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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재벌 사위로 살겠다-198화 (197/229)

198화. 57th. 새천년의 질주 (1)

해리 클락슨까지 물리고 혼자 남은 잭슨 피어폰트 모건은 손에 쥔 채 만지작거리며 바라보기만 하던 핸드폰 버튼을 눌렀다.

“접니다, 아버지.”

[돈을 더 부어야 한다는 개소리를 할 거면 집어치우는 게 좋을 게다. 오늘 하루 동안 날려먹은 돈만 자그마치 200억 달러야!]

통화가 연결되자마자 터져 나온 고성에 잭슨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핸드폰 저 너머에서 씩씩거리고 있는 모건 가문의 가주인 아버지 피어스 모건의 말대로 주가 방어에 나선 결과가 마이너스 200억 달러다. 그렇지만 잭슨은 굳은 표정으로 통화를 계속했다.

“IT버블 붕괴는 아버지를 비롯한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재앙입니다. 로이스 놈들이 주식을 던진 것도, 엔론 발 회계부정도 누가 예측했습니까?”

[그걸 지금 변명이라고 하는 게야! 모든 건 결과로 승부하는 걸 모르는 게냐?]

아버지가 늘 해오던 말이 고성이 되어 잭슨의 속을 후벼 팠다.

5년 전 이맘때의 엔고 투기부터 동남아 환투기, 러시아 모라토리엄 등 온갖 위험한 환투기에 나선 자신에게 집안사람들이 천박하다고 해도 결과가 좋으니 되지 않았냐고 감싸주던 아버지 아닌가?

그런 아버지를 믿고 차기 가주 승계를 확실히 굳히고자 IT버블을 이용하려 했던 잭슨이기에 지금의 말이 뼈아프게 다가왔다.

그런 아픔과는 별개로 잭슨은 죽을 각오라도 한 것 같은 표정으로 핸드폰에 대고 말했다.

“이대로 주가가 떨어지는 걸 놔두면 추락하는 속도를 잡지 못할 겁니다. 잠깐이라도 반등시키고 팔아야···.”

잭슨은 어떻게든 돌파구를 뚫으려했지만 그의 말은 피어스에 의해 잘렸다.

[떨어지는 칼날은 잡는 게 아니라고 몇 번을 말했느냐! 집안 재산 전부 부어도 주가가 떨어지면 어떡할 작정인 게냐!]

“스탠더드 캐피털에 나갔던 JP모건의 대출금을 메우려면 주가를 어느 정도는 받쳐놔야 합니다, 아버지. 이대로 주가가 떨어지면 JP모건이 망합니다!”

JP모건은 모건 가문의 시조인 존 피어폰트 모건의 이름을 딴 회사요, 가문의 뿌리다. 피를 토하는 듯 소리친 모건의 외침에도 피어스의 목소리에서는 냉기가 가시질 않았다.

[다 집어치워. 너 같은 놈에게 다음 가주를 맡기느니 내가 기르는 ‘프랫’한테 맡기는 게 훨씬 나을 게다.]

아버지의 애완견 ‘프랫’보다도 못한 취급을 받다니··· 통화가 끊긴 핸드폰을 쥔 잭슨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 개새끼들···.”

잭슨은 절대로 오늘 당한 치욕을 잊을 수 없었다. 어떻게든 복수를 하겠다는 각오를 새기듯 잭슨은 손바닥에 손톱을 파 넣을 만큼 꽉 쥔 주먹을 부들부들 떨었다.

***

IT버블이 시작된 지 4개월째.

할아버지와 연락한 뒤, 장하연과 현빈이를 좀 더 미국에 남긴 나는 IT버블 붕괴를 총지휘하기 위해 스탠더드 캐피털 본사 대회의실을 작전실 삼아 출근했다. 오늘에야 늘어지듯 의자에 등을 기댄 나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쉽지 않은 싸움이었어요.”

“쉽지 않기는? 100일 만에 그 JP모건을 파산 직전까지 몰아넣었으면서, 흐흐.”

그 100일 동안 스탠더드와 록펠러, 로이스 가문 연합군과 모건 가문 간의 총성 없는 쩐의 전쟁은 정초부터 5천이 넘었던 나스닥 지수를 4월 중순을 맞은 오늘로 3천 포인트까지 끌어내렸다.

