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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재벌 사위로 살겠다-226화 (225/229)

226화. 64th. Last All-in (3)

오현무에게 미팅을 요청한 나는 GK그룹 본관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정신없이 건물 안으로 내달렸다.

‘외가에서 신성전자 주식을 그렇게나 많이 들고 있었을 줄이야···.’

할아버지의 말을 듣고 외가 사람들이 신성전자 차명주주들이라는 사실에 놀람을 숨기지 못했다. 10여 퍼센트가 넘는 신성전자 주식을 쥐고 있었다니···.

그 주식까지 내 손에 넣으면 단숨에 신성지주를 재끼고 신성전자 최대주주가 될 수 있다.

그건 곧 신성그룹이라는 집에서 대체할 수 없는 대들보인 신성전자를 뽑아버리고 신성그룹, 그리고 내 처가인 장 씨 가문을 와르르 무너뜨릴 수 있다는 거다. 내 손으로!

심호흡을 하며 흥분을 가라앉히는 사이, 내가 몸을 실은 엘리베이터가 띵동 소리와 함께 열렸다. 나는 최대한 차분하게 발걸음을 내딛으며 회장 집무실에 도착했다.

“안녕하십니까, 회장님.”

“허허, 회장은 무슨. 어서 오너라, 성민아.”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다가온 오현무는 내 등에 손을 얹으며 소파로 함께 가서 앉았다. 나는 비서가 가져온 차를 오현무와 함께 마시며 긴장을 풀었다.

“오늘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외삼촌.”

“고생이랄 게 있겠느냐. 스탠더드에 진 빚을 이제야 조금이라도 갚은 것 같구나, 허허.”

우리 외삼촌, 피는 못 속인다고 그간 안고 있던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닌 모양이다. 당신 입으로도 조금이라고 한 오늘의 도움에 너털웃음을 터뜨리다니.

“많이 부담되셨나보네요, 후후.”

“말이라고? 수십조 원이나 밀어줬는데 어느 재벌이 부담스럽지 않을까?”

“그럼··· 제가 그 부담 한 번에 다 털어낼 방법 알려드려도 되겠습니까?”

마음의 준비를 하고자 잠시 뜸을 들이고 던진 제안에 오현무의 눈이 커졌다.

“무슨 방법이냐?”

“외가 분들이 갖고 계신 신성전자 주식, 스탠더드에 넘겨주십시오.”

한 방에 푹 찌르고 들어가자 오현무의 눈이 커졌다.

“신성전자 주식을 달라니? 신성전자 세울 때 네 외증조부님께서 네 처조부와 절연까지 하신 걸 모르는 거냐?”

알고 있다. 오랜 지기인데다 사돈인데도 장병호가 전자사업에 나서겠다고 하니 외증조부님께서 상종 못할 인간이라는 면박을 주고 사업이든 인간관계든 대번에 정리하지 않았나?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 눈앞에서는 절연까지 하셨죠. 하지만.”

뼈가 있는 대답을 내놓은 나는 오현무의 굳은 얼굴을 담담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천하의 신성그룹조차도 6,70년대에는 다른 재벌들을 압도하지는 못했었습니다. 전자사업을 하고 있던 여러 재벌들을 한꺼번에 적으로 만드는 미친 짓은 제 처조부님에게도 부담이었을 테니까요.”

“···.”

처음으로 면전에서 거친 소리를 내뱉는 나를 오현무는 아무런 말도 않고 뚫어지게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런데도 제 처조부님은 전자사업을 하고 싶었던 터라 신성전자 주식을 넘겨주는 조건으로 타협을 요청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신성전자 창립 전까지만 해도 GK전자, 아니 금성전자가 국내 최고의 전자회사였으니 가능한 일이었죠.”

그 뒤로도 나는 할아버지에게서 들은, 이면 거래들과 최근까지 명동 사채조직을 통해 파악해둔 차명주주 정보를 오현무에게 말했다.

“어떠십니까, 외삼촌? 제 말이 틀렸습니까?”

취조하듯 외삼촌을 대하는 게 내키진 않았지만 지금 외가 사람들의 신성전자 차명주식을 못 가져오면 처가 놈들을 무너뜨릴 수 없다. 앞으로 메모리 반도체든 파운드리든 1위는 GSMC에 뺏기겠지만 2위는 지킬 신성전자 아닌가?

