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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재벌 사위로 살겠다-222화 (221/229)

222화. 63th. 폭발적인 마케팅 (4)

보험을 인수하겠다는 장민재, 아니 신성그룹 장 씨 가문의 결정을 나는 믿을 수 없었다.

‘재보험 계약도 안 했는데 어떻게···?’

일회성 보험이라도 1조 원 규모의 초대형 보험 계약이면 재보험을 드는 게 상식이다. 재보험도 안 들고 내 보험을 들어주겠다니?

[매형? 전화 받고 있습니까?]

장민재의 의구심 섞인 목소리에 나는 얼른 정신을 차렸다.

“···받고 있지, 하하.”

[연락이 늦어서 당황하셨나보네요. 내부 검토 때문에 많이 늦었습니다, 하하.]

그랬을 것이다. 한국 축구팀 내부 정보를 캐내려고 얼마나 용을 썼던가? 신성그룹에서.

“오케이. 이따 저녁 때 계약하자고, 하하.”

통화를 마치고 수화기를 내려놓은 나는 절로 미간이 좁아졌다.

‘신성카드 믿고 그러는 건가?’

오현무가 내 조언을 수용하여 GK카드의 팽창을 멈추고 숨고르기를 하는 사이, 신성카드는 장민재와 다른 장 씨 3세들의 공격적인 영업에 힘입어 천오백만 회원 모집을 달성했다. 이번 상반기 예상순이익만 8천억을 찍을 거라던데···.

침음성을 흘리던 나는 장민재가 배짱 좋게 나온 근거가 뭔지 하나씩 곱씹던 중 눈이 커졌다.

“설마···?”

내가 짚이는 확실한 게 있었다.

‘해외비자금?’

신성그룹의 해외비자금도 만만치 않은 규모를 자랑한다. 내 기억을 토대로 추측하면···

“흐흐흐···.”

처음 계획한 시나리오와는 틀어졌지만 처가 놈들의 해외비자금을 홀라당 털어먹는 것 또한 아주 큰 성과다. 나조차도 소름이 돋을 만큼 음침한 웃음을 흘리던 나는 아이작에게 전화를 걸었다.

“납니다, 아이작. 방금 전에 보험 계약 체결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신성 놈들이 재보험도 안 들고 계약을 하겠다고 했습니까?]

“해외비자금으로 재보험을 인수하려는 모양입니다. 모건 놈들도 움직이지 않은 걸 보면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흐흐.”

음침하게 웃는 나와 달리 수화기에서는 아이작의 호탕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하하하! 의외의 수확이군요. 그럼 나와 아저씨는 모건 놈들이 움직이지 못하게 정보를 교란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아이작.”

미국 친구들이 손을 써주면 코주부 모건 놈들도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에 손을 쓰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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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오후.

이수한, 장민재 등 신성그룹 사람들과 만나서 점심을 먹은 나와 박태진, 고승주, 금석호는 마케팅 보험 계약을 체결한 뒤, 다른 그룹 수뇌부들과 함께 삼청동 본가로 집합했다. 늘 그렇듯 서재 테이블 앞에 앉은 우리는 할아버지에게 이번 마케팅 보험에 대해 보고를 올렸다.

“···그러니 적어도 손해는 안 볼 겁니다, 고문님. 어쩌면 일석이조 이상의 효과를 보게 될 겁니다.”

배재훈이 내놓은 의견에 할아버지가 피식 웃었다.

“그러겠지. 이놈 말대로 시추공 뚫었더니 단번에 미얀마 가스전이 줄줄이 터졌잖나? 으허허.”

“그렇지요. 말이 나와서 드리는 건데 미얀마 가스전 플랜트 공사는 이 의장 의견에 따라 태풍을 보낸 뒤에 시작할 예정입니다, 하하.”

올해 몰아칠 태풍 ‘매미’의 위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동남아부터 동북아시아를 쓱 훑으며 지나가는 곳마다 초토화시킬 초강력 태풍이니 공사시기를 늦춰야 한다.

