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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재벌 사위로 살겠다-211화 (210/229)

211화. 59th. 새 판 짜기 (6)

비행기를 타고 미국에 넘어가서 스탠더드 캐피털 소유의 메가요트까지 타고서야 우리가 도착한 곳은 카리브 해의 어느 섬이었다.

“이런 섬이 있을 줄은 몰랐네요.”

“장인어른이 최근에 산 섬이야. 모건 놈들이 감시하고 있어서 얘기를 하려면 이쪽에서 보는 게 낫겠다고 하셨거든.”

보트에 올라탄 우리는 경호원, 아니 용병들의 경호를 받으며 조그마한 선착장에 발을 내딛었다.

“이쪽입니다. 어서 오시죠.”

용병들에게 겹겹이 둘러싸여 10여 분쯤 걸으니 호화로운 저택 한 채가 드러났다. 안에 들어가니 야자수가 그려진 반팔 셔츠와 반바지 차림으로 선글라스를 쓴 채 트로피컬 칵테일을 마시던 헨리와 아이작이 보였다.

“다들 너무하시네요. 우린 뱃멀미 때문에 고생했는데.”

“미안하다, 클레어. 워낙 더워서 말이다, 허허.”

클레어가 짐짓 뾰로통한 표정을 짓자 헨리가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유리컵을 내려놓았다. 아이작도 컵을 내려놓은 뒤, 옆에 놓여있던 냅킨으로 입을 닦으며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미안합니다, 클레어 씨. 아저씨와 저는 며칠 전부터 와서 이 더위와 싸우고 있어서요, 하하.”

며칠째 이 외딴 섬에 머무르고 있다는 건 고역 중의 고역이다. 해명에 이은 아이작의 겸연쩍은 웃음에 클레어도 피식 웃었다.

“그러셨군요. 저희도 짐부터 풀고 올게요. 아! 아이들도 뭘 좀 먹였으면 하는데.”

“걱정 마십시오, 클레어. 마이클, 라이언한테 생과일주스 먹이겠다고 아저씨와 이것저것 준비해왔습니다, 하하.”

껄껄 웃은 아이작에게 미소로 대답을 대신한 우리는 방에 들어가서 옷을 갈아입고 1층의 거실로 내려와 칵테일을 들었다.

“모건 놈들, 독이 잔뜩 올랐더군. 조니 자네 처가에 200억 달러나 투자했을 줄이야···.”

말끝을 흐리던 헨리가 손에 들려있던 컵에 꽂힌 빨대를 크게 빨아들이고는 입 안의 칵테일을 목으로 삼켰다. 헨리가 잠시 미간을 찌푸린 사이, 아이작도 빨대를 입에서 뗐다.

“어떡할 겁니까, 조니? 이대로 가면 당신 집안의 복수는 완성되지 못할 텐데.”

아이작의 눈길에서 미안함이 느껴졌다. 자신의 복수를 성공한 대신에 나와 우리 집안의 복수가 힘들어졌다고 생각하는 걸까?

“복수는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아이작 당신과 헨리가 손만 보태준다면요.”

“나야 언제든 자네 편일세. 아이작 자네는 어떤가?”

틈도 없이 대답한 헨리가 던진 공에 아이작도 고개를 끄덕였다.

“조니와 저는 친구입니다. 도울 게 있으면 도와야죠. 무엇보다 우리 집안의 복수를 도와주다가 곤란해졌으니 더더욱 도와야하지 않겠습니까, 아저씨?”

재벌들이 돈 앞에서 피눈물이 없다고 해도 피부색과 나이를 넘어 두 남자에게서 느껴지는 의리에 마음이 든든해졌다. 나는 두 사람을 보며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두 분 모두 고맙습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아이작 당신께 먼저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잠시 빨대로 칵테일을 빨아들인 나는 목으로 칵테일을 넘긴 뒤, 가벼운 숨을 내쉬며 아이작을 바라봤다.

“체이스맨해튼은 신성생명 주식 20퍼센트를 보유한 대주주입니다. 그렇죠?”

“다른 놈들이라면 몰라도 우리가 주식을 갖고 있어서 당신 처가가 신성생명의 돈을 쉽게 쓰는 걸 막아왔잖습니까? 신성생명과 신세기금융지주의 합병, 정확히는 합병을 통한 신성생명의 우회상장도 막았고요, 하하.”

