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첫 소환
화아악!
내 방에서 밝은 빛과 공간의 떨림이 잠시 일어났다.
그 빛과 떨림이 멈추자 방바닥에 한 소녀가 앉아 있었다.
침대에 앉은 나, 방바닥에 앉은 소녀.
둘의 시선이 마주쳤다.
다른 세계의 사람인데 말은 통할까?
그래도 내 소환수라는데 말이 안 통하려나?
내가 손을 흔들며 말을 걸었다.
“안녕?”
샤샤는 잠시 나를 바라보았다.
3초 정도 정적이 이어졌다.
이 정적을 타파할 대화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머릿속에서 맹렬히 대화 소재를 찾고 있었다.
그때 샤샤가 얼굴을 찡그렸다.
그리고 다리를 부여잡으며 고통스러워했다.
“윽!”
아, 내 정신 좀 봐.
다리를 다쳐서 고통스러워하다가 낯선 공간에 떨어진 아이에게 안녕이라니.
일단 다리부터 치료해야겠다.
“잠시만 기다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구급상자를 찾았다.
구급상자가 어디에 있더라.
분명히 어디 뒀는데.
구급상자 안에는 힐링 포션이 있었다.
그 포션을 믿고 과감하게 소환을 했는데, 구급상자가 보이지 않았다.
이 조그만 방안에서 왜 구급상자가 보이지 않는 거야.
찬장 위에도 없고, 책상에도 없고, 싱크대 아래쪽에도 없고, 화장실 거울장 속에도, 거울장 위에도 없었다. 옷장 깊숙한 곳에 있을까 봐 옷을 꺼냈다.
알파가 물었다.
―민준 님, 뭐하십니까?
“아니 구급상자가 안 보여서 찾는 중이야. 잠시만, 아! 찾았다.”
구급상자는 침대 밑 구석에 있었다.
“잠시만.”
나는 침대 밑에 손을 집어넣어 구급상자를 꺼내려 했으나, 손이 닿지 않았다.
얼른 옷걸이 하나를 들고 침대 밑에 손을 집어넣어 보았다.
역시 손이 닿지 않았다.
어떻게 넣어둔 거지?
한참을 낑낑대다가 결국 침대를 들어내고서야 구급상자를 꺼냈다.
“휴, 드디어 꺼냈다.”
나는 구급상자를 찾느라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옷 바구니를 얼른 옷장에 집어넣으며 말했다.
“하하, 집안이 조금 엉망이지?”
달카닥.
구급상자를 열었다.
플라스틱 상자에 2단으로 구성된 구급상자.
각종 밴드, 연고, 항생제가 들어 있었다.
상자의 플라스틱 단을 들어내니 그 밑에 고급스러운 유리병에 든 힐링포션이 나왔다.
“짜잔, 이거 나름 비싼 거야. 우리 엄마가 자취하는 아들 혹시 다칠까 봐 보내주신 것이지.”
힐링포션.
물리적인 상처에는 극적인 치료 효과를 보이는 물건이다.
던전이 세상에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예를 드는 대표적인 물건.
약 50년 전 포탈이 열리고 던전이 개방되었다고 한다.
다양한 던전 속에는 지구에는 볼 수 없는 수많은 종의 풀, 나무, 동물이 있었다.
물론 포탈이 생긴 초창기에는 몬스터가 인류의 생존을 크게 위협하는 시기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내 각성자가 등장했고, 그들은 포탈을 타고 넘어가 몬스터를 사냥하며 헌터라 불렸다.
이제 포탈은 통제 가능한 자원이 되었다.
통제 가능한 자원에서 생산되는 새로운 신문물.
어느 유명한 학자는 인류의 시대를 포탈 전, 후로 나누기도 한다.
새로운 산업이 발전하였고, 이렇게 자취생의 침대 밑에까지 힐링 포션이 공급되었다.
다리가 부러진 것 정도는 한 병으로도 치유할 수 있는 물약.
나는 자신 있는 표정으로 힐링포션을 내밀며 말했다.
“치료제야. 마셔.”
* * *
샤샤는 낯선 공간에 소환되었다.
새로운 환경에 긴장했다.
산비탈에서 소환에 응하겠냐는 글자가 보였고 ‘네’를 선택했었다.
다른 선택의 여지도 없었다.
소환될 때 꿀렁임이 느껴졌고 약간 어지러웠다.
침대에 걸터앉은 남자
저 사람이 소환술사인가 보다.