나를 보며 피식 웃는 선해철의 맞은편에서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던 박태진이 빙긋 웃으며 내게 말했다.

“전쟁 기간은 100일이었지만 전쟁 준비는 자그마치 6년 아니었습니까? 의도하셨을지는 모르겠지만요, 후후.”

빙긋 웃는 박태진의 말에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결과론적으로 보면 그런 셈이죠. 때가 맞고 상황이 맞아서 일이 풀렸을 뿐이지만요, 후후.”

웃으면서 넘어갔지만 박태진의 말이 반절은 맞았다.

난 처음부터 IT주식을 담보로 대출을 몽땅 땡긴 뒤, 내가 맡긴 주식을 포기할 생각이었다. JP모건에 몽땅 떠넘기는 플랜 A가 먹혔으니 대성공이었다.

모처럼 만의 여유를 즐기며 커피를 마시던 나는 선해철의 옆에서 주스를 마시던 클레어에게 물었다.

“체이스맨해튼이 JP모건 합병하는 건 어떻게 됐나요?”

“아버지한테 들었는데 조만간에 상원 금융위원회랑 연방 준비 이사회 승인 떨어질 거래. IT버블 붕괴 때문에 JP모건이 400억 달러나 까먹어서 빨리 해결을 보려는 모양이야.”

IT버블 붕괴로 JP모건이 보유한 주식은 무려 400억 달러 이상 주가가 빠졌다. 주가 방어에 쓴 돈까지 합치면 모건 가문은 그 배를 까먹었을 거라 예상하던 나는 클레어에게서 놀라운 소식을 하나 더 들었다.

“인수합병은 체이스맨해튼이 JP모건의 자산과 부채만 떠안을 거라네? JP모건 주식, 전부 휴지조각 되게 생겼어, 호호.”

싱긋 웃는 클레어와 달리 나는 소름이 쫙 돋았다.

“P&A(자산부채이전)로 진행한다고요?”

P&A 방식의 인수합병은 가장 과격한 인수합병이다. 인수당하는 회사는 알짜배기 자산만 다 털리고 부실채권만 떠안은 채 정리되기 때문이다.

당연히 인수당하는 회사의 주주들은 주식으로 단 한 푼도 건지지 못하니 사형선고나 마찬가지다. JP모건이라면 미국 정부에서 공적자금을 투입할 줄 알았는데··· 예상치 못한 방법에 당황한 내게 클레어가 그 이유를 알려줬다.

“올해 연말이면 대선인데 클린턴도 미치지 않고서야 세금을 투입하지는 못하겠지. IT버블로 400억 달러나 날려먹은 건 JP모건 하나뿐이니 특혜 시비가 붙을 수도 있고.”

“그렇군요, 후후.”

미국이나 한국이나 선거철만 되면 정치인들이 을로 변하는 건 매한가지인 모양이다. 400억 달러면 대한민국 예산의 거의 절반인데 그 돈을 날려먹은 JP모건만 구제해준다면 어떤 미국 국민들이 좋아할까?

고개를 끄덕이며 쓴웃음을 흘리던 내게 클레어는 P&A 방식으로 두 회사의 합병이 진행된 이유를 알려줬다.

“그리고 록펠러 가문이 미국 정관계 인사들에게 뿌린 돈이 만만치가 않아. 공식 기부금에 꼬리표 없는 돈까지 합쳐서 10억 달러는 뿌렸다고 하더라고.”

“시, 십억 달러요?”

그 말을 들은 나는 입을 떡 벌렸다. 액수의 크기도 놀라웠지만 록펠러 가문이 모건 가문에게 쌓인 분노가 그만큼 크다는 뜻 아닌가?

선해철이나 박태진도 기가 질린다는 표정을 짓고 있을 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아이작입니다, 조니. 잘 지냈습니까?]

호랑이인지 양반이 못되는지 모르는 아이작의 통화에 나는 헛웃음이 나왔다.

“하하. 네, 아이작. 록펠러 가문에서 제대로 칼을 가셨더군요.”

[이거, 조니를 놀라게 해주고 싶었는데 클레어 씨가 알려준 모양이군요, 하하.]

한동안 흘러나오던 아이작의 멋쩍은 웃음소리가 그치면서 그의 말이 들렸다.