주식은 쥐고 있는 주주가 누구냐에 따라 그 위력이 달라진다. 대세를 뒤집을 수 없을 것 같은 20퍼센트의 신성생명 주식이라도 미국에서 손꼽히는 초대형 투자은행인 체이스맨해튼이 쥐고 있으니 처가도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새삼스럽다는 듯 웃어 보인 아이작에게 나는 내 용건을 밝혔다.

“제 처고모의 신세기그룹에는 신세기증권, 신세기카드, 신세기화재가 있습니다. 지주회사 전환 과정에서 그 세 회사는 신세기금융지주로 묶인 채 분리됐는데 그 신세기금융지주와 신성생명의 합병을 체이스맨해튼에서 제안했으면 합니다.”

내 요청을 받은 아이작의 입이 벌어졌다.

“합병을 하면 우리가 들고 있는 신성생명 지분은···.”

“20퍼센트 밑으로 줄어 들겠죠. 하지만.”

고저 없는 목소리를 잠시 끊은 나는 내려올 때 함께 들고 온 가방에서 박태곤의 카드대란 예측 보고서를 꺼내 두 사람에게 건넸다. 심각한 표정으로 서류를 보던 헨리와 아이작의 눈이 크게 뜨여진 채 나를 향했다.

“이걸··· 노린 건가?”

“알아본 바에 따르면 제 처가 사람들은 모든 그룹 지분을 담보로 잡혀서 초장기 저금리 채권을 모건 놈들에게 팔아치웠습니다. 그 중 핵심 담보는 신성생명 주식이고요.”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는 가운데 나는 핵심을 밝혔다.

“다들 아시겠지만 한국에서는 국민정서법 때문에 재벌그룹 모회사는 자회사에 대한 책임을 져야합니다. 그 중에서도 신성생명은 신성카드 지분 70퍼센트를 쥐고 있으니 신성카드의 부실이 터지면 자금을 수혈해야 하고요.”

“그런데 신세기금융지주를 신성생명에 합치자는 건···.”

“신세기카드를 신성카드와 합쳐서 부실을 더 키우자는 거군요. 지분 가치가 떨어지면 당신 처가나 모건 놈들 모두 발등에 불이 떨어질 테니까요, 후후.”

내 설명에 이은 헨리와 아이작의 원투 펀치에 나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바로 그겁니다. 구색 갖추기 차원에서 신세기증권은 신성증권, 신세기화재는 신성화재과 합병하자고 해야 의심을 피할 겁니다.”

“허나 조니 자네 쪽에서도 카드대란을 파악했는데 신성이라고 파악하지 못할 이유가 없네. 괜찮겠나?”

헨리가 짚은 문제점에 아이작도 미소가 가라앉았지만 나는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 점은 걱정 안 해도 되십니다, 헨리. 그 신성그룹에서 유일하게 카드대란을 감지할만한 사람은 제가 데려왔고, 그 사람이 이 보고서를 써낸 사람이니까요.”

박태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자 헨리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허허, 도쿄에서 판 돌릴 때 신성에서 보낸 사람이 이런 보고서를 썼다니···.”

“조니 당신, 수정구슬 만지는 건 아니죠?”

기가 질린 표정으로 아이작이 던진 질문에 나는 피식 웃었다.

“그럴 리가요. 그랬으면 더 큰 부자가 됐겠죠, 흐흐.”

“그래도 혹시 모르니 신용카드 외에도 부실을 더 키울 방법을 찾아야 하네.”

“그건 걱정 안 해도 되십니다, 헨리. 처가에 팔아줄 폭탄은 여러 개가 있으니까요.”

뻥이 아니라 진짜다. 나는 자신 있는 표정으로 헨리와 아이작을 바라봤다.

***

나는 신성그룹을 공략할 계획 일부를 헨리, 아이작과 합의한 뒤, 향후 미국에서의 투자 건들까지 공유하고 나서야 뉴욕으로 이동했다.

“오는 상반기를 넘기면 핸콕 프로스펙팅과의 필바라 지역 철광산 개발 투자 계약이 무산됩니다. 그 전에 해동건설, 노스리미티드와 합작으로 견적 뽑아서 투자 집행하세요.”

스탠더드 캐피털 회의실 상석에 앉아서 호주 지역 철광산 투자를 주문한 내게 이사진 중 한 명의 질문이 날아들었다.

