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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재벌 사위로 살겠다-199화 (198/229)

199화. 57th. 새천년의 질주 (2)

“얼마나 쏟아져 나왔어?”

[현재 풀린 물량만 전체 주식의 1퍼센트입니다. 벌써 주가가 하한가로 내리꽂았습니다.]

이어지는 절망적인 소식에 장호건이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외국에서 돈놀이로 이름을 날린 연놈들의 말 한마디가 신성의 이름값보다 세게 먹힐 줄이야···.

장호건이 감았던 눈을 뜨고 수화기 저 너머의 이수한에게 물었다.

“신성생명 상장은?”

[그게··· 쉽지가 않습니다. 정부에서 계약자들에게 상장 차익을 나눠주지 않으면 불가능하다고···.]

IT벤처 열풍을 이용하려던 경영 승계 계획에 이어서 신성생명을 상장시켜서 그 주식을 이용해 세 자식들에게 경영을 승계시키려는 계획도 물 건너가 버렸다.

“끄응··· 이것들이···.”

침음성을 흘리던 장호건이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그 대상은 눈앞에 보이는 선해철과 클레어 내외, 그리고 정부였다.

“알겠네. 일단, i-신성부터 정리하도록 해.”

[예, 회장님.]

돌파구가 막힌 이상 후퇴는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수한의 대답을 끝으로 수화기를 내려놓은 장호건은 한숨만 내쉬었다.

***

방송국에서 돌아온 두 사람은 저녁 무렵에 나와 박태진을 고려호텔 스위트룸으로 불러들여서 차를 마셨다.

“i-신성 주가 떨어진 거 봤지? 하한가야, 하한가. 흐흐.”

낄낄거리던 선해철이 차를 마셨다. 말 한 마디로 신성그룹 장 씨 가문의 경영승계 계획을 망가뜨렸으니 얼마나 즐거울까?

“스탠더드 이름값이 커지긴 했네요, 흐흐.”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가시면 될 것 같군요.”

내 옆에 있던 박태진을 보며 나는 씩 웃은 뒤, 핸드폰을 꺼내서 전화를 걸었다.

“조니입니다, 헨리.”

[자네 덕분에 우리 딸아이 내외가 방송국 구경 잘 했을지 모르겠네, 하하.]

헨리의 호탕한 웃음에 나는 미소를 띠었다.

“제 대신 악역을 맡겨서 미안할 뿐이죠. 이제 다음 단계를 진행했으면 하는데 어떠십니까?”

[신성생명 주식 인수 말인가?]

“네. 은행권에서 어지간하면 잘 안 내놓으려고 하겠지만 우리가 내밀 조건이면 내놓을 겁니다, 하하.”

[그러겠지. 은행에서는 후순위채, 한국 정부에서는 국채를 좋은 조건으로 사주겠다는데 마다할 리가 있겠나, 하하.]

대한민국은 IMF 구제금융 상환, 은행권 또한 자기자본 축적에 혈안이다. 후순위채든 국채든 이름만 다를 뿐 초장기-저금리의 채권을 대량으로 사주겠다는 제안까지 걸면 은행, 정부 할 것 없이 얼씨구나 하고 신성생명 주식을 내놓을 터.

껄껄 웃던 헨리가 웃음을 그치고 내게 말했다.

[그런데··· 이번 일은 아이작에게 맡겨주는 게 어떠겠나?]

“아이작이요?”

[자네한테 IT주식에 모건스탠리까지 떠넘겨서 미안하다고 하더군. 복수를 도와줬으니 한 번은 제대로 은혜 갚을 기회를 줬으면 좋겠다는데··· 두 사람의 관계가 돈독해질 기회라고 보네.]

얼마 전에 흡수합병으로 록펠러 가문의 원수인 모건 가문의 JP모건 간판을 월가에서 치워버린 체이스맨해튼.

그 체이스맨해튼의 주인인 록펠러 가문의 아이작은 JP모건의 IT주식과 모건스탠리까지 전부 스탠더드 캐피털에 팔아치우면서 볕 드는 땅에서의 복수에 종지부를 찍었다. 헨리의 제안에 머릿속에서 계산기를 두들긴 나는 곧바로 대답했다.

“‘스팅’이 따로 없겠네요, 하하.”

선문답 같은 대답을 내놓은 내게 헨리의 탄성이 들렸다.

[오, 자네가 그 영화를 알고 있을 줄은 몰랐군. 속는 것도 모르게 속이는 것만큼 재미있는 일도 없지, 안 그러나? 하하.]

