정말 날 지켜주고 있다는 건가?

든든했다.

불안했던 마음이 사그라들었다.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다면 오크들도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겠지?

하늘에서 내려다본다는 말이 놀라웠지만 소환되었을 때 보았던 신기한 물건들이 생각하면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다.

샤샤는 하늘을 보며 말했다.

“고마워요.”

샤샤는 고개를 돌려 이반을 보며 말했다.

“아빠.”

“어, 샤샤야.”

“아빠 사실은, 나 소환술사…. 그러니까 높은 마법사님 같은 분과 계약을 했어.”

이반은 미간을 찌푸렸다.

지금 샤샤가 무슨 소리를 하나 싶은 표정이다.

샤샤가 말했다.

“선물함.”

샤샤는 선물함에서 활을 꺼냈다.

그리고 화살도 한 뭉치를 꺼냈다.

허공에서 활과 화살이 나타났다.

그리고 다시 활과 화살을 넣자 빈손이 되었다.

올가가 말했다.

“와, 언니 마술이야?”

“응, 비슷한 거야.”

샤샤가 이반에게 말했다.

“아빠, 힘드시죠?”

샤샤는 힐링포션을 꺼내 포션의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 뚜껑에 포션을 조금 따라서 이반에게 내밀었다.

“좋은 거니까 마셔보세요.”

이반은 이게 뭔가 싶었지만, 딸이 내미는 음료를 거절하지 않았다.

꿀꺽!

화아악!

이반을 비롯한 사냥꾼 무리는 몬스터들을 발견하고 각 마을로 흩어졌다.

백작성으로 곧장 가서 백작에게 이 사실을 알리러 간 팀도 있었다.

그런데 사냥꾼들이 흩어진 방향은 달랐지만, 이들의 공통점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죽을힘을 다해서 달렸다는 것이다.

대규모 몬스터 웨이브.

죽더라도 알려야 했다.

입에서 단내가 나고 넘어지더라도 멈추지 않았다.

그래야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릴 수 있으니까.

그래서 사실 지금은 체력이 바닥이었다.

오랜 사냥꾼 생활로 단련된 몸이 아니었다면 벌써 지쳐 쓰러졌을 것이다.

아니 올가와 샤샤가 없었다면 이미 지쳐서 퍼졌을지도 모른다.

등에 올가가 없다면 오히려 걷지 못했을 것 같았다.

정신력으로 걷고 있었다.

하지만 한 모금의 물약에 체력이 돌아왔다.

이건 뭐지?

마법인가?

샤샤가 이반에게 말했다.

“어때요, 대단하죠?”

샤샤는 뚜껑을 닫고 남은 힐링포션을 이반의 품속에 넣어 드렸다.

“상태창.”

[샤샤]

직업: 소환수

레벨 4

힘 7

민첩 7

체력 6

마나 30

미분배 스탯 15

소환술사 : 김민준

거주 행성 : 글리제

연결된 행성 : 지구

스킬 : 조준점

“미분배 스탯 중에서 힘을 10까지 올리고 나머지는 모두 민첩을 올릴게.”

7이었던 힘이 10이 되고, 7이었던 민첩이 19가 되었다.

샤샤는 주먹을 쥐어 보았다.

손아귀의 힘이 세진 것 같았다.

발을 탁탁 굴러 보았다.

날아갈 듯 발걸음이 몹시 가벼웠다.

“아빠, 작전을 펼쳐야 해요.”

“뭐?”

“조금 전에 지나온 계곡에 불을 지를 거에요.”

“불? 뭐로 불을 지피게? 어지간한 불은 오크들이 뚫고 올 거야.”

“아빠, 걱정하지 마세요. 저 믿으세요?”

“그래, 샤샤야. 아빤 샤샤를 믿지만, 갑자기 큰불을 어떻게 만들어?”

“저도 몰라요.”

샤샤의 모른다는 대답에 이반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샤샤가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방법이 있을 거예요. 꼭.”

금쪽같은 소환수들

— 거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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