“알겠습니다, 조니. 그런데··· 모기지 증권 투자는 안 하실 겁니까?”

“스탠더드 캐피털 자금으로는 단 한 푼도 투자하지 않을 겁니다. 모건스탠리와 블랙록은 알아서 잘 하고 있으니 일임하세요.”

나와 해동그룹이 전 세계에 거느린 히스파니아를 뒷받침하는 스탠더드 캐피털이 그따위 악취 나는 쓰레기들에 투자할 이유가 없다.

무엇보다.

다가올 카드대란 속에서 신성그룹과의 전쟁을 끝내려면 두 회사는 그대로 놔두는 게 상수다. 딱 잘라 거절한 나를 보며 이사진 중 다른 한 명이 질문을 이어갔다.

“그럼··· 우리 자금으로는 어디에 투자하실 겁니까? 현재 체이스맨해튼이나 씨티뱅크, 웰스파고, 뱅크 오브 아메리카 등의 계좌에서 놀고 있는 자금만 해도···.”

투자를 해야 하지 않겠냐는 뜻을 알아들은 나는 입을 열며 그의 말을 잘랐다.

“록히드마틴과 보잉, 레이시온, 노드롭그루먼, 유나이티드 테크놀로지스, 오시코시 코퍼레이션, 그리고 영국 BAE 시스템즈와 EU의 EADS에 투자하세요. 기왕이면 체이스맨해튼과 트라이엄프 캐피털, 엑손모빌, 셰브런, 아니면 기존의 마이크로소프트, 오라클, 시스코에 투자하는 것도 좋겠군요.”

내 입에서 나온 투자 종목들에 이사진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딱히 모멘텀이 안 보이는데 괜찮으십니까?”

“괜찮습니다. 지금은 저평가되어있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올라갈 주식들이니까요. 여러분들 말대로 언제까지 은행 계좌에만 돈을 맡겨둘 수는 없잖습니까? 하하.”

이사진들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올 가을부터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시작한다.

어디 그뿐인가. IT버블 붕괴로 쪽박을 찬 수많은 미국인들이 중국산 경공업 제품을 쓰는 통에 중국 경제는 지금도 고속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그나마 개성공단을 돌려서 제동을 걸긴 했지만···.’

중국은 분명히 미국 다음 가는 2인자가 된다. 그 덩치를 바탕으로 군사력을 키우면 미국 펜타곤도 발등에 불이 떨어지고 군사력 증강에 박차를 가할 테니 지금이 서방 세계 군수기업 투자의 적기였다. 또한···.

‘몇 년 안 있으면 해동물산 전주 연구소에서 T1000급 탄소섬유를 양산한다. 항공사 주식을 최대한 확보해둬야 을이 아닌 대등한 위치에서 협상할 수 있어.’

주식으로 갑질 하는 건 나도 바라는 바가 아니다. 소재를 납품하는 하청이라도 최대한 동등한 위치에서 항공기 제작사들과 협력하길 바라고 내린 결정이었다.

“아! 월간 옵션거래에 투자하는 돈은 50억 달러로 늘리세요. 그 외에도···.”

기타 투자 방침을 결정한 나는 밤이 돼서야 할아버지에게 전화를 넣었다.

“성민입니다, 할아버지. 조만간 호주 철광 개발에 투자하겠다는 방침을 정했습니다.”

[우리 배 회장 입꼬리가 찢어지겠구먼. 네 숙부도 입이 떡 벌어지겠구나, 으허허.]

호주 필바라 일대의 철광 지대 개발 프로젝트는 자원개발을 담당하는 배재훈과 범 해동그룹의 건설 사업을 도맡는 이명진에게 중요한 사업이다. 할아버지의 웃음에 나도 미소가 그려졌다.

“그래서 체이스맨해튼이나 트라이엄프에도 해동건설 주식에 투자하라고 권했습니다. 다른 투자 건들도 열어주기로 했고요.”

그 다른 투자 건들에 대해 알려주자 할아버지의 흡족한 목소리가 들렸다.

[잘했다. 친구라는 건 그때 그때 서로 도움을 주고받아야 관계가 유지되는 법이야. 그 도움이 점점 커질수록 서로가 서로를 위해서라도 더 크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게다.]