굳은 표정으로 바라보던 오현무가 어느 새 미지근해진 차를 단숨에 들이켰다.

“후우··· 삼청동 사돈어른께서 알려주신 게냐?”

“네. 세상 사람들은 와해됐다고 알고 있을 우리 집안 사채조직을 움직여 파악했으니 큰 틀에서는 맞을 겁니다.”

장하연에게도 알려주지 않은 우리 집안 사채조직의 실재에 대해 알려줬지만 지금 이 자리는 신성그룹을 내 손에 넣느냐가 달린 자리다. 밝힐 건 최대한 밝혀야 얻어낼 수 있고 할아버지도 그리 하라고 하셨으니 거리낌이 없었다.

굳은 내 눈을 보며 오현무가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쉬었다.

“네 말이 맞다. 지금의 신성전자 주식 중 15퍼센트가 우리집안, 아니 우리 그룹 거란다.”

오현무가 사실을 인정한 걸 듣고 눈이 커졌다. 신성전자 주식 15퍼센트면 확실하게 판을 뒤집을 조커 아닌가?

“외, 외삼촌?”

너무 놀라서 말까지 더듬었지만 오현무는 그런 내 모습에 개의치 않고 이야기를 계속했다.

“장병호 그 인간이 처음으로 네 외증조부님 앞에서 무릎 끓고 사정했었다. 상장하고 나면 주식을 넘겨줄 테니 신성전자를 세울 수 있게 다른 업체들을 설득해달라고.”

‘두려울 게 없었다던 장병호가 무릎까지 꿇고 사정했을 줄이야···.’

장병호가 얼마나 전자사업을 하고 싶었으면 무릎까지 꿇었겠냐마는 신성그룹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흑역사일 것이다. 추악하든 아름답든 태현과 해동이 계열분리를 한 마당에 다시 재계 1위를 탈환했던 신성그룹에 얼마나 치욕적이겠나?

“손해 보는 거래가 아니겠다 싶어서 네 외증조부님도 받아들이고 다른 전자업체들을 설득한 끝에 정부에 타협안을 제시했지. 차명이지만 약속대로 주식도 넘겨받았고.”

그 뒤로도 오현무는 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려줬다.

“외가에서 RD램을 선택한 게 신성전자와 협상한 결과였다고요?”

“그래. 네 처가에서 우릴 통해 RD램에 발을 걸치고 싶다며 히타치와 딜을 주선해주고 GK전자 주식도 차명으로 매입했어. 외환위기 때 전부 정리됐지만 말이야.”

결국 신성과 GK는 볕 드는 땅과 그늘진 땅 양쪽을 통해 DDR램과 RD램 양쪽에 다리를 걸쳐둔 셈이었다. 오현무는 쓴웃음을 머금으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우리 쪽 국내 차명계좌에 담겨 있던 주식은 외환위기 때 처분했지만 그 주식을 거둬들인 투자회사들 또한 우리 그룹 자금을 관리하고 있단다. 덕분에 해외투자회사 자금을 국내로 들여오면서도 주식은 우리 집안 내에서 돌고 돈 셈이지.”

‘우리 외삼촌, 아니 우리 외가도 뼛속까지 재벌이군, 후후.’

주식은 주식대로 지키고 그 주식을 팔면서 국내계좌에 해외비자금까지 들여왔으니 절묘한 수였다. 겉과 속 모두 쓴웃음을 짓던 나를 보며 오현무도 쓴웃음을 지었다.

“안다. 나도 이게 추잡한 짓이라는 걸. 여하튼 언젠가는 이 주식을 요긴하게 쓸 날이 올 거라 생각했는데···.”

말끝을 흐리던 오현무가 목소리를 뚜렷하게 냈다.

“네가 이 주식을 가져간다고 해도 지금의 네게는 큰 의미가 없단다, 성민아.”

“무슨 말씀이십니까?”

“넌 이미 충분히 많은 걸 가졌다. 더군다나 신성그룹은 네가 투자했다던 타이타닉과 다를 게 없어. 그런데 왜 그리 신성전자에 집착하는 거냐?”

틀린 말은 아니다.

삼십대 초반에 재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해동그룹의 총수가 되었고 수천억 달러의 자산을 굴리는 스탠더드 캐피털의 오너이자 헨리와 아이작을 비롯한 인맥들도 화려하게 쌓았으니까. 하지만···.