그가 말했다.
“안녕?”
낯선 언어이지만 이상하게도 알아들을 수 있었다.
다리의 통증이 다시 심해졌다.
“윽!”
잠시 쉬고 있는데 남자는 어수선하게 뭔가를 찾기 시작했다.
뭐 하는 거지?
온 방 안을 구석구석 뒤진다.
그러고 보니 신기했다.
모든 가구가 반듯하다.
문, 옷장, 책상.
모든 것이 똑바르다.
울퉁불퉁하거나 휘어진 것도 없다.
거친 면도 없다.
재질도 특이했다.
나무가 아닌가?
심지어 천장의 빛도 네모반듯하다.
알 수 없는 재질, 반듯한 집안.
아빠가 만든 책상, 침대와는 다른 장인의 손길이 느껴진다.
깔끔하고, 간결하다.
소환술사라더니 역시 대단한 사람인 것 같다.
귀족인가?
집안 가득 매우 비싼 물건들로 가득 찬 것 같았다.
그런데 왜 저러고 있는 거지?
침대 밑에 어깨를 집어넣고 바둥거리고 있다.
잠시 후, 그가 물약을 꺼냈다.
의기양양한 표정.
익숙한 표정이다.
동생인 올가가 칭찬받고 싶어 할 때의 표정이다.
그가 말했다.
“치료제야, 마셔.”
어설픈 모습이 왠지 더 신뢰가 갔다.
적어도 나쁜 사람 같지는 않아 보였다.
꿀꺽.
화아악!
마시자마자 느껴지는 청량감
몸 안 전체가 상쾌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순간.
다친 다리가 따뜻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뿌듯해하는 남자.
물약의 효과는 놀라웠다.
* * *
나는 샤샤가 물약을 마시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샤샤의 다리 상태가 호전되는 모습을 살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내가 말했다.
“자, 몇 분 지났으니 이제 한 번 일어나봐. 괜찮을 것 같은데?”
샤샤가 조심스레 다리에 힘을 주었다.
아프지 않은지 곧 무게를 실어 보았고 이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때, 포션 죽이지? 그거 국산이야.”
샤샤는 놀라웠다.
한순간에 다친 다리를 낫게 하는 치료제.
이런 치료제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이렇게 귀한 치료제를 자신에게 사용하다니.
조금은 감동했다.
샤샤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고마워요.”
내가 두 손바닥을 흔들며 말했다.
“아니야, 괜찮아.”
요즘에는 이 정도 포션은 집집마다 한 병씩은 보관하곤 한다.
걱정이 많은 사람들은 포션을 종류별로 사다 놓기도 한다.
포션 보관함을 따로 비치해 두기도 한다.
가정집에는 소화기와 포션은 필수라고.
그런데 이 정도쯤이야.
내가 말했다.
“이제 내가 소환술사, 그리고 샤샤가 내 소환수가 된 거잖아. 원래 자기 소환수 체력 안 떨어지게 포션 먹이는 것도 소환술사가 해야 할 일이야. 원래 그래.”
샤샤가 물었다.
“그러면 제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요?”
할 일?
그러게 갑자기 물으니 당황스럽네.
나도 아직 준비된 헌터가 아니라서 말야.
“할 일이라. 글쎄. 아직 깊게 생각 안 해봤는데.”
알파가 말했다.
―일단 소환수 상태창부터 보시면 어떨까요?
“오, 알파. 좋은 생각이야. 샤샤 상태창.”
[샤샤]
직업: 소환수
레벨 1
힘 7
민첩 7
체력 6
마나 30
소환술사 : 김민준
거주 행성 : 글리제
연결된 행성 : 지구
스킬 : 없음
친밀도 : 60
나는 샤샤의 상태창을 보았다.
레벨 1에 힘, 민첩, 체력은 그냥 소녀스럽다.
그런데 마나가 30이네.
“오~ 마나가 30인데?”
―글리제에는 지구보다 마나가 풍부합니다.
“역시. 내가 운빨이 좋아. 그런데 친밀도? 이건 뭐지?”
―친밀도는 소환술사에게만 보이는 항목입니다. 소환수가 소환술사에게 느끼는 친밀감입니다.
“그래? 이건 어떤 용도인데?”
―소환을 요구하신다고 무조건 소환수가 소환되는 것이 아닙니다. 소환수가 소환에 응해야 소환되는 것입니다. 친밀도가 낮으면 거절하겠죠. 심하면 계약이 파기될 수 있습니다.