“그렇죠, 하하.”

가장 통쾌한 복수는 ‘스팅’의 결말을 장식한 것처럼 속는 것도 모르게 원수를 속이는 것이다. 헨리와 함께 처갓집을 속일 생각에 껄껄 웃던 나는 웃음을 거둬들였다.

“알겠습니다, 헨리. 그럼, 아이작에게 잘 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알겠네. 금방 처리해줄 테니 통화가 갈 걸세.]

전화를 끊은 지 10여 분도 안 돼서 전화가 걸려왔다. 통화를 연결하자 아이작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저씨한테 들었습니다, 조니. 한국에서 재밌는 일을 꾸미시더군요, 하하.]

“제가 처가에 좀 쌓인 게 많아서 말이죠, 하하.”

눙치며 웃는 내게 아이작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유야 어찌됐든 은혜를 갚을 기회가 빨리 와서 다행입니다. 거래가 끝나면 연락드리죠, 하하.]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아이작. 하하.”

아이작이 주식을 거둬들이고 멱살잡이를 시작하면 장 씨 것들은 신성생명의 돈을 쌈짓돈처럼 쓰지 못하게 된다.

당연히.

신성생명 상장 또한 아이작의 체이스맨해튼이 반대할 테니 불가능할 것이다. 영원히.

***

얼마 뒤.

“사실인가?”

성의원에 있던 장호건은 자신을 직접 찾아온 이수한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사실입니다, 회장님. 체이스맨해튼에서 채권단에 풀려있던 신성생명 주식을 전부 거둬들였습니다. 주식을 팔아주면 매각대금만큼 30년 만기 후순위채를 인수해주겠다고···.”

이수한의 보고가 끝나기도 전에 장호건이 주먹을 내려쳤다.

“그놈들이 어떻게 은행권에 접근한 거야! 정부하고 정치권은 뭘 하고 있었냐고!”

사적으로는 신성그룹의 지배권이 걸린 문제지만 공적으로는 한국 은행권과 국내기업에 대한 외국계 자본의 입김이 강해지는 일이다. 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한 장호건은 이수한에게서 그 이유를 들었다.

“체이스맨해튼에서 우리 정부가 발행할 국채 50억 달러까지 인수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트라이엄프가 인수했던 것보다 더 좋은 조건으로 인수하겠다고 한데다 여야와 검찰에까지 돈을 뿌렸다는데 채권 금리는···.”

이수한에게서 국채 발행 조건까지 들은 장호건은 입이 떡 벌어졌다.

“이럴 수가···.”

연이율 5퍼센트에 30년 만기 채권이라니··· 현재 환율을 고려해도 체이스맨해튼이 신성생명 주식을 사겠다고 퍼부은 돈이 총 100억 달러에 육박한다.

그 돈이면 신성전자 반도체 공장라인을 몇 개는 더 늘리고 IMF에서 빌린 외환 잔액을 단번에 갚을 수 있으니 정부와 여야도 혹할 만했다.

할 말을 잊고 있던 장호건은 요란하게 울리는 전화 한 통을 받아야 했다.

“누구십니까?”

[김주인 차장입니다, 회장님.]

이수한이 비서실을 비웠으니 비서실 차장인 김주인 부사장이 대리를 맡는 게 당연했다. 그렇지만 장호건은 김주인의 목소리에서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무슨 일인가, 김 차장?”

[체이스맨해튼 한국법인에서 연락이 왔는데 내일 아침에 긴급 회계감사를 하겠다고 요청했습니다.]

“뭐야?”

[대주주로서 적법한 권리를 행사하겠다고 합니다. 신성생명의 이익에 반하는 자금 거래가 있는지 따져보겠다고···.]

장호건이 이를 악물었다.

신성생명은 신성그룹 금융계열사의 모회사이자 자신과 누이, 동생의 돈줄이다. 그 돈줄에 손을 뻗겠다니!

바득바득 일을 갈던 장호건이 수화기에 대고 말했다.

“알아서 처리해.”

그 말을 끝으로 수화기를 내려놓은 장호건이 책상을 연신 내려쳤다.

“빌어먹을!”

사방에서 공격이 퍼부어지는데도 이 공세를 지휘하는 사람이 누군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화를 이기지 못한 장호건은 책상에 놓인 집기들을 책장을 향해 집어던지기 시작했다.

***

다음 날 오후.