‘장 씨 가문 손에서 신성그룹을 뺏기 전까지 제 한은 안 풀릴 겁니다.’

장호건에게는 전생의 오해가 풀린 만큼 고맙고 미안했지만 장용재와 장수연 그것들은 가만 놔둘 수 없었다. 날 죽인 연놈들 아닌가?

그놈들을 죽지 못해 살게 만들어야 했지만 사실을 말할 수 없기에 가장 납득할 것 같은 이유를 내놨다.

“8.3 사채동결 때 당시 1천억이나 되는 우리 집안 돈과 함께 신뢰도 저버린 처조부, 아니 장병호 회장입니다. 아닙니까, 외삼촌?”

“네가 그걸···.”

당황하던 오현무가 나를 보며 허탈한 미소를 지었다.

“사돈어른께서 들려주셨겠구나. 네가 해동그룹 총수가 되었으니.”

해동그룹의 총수가 되기 전에 들었던 이야기지만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장단을 맞춰나갔다.

“네. 아주 더러운 술판을 벌였다고 들었습니다. 외조부님께서는 그 술판에 가지도 않으셨고 그 소식을 증조부님과 할아버지께 알리셨죠. 돌아가신 명진호 회장님이야 외환위기 때 사과를 하셨으니 앙금이 풀어졌고요. 그렇지만.”

잠시 숨을 고른 나는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장병호 회장과 처가 사람들은 끝까지 모른 체하고 있으니 원금과 이자까지 전부 받아내야죠.”

집안의 원한에 내 원한까지 합쳐서 원금과 이자를 전부 받아낼 방법은 신성그룹을 장 씨 것들의 손에서 빼앗는 것이다. 무엇보다···.

“장병호 회장, 하연이를 없는 사람 취급했다고 합니다. 장인어른이 밖에서 데려온 아이라고요.”

“네 안사람이··· 혼외자식이었단 거냐?”

적잖이 놀랐는지 잠시 멈칫했던 오현무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적서(嫡庶)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외삼촌. 저는 하연이가 하연이라서 같은 방에서 같은 침대를 쓰고 있으니까요.”

천연덕스러운 내 대답에 오현무가 헛기침을 했다.

“흠흠··· 좀 남사스럽구나, 성민아.”

“죄송합니다, 외삼촌. 그래도 그런 하연이, 이제는 제 여자가 된 하연이가 성의원을 차지하면 장병호 그 영감이 지하에서 어떨 것 같습니까? 처가 사람들은 또 어떻고요?”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이지만 내 여자가 된 장하연이 성의원을 차지하면 장병호는 지하에서 통곡하다 피를 토하고 또 죽을 것이다. 살아있는 처가 놈들은 더할 테니 그보다 더 통쾌한 복수가 있을까?

“이제 보니 우리 조카, 매제랑 미현이 피를 물려받은 게 아니라 삼청동 사돈어른 피를 물려받은 것 같구나, 허허.”

오현무의 평은 틀렸다.

난 분명히 내 아버지 이명우와 어머니 오미현의 피를 물려받아서 부드럽다 못해 물러터진 놈이다.

허나 모든 걸 겪고 돌아온 이상 내 본성대로 살기에는 내 분노와 원한이 너무 무거웠다.

이 짐을 내려놓지 않으면 내가 쥔 부와 명예, 권력에 상관없이 평생 패배자로 살 것 같았기에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것뿐이었다.

“불필요하게 적을 만들 필요는 없지만 불구대천지수 (不俱戴天之讐)와는 사생결단을 내야하니까요. 그래서 스탠더드를 통해 외가 쪽 차명주식을 확보하려는 겁니다.”

“흠···.”

오현무의 입에서 흘러나오던 침음성이 멈췄다.

“스탠더드에서 도와주겠다고 한 거냐?”

아직도 스탠더드와 내 관계에 대해 모르는 질문도 질문이지만 오현무의 목소리와 눈빛에서 걱정이 느껴졌다.

“스탠더드에 너무 의지하는 것 같으십니까?”

조심스러운 내 질문에 오현무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전경련에서의 일만 해도 스탠더드의 손을 탄 사람들이 움직이지 않았더냐? 내 주제에 할 말은 아니다만 외국 자본인 스탠더드의 입김이 지나치게 커져서 걱정이구나.”

