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조준점
깊은 숲속.
사냥꾼들이 산속을 걷고 있다.
각자 등에 활을 메고 있다.
활뿐만 아니라 넓적한 곡도, 밧줄, 단도 등 여러 가지 장비들을 착용했다.
사냥꾼들은 각자 자신이 맡은 방향을 주시하며 천천히 걸었다.
선두의 남자가 오른손을 위로 들자 다들 그 주변으로 모였다.
주름진 이마에 희끗희끗한 머리.
선두의 남자는 제법 연륜이 있어 보였다.
“이것 봐. 여기 늑대 발자국이야.”
덥수룩한 수염이 얼굴 가득 나 있는 남자가 말했다.
“대장. 아니, 왜 여기서 늑대 발자국이 나옵니까? 원래 늑대들이 여기까지는 안 오지 않습니까?”
머리가 희끗한 대장이라는 남자가 말했다.
“영역이 변한 것 같아.”
다들 표정이 어두워졌다.
“형님, 그런데 늑대들의 영역표시를 못 봤지 않수?”
“그래.”
“이틀 동안 산을 다녔는데 야생 동물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오늘 늑대 발자국이 발견되었구요. 늑대의 이동 때문에 다른 동물의 영역이 변한 걸까요?”
대장이 말했다.
“음…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조금 더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 늑대도 다른 무언가 때문에 이동한 것일 수도 있어. 늑대의 발자국은 있지만, 영역표시가 없잖아. 늑대도 단순히 이동하는 중일 수도 있어.”
“형님들, 아무래도 사냥 기간이 더 늘어나겠죠?”
“아무래도 그래야 할 것 같다. 여기서 잠깐 쉬도록 하자.”
사냥꾼들은 쉴 때도 사방을 관찰하는 방향으로 앉았다.
허리에 묶어둔 물통의 물로 목을 축이기도 하고 말린 육포를 꺼내 질겅질겅 씹었다.
덥수룩한 수염의 남자가 옆에서 쉬고 있는 남자에게 말했다.
“형님. 며칠 더 걸릴 것 같은데, 샤샤 보고 싶어서 어쩌우?”
날렵한 눈매, 하늘색 머리카락을 꽁지 머리로 묶고 초록 눈동자를 가진 남자는 샤샤의 아빠 이반이었다. 이반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뭐, 어쩌겠어. 이제 샤샤도 다 커서 나 없어도 올가 보면서 잘 있더라고.”
“이제 시집 보내야겄수.”
“그건 좀 빠르고.”
“빠르긴 뭘 빠르오. 그 정도 됐으면 이제 보내야지.”
“어허, 빠르다니까.”
“뭘 그렇게 끼고 있으려고 하우. 하긴, 올가가 너무 어려서 올가 좀 키워두고 보내는 것도 좋겠수.”
“뭐, 그것도 그렇고.”
이반이 말했다.
“샤샤와 올가를 위해서라도 큰 놈 하나 잡아가야지.”
“형님, 그럽시다. 큰놈 하나 걸려야 하는데 죄다 어딜 갔는지 모르겠수.”
대장 사냥꾼이 말했다.
“다들 쉬었나? 이제 슬슬 가자고.”
사냥꾼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수색을 시작했다.
* * *
나는 침대에 걸쳐 앉은 채 알파에게 말했다.
“알파야, 그런데 아깐 정신없어서 그런데 계약 성공했다면서 막 뭐가 떴던 것 같은데 뭐였지?”
―선물함 기능과 스킬 뽑기 1회권이 지급되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게 다 뭐야?”
―선물함은 민준 님이 소환수에게 선물을 줄 수 있는 기능을 말합니다.
“내가 소환수에게 선물을 줄 수 있다고?”
―네.
“어떻게?”
―선물함을 외치시면 선물을 넣을 수 있는 공간이 나타납니다.
“그래? 뭘 얼마나 보낼 수 있어?”
―아직 민준 님이 최하급 소환술사라서 많은 양을 보내지는 못합니다. 한 번에 보낼 수 있는 양은 저기 있는 민준 님 옷장 정도 채울 수 있는 분량입니다.