“우리 처가 사람들, 피가 거꾸로 솟았겠네요, 흐흐.”

체이스맨해튼의 신성생명 회계감사 소식을 들은 나는 사무실 소파에 앉아서 차를 마시며 낄낄 웃었다. 선해철은 그런 나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흘렸다.

“지독한 놈. 이 세상에서 지 처가 사람들 열 받게 만들어놓고 좋아하는 놈은 너밖에 없을 거다.”

“그러고도 해코지를 안 당하실 이사님 아닙니까? 흐흐.”

함께 차를 마시던 박태진의 대답에 선해철이 혀를 찼다.

“누가 너희들을 이렇게 버려놨는지 모르겠다. 악당이 따로 없어.”

“누구긴요. 삼촌이 버려놨잖아요, 흐흐.”

실없이 웃으며 차를 마시던 나는 찻잔을 내려놓고 두 사람에게 말했다.

“이제 범 신성그룹의 돈줄이 서서히 말라붙을 겁니다. 체이스맨해튼이 대주주인데도 회사 돈을 허투루 쓸 만큼 처가 사람들 간이 크진 않을 테니까요.”

“그러겠지. 미국 최대의 투자은행이 대주주인데 네 장인이라도 헐값에 돈 쓸 생각은 못할 걸? 흐흐.”

이번 작업으로 인해 장호건, 장호경, 장호민 할 것 없이 신성그룹 금융계열사의 자금을 싼 값에 가져다 쓰는 일은 힘들어질 것이다. 낄낄 웃는 선해철을 보며 나는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

“돈줄을 막아놨으니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할 것 같은데··· 태현전자, 어떻게 생각해요?”

내 질문에 선해철이 바로 입을 열었다.

“말할 게 있을까? DDR램에 집중한 덕분에 반도체 치킨게임에서 살아남을 회사 셋 중 하난데.”

작년 말에 인텔에서 출시한 CPU 칩셋인 i820은 RD램만 지원했지만 RD램의 가격 대비 성능은 기대 이하였다.

그 바람에 RD램에 올인 했던 회사들은 IT버블 붕괴 속에서 주가가 가파르게 추락하고 있었지만 신성전자와 태현전자, 마이크론은 그들에 비해 천천히 내려가고 있었다.

선해철의 대답에 이어 박태진도 입을 열었다.

“그래도 태현전자는 GK반도체를 인수하면서 떠안은 RD램 투자 손실만 5조 원입니다. 거기에 다른 부채까지 합하면 15조 8천억이고요. 부채가 해결되지 못하면 태현전자는 살아남기 어려울 겁니다.”

선해철이 짚은 부분이 태현전자의 빛이라면 박태진이 들춰낸 점은 태현전자의 그림자였다. 나는 박태진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돈은 걱정 없어요. 문제는 우리가 인수할 수 있냐, 없냐죠.”

내 말뜻을 알아챈 선해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긴 해. 반도체 산업은 이 나라의 국가전략산업이니까. 외국계 자본의 껍데기를 뒤집어 쓴 스탠더드가 그 반도체 사업을 하는 태현전자를 인수하면 난리가 나겠지.”

실제로도 태현전자 메모리반도체 사업부는 마이크론에서 인수를 타진했다가 국가전략산업이라는 이유로 채권단 관리체제로 넘어갔다.

그 결과, SG그룹 그늘 밑에서 시가총액 100조 원을 바라보는 회사가 되지만 내 손에 넣으면 그 두 배, 세 배로 만드는 건 일도 아니었다.

‘그 반도체 회사로 신성을 2등으로 만드는 게 내 목표지, 흐흐.’

신성그룹에는 장호건부터 말단 사원에 이르기까지 1등주의가 뼈에 새겨져있다. 반도체 사업에서 신성전자가 2등이 되면 장호건 발 불똥은 처가 사람들부터 임직원들까지 전부 튀게 된다.

선선히 고개를 끄덕인 내게 선해철은 조금은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반도체만 건질 건 아니지? 버리기 아까운 사업들도 꽤 많지만 회장님도 마냥 사람들을 쳐내는 건 반대하실 거다.”

선해철의 말대로 태현전자의 몇몇 사업부들은 그대로 내던지기 아까운 사업들이고 품을 수 있는 만큼은 품어야 한다는 게 할아버지의 경영철학 중 하나이기도 하다.