[그 정도는 꽂아줘야 워싱턴 D.C의 구렁이들도 JP모건을 도울 생각을 안 하지 않겠습니까? 조니가 판을 만들어준 덕분에 집안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었지만요, 후후.]

“그럼 이제 슬슬 정산할 차례가 오겠군요. 방법은 달라졌지만 인수합병 작업이 전부 끝나면 약속하신 대로 JP모건이 쥐고 있던 IT주식에 모건스탠리 지분까지 우리에게 넘기시는 겁니다? 하하.”

모건스탠리.

글래스-스티걸 법이 폐지되기 전까지 골드만삭스와 함께 월가 투자은행들의 선두에 있던 회사로 JP모건의 투자은행부문 자회사이기도 하다.

껄껄 웃으면서도 그런 회사를 넘길까 걱정했지만 내 걱정이 기우였다는 게 드러난 건 순식간이었다.

[물론이죠. 헐값이 될 IT주식을 300억 달러나 주고 다시 사주겠다는데 모건스탠리 정도야 넘겨드려야죠. 아이젠버그 행장과 윌슨 부행장도 조니 제안을 듣고 쌍수 들고 환영했으니 염려놓아도 됩니다, 하하.]

“두 사람도 찬성한 걸 보니 결정이 빨리 된 모양이군요, 하하.”

IT버블 붕괴의 임팩트가 크긴 큰 모양이었다. 하루가 다르게 주가가 떨어지는 IT주식들을 계속 쥐고 있느니 모건스탠리까지 세트메뉴로 묶어서 내게 넘기고 현금을 챙겨서 손실을 메우는 게 훨씬 낫지 않겠나?

‘IT주식이야 몇 개만 정리하면 장기투자 가치는 충분하지. 거기에 모건스탠리까지 손에 넣었으니 남는 장사야, 흐흐.’

장기적으로 보면 성공할 투자이기에 나는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그 뒤로도 나는 아이작과 ‘전후처리 협의’를 마치고서야 통화를 끝냈다. 통화가 끝나자 클레어가 주스 컵을 입에서 떼고 내게 물었다.

“이번에 번 돈으로 뭐할 거야, 조니? 순식간에 총자산 자릿수가 하나 더 늘었잖아?”

클레어의 말대로 이번 IT버블 붕괴는 스탠더드 캐피털의 내 재산만 100억 달러 단위에서 1천억 달러 단위로 올라가는 기회가 되었다. 나는 클레어를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글쎄요. 일단, 우리 마느님과 약속한 의류사업도 하고 개발권 따뒀던 해외 광산들도 하나둘씩 개발하려고요. 태현전자도 인수하고요, 후후.”

이번에 벌어들인 돈이면 해외 자원개발이든 반도체 치킨게임이든 그룹 사업을 전부 글로벌 TOP 3로 밀어 올릴 수 있다. 새천년에 대한 부푼 기대를 안은 내게 선해철이 말했다.

“네 처가 쥐어짜는 건 빼먹을 거냐?”

“아뇨? 당연히 해야죠. 전부 다 우리 집안 앞에 무릎 꿇릴 겁니다, 흐흐.”

아무리 사업을 키우는 게 재밌어도 처가 놈들 피를 말리는 것에 비할 수 있을까. 나는 커피를 마시며 어떻게 혁신적인 방법으로 처가 놈들의 피를 말릴까 고민했다.

***

며칠 뒤.

나는 박태진-유현정 부부, 선해철-클레어 부부와 함께 한국으로 들어왔다. 각자 흩어졌던 우리는 고려호텔 본점 스위트룸에서 장기투숙하기로 한 선해철과 클레어를 찾아갔다.

“삼촌, 정말로 한국에서도 사실 거예요?”

나, 그리고 박태진과 마주보고 앉은 선해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지? 아이들 국적은 나중에 고민해봐야겠지만 자기 부모의 나라가 어떤 곳인지는 알려주고 싶거든. 그렇지, 클레어?”

“맞아요, 썬. 우리 아이들, 반절은 한국인이잖아요? 아버지도 1년마다 번갈아가면서 사는 게 좋겠다고 하셨고요, 호호.”