실제로도 스탠더드 캐피털은 이 나라 최대의 외국인 투자자다.

해동자동차와 GK그룹은 말할 것도 없고 미룡그룹 재건, 태현자동차그룹 우호지분, 태현그룹의 할인점 사업 진출에 투자한 돈만 얼마인가? 다른 그룹들과 은행권에 깔아둔 초장기채와 주식은 또 어떻고?

애국심이든 불안감이든 오현무는 스탠더드의 도움과는 별개로 그 영향력이 너무 커진 게 우려되는 모양이었다. 이제는 우리 외삼촌에게도 사실을 알려줄 수밖에.

“걱정하실 거 없습니다.”

“무슨 소리냐?”

“스탠더드 캐피털, 제 회사니까요.”

그 뒤로도 나는 외삼촌과 차를 마시며 스탠더드 캐피털의 창립부터 지금까지 벌여온 일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오현무는 입이 떡 벌어지거나 눈이 크게 뜨이다가도 호탕하게 웃는 등 평소의 점잖은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우리 성민이가 이렇게 컸을 줄이야···.”

“신성그룹을 제 와이프에게 안겨주고 나면 GK와 신성, 해동이 글로벌 IT산업계를 지배하게 될 겁니다.”

교만해보일 법한 내 말에도 오현무는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암, 그러겠지. 신성이 경쟁자에서 동맹으로 바뀌면 두려울 게 하나도 없을 거다, 으하하.”

또 한 번 호탕하게 웃던 오현무가 눈가에 맺힌 이슬을 걷어냈다.

“그럼 이 외삼촌이 네 외할아버지에게도 말씀드려야겠구나. 스탠더드가 네 회사이니 우리 집안의 신성전자 차명주식을 전부 스탠더드에 넘겨야 한다고.”

“기왕이면 집안 분들 돈도 스탠더드에 맡겨주라고 하세요. 명선구 회장과 명의진 돈도 굴려주고 있는데 외가 분들을 빼먹을 수는 없죠, 흐흐.”

외가 사람들의 재산도 절대 무시할 수 없는 규모다. 틈새를 놓치지 않고 영업을 하자 외삼촌이 피식 웃었다.

“알았다, 인석아. 그래도 네 외할아버지하고 수찬이, 현준이 외에는 스탠더드가 네 회사라는 거 절대 말하지 않으마.”

“네, 외삼촌.”

***

오현무와의 미팅을 마친 나는 스탠더드 캐피털 사옥으로 돌아갔다.

“어떻게 됐어?”

“차명주식 팔겠다고··· 아니 있다고 하셨습니까?”

마른침을 삼킨 선해철과 박태진을 보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잘 풀렸습니다. 제가 스탠더드 캐피털 주인이라고 밝혔더니 외가 분들 쌈짓돈까지 우리 회사에 맡겨야겠다고 하시더라고요, 하하.”

껄껄 웃던 나는 외삼촌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이야기가 끝나자 선해철이 혀를 내둘렀다.

“햐아··· 너희 외가도 재벌은 재벌이구나.”

“이 이야기가 세상에 드러나면 한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 반도체 업계가 뒤집어질 겁니다, 의장님.”

박태진조차도 얼굴에서 놀람을 숨기지 못했다. 그의 말대로 전 세계 각국에서 두 회사가 담합을 했다고 공격할 일이 아닌가?

“여하튼, 주식 넘겨받으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합니다. 본사에 연락해서 사모펀드 몇 개 만들고 주식부터 넘겨받죠.”

신성전자 주식을 넘겨받아도 넘어야 할 관문이 더 남아있다. 나는 곧바로 컴퓨터 앞에 앉아서 본사에 보낼 메일을 작성했다.

***

그날 바로 스탠더드 캐피털 본사에 메일을 보내자마자 우리 자금이 들어간 사모펀드 몇 개가 설립, 일주일간의 장내거래와 장외거래를 거쳐 신성전자 주식이 내 손에 들어왔다.

“이제야 거래가 끝났네요.”

“이제 미국에 가면 되겠네?”

선해철의 능글맞은 미소를 보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죠. 만나봐야 할 인간이 있으니.”

그놈의 목을 틀어쥐고 거래를 하면 게임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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