올해가 현역으로 뛰는 마지막인 할아버지에게 해동그룹의 후계자로서 실망을 안겨줄 수는 없었다. 나는 선해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IT버블 공매도 지휘할 때 태현전자 회생계획 구상해둔 게 있어요. 보여드리죠.”

책상으로 걸어간 나는 서랍에서 파일 하나를 꺼내왔다. 이걸 보면 절대 반대하지 못할 걸?

***

선해철에 이어서 박태진까지 태현전자 회생계획 파일을 보고 나서야 우리는 삼청동 본가로 들어가서 할아버지를 만났다.

“태현전자를 가져오겠다고?”

“네. 외가의 오판과 태현의 욕심 때문에 주저앉긴 했지만 그대로 버리기는 아까운 회사입니다.”

그 뒤로도 우리는 태현전자의 인수방법과 향후 회생계획이 정리된 서류를 보여줬다. 돋보기안경을 쓰고 서류를 살펴보던 할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까지 거액을 들여서 투자할 가치가 있겠느냐?”

“돈을 벌 자신도 있지만 품을 수 있는 만큼은 품어야 해동의 후계자답죠, 흐흐.”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르듯이 가지고 있는 돈만큼 사람들의 생계를 책임지는 건 부자의 당연한 도리다. 씩 웃는 나를 보며 할아버지가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암, 그래야지. 개처럼 벌어도 정승처럼 쓴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야. 새 사업에 필요한 상품 기획, 인재 수급 계획까지 짜놨으니 반대할 이유가 없구나, 으허허.”

“그럼요, 할아버지. 존경받는 기업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태현전자 인수에 쓰려는 돈도 내가 미국에서 벌어들인 돈에 비하면 얼마 안 되는 돈이고 내 계획은 미래라는 최고의 답안지를 컨닝한 것들투성이다. 부끄러운 마음을 숨기고 칭찬에 뿌듯해하던 내게 할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오냐. 우리 장손이 이리도 노력하는데 이 할애비도 현역에서 은퇴하기 전에 선물을 줘야겠구나. 너희 외삼촌들이 받아들이면 태현은 이 할애비가 설득해보마.”

사실, 명선구를 통해서 거래를 틀까도 고민해봤지만 내년이면 할아버지는 현역에서 완전히 은퇴한다.

은퇴를 하시고 나면 할아버지가 적적해할까 걱정됐기에, 은퇴 전에 보람 있는 일을 할 수 있게 해드리고 싶었기에 나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고맙습니다, 할아버지.”

***

할아버지의 도움을 약속받은 나는 박태진, 선해철과 함께 GK그룹 쌍둥이 빌딩을 찾아갔다.

“태현전자를 인수하자고요?”

“네. GK그룹에 6조 원을 초장기 저금리로 지원해드릴 테니 스탠더드와 함께 태현전자 지분 50퍼센트씩 총 100퍼센트를 공동으로 인수하셨으면 합니다. 앞으로의 치킨게임에 필요할 자금도 스탠더드에서 부담할 거고요. GK그룹에서 제안을 받아들이면 회장님께서 다리를 놔주겠다고 하셨습니다.”

돈의 액수만 보면 호구처럼 보이는 제안이지만 태현전자 인수는 국가전략산업에 숟가락을 얹는 일이기에 스탠더드 단독으로 인수하는 게 불가능하다. 그래서 나는 스탠더드를 앞세워 GK그룹에 돈을 대고 태현전자를 공동인수하려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동맹을 굳건히 다지는 일이기도 하지만 빌려줄 돈 6조 원은 전부 연이율 5퍼센트에 30년 만기 채권이지. 제로금리 시대를 생각하면 괜찮은 장사야, 흐흐.’

앞으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터질 때까지 10년도 안 남았다. 그때가 되면 미국도 제로금리 시대가 시작되니 차근차근 준비를 해둬야 한다.

물론.

지금은 아주 후한 조건이기에 해수찬과 오현준은 오현무를 간절한 눈빛으로 바라봤고, 오현무는 상기된 얼굴로 헛기침만 연신 내뱉었다.

그 뒤로도 우리는 내 개인재산으로 태현전자의 컴퓨터 사업부와 핸드폰 사업부, 비메모리 반도체 사업부를 인수하는 것을 시작으로 태현전자의 회생방안을 설명해주고 난 뒤에야 오현무의 질문을 받았다.

“그래도 조건이 너무 좋습니다. 우리에게 더 원하는 게 있으십니까?”

잠시 뜸을 들이던 선해철은 나와 미리 준비했던 대로 대답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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