“그래? 꽤 많은데? 내가 받을 수도 있나?”
―아니요. 선물은 보낼 수만 있습니다.
“쩝, 나도 받고 싶은데. 그리고 스킬 뽑기는 또 뭐야?”
―말 그대로 스킬을 하나 뽑는 겁니다. 지금 뽑아 보시겠습니까?
“그래, 뽑아보자.”
―스킬 뽑기를 오픈합니다.
갑자기 허공에 카드가 수십 장이 보였다.
카드는 모두 뒤집혀 있어서 앞면을 볼 수 없었다.
“이게 다 스킬들이야?”
―네. 이 중에서 한 장의 카드를 뽑으시면 됩니다.
“어떤 스킬이 나올지는 모르고?”
―네, 운빨이죠.
“와. 이거 스릴 있는데?”
―자, 골라보시죠.
흠…….
뭘 고르나.
나는 컨닝을 하려고 슬쩍 앞면을 보려고 몸을 움직여 보았다.
그런데 내 시야가 기준인 듯 카드들도 움직였다.
―뭐하십니까?
“하하, 아무것도. 고민 중이야.”
아, 맞다.
거울이 있었지.
“아, 이거 참 고민이네. 어느 것을 골라야 하나.”
나는 괜히 말하는 척하며 슬쩍 거울을 보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이런, 안 보인다. 거울에는 나만 보이고 카드들이 보이지 않았다.
―민준 님, 쓸데없는 짓 하지 마시고 그냥 고르시죠.
“하하, 알았어.”
나는 혹시 몰라 카드들을 뚫어지게 째려보기도 하고, 가까이 가서 냄새도 맡아 보려고 했다.
하지만 카드들에 차이는 없었다.
“에잇, 찍자. 이것으로 할게.”
나는 그냥 막 찍어서 하나를 골랐다.
파앗!
내가 찍은 카드만 밝게 빛나고 나머지 카드가 사라졌다.
빙글빙글!
내가 찍은 카드가 회전하다 멈췄다.
카드의 앞면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조준점(B등급)]
“조준점? 이건 뭐지?”
―조준점을 뽑으셨군요. B등급이면 나름 괜찮은 것을 뽑으셨습니다. 지금 1레벨이신데 이 스킬카드 정도면 훌륭하죠.
“그래? B등급이라고 하니까 더 좋은 것도 있을 것 같아서 말야.”
―물론 더 좋은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나쁜 것들도 있죠.
“조준점은 어떤 스킬이야?”
―활이나 창, 투척류의 무기를 사용할 때. 조준점을 보여주는 스킬입니다.
“그래? 그럼 조준점에다만 쏘면 다 맞아?”
―정지한 물체라면 그렇습니다.
“오. 그럼 대박 아니야? 거의 뭐 총 쏘는 게임에서 에임핵 정도 되는 거 아냐? 활을 쏠 때 조준점에 맞춰서 쏘기만 하면 목표에 맞는다는 거지?”
―거의 그렇습니다.
“에임핵이면 B급보다 더 좋아야 되는 거 아냐?”
―A급 헌터들은 조준점 없어도 잘 맞추고, A급 마수들은 활에 마나를 담지 않는 이상 활에 맞아도 별 영향 없을 겁니다. 목표를 잘 맞추는 것은 B급 정도까지 도움이 된다는 뜻이죠.
“그래서 B구나.”
―A급에게는 별로지만, 그 이하 헌터들에게는 아주 좋은 스킬입니다. 특히 초보에게는 매우 좋은 스킬입니다.
“알았어. 그럼 이 스킬은 내가 써야 하나?”
―본인이 쓰셔도 되고 소환수에게 선물해도 됩니다.
“오, 스킬도 선물 가능하구나. 이거 조금 고민되는데?”
나는 조금 생각해 보았다.
조준점이라.
뭔가를 던지거나 쏘는 직업을 가진 사람에게 적당한 스킬이었다.