할아버지의 말대로 친구 관계는 서로가 서로에게 더 잘하려고 노력해야 그 관계가 유지되고 발전도 하는 법이다. 미소를 짓던 나는 씩씩하게 대답했다.

“할아버지 말씀이 맞습니다. 그래서 저도 늘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래. 광산 개발은 돌아오는 대로 네가 직접 알리거라. 알아서 잘 할 수 있지? 허허.]

고문으로 물러난 할아버지는 이제 그룹에 남은 우리를 완전히 믿고 맡기시는 것 같다. 실망시킬 수야 없지.

***

미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나는 하루 정도 집에서 쉰 뒤에야 해동그룹 본관으로 가서 배재훈과 이명진을 만났다. 껄껄 웃으며 미국에서의 일들을 들려주던 나는 호주 필바라 일대의 철광산 개발로 화제를 바꿨다.

“6개 광산 동시 개발에 1단계 개발로만 총 생산량 8천만 톤이라··· BHP빌리톤에 리오틴토, 브라질 발레(Vale)까지 기겁하겠군, 으하하.”

“한 20년간은 친정집 덕분에 공사일감 걱정이 없겠네요, 하하.”

배재훈과 이명진이 호탕하게 웃을만했다.

핸콕 프로스펙팅과 해동그룹, 해동중공업그룹이 지분을 보유한 로이힐과 호프다운스 외에도 범 해동그룹이 100퍼센트 소유한 4개 철광의 1단계 개발만 완료되면 글로벌 광산 메이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지 않겠나? 생산량을 늘릴수록 해동제철 외에 대한제철, 태현제철과도 거래를 틀 수 있으니 원자재 수입으로 유출되는 달러도 상당부분 회수된다.

웃음이 서서히 잦아들면서 배재훈이 내게 물었다.

“그나저나 이 의장 자네가 직접 관리하는 해동전자에서도 하반기가 오기 전에 신제품 발표한다고 하지 않았나?”

“그거 때문에 우리 해동건설과 GK건설이 GK디스플레이 신형 LCD 패널 공장을 지었죠. 뭘 만들려는 건가, 이 의장?”

호기심이 가득한 두 사람을 보며 나는 씩 웃었다.

“신제품 이름은 아쿠아 웨이브입니다. 음악과 영화, 게임, 소설을 모두 즐길 수 있는 멀티 플레이어죠.”

“아쿠아 웨이브?”

“멀티 플레이어?”

물음표가 가득한 배재훈과 이명진에게 나는 아쿠아 웨이브가 단순히 기계장사만 하는 게 아니라 해동물산의 아쿠아 스토어를 연계시켜서 음악, 영화, 게임, 만화, 소설 등 각종 콘텐츠와 소프트웨어 유통까지 겸할 것을 밝혔다.

“허허, 그래서 신 회장과 태 회장이 국내외 안 가리고 딴따라들이나 출판사, 게임회사 놈들과 만난 거였구먼.”

“호진이 형님이 연예인들 너무 많이 만난다고 형수님이 걱정하더라니··· 다 이유가 있었군요, 하하.”

신호진과 태재호는 내가 대북사업을 챙기는 동안 국내외 가요, 영화, 출판, 만화, 게임 관련 인사들과 만나서 아쿠아 스토어를 통한 전자 유통권을 따냈다. 껄껄 웃는 두 사람을 보며 나는 설명을 이어갔다.

“조만간 아쿠아 웨이브 출시에 앞서서 해동물산의 전산서비스-전자상거래 사업부를 자회사로 분리, 아쿠아소프트로 이름을 바꿀 겁니다. 해동전자에서 50퍼센트의 지분을 유상증자로 취득할 거고요.”

해동전자는 스탠더드 캐피털이 나, 그리고 내가 쥐고 있는 스탠더드 캐피털이 공동대주주인 회사다. 처가 놈들이나 모건 놈들은 내가 스탠더드의 주인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으니 다음 단계로 들어가기에 딱 좋은 연막작전이었다.

내 설명을 듣고 배재훈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럼 이제 우리 고 회장이 이수한이를 구워삶으면 되겠군, 흐흐.”

“그 전에 우리 이 의장이 처남을 움직여야죠. 안 그런가? 하하.”

이명진의 말이 맞다. 새 판을 짜기 위해 고승주가 이수한을 만나는 건 내가 처남을 만난 다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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