“백화점과 마트도 전부 준비됐습니다. 식품과 사치품 모두 거래처들에게 프리미엄을 지급하고 우선공급 받기로 했으니 우리나라가 계속 이겼으면 좋겠습니다, 흐흐.”

“자동차도 24시간 풀가동 체제를 준비했습니다, 고문님. 본선에 진출하기만 해도 마케팅 보험료를 회수하고 회사 홍보도 할 수 있으니 특근수당은 아끼지 않겠습니다, 하하.”

“뿐만 아니라 해동종금과 해동증권 전 지점 외벽에 태극기와 붉은 악마 깃발을 초대형으로 제작해서 게시하고 업무용 차량에도 사이즈에 맞춰 부착할 예정입니다.”

“해동백화점과 하이마트, 해동종금, 해동백화점, 아쿠아 커머스도 모든 현장 직원들과 택배기사들에게까지 월드컵 응원 티셔츠를 무료로 지급하여 월드컵 기간 동안 착용한 상태로 근무하게 했습니다, 고문님.”

태재호와 금석호, 조영찬, 그리고 나의 보고에 할아버지가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잘했네. 신성 놈들은 우리나라 팀이 망하기만 빌고 우린 흥하기만 빌어야겠군, 흐흐.”

“하하하하!”

우리 모두 할아버지의 농담에 껄껄 웃었지만 결과가 나오면 다들 입을 떡 벌리게 될 것이다. 우리가 낸 보험료의 몇 배를 뽑아먹을 테니 말이다.

***

며칠 뒤.

2002년 6월 4일 저녁에 부산 아시아드 주경기장에서 폴란드의 가수 에디타 구르니아크와 부산대학교 교수이자 가수 조영남의 친동생인 성악가 조영수가 각자의 국가(國歌)를 부르면서 한국과 폴란드의 경기가 열렸다.

처음에는 긴장한 한국 팀이 폴란드 팀의 날카로운 공세를 여러 차례 당했지만 홍명보의 오버래핑과 연결된 강력한 중거리 슛으로 기세를 가져왔고 이을용의 크로스를 받은 황선홍이 왼발 발리슛으로 선제골을 터뜨렸다.

여기에 후반전에는 뻥슛으로 오명이 진했던 유상철이 그간의 아픔을 씻어내겠다는 각오라도 했는지 쐐기골을 넣었다. 그 골은 폴란드 골키퍼 두덱의 펀칭까지 뚫어버리고 골대 안으로 직행, 보는 이들로 하여금 속이 뻥 뚫리게 만들었다.

“첫 고비는 넘겼구먼.”

범 해동그룹 월드컵 마케팅 지휘본부를 차린 해동그룹 회의실에서 스크린으로 경기가 끝난 걸 보고 금석호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남은 경기가 미국, 포르투갈이랑 하는데··· 미국을 잡고 포르투갈과 무승부만 만들면 본선 진출도 가능할 겁니다.”

조심스럽게나마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은 박태진을 보며 나와 선해철, 고승주, 금석호도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날이 밝는 대로 전 그룹 계열사 사옥과 점포, 공장에 준비해둔 현수막 걸도록 하죠. 전자와 자동차는 추첨 결과 발표부터 특근 준비하고 유통 쪽은 구매부서에 연락해서 물량 확보하고요.”

우리가 대한민국의 첫 승리에 맞춰 마케팅을 진행하는 동안 한국 팀은 미국과의 경기에서 경기 78분 째에 안정환이 오노 세리머니를 선보인 동점골을 내며 무승부를 거뒀다.

여기에 더해 조 내에서 미국을 넘어 최악의 난적으로 꼽히던 포르투갈을 이기는 대이변을 일으키며 16강에 안착했다.

“살다 살다 별 일을 다 보는군. 미국한테는 비겼으면서 정작 포르투갈은 이길 줄이야···.”

포르투갈 전 다음 날 아침에 만난 금석호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헛웃음만 터뜨렸지만 나는 빙긋 웃었다.