헨리까지 한국과 미국에서 1년 단위로 살라고 두 사람에게 권했으면 다 끝난 일이다. 살풋 웃는 클레어와 그녀를 보며 빙긋 웃는 선해철의 모습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왕 번갈아 사시는 거, 저희 이웃에 사시는 건 어떠세요?”

“응?”

“놀라실 거 없어요. 삼촌이 형 집 사드렸으니까 이번에는 저하고 형이 사드릴게요. 형 생각은 어때요?”

벙찐 선해철과 클레어를 앞에 둔 나는 박태진의 대답을 들었다.

“물론입니다, 이사님. 기왕이면 이사님 옆집이 좋을 듯합니다. 셋이서 나란히 살면 좋지 않겠습니까? 하하.”

나를 가운데에 두고 박태진과 선해철이 함께 살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 나 또한 생각했던 바이기에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좋겠네요. 집은 슬슬 알아보고··· 앞으로 한국에서 할 일이 많을 텐데 각오하셔야 할 거예요, 흐흐.”

“어련하겠어. 네 옆에 있으면 심심할 일이 없어서 한국에서도 살기로 한 거니까 걱정 붙들어 매둬, 흐흐.”

씩 웃는 선해철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는 클레어까지 보니 헛웃음만 절로 나왔다.

‘나만 일중독인 줄 알았는데 두 사람도 만만찮네. 뭐, 오히려 잘 된 건가? 흐흐.’

이내 입꼬리가 올라간 나는 두 사람을 앞세워 처남들과 처제를 엿 먹이기로 결심했다. 미국에서 생각한대로.

***

얼마 뒤.

선해철과 클레어는 마이클과 라이언을 품에 안고 한 방송프로그램에 출연했다.

두 사람이 아이들을 한 명씩 품에 안은 것만 보면 가족 프로그램인 줄 알겠지만 그들 가족이 출연한 프로그램은 시사경제 프로그램이었다.

“그러니까··· 지금의 한국에 불고 있는 IT열풍이 광풍이란 말씀이십니까, 로렌스 대표님?”

“그렇습니다. 스탠더드는 IT산업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에 못 미치는 통신환경에 주목, 리스크를 안고 모든 IT주식을 정리한 뒤, 폭락에 배팅하여 막대한 수익을 냈습니다. 그 과정에서 운이 겹친 것도 있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월가의 여제’로 불리게 된 클레어가 IT버블 속에서 돈을 번 과정에 대해 들려주자 진행자의 입이 벌어졌다.

“···사람들이 원하는 수준의 IT서비스가 실현되려면 최소한 초당 1기가비트, 그러니까 128메가바이트 수준의 속도로 올라가야 합니다. 이제야 초당 1메가비트를 넘긴 지금으로서는 갈 길이 멀다고 봅니다.”

자신의 동업자인 이성민의 토스대로 충분히 밑밥을 깔았다고 생각한 클레어는 선해철에게 눈짓으로 바통을 넘겼다.

“제 아내이자 상사인 로렌스 대표의 말대로면 지금 모 그룹에서 전사적 역량을 투입하는 중인 IT사업은 무의미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알아본 바에 따르면 단 몇 달 만에 수십 개의 IT회사들이 쏟아져 나왔다는데 그 그룹으로 인해 한국에서 IT버블이 재현될까 우려됩니다.”

모 그룹을 모 그룹이라 하지 않아도 어디인지 누구나 다 알 수 있었다. 자신들을 이어준 동업자와 꾸미고 벌인 오늘의 쇼에 만족했는지 클레어와 선해철은 싱긋 미소를 지었다.

***

TV로 두 사람의 말을 지켜보던 장호건이 책상을 내리쳤다.

“저 망할 연놈들이!”

장호거는 치미는 화를 견디질 못했다. 자식들이 졸라서 도와주긴 했다만 경영 승계를 위해 신성의 이름을 걸고 벌인 IT사업에 고춧가루가 진하게 뿌려지지 않았나? 저 두 연놈들 때문에.

씩씩거리며 책상을 주먹으로 연신 내려치던 장호건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안 좋은 일이 터졌는데 전화라니··· 장호건은 애써 불안을 외면하며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큰일입니다, 회장님! 은행들이 보유한 i-신성 주식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뭐야?”

장호건은 믿을 수가 없었다. 은행들이 예금주이자 대출고객인 자신을 거스르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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