“그렇구나.”
알파와 이야기를 하던 중 샤샤를 보니 눈만 깜빡이며 날 보고 있었다.
“아이고, 내 정신 좀 봐. 나름 손님인데 뭐 먹을 것도 안 꺼내고 있었네.”
나는 그제야 밥상용으로 쓰던 네모난 접이식 탁자를 꺼냈다.
접이식 탁자 다리를 하나씩 펴서 샤샤 앞에 두고 냉장고에서 먹을 것을 찾아보았다.
그런데 먹을 것이 별로 없다.
긁적긁적.
머리를 긁었다.
남자 혼자 사는 자취생이 다 그렇겠지만 꺼내줄 만한 게 없었다.
냉장고에는 물, 맥주, 손바닥 절반 크기로 한 봉지씩 낱개 포장해서 파는 김치뿐이다.
아, 맞다, 과자.
새우맛 과자가 있었다.
나는 물 한 잔 따라 주고 새우맛 봉지 과자를 간신히 하나 찾아서 뜯었다.
“하하. 차린 건 없지만, 편히 먹어.”
맹물에 봉지 과자 하나. 정말 차린 게 없었다.
다음엔 뭐라도 좀 사다 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샤샤는 어떤 일을 주로 해?”
나는 진로 상담을 하는 고3 담임에 빙의 된 듯 샤샤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샤샤가 어떤 타입인지 알아야 앞으로의 계획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었다.
샤샤가 전투 계열이면 던전을 돌면 된다.
그런데 보아하니 여리여리한 게 어디 가서 몬스터 썰러 가자고 말하기 좀 그렇다.
그래도 나름 마나가 30이다.
내 마나가 10인데 나보다 세 배나 높다.
꼭 전투 계열이 아니더라도 잘 찾아보면 적절한 진로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생산직으로 유명한 헌터들도 많고 비전투 보조 업무로도 한 사람 몫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면 저 얼굴로 아무 장사나 해도 손님들이 줄을 설 것 같았다.
샤샤가 말했다.
“저는 주로 빨래나 청소, 요리 같은 집안일을 해요. 집 앞에 텃밭이 있는데 텃밭을 키우는 것도 주로 제가 하고, 마당에서 닭도 키우는데 닭장 관리도 거의 제가 해요. 아빠는 사냥꾼이라 며칠씩 집에 안 들어오시거든요. 어머니는 오래전에 돌아가셔서 아빠, 저, 동생. 이렇게 셋이서 살아요. 동생이 아직 어려서 동생을 돌보는 일은 주로 제가 담당하고 있어요. 가끔 이웃집 할머니가 동생 올가를 돌봐주시고 제가 산에서 나물을 캐올 때도 있어요. 오늘도 올가를 할머니에게 맡기고 산에 올라간 것인데 이렇게 되었네요.”
와. 살림꾼이었구나.
“샤샤야. 다른 게 아니라, 샤샤가 내 소환수가 되었으니 샤샤를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키워야 할지 고민이라서 그래. 보통은 몬스터를 죽이는 헌팅을 하긴 하지만, 꼭 몬스터를 죽이지 않아도 길이 많이 있거든. 요리를 잘한다고 하니까 요리사 스킬을 구해서 요리를 만들어도 돼. 샤샤는 마나가 많으니까 마나를 활용한 요리를 잘 만들 수 있을 것 같아. 샤샤네 대륙에서만 나는 식재료를 이용한다면 더 특색있는 요리사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 쉽게 말해서 식당 하나 내는 거지. 스킬 요리 전문점. 뭐 이렇게.”
말해놓고 보니 괜찮아 보였다. 샤샤에게는 평범한 산나물이지만, 이쪽 동네에서 보기에는 생전 처음 보는 식재료다. 희귀성. 식당 하나만 잘 돼도 돈 걱정은 안 하고 살 것 같았다.
샤샤가 말했다.
“몬스터 헌팅도 괜찮아요.”
“뭐?”
“트랩을 설치하거나, 멀리서 화살을 쏘아 잡는 건 저도 할 수 있어요. 우리 마을에서 활을 못 다루는 건 아직 어린 제 동생인 올가뿐일걸요? 저도 트랩을 설치해서 겨울 때마다 토끼를 잡고, 노루도 활로 여러 번 잡아 봤어요. 자주 하진 않지만, 활쏘기 연습도 가끔 해요. 이웃집 할머니도 젊으셨을 때는 명사수라고 하시더라구요. 그리고 저희 마을이 워낙 산에 있어서 몬스터가 가끔 나오거든요. 그럴 때는 남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전력을 다해야 하거든요. 2년 전에 오크 떼가 저희 마을을 습격한 적이 있었어요. 그때는 저도 열심히 화살을 쏘았어요. 이렇게 보여도 나름 사냥꾼의 딸이랍니다.”