“주앙 핀투가 박지성에게 양발 태클을 건 데다 오른쪽 다리를 양발로 감고 비틀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퇴장을 선언한 심판한테 주먹질을 했고 베투는 이영표에게 백태클을 걸어서 퇴장 당했고요.”

조급함에 쫓긴 포르투갈 팀이라지만 두 선수의 러프 플레이는 포르투갈의 중원과 후방에 구멍을 만들었다. 거기에···

‘콘세이상, 코투, 코스타, 거기에 바이아까지 탑게이 형님한테 놀아났으니··· 흐흐.’

어제 경기에서 네 선수의 폼을 보아하니 그 ‘탑게이 형님’ 덕분에 술에 푹 절여진 것 같았다. ‘한국과 붙으니 술 마셔도 된다!’라고 만용을 부렸으니 당해도 싸다 싶었다.

‘루이스 피구만 바보 됐지. 박지성한테 무승부로 비기고 16강 올라가자고 했는데···.’

히딩크는 강력한 경쟁자인 포르투갈의 본선 진출을 원치 않아서 동시간대의 미국-폴란드 경기 결과를 선수들에게 안 알렸다. 그 때문에 박지성을 향한 루이스 피구의 제스처는 공허한 몸짓이 돼버렸다.

포르투갈 팀의 자멸을 비웃으며 나와 함께 차를 마시던 금석호가 찻잔을 내려놨다.

“여하튼 조별 리그 2승 1무로 16강에 진출했으니 합이 총 1만 2천 대··· 이 정도면 자네가 낸 보험료에서 아슬아슬하게 마이너스군.”

내가 낸 보험료를 거의 다 뽑아먹게 돼서 안심이 되는 모양이다. 홀가분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는 금석호를 보며 나는 빙긋 미소를 지었다.

“물량은 충분히 뽑으셨죠?”

“당연히. 광주 공장 라인 전부 쏘울 생산으로 바꿀 수 있게 준비했네. 출고 물량 세워둘 자리도 넉넉히 확보해뒀고.”

해동자동차 광주 공장은 월드컵 때문에 쏟아진 일감에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추가 생산대수에 맞춰 특근수당을 지급하겠다는 당근과 말도 안 되는 물량이라는 채찍 때문이었다.

“그것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쏘울을 뿌리는 걸 국내외에 대대적으로 홍보해야 합니다. 지금은 우리 회사 망할까 걱정된다는 소리가 나돌더라도요.”

지금 기준으로만 1만 대가 넘는 물량을 뿌리고도 해동자동차와 쏘울을 세계에 알리지 못하면 반절의 성공에 불과하다. 금석호는 날 보며 씩 웃었다.

“걱정 말게. 이미 외신에서 해동자동차가 미쳤다고 난리도 아니야, 하하.”

껄껄 웃던 금석호가 내게 파일 하나를 보여줬다. 파일을 열어서 그 안에 정리된 외신들의 반응에 나는 씩 웃었다.

“욕먹으면 오래 산다는데 진시황이 부러워하겠네요, 흐흐.”

뉴욕 타임즈부터 가디언, 텔레그래프, 르몽드, 뉴스코프, CNN 등 한다하는 미주, 유럽권 언론들은 할 것 없이 전부 해동자동차를 미쳤다고 써 갈기고 있었다.

“소형차라도 어떤 회사가 1만 대가 넘는 물량을 뿌리겠나? 앞으로 결과에 따라 물량이 더 불어날 텐데.”

“지금이야 우리가 마케팅 보험에 가입했다는 걸 밝히지 않았으니 예상은 했지만··· 재미있게 돌아가고 있네요, 흐흐.”

“우 본부장이랑 마케팅 본부 녀석들이 잔뜩 벼르고 있네. 월드컵만 끝나면 녀석들이 알아서 잘 홍보할 걸세, 흐흐.”

금석호와 함께 낮게 웃던 나는 내가 준비한 또 다른 계획을 내놨다.