내가 뭔가를 던지거나 쏘게 될까?
내가 궁수가 될까? 총이 되나?
활을 들고 던전에 들어가는 궁수는 들어보았어도 총을 들고 던전을 돈다는 소리는 못 들어 봤다.
활을 든 소환술사.
음, 좀 별로다.
“샤샤가 원래 활을 좀 쓴다고 했으니 샤샤에게 주면 딱이겠네.”
―역시 대인배십니다. 참고로 5레벨당 스킬 뽑기 기회가 주어집니다. 또한, 스킬은 스스로 익힐 수도 있고, 스킬북을 구매할 수도 있습니다.
스킬북은 돈만 주면 살 수 있기도 했다.
물론 일반인들이 그렇다는 건 아니다.
각성자 중에서 돈만 많으면 이런저런 스킬북을 사서 스킬을 올릴 수 있다.
물론 비싸다. 그것도 많이.
“샤샤의 선물함 좀 열어봐.”
그러자 네모난 공간이 나타났다.
내 옷장 또는 양문형 냉장고 정도 되는 크기였다.
“오, 여기다 넣으면 되나?”
―네, 스킬 카드를 넣으면 샤샤에게 스킬 카드가 전달됩니다.
나는 샤샤의 선물함에 스킬 카드를 넣었다.
“이게 끝이야?”
―네. 이 선물함은 샤샤와 연결된 공간입니다. 민준 님은 선물함에 스킬이나 아이템을 넣을 수만 있고, 샤샤는 이 선물함의 아이템들을 사용할 수도 다시 넣어 보관할 수도 있습니다.
“오호. 샤샤에게는 이 선물함이 인벤토리 역할을 하는구나.”
―그렇습니다.
* * *
샤샤는 올가와 먹을 저녁을 준비하는 중이었다.
주식은 잡곡을 끓여 익힌 음식이다.
밥보다는 묽고 죽보다는 된 음식.
여러 가지 잡곡이 들어 있어서 나름 고소하다.
그리고 메인 반찬은 훈제 사슴 고기를 이용한 스튜였다.
고기류는 장기간 보관을 위해 훈제를 하거나 말리거나 소금에 절인다.
이를 끓여서 국으로 만든다.
고깃국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착착착.
통통통.
보글보글.
가벼운 칼질과 다듬는 소리가 경쾌했다.
요리를 하는 샤샤는 가벼운 콧노래를 불렀다.
“음음음~ 라라라.”
올가가 물었다.
“언니 뭐해?”
“어, 금방 저녁 해줄게. 기다려.”
“언니, 노래 불러?”
“아니야. 그냥 흥얼거린 거야.”
올가의 키는 샤샤의 허리 정도였다. 하얀 피부, 샤샤와 같은 에메랄드색의 눈동자, 그리고 밝은 하늘색 머리카락을 양갈래로 땋았다.
올가는 고개를 기울여 언니를 보았다. 오늘따라 언니가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때 샤샤의 귓가에 알림음이 들렸다.
띠링!
―선물이 도착하였습니다. 선물을 보시려면 선물함을 외치십시오.
“선물?”
요리하던 샤샤가 멈춰 섰다.
올가가 언니를 빼꼼히 올려다보았다.
샤샤가 말했다.
“선물함?”
그러자 크고 반투명한 공간이 나타났다.
사람 몇 명은 들어갈 만한 공간.
반투명한 공간은 샤샤의 시선에 맞추어 이리저리 움직였다.
“올가야, 너도 이거 보이니?”
“뭐가?”
올가는 언니가 뭘 말하는지 전혀 모르겠다는 눈빛이다.
“나에게만 보이는 건가?”
반투명한 공간의 한쪽 귀퉁이에 카드 한 장이 빛나고 있었다.
“카드?”
샤샤는 카드를 집어 보았다.
[스킬카드 조준점(B등급)을 익히시겠습니까? ‘네/아니오’를 선택해 주세요.]
“네.”
띠링!
[스킬 조준점을 익혔습니다.]
“스킬이 뭐지?”