이래서 진솔한 대화가 중요한 법이다.
저 여리여리한 아이가 오크에게 화살을 날려 보았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사냥꾼의 딸이라니, 그 이름에서 여전사의 냄새가 물씬 풍겼다.
“그렇구나. 그런데 샤샤야. 너무 무리하지는 않아도 돼. 나 막 소환수를 갈아 넣어 렙 올리는 그런 악덕 소환술사 아니야.”
샤샤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런 것 같아 보이세요.”
그래 보인다고? 역시 나의 착함이 뿜어져 나오나 보다.
큭, 역시 나란.
“그럼 동생한테 가야 하는 사람을 너무 오래 붙들었나 봐. 산도 내려가야 할 텐데. 알파야.”
―네.
“소환했다가 다시 돌려보낼 때 내가 원하는 곳으로 돌려보낼 수는 없나?”
―현재는 그런 스킬은 없습니다. 소환 후, 돌려보낼 때는 소환한 장소로 돌아갑니다.
“그렇구나. 샤샤야 만나서 반가웠어. 산 내려가야 하는데 얼른 가봐. 앞으로 잘 지내보자구.”
“네, 민준 님. 고마웠어요.”
나는 탁자 위에 놓여있던 봉지 과자를 샤샤 손에 쥐여주며 말했다.
“동생이 올가라고? 동생 줘.”
“감사합니다.”
나는 두 손을 흔들었다.
샤샤도 손을 흔들었다.
“안녕, 소환 해제.”
파앗!
샤샤가 산으로 돌아갔다.
“알파야. 창, 샤샤한테 띄워봐.”
―네.
창이 띄워지고 샤샤가 보였다.
샤샤는 탁탁 발을 굴러 보았다.
발이 다 나았는지 확인하는 것 같았다.
샤샤는 문득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목례를 했다.
오, 나한테 하는 인사 같았다.
나는 두 손을 반갑게 흔들었다.
아, 맞다. 샤샤에게는 내가 안 보이지.
샤샤는 경쾌한 발걸음으로 산을 내려갔다.
산골 소녀라서 그런지 산을 타는 모습이 아주 능숙해 보았다.
* * *
샤샤는 마을에 도착해 얼른 올가부터 찾았다.
집에 도착한 샤샤가 올가에게 말했다.
“할머니 말씀 잘 듣고 있었니?”
“그럼 나 착하잖아. 언니 나물 많이 캤어?”
“아니.”
“오늘은 나물을 못 찾았어?”
“응, 나물은 못 찾았는데 더 좋은 걸 가져왔지.”
샤샤는 가방에서 봉지 과자를 꺼냈다.
얇고 반짝이는 과자봉지.
봉지 자체만으로도 범상치 않은 물건 같았다.
“언니, 이게 뭐야?”
“먹을 거래.”
“과자야?”
“응, 언니도 잘 몰라. 한 번 먹어보자.”
올가가 과자를 하나 입에 물고 씹었다.
바사삭!
올가가 놀랐는지 눈을 크게 떴다.
바삭하고 씹히는 소리에 샤샤는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소리가 범상치 않았다.
샤샤도 과자 하나를 입에 넣어 보았다.
바삭!
와, 이런 바삭함이라니.
그리고 바다 향기가 났다.
산골에는 바닷가 음식이 귀했다.
날생선은 엄두도 못 내고, 명절이나 생일이나 되어야 마른 해산물을 구경할 수 있었다.
그런데 과자에서 바다 향기라니.
이 과자.
귀한 음식이었구나.
상상하지 못한 치료제로 치료해주고.
이렇게 귀한 음식을 챙겨줬다.
샤샤는 이런 대접을 처음 받아 보았다.
샤샤는 올가가 정신없이 먹고 있는 과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소환술사의 모습이 떠올랐다.
왠지 어설퍼 보이던 모습.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 * *
샤샤가 기분 좋아서일까?
내 귓가로 듣기 좋은 소리가 울렸다.
―친밀도가 1 올랐습니다.
금쪽같은 소환수들
— 거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