“어제 경기로 부상당한 박지성 선수와 이영표 선수한테 우리 쪽 격려 선물 전달하고 해동자동차 모델로 섭외하죠. 두 선수 케어하느라 고생했을 히딩크 감독도 섭외하고요.”

“광고모델을 잊고 있었군. 어제 경기로 컨디션이 안 좋을 텐데 계약금 빵빵하게 지급하면 충분히 먹히겠어. 돈은 아끼지 않겠네.”

내가 아무리 회귀자라도 모든 건 때와 장소, 상황이 맞아야 자연스럽게 진행된다. 금석호도 지금이 기회라는 걸 정확히 알고 아끼지 않겠다고 했으니 자동차 쪽은 됐고···

“그룹 수뇌부 회의를 열어서 나머지 국대 선수들도 우리 그룹 각 계열사마다 홍보모델로 써야겠습니다. GK금속과 GK디스플레이, GSMC, 아니 GK그룹에도 연락해야겠네요.”

“응? 굳이 그럴 필요가 있겠나?”

의아해하는 금석호를 보며 나는 빙긋 웃었다.

“단순히 판촉만 하려고 광고모델로 쓰겠다는 게 아닙니다, 회장님. 좀 더 괜찮은 인재들을 우리 식구로 받아들이려면 열심히 홍보해야죠, 하하.”

앞으로 가면 갈수록 양질의 인재들을 채용하는 게 힘들어지는 대한민국이다. 비정규직이 보편화되면서 공시생들이 주구장창 늘어나고 있지 않은가?

“그러고 보니 젊은 친구들에게 생소한 계열사들이 많아서 홍보가 필요할 것 같군. 좋은 친구들 데려다 쓰려면 품을 팔아야하겠지, 허허.”

내가 더 얹을 판돈이 효과를 내면 이번 월드컵 진짜 승자는 브라질이 아니라 나와 해동그룹이 될 것이다. 나와 금석호는 웃는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며 찻잔을 비웠다.

***

그날 오후부터 범 해동그룹 수뇌부 회의에 이어 GK그룹에서도 내 제안을 통과시킨 나는 이틀 뒤 점심 때 거스 히딩크 감독에게 선수단 차원의 광고계약 면담을 요청했다. 면담에 응한 히딩크는 내가 내건 제안에 크게 뜬 눈으로 날 바라봤다.

“진짜입니까?”

“네. 감독님께는 30억 원, 선수단 23인 전원에게는 각각 10억 원씩 광고모델 계약금을 지급할 겁니다. 다만.”

나는 멍한 표정의 히딩크와 통역사를 보며 멈췄던 말을 이었다.

“지금 약속한 계약금은 어디까지나 선수금에 불과합니다.”

“선수금이요?”

“앞으로 우리 팀이 거둘 성과에 따라 팀원들 전체의 기본계약금이 올라갈 거고 선수들이 경기에서 보여줄 각종 성과에 따라 개별 계약금도 추가지급할 겁니다. 우승까지 하면 1인당 최소 50억 원, 최대 100억 원은 되겠군요.”

내가 제안한 광고모델 계약은 해동자동차의 성과급제와 똑같은 구조였다. 팀 전체와 개인의 성과 모두를 반영하여 인센티브를 주겠다는 점에서 말이다.

“그만큼 저희 범 해동그룹은 그만큼 대한민국이 좋은 성과를 거두길 바라고 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감독님.”

빙긋 미소를 띤 나를 쳐다보던 히딩크가 고개를 푸드득 흔들며 어처구니없던 표정을 지웠다.

“선수들에게 동기부여가 확실히 되겠군요, 하하.”

“혹시 모를 선수들 간의 불화는 감독님께서 잘 컨트롤해주실 거라 믿습니다. 선수들 컨디션 관리에 필요한 게 있으시면 언제든 연락해주십시오. 비용이 얼마가 들더라도 축구협회를 통해 지원해드리죠.”

해동그룹에 좋은 인재들을 모으기 위해서라면 하나도 아깝지 않다. 나는 히딩크가 내민 손을 잡으며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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