샤샤는 스킬을 익히고 잠시 가만히 있었다.
뭔가 달라지는지 기다렸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음… 뭐가 달라졌는지 어떻게 알지? 아 맞다, 상태창!”
[샤샤]
직업: 소환수
레벨 1
힘 7
민첩 7
체력 6
마나 30
소환술사 : 김민준
거주 행성 : 글리제
연결된 행성 : 지구
스킬 : 조준점
“스킬이라는 게 생겼구나. 그런데 이게 뭐 하는 거지?”
다시 알람이 울렸다.
[조준점 스킬은 활이나 투척용 무기를 사용할 때 조준점을 보여주는 스킬입니다.]
“활을 사용할 때 조준점을 보여준다고?”
샤샤는 끓이던 요리를 불에서 잠시 내려 두었다.
그리고 활, 화살을 챙겨 앞마당으로 나갔다.
앞마당에는 나무판으로 만든 과녁판이 있었다.
샤샤는 화살을 활에 걸고 시위를 당겨 보았다.
그러자 눈앞에 붉은 점이 나타났다.
“어? 이건가?”
샤샤는 자연스레 화살촉 끝을 붉은 점에 맞춰보았다.
그리고 시위를 당긴 손가락을 놓았다.
피잉!
콱!
화살은 과녁판의 정중앙에 꽂혀 있었다.
“와…….”
샤샤는 다시 화살을 걸어 보았다. 그리고 시위를 조금 전보다 훨씬 세게 당겨 보았다.
그러자 붉은 점은 조금 전보다 아래쪽에 위치했다.
시위를 당긴 힘을 조금 빼 보았다.
그러자 붉은 점이 약간 위로 올라갔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붉은 점이 하나가 아니었다.
과녁판보다 살짝 위에도 붉은 점이 하나 있고 그보다 훨씬 위쪽에도 붉은 점이 있다.
저 위쪽 점은 뭐지?
샤샤는 시위를 세게 당기고 위쪽에 있는 붉은 점에 화살촉을 향하게 한 뒤 시위를 놓았다.
피잉!
아주 높이 솟아오르는 화살.
화살은 높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갔다.
콱!
그리고 과녁판 정중앙에 꽂혔다.
이렇게도 화살이 과녁판을 맞출 수 있구나
어느새 언니 옆에 와있던 올가가 말했다.
“와, 언니 활 엄청 잘 쏜다.”
샤샤가 말했다.
“그래, 그렇게 된 것 같아.”
샤샤는 자신이 화살을 명중시키고도 놀라고 있었다.
몇 번의 연습 후, 샤샤는 자신감이 붙었다.
그리고 뭔가 재미있는 것이 생각났다는 듯 올가에게 말했다.
“언니가 멋진 것 보여줄까?”
“응.”
샤샤는 활에 화살을 걸고 과녁판을 등졌다.
“후.”
심호흡한 뒤, 시위를 당겼다.
그리고 휙 뒤로 돌았다.
재빨리 붉은 점에 화살촉을 맞추고 시위를 놓았다.
핑!
화살은 과녁을 향해 날아가고.
샤샤의 회전 때문에 머리카락은 부채꼴 모양으로 넓게 퍼졌다.
흔들흔들 마치 물고기처럼 흔들리며 날아가는 화살.
콱!
화살은 당연하다는 듯 정중앙에 꽂혔다.
“와!”
짝짝짝.
올가가 박수를 쳤다.
씽긋.
샤샤가 미소를 머금었다.
올가가 말했다.
“언니.”
샤샤가 물었다.
“어, 왜?”
“나 배고파.”
샤샤가 서둘러 말했다.
“어, 미안. 얼른 들어가자.”
샤샤는 얼른 들어가 요리를 마저 했다.
주방에서는 아까보다 더 맑은 콧노래 소리가 울려 퍼졌다.
* * *
그리고 내 귓가에도 맑은소리가 울렸다.
―띠링, 친밀도가 1 올라갔습니다.
금쪽같은 소환